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Alyssa Jeong Perry가 NPR에 기고한 「One Korean American’s Reckoning」을 번역한 글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경찰 폭력과 제도적 인종주의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이와 같은 행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종차별을 둘러싼 전 사회의 대화에 아시아계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인종차별이라는 것에 항의해본 사람들도 있고, 아시아계 커뮤니티 내의 반(反) 흑인 정서를 직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미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해 온 아시아계도 있죠. 갤럽에서 실시한 최신 여론조사에 의하면 최근의 시위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이들의 비율은 흑인 집단을 제외하면 아시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번 시위를 통해 인종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시각이 바뀌었다고 대답한 비율도 아시아계에서 흑인 다음으로 높았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긴 했지만, 아시아계가 인종차별에 항의한 운동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인종 문제 컨설턴트이자 인종 간 연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킴 트랜 씨가 그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아시아계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기원
아시아계 운동의 역시 흑인들의 민권 운동이 시작된 6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00년대에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 조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도 주장할 수 있죠.
중국계, 인도 펀자브 지역에서 온 이민자, 시크교도들은 미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인종차별에 맞서 싸웠죠. 아시아계는 언제나 백인우월주의의 피해자로 스스로를 인식해왔습니다. 그레이스 리 복스(Grace Lee Boggs)나 유리 고치야마(Yuri Kochiyama)와 같은 유명 활동가들을 떠올리면, 반중국 정서라든지 2차대전 당시의 일본계 수용소와 같은 아시아계 차별의 역사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아시아계는 인종주의를 실감하게 되었고, 반인종주의 운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연대 구축
아시아계 미국인의 반인종주의 활동은 언제나 연대 기반, 다 인종적 협력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커뮤니티의 운동과 구분됩니다. 현재의 상황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지점입니다.
일례로, 60년대 중반 코첼라밸리 지역에서 필리핀계 농장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을 때, 라틴계 노동자들의 상황에도 관심을 가졌거든요. 이렇게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운동이 인종 간에 다리를 놓은 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역사의 기억에서 잊혀지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운동의 다른 점은 그것이 더 큰 움직임에 엮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계 미국인인 유리 고치야마는 말콤 엑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 그를 안고 있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리는 곳도 없고요.
농장 노동자들의 파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저기서 파업과 보이콧, 행진과 비폭력 시위가 있었지만 아시아계의 참여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시아계 미국인들은 정치적이지 않고, 맞서 싸우지도 않고,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인상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실제로는 정치적인 조직이 많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 가운데도 백인우월주의가 있습니다.
흑인 목숨을 지지하는 아시아인(Asians for Black Lives) 의 부상에 대하여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 아시아계 운동의 부상에 대하여 동참하게 된 것은 여러 활동가들의 오랜 활동의 산물입니다. 2014년 8월, 퍼거슨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의 손에 죽었을 때 만들어진 포괄 단체도 있죠. 이들은 2014, 15년부터 흑인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아시아계와 흑인들이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서로가 각자 다른 경험을 한 것으로부터 연대를 형성했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내 문제는 아니지만, 흑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반 흑인 정서에 대하여
반 흑인 정서는 아시아계의 정체성에서 여러 의미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범적인 이민자’ 신화는 우리가 흑인들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 방식 가운데 하나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아시아계 이민자 부모가 집에 흑인 친구를 데려오지 말라고 하거나, 이런 일을 흔히 접할 수 있어요. 구조적인 차원에서도 학교에서 학업적인 성취에 있어 아시아계에 대한 기대는 높고, 반대로 흑인들에 대한 기대는 낮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영원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는 것, 이것이 아시아계가 처한 현실입니다.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인들에게는 백인의 지위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포지션이 주어집니다. ‘백인성’을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죠. 일부 아시아계는 이 사실에서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백인 우월주의 속에서 우리가 인종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우월적인 지위를 획득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니까요.
다음 단계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매우 정치적인 집단입니다. 60년대 민권운동에도 참여했고, 전미농장노동자협회를 결성한 세자르 차베즈의 운동에도 동참한 역사가 있습니다. 가시화되어있지 않지만 지금의 운동은 훨씬 더 긴 전통의 일부입니다. 힘들 때 특히 이 점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