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와인 한 잔,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착취, 눈속임이 숨어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는 현대사회 인류가 먹고 마시는 먹거리 뒤에 숨은 부패의 손길과 교묘한 진실을 담은 미국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Rotten)>이 있다. 물, 설탕, 초콜릿부터 우유, 생선, 육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어떤 그림자가 존재하는지 조명했다.
공통 키워드에 맞는 에피소드를 묶어 리뷰해봤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음식을 통해 무엇이 현명한 소비인지, 나의 구매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운 좋게도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든 깨끗한 물이 쏟아지는 세상에 태어나 살다 보니 ‘물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전 세계 78억 인구 중 약 30억 명이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UN이 국제사회 공동의 목표로 제시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 6번째로 ‘모두를 위한 물과 위생의 이용 가능성 및 지속가능한 관리 보장’을 명시한 것은 물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음을 증명한다.
물은 식수뿐만 아니라 세수·목욕·요리·청소 등 일상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품목이기에 ‘인권’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나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각종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농작물을 경작하지 못해 굶주리는 등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제3세계 국가들만 물 부족에 시달릴 것 같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도 물 부족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부패의 맛>에서는 안 그래도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자원을 고갈시키는 비윤리적 식품 산업의 행태를 고발했다. 생수 업계가 호수나 샘물에서 물을 퍼날라 판매하는 동안 생태계의 물줄기는 말라버리기 시작했고, 엄청난 물을 먹고 자라는 아보카도를 생산하기 위해 주민들이 먹을 식수원까지 고갈시키는 상황이다.
시즌2 3회 자연을 착취해 만든 생수…‘물을 거래하다’
우리의 일상에는 언제부터인가 ‘생수병’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편리하고 저렴하면서도 걱정 없이 마실 물로 생수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수병 안에 든 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연의 호수나 개울이 됐어야 할 물을 펌프로 끌어 올려 플라스틱 병 안에 담은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인들은 매년 3800억 리터의 생수를 마시는데, 폭발적 수요에 비해 자연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매년 1인당 158리터의 생수를 마신다. 생수 업계의 매출은 350억 달러로 영화 산업의 3배에 달한다. 4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대표적 생수 업체인 ‘네슬레’는 수원지를 찾아 그 지역의 물을 끌어 올린다. 3800리터당 약 3.6달러 정도를 비용을 지불하는데, 네슬레는 이를 통해 무려 7000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지역 주민 모두의 것인 ‘물’에 매우 적은 비용을 지불한 뒤 병에 담기만 하면, 그 주인은 생수 회사의 것으로 바뀐다. 자연을 사적으로 이용해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하지만, 정작 시민이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생수 업계가 망가트린 생태계로 인해 물이 고갈되고 물고기들이 죽어 나가는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수많은 소송을 걸었지만, 거대한 자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나아가 생수 업계는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으로 시장을 넓혀 이곳에 펌프를 설치하고, 현지 부자들을 대상으로 생수를 팔기 시작했다. 이들 기업들에게 깨끗한 물이 없어 질병에 걸리고 수십km를 걸어 물을 긷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생수 수요가 늘어난 만큼, 플라스틱 물병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활용되지 못한 채 거리, 배수구, 해안선으로 떠내려간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가 생태계를 오염시킨다.
시즌2 1회 물과 피로 얼룩진 과일 ‘아보카도 전쟁’
기름지고 부드러운 맛의 과일 아보카도는 건강에 좋은 ‘슈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약 50억kg이 소비되는데, 웰빙 열풍에 따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보카도는 기온 22도의 매우 습한 지역에서 자라는 작물로, 재배할 때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 아보카도 생산에 워낙 많은 양의 물이 쓰이는 탓에 지역민들의 식수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칠레에서는 1990년대 수출량이 늘면서 자국 내 수많은 아보카도 농장을 만들었다. 언덕에서 잘 자라는 아보카도 나무에 물을 대기 위해 주변의 강에서 수만 리터의 물을 퍼올렸다. 이로 인해 1997년 페토르카강이 메말랐고, 2004년 리과강의 물까지 바닥나면서 주민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물조차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한때 아이들이 수영할 정도로 물이 많았던 강이 순식간에 황폐화해버린 것이다.
한편, 멕시코는 자연환경이 딱 맞아 대량생산이 가능한 아보카도의 원산지다. 세계 아보카도의 1/3이 생산되는 미초아칸에서 이 과일은 축복이자 저주로 통한다. 아보카도 수출에 따른 수익이 너무 좋아지자 범죄 조직이 개입해 카르텔을 만들고 뇌물과 강탈, 납치, 살인까지 벌이며 농부들과 지역사회를 가혹하게 갈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패의 맛’은 지역민의 생존을 강탈하는 기업들이 생산한 아보카도를 소비하는 게 과연 윤리적인가 질문을 던진다.
<물을 거래하다>와 <아보카도 전쟁>은 이윤 창출을 위해서라면 공공 이익은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식품 산업의 어두운 민낯을 보여준다. 수자원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주민들의 물 접근성을 높이려면 ‘공공 용수’ 인프라를 깔고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
모두의 것인 자연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생수 업계가 사람들의 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거나 인프라 설치에 투자하게끔 하는 방법은 너무 비자본주의적 생각일까?
물에 대한 인권 침해를 부추기는 기업이 생산한 아보카도를 사 먹는 건 명백히 비윤리적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 구입한 아보카도가 지구 한편에서 다른 사람의 생을 위협하는 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아보카도를 먹지 않으면 해당 산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보다 윤리적인 아보카도를 먹길 원한다면, 공정무역 제품 같은 ‘인증 시스템’이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더라도 소비자의 힘으로 꿋꿋이 좋은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원문: 이로운넷 / 작성: 양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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