애틀랜타에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살해된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 아시아계의 분노가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애틀랜타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정도…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혐오 범죄인 이 사건에 대한 각종 기사를 보다 보니 한국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계는 미국인 중에서도 ‘모범적인 소수자(model minority)’란 이미지에 말 그대로 ‘가스라이팅’되어 왔다. 즉 “다른 유색인종보다 더 잘 살지 않냐? 똑똑하지 않냐? 당신들은 차별받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계, 남아시아계, 인도계, 폴리네시아계 등 다양한 분포에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한 가지 이미지로 고착되어 왔다.
아시아계 남성은 미국에선 무성화(desexualized)되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뉴욕시장 후보로 나온 앤드루 양조차도 학생 시절 투명인간 취급, 놀림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아시아계 여성을 보는 (주로 백인) 남성의 시각인 ‘비인간화(dehumanized)’의 역사적 맥락이 언론에 많이 소개되었다. 워싱턴포스트에서는 식민 역사와 전쟁 영향으로 봤다.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을 거치며 아시아 여성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특히 백인 남성들의 시선이 전쟁 후에도 그대로 문화와 제도에 녹아들었다. 아시아 여성들이 수동적, 순종적이라는 인식과 이들을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hypersexualized)하는 인식이 겹친 것이다. 이런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의식이 영화, 드라마, 만화 등에 그대로 투영됐다.
미국 인기 토크쇼 레이트 나잇 위드 세스 마이어스의 한국계 작가인 캐런 지(Karen Chee)는 이번 총격이 인종 혐오 범죄라고 못박았다. 캐런 지는 트럼프가 코로나를 ‘중국바이러스’ ‘쿵플루’라고 비아냥대면서 아시아계에 대한 묻지마 차별과 증오가 확산됐지만 아시아계를 향한 미국 내 인종차별은 역사가 오래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인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며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혐오한 역사적 증거다. 1882년엔 중국 이민을 아예 막은 중국인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 1917년 영어 시험을 보게 하여 아시아계 이민을 막은 아시아이민제한법(Asiatic Barred Zone Act)이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소에 가두기도 했다.
특정 지역 출신자를 골라서 이민을 막거나 수용소에 가뒀던 건 미국 역사의 ‘수치’라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애틀란타 연쇄살인을 수사한 애틀란타 경찰이 용의자를 두둔하는 말투에도 이런 뿌리 깊은 차별의식이 녹아 들어가 있다고 보도됐다.
용의자에게 운수 나쁜 날(have a bad day)이었다.
이번에 희생당한 여성들은 다층적 차별의 희생자였다. 코넬대 철학과 교수 케이트 맨(Kate Manne)은 “이번 사건은 인종혐오, 여성혐오가 섞여 있고 두 가지 차별은 교차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애틀란타 총격 용의자는 백인 남성 중 소위 ‘인셀(INCEL;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순결주의자. 한국어로 모태솔로 정도의 의미)’일 것으로 추정된다.
총격을 가한 마사지샵에 가끔 들렀다던 용의자에게 아시아 여성들은 어느 모로든 수치심을 안겨주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맨 교수는 분석한다. “이런 백인 남성들은 여성을 순종, 정복 대상으로 인식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도, 그렇지 않더라도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여러 이유로 혐오 범죄를 당해도 신고를 꺼린다. 일부는 영어가 잘 안 돼서, 일부는 이민 서류가 미비해 추방될까 봐, 일부는 보복을 꺼려서, 일부는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등이다.
친숙하지 않은가. 한국은 어떤가? 당장 애틀랜타 사건 관련 한국의 포털 댓글을 보라. 중국 혐오 발언으로 가득하다. “우한 코로나”의 원인인 중국인만 골라서 죽였어야 한다는 투다. 끔찍할 정도다. (“차이나 바이러스”란 말을 트럼프가 자주 쓰면서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고무된 것을 상기해 보자.)
농촌 비닐하우스 화재로 질식해 죽은 외국인 노동자. 한국으로 결혼 이주해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해도 신고 못 하는 외국인 아내들. 서울시는 외국인 고용 사업장에게 “코로나 전수검사를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국내 외국 대사관들이 집단으로 항의하자 공문을 철회했다.
애틀랜타 총격 사건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포털의 인종차별적 댓글부터 어떻게 좀 해보자. 혐오 발언, 왜 한국에서는 제재하지 않는 것인가? 역사의 잔재가 남아 차별적 말과 태도가 된다. 권력이 되고 법 제도가 된다. 다시 말과 태도와 문화를 낳는다.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원문: 홍윤희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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