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 10년 정도의 경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재무 기획 일을 했고, 이후에는 전략기획으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고, 지금은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합니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이 주변에 매우 드물지만 이런 경로의 직무 전환이, 과거의 지식과 경험이 새로운 직무에 도움이 됩니다. 희소성을 갖고 일하죠.
사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제가 지금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이름도 모르는 직무를 지금 하는 셈이죠. 학부 때는 금융과 재무에 주로 관심을 갖고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시장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이런 게 필요하겠다 싶으면 그런 역할은 새로운 직무든 기존 직무에서든 어떻게든 만들어졌습니다. 학부 때의 성취로 재무로 일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지만 이후 전략은 배우고 싶어서, 데이터 분석은 일하다 보니 이게 필요해 보여서, 그렇게 준비해 일을 하는 셈이죠.
한 분야를 깊이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요. 주변에 보면 끊임없는 비판 정신으로 한 분야를 해 오신 전문가를 드물게 보아왔습니다. 무적이죠. 누구도 그 전문성을 당해낼 수 없고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철학은 이 아티클과 같이 큰 범주 안에서 조합해서 차별화하는 것을 더 선호하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다양한 출신으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케이스들도 보아왔죠. 직무 전환은 많은 직장인들이 궁금해하고 도전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꼭 성공적으로 매끄럽게 되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과 주변 사례를 토대로 어떻게 시장과 내가 함께 원하는 직무 전환을 이룰 수 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옆방으로 옮겨 간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부분집합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부분집합, 조직 내의 부분집합이 되는 것 말이죠. 스스로 가진 생각이나 경험, 기술이 누군가에 의해 대체 가능하거나 이 조직에서 다 아는 수준이라면 희소한 노동력 공급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차별성이 떨어지는 공급은 더 싸거나 더 넓은 전문성을 가진 새로운 공급으로 대체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직무 전환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옮길 직무에서 기존 경험이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고유한 가치를 낼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데이터 분석을 합니다. 대부분 통계를 알고 프로그래밍도 몇 개 하고 머신 러닝 정도는 기초 이론과 구현도 잘합니다. 하지만 산업 지식이나 숫자의 의미는 기존 재무적 지식이나 전략적 사고가 그냥 데이터 분석을 어중간하게 하는 사람과는 차별성을 만들어 냅니다. 다른 관점의 결과물을 조직에 제시할 수 있죠.
쓸모 있는 경험은 반드시 과거와 현재가 시너지 나는 조합일 것입니다. 과거에 프로그램 개발자였는데 지금 유통 영업을 한다면 아무래도 둘 간의 시너지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업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산업 분야에 가서도 영업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태도와 기술, 결과에 대한 방법론이 비슷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무를 변경할 경우에는 두 직무가 공유하는 영역이 큰 분야부터 이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당장 저기 못 가도 옆방을 몇 칸만 옮겨가면 할 수 있는 일 말이죠.
만약 사회생활의 시작을 재무로 했다면 재무 전문가가 될 수도 있지만 재무가 적성에 맞지 않고 마케팅이 적성에 맞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작을 마케팅으로 하는 것이죠. 재무를 몇 달 하다 보니 적성에 막상 안 맞는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마케팅으로 다시 일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학부에서 재무만 준비했고 마케팅은 알지만 내세울 만한 준비 과정이 없어서 신입으로 다시 갈 자신이 없다면, 혹은 이제 와서 갈 수 있는 자리의 처우가 너무 떨어진다면 고민이 들 것입니다. 그럴 때는 방금 설명 드린 것처럼 ‘옆방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시간이 주는 배움
대학생 때는 저도 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겪어보지 못한 일을 비전이라고 하는 것은 곧 사회의 실전에서 처절하게 검증되었죠. 실제 하는 일은 학생 때 알던 그런 종류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일하면서 무엇이 내게 맞는 일인지를 끊임없이 찾아야 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과 대화해보기도 하고 같이 일해보기도 하면서 정확한 업무의 특성을 사회 나가서 머릿속에 하나씩 지도로 만들어 본 것이죠.
시간을 겪어내면서 인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옆방으로 옮겨가는’ 것은 인내의 열매였습니다. 처음부터 마케팅 일을 제대로 못 해보더라도 비슷한 업무 쪽으로 계속 옮겨가는 것이죠. 물론 일을 못해서 다른 부서로 발령 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옮겨 간 곳에서도 제대로 된 일을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죠.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관련된 업무로 하나씩 옮겨가는 것입니다.
앞선 예에서 재무로 시작하면 보통 원가나 회계에서 기획으로 기획은 다시 경영기획에서 전략기획으로 일을 옮겨갈 기회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아니라면 그 일의 조합이 어느 정도 나오는 동종 업계의 엇비슷한 직무로 갈 수도 있죠. 그리고 그 옆방으로 다시 이동하는 것이죠. 마케팅에 관심이 있고 관련 업무에서 기존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사람과 싱크로율을 맞춘다면 옆방으로 갈 확률은 높아집니다.
반면 급하게 원하는 직무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무 간 업무의 간격이 있다면 기존 경력이 처우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직무에서도 기존 직원들에게 치이면서 일을 바닥부터 배워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적성에 아주 잘 맞아서 새로 하는 일을 혼자 배워 단기간에 조직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선보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비슷한 속도에서 작은 차이로 학습을 하기 때문에 조직에서 큰일이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낮아지게 되겠죠. 이동할 때 연봉이나 복지를 상당 부분 포기했다면 그 어려움은 더욱 클 것입니다.
