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서는 공적 주택 전체를 ‘사회주택(social housing)’으로 통칭합니다.
프랑스의 대도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집값이 비싸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전세 난민,’ ‘영끌’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질 만큼 주거 환경이 불안정하지는 않다. 이는 질 좋고 저렴한 임대주택이 충분히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는 국민의 약 70% 정도가 ‘사회주택’이라는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 수 있는데, 이 덕분에 서민이라도 매번 이사하거나 오른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의 한 대목이다. 작가는 LH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인 최민아 박사다. 그는 프랑스에서 7년 유학하는 동안 ‘집’ 문제로 고생한 일이 없었다. 집값이 매년 5%씩 오르긴 했지만 안정적이었고, 내내 같은 집에 살며 주택 보조금까지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10년 동안 7번 이사했다.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퇴거 통지를 받고,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전세 계약 날 집주인이 갑자기 전세금을 5,000만 원 올려 포기한 적도 있다. 이해 불가한 일의 연속이었다.
책을 통해 그는 프랑스, 특히 파리가 주거 안정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소개한다. 민간기업이 돈을 모아 사회주택을 짓고, 지자체는 일정 비중의 사회주택을 의무화하고, 정부는 최근 임대료 자체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그 바탕에는 주거권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국민의 70%가 입주 자격이 있고, 사회주택이 전체 주택의 17%에 달하는 프랑스. 지난 1월 27일 그를 만나 대체 우리나라와 뭐가 다른지 들었다.
Q. 본인을 소개해달라. 프랑스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나.
최민아: 국내에서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4년을 일했는데, 프랑스 건축에 끌려 2000년에 공부를 하러 갔다. 석박사가 아니라 학부 편입 형태로. 이미 결혼한 상황이라 아이와 함께 갔다. 마른라발레 건축 학교를 졸업해 건축사 자격증을 땄고, 그곳에서도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이후 건축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공부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듯했다. 유럽에서는 건축과 도시가 이분화되지 않는다. 건축을 공부하려면 도시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필지 하나를 놓고 건축물을 설계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옆 건축물의 볼륨, 배치 형태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높이나 지붕 각도 등을 한국보다 더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조화롭다.
2007년 7월 귀국해 정부세종청사 설계 현장에서도 일하고, 서울연구원에서 초빙박사로도 잠시 있었다. 그러다 LH(당시 한국토지공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Q.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하다.
최민아: 이전에도 책을 썼다. 도시의 역사, 냄새·맛 등을 주제로 한 인문 분야 서적이다. 이번에는 제도를 다뤄보고 싶었다. 국내 연구자료에 해외사례가 많은데, 프랑스 이야기가 부족하다. 잘못 적힌 내용도 많더라. 그래서 썼다. 이걸 알리면 주택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2019년 탈고했는데, 책은 작년 말 나왔다. 그 사이 한창 국내에서 부동산 정책이 이슈였는데, 좀 더 일찍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Q. 책을 보니 세입자의 온갖 설움을 겪었던데.
최민아: 결혼 전에는 남편도 나도 본가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결혼 후 거의 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7년을 살았다. 한국 부동산 시스템으로 고생해본 일이 없었던 거다. 젊을 때 세입자 생활을 해봤다면 배웠을 텐데, 그 과정을 건너뛰고 30대 후반부터 겪어 힘들었다. ‘확정일자’라는 표현도 잘 몰랐다. 프랑스에서 내 집 없이도 7년이나 편하게 살았으니, 한국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돼?” 싶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벌어지더라.
Q.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유럽국가의 사회주택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는 이야기는 꾸준히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는 이런 주택을 낮춰보는 시선이 많다.
최민아: 저소득층과 섞이기 싫어하는 분위기와 주택의 질에 대한 편견 때문이지 않을까. 공공임대주택 자체는 늘어나는 게 옳다. 서민의 삶의 기반이 되는 주택을 시장 경제 논리에만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다만 사람이 들어가 살고 싶은 매력적인 주택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부족하다.
1988년 도입된 영구임대주택 단지는 대규모라 외곽에 지었고, 교통도 불편했다. 임대료가 싸다는 점 말고는 아무런 장점이 없었다. 여기서 형성된 ‘임대주택’에 대한 선입견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입지도 좋아지고, 사는 사람도 다양한 사회주택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행복주택 입주자 소득 기준은 국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80–100% 이하면 된다. 역세권에 자리 잡은 사회주택도 많다. 확대되면 인식이 더 바뀌지 않을까.
앞으로도 질 좋은 사회주택이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에 지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곳은 땅값이 비싸 정부가 토지를 취득하기 어렵다. 이건 현실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다.
Q. 프랑스의 ‘0% 이자 대출’, ‘자가 취득을 위한 사회적 대출’ 같은 제도가 눈에 띄었다. 이 방법으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무주택 저소득층이 단계적으로 사회주택을 소유할 수 있다. 싸게 집을 사서 비싼 값으로 팔아버리면 사회주택의 의미가 퇴색될 텐데.
최민아: 당연히 안 된다. 집을 팔고 나오려면 공급기관인 HLM 협동조합에 차익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으로부터 싸게 분양받은 주택을 높은 가격으로 파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사회에서도 인정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공공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문제가 없는 거다.
수익을 차단하는 것 같지만, 손해를 막는다고 볼 수도 있다. 집값은 무조건 오르는 게 아니다. 떨어질 수도 있지 않나. 구매한 사회주택을 팔고 싶은데 집값이 너무 내려갔다면, HLM이 적정한 가격에 되사준다. 그리고 팔고 나온 사람이 들어갈 사회주택을 찾도록 도와준다. 시스템이 주거 안정에 맞춰져 있다.
Q. 사회주택 공급량이 늘어나려면 뭐가 필요한가?
최민아: 지자체 역량, 의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LH 중심으로 도맡아 공급하지 않나. 프랑스에서는 중앙에서 끌지만, 지자체 중심이다. 설계, 공급 과정에서 민간-지방정부-중앙정부가 협업한다. 지역 요구나 특성 등 세부적인 건 지자체만 파악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역량이나 재원 면에서 지자체가 중심이 되기 어렵다.
민간기업이 참여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에서는 사회주택 재원을 마련할 때 민간기업의 역할이 어마어마하다. 사회주택 자체가 19세기에 기업가들이 노동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 지은 데서 시작했다. 짓는 데서 끝내지 않고, 건설 기금을 모았다. 이 기금은 훗날 ‘악시옹 데 로주망’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됐다. 50명 이상이 일하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기금을 내야 한다. 서민의 주거권 안정을 위해 십시일반 하는 일에 공감대가 형성돼있는 거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으면 좋겠다.
글: 이로운넷 박유진 기자
원문: 이로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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