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일, 나는 노무사 1차 시험에 불합격했다. 그러자 불확실의 세계가 나에게 펼쳐졌다. 일단 4학년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4학년 1학기에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결심한 터라 2학기에는 23학점, 7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다.
노무사 1차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몇 과목은 과제물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학점이 약점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학점을 올려야 했지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경영학과 졸업시험에는 떨어졌다. 영문학과 논문은 제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학기 졸업은 불가능했다. 졸업시험과 논문은 둘째 문제고 이번 학기를 마친 후 계절학기 6학점을 들어야, 거기에 경영학과 졸업시험에 합격해야, 더해서영문학과 논문을 제출해야 나는 졸업할 수 있었다.
길게 서술했지만, 짧게 얘기하면 ‘비자발적 졸업 유예’를 당한 것이다. 다행히 4학년 2학기 평균학점을 3.92로 마쳤다. 그리고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계절학기 6학점을 수강할 수 있었다. 계절학기에서 a+학점을 받았고 전체 누적 학점은 3.39였다. 토익 730, 누적학점 3.39, 신용분석사, 전산회계 1급,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컴퓨터 활용능력 1급 필기 합격으로 나는 취준생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일반 취업을 결심하고 처음 자기소개서를 쓴 곳은 신한은행 기업 서포터즈였다. 자소서 문항을 보며 ‘채용자’는 분명 이러이러한 것들을 원하고 있다며 여자친구 앞에서 오만을 떨었다. 그러나 서류도 합격 못 하고 떨어졌다.
그 후 자기소개서를 처음 쓴 기업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었다. 정규직 채용은 아니었고 채용형 인턴에 지원했다. 이번에는 오만을 떨진 않았다. 묵묵히 준비했다. 하지만 떨어졌다. 중요한 건 나의 태도가 아니었다. 경쟁률이 높아 서류 합격률조차 낮은 한국 취업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구조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논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너도나도 가고 싶은 기업은 시가총액 20위 내의 기업인데 기업은 20개 밖에 없고, 뽑는 인원도 적은 구조.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취업 경쟁률은 코스피 지수처럼 빠른 속도로 치솟았고 서류 합격률, 최종합격률은 코스피 인버스, 곱버스마냥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8년 서류 합격률은 11.5%였고, 내가 지원했던 2019년 하반기 서류 합격률은 18.9%였다. 취업 준비생이 10개 기업을 지원하면 1~2곳 정도의 기업에 서류 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다. 최종합격도 아니고, 기업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 이렇게 높아서야.
그런데 이마저도 ‘라떼’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나 때는 지원이라도 많이 할 수 있었다. 서류 합격률이 낮건 높건, 아무튼 원하는 기업의 채용방식이 공개채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채용보다 수시채용을 더 선호하고 있다.
수시채용이라고 지원을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공개채용보다 뽑는 인원이 훨씬 적다. 코로나 시대 기업의 불확실한 경영상황, 채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인건비 상승, 노동법의 이슈화, 신입사원의 퇴사, 기존 사원의 경력직 이직, 인적 자원에 대한 기업의 인식 변화 등으로 기업은 인재 채용에 더 신중해졌다.
이는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기업의 태도가 과거와는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공개채용 시절에도 기업은 각 부서에 적합한 인재를 적절한 수로 뽑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지금만큼 철저하지 않았다. 최대의 효율을 낼만큼의 신입사원보다 신입사원을 더 많이 뽑아도 큰 부담이 아니었다. 어차피 공개채용은 1년에 한번에서 두번 밖에 못하는데 이직, 퇴사, 사고로 인한 인적자원의 공백을 보고 있느니 오히려 신입사원을 조금 더 뽑아두는게 대응하기 좋았다. 뽑아두면 이 부서에서 쓰다가 적당히 저 부서로 쓸 수도 있었다. 한 번 뽑아두면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 직원들 대부분은 회사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고 신입사원도, 기존 직원도 바뀌었다. 신입 사원들은 회사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퇴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퇴사를 기회로 더 좋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다.
그건 좋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애써 교육시킨 신입사원이 퇴사했을 때 출혈이 너무 크다. 다시 채용을 해야 할 뿐 아니라, 기존 신입사원에게 들어가는 각종 비용이 부담스럽다. 특정 직무를 자신의 자아실현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 이 부서로 지원한 신입사원을 무작정 저 부서로 옮길 수 없다.
게다가 요새는 이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능력과 회사 내의 커리어 기반으로 이직하고 연봉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직원과 신입사원의 이직을 막기 위해 성과급과 연봉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노동법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개선되면서 법을 지키려는 노력(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 내에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스펙 좋은 사람을 다수 채용하는 채용방식인 ‘공개채용’보다, 회사에 지속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채용방식인 ‘수시채용’이 기업의 채용방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거기에 무채용 기업까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취업준비생에게 이보다 더 암울한 상황이 또 있을까?
코로나 19로 취업시장이 더 암울해진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좋지 못한 항수, 운명인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항수를 바꿀 수는 없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변수밖에 없으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변수를 어떻게든 바꿔서 승리하는 방법밖엔 없다.
원문: The Critics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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