내 방의 옆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하면서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업계에서 어떻게 변화 혹은 분화되고 어떤 출신이 모여드는지 말이죠. 아시다시피 금융공학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진입하여 기여한 바가 크고 통계학과 컴퓨터공학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과거에 기본적인 경험이면 어지간한 관리 업무를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는 시기에 비해, 지금은 공유하는 태도와 기술이 비슷한 직무의 통폐합이 자유롭게 일어납니다. 마치 엑셀을 하는 기술이 과거 영업이든 분석이든 기획이든 누구나 필요했듯이 지금은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기획이든 마케팅이든 퍼져나가는 것 말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업무는 프레임에 따라 여러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있겠지만, 저는 경험 + 기술 + 지식으로 업무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보통 과거에 하던 방식처럼 루틴한 업무만 계속하는 일이라면 ‘경험’만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일의 프로세스를 빨리 잘 아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죠. 누구에게 어떻게 결재를 맡는다든지, 필요한 사무용품은 어디 신청한다든지 이런 것만 해도 되는 일은 많은 경험이 일의 프로세스의 다양성을 높여주고 변화에 대응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래된 회사에서 관료적으로 일할 때 많이 필요한 일이죠. 계약서는 누구에게 결제를 받고 그다음에 어디를 가서 어떤 도장을 받아오고, 이런 게 안 되면 나중에 어디 확인해서 누구에게 알려주고 확인은 어디서 하고 이런 일은 사실 많이 원하지도 않고 성과와 별 관련이 없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점점 사장되고 대체되는 일이죠. 이런 일로 옆방을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총무에서 하는 일이 영업에서 하는 일과 일부 프로세스를 공유할 수 있지만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적용이 어렵죠.
기술은 일을 하기 위한 도구, 태도,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기술을 토대로 옆방으로 많이 넘어가죠. 재무와 기획은 재무제표를 읽는 법부터 다루는 오피스웨어가 비슷하고 필요한 태도나 언어도 비슷합니다. 데이터 분석과 마케팅도 분석 스킬을 함께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죠. 경력직을 뽑을 때 회사에 필요한 기술을 중심으로 채용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옆방의 기술을 알아두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동한 직무라고 해서 모두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도 않습니다. 그 직무를 잘 해내는 데는 결국 지식이 필요한데 이는 상당 부분 재능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다음 디자인의 방향성을 잘 찾아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고객에게 주고 브랜딩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하고 싶어서 관련 업무를 통해 어렵게 건너와도 재능이 없으면 오래가기 어렵죠.
전략업무도 오랫동안 이렇게 훈련된 사고와 높은 수준의 리서치 능력, 그리고 사업 감각이 필요합니다. 경영 기획을 하다가 숫자에 지쳐서 전략 업무로 어렵사리 옮겨와도 이런 재능이 없다면 지식 부족으로 금방 전력 외 자원으로 판정받게 되죠. 옆방으로 가고 싶다고 해도 자신의 재능과 지식이 없다면 종착점이 늘 행복을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재능을 알아야 한다
저는 그런 재능이 추상적인 성격의 일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일정 부류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는 사람 중에서는 재능이 성실성이나 탐구적인 생각, 협상가 이런 식으로 분류되고 사람도 그런 식으로 재능을 분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유형화된 성격은 막상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현대 사회 직장 생활을 잘하는 유형과 잘 못 하는 유형으로 구분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성실성이 부족한 사람, 이해타산에 다소 어두운 사람은 회사 업무 중 잘하는 게 없을까요? 그런 식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기업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재능을 알기 위함이 아닌 사람을 선별해 놓자는 것이죠.
재능은 오히려 취미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취향 저격으로 잘 추천해주는 감각 있는 사람, 할인받는 방법이라면 누구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 뉴스를 보면 이론과 연결을 잘 시키는 사람, 드라마를 보면 비슷한 클리셰를 썼던 다른 작품을 떠올리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 야구 데이터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그것을 중계를 보면서 퍼포먼스와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주변에서 힘들 때 꼭 찾는 사람.
제가 아는 성공한 직업인은 이런 자신이 잘하는 일, 많이 하는 일과 비슷한 성격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직무의 방과 방 사이에서도 이런 재능이 연결고리가 되어 무리 없이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중 일부는 작곡가로서도 애널리스트로도 성공을 둔 사람이나 축구 선수지만 회계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겁니다.
결국 다시 원점입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많이 들은 재능.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재능을 찾고 말하고 그것을 직업으로 잇기에 수많은 제약과 결핍이 존재했습니다. 다양한 경험보다는 획일화된 입시로 스무 살 이후부터 다시 직업을 고민하게 만드는 시스템부터 경험을 위해서는 지나치게 비싼 비용이 필요한 사교육 중심의 경험 획득 구조,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데 대한 기존 기업들의 도전정신 결핍과 투자자들의 의심.
재능은 결국 기존 직무 속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고 앞으로 사회가 원할 직무는 규정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직업을 위해 개인이 혼자 생각해 내어서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자기소개서 쓸 때 겨우 하나씩 찾아내는 것처럼요.
일단 옆방으로 갑시다. 그렇지만 시간의 배움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찾아봅시다. 자신에 대한 생각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책도 때로 도움이 되고 강연도 도움이 되지만 휘발성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묵은 기억에서 찾아봅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이왕이면 재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죠.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재능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일 텐데요.
원문: Pe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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