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재명 지사답다. 아직 기본주택이 주택법에도 공공주택특별법에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지사의 권한으로 향후 ‘기본주택’이 아니면 아예 허가를 안 내주겠다니… 시원시원하다는 느낌과 신기하다는 느낌, 저렇게 해도 되나 하는 느낌, 난 왜 저런 생각을 못
할까 하는 오만 가지 느낌이 다 든다. 그래서 내친김에 그동안 기본주택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몇 개 적어본다.
장점
경기도형 기본주택의 장점은 먼저 보편복지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무주택자 일반으로 대상을 확대해 기존 공공임대의 이미지 개선 및 ‘잔여화’ 경향을 극복하겠다는 취지는 훌륭하다. 공공성이 부족한 뉴스테이의 대안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소득대비 주거비 지출비(RIR) 차원에서 접근해 ‘소득대비’로 책정하되 임대료 자체는 ‘운영이 가능한 수준’으로 체계화하고, 주거보조비로 차이를 메꾸자는 관점은 획기적인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여러 공공임대는 브랜드별로 임대료 책정체계가 달랐고, 임대료도 시세연동형으로 ‘시세 30%’ ‘시세 80%’ 하는 식의 아무런 내재적 근거가 없는 임의적 수치로 잡았기 때문이다.
특징 몇 가지
리츠(REITs)가 나서고, 월세 중심이고, 입주 자격이 폭넓은데 공급량은 미지수다. 무엇보다 (사회주택도 아니고 민간주택도 아니고 공공지원민간주택도 아니고) ‘공공’주택인데, 공공주택을 매입해 주는 ‘리츠’의 역할이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공공사업자’가 공급한 주택을 리츠가 매입 후 운영관리 위탁을 다시 그 ‘공공사업자’에게 맡기는 구조다.
‘공급자’와 ‘운영자’가 일치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매입임대주택’ 등에서 보이는 부실 공사나 엉뚱한 입지선정의 확률이 낮아지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왜 공공사업자 뒤에 리츠가 나서는지는 의문이다. 나머지 특징들과 함께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언급하겠다.
우려 지점 7가지
1. 보편복지를 추구하는데 수혜자는 한정되어 있다
어차피 경기도민 중 무주택자 전부를 소화하는 일은, 근시일은 물론, 앞으로 상당 기간 내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정된 물량으로 ‘아주 저렴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면서, 저소득층이 아닌 일반 중산층 무주택자에게 다 문호를 넓힌다면(보편복지 지향은 좋지만 물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면),
- 비슷한 처지인데도 못 들어간 경기도민에 비해 입주자만 로또 맞는다는 지적
- 더 어려운 저소득층이 못 들어간다는 지적
등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수평적_형평성, 후자는 #수직적_형평성에 위배된다. 이에 대해서 지적하면 ‘왜 애써 만든 모델에 찬물을 끼얹느냐’고 억울해 하실지 모르겠지만… 위배된 건 위배된 거다. 앞으로 신규주택은 무조건 기본주택으로 해도 당장 정책대상인 경기도 무주택자가 한순간에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 그렇게 설계한 모델이라면 충분한 물량이 지어질 때까지는 감내해야 할 비판이다.
용기 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 비유컨대 교복을 지급하는데, 전체의 5%에게만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상이 1학년으로 한정되어 있다거나 한 게 아니라 전 학년이 대상이다. 그런데 가정 형편대로 주는 것도 아니고 추첨을 해서 주면서, 교복 이름을 ‘기본교복’이라고 짓는 경우와도 비슷하겠다.
이에 대한 해결법으로는, 차차 물량을 늘려가는 것 외에도 민간임대부문의 임대차 제도 개선(표준 임대료, 주거보조비 도입 등)이 병행되어야 할 텐데, 광역 지자체 하나만의 힘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법무부 등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인천시나 서울시 등과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입주 자격’을 세분화하여, 쿼터제로 입주 자격을 주는 것도 절충안이 될 것이다.
2. ‘공공주택 유형 통합’에 역행한다
정권마다 새로운 브랜드의 상품을 내놓는 바람에 지금 공공임대의 종류는 크게 영구임대, 행복주택, 50년 임대, 국민임대 등 몇 굵직하게 몇 가지로 나뉘며, 거기에서 입주 자격과 기간 등을 다 따지면 수십 가지에 달한다(외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대기자 명부제도가 운영 불가능하다. 빈집이 나오면 그때그때 공고를 보고 응모해야 하는데, 내가 이 브랜드 임대주택에 입주 자격이 되는지 여부도 다 다르다. 그래서 주거복지센터에 가서 상담해도 상담 인력부터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엄청 찾아봐야 한다.
외국처럼 ‘공공주택 유형통합’이 되어 대기자 리스트 비슷한 것이 있고, 지원 요건과 배정 방식이 간편·간단해야 ‘아, 내가 언제쯤 입주 가능하겠구나. 그때까진 어디 어디 살다가 가야지’하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는 오랜 기간 주거권 단체들이 요구해온 ‘공공주택 유형통합’을 국정과제로 삼아 추진 중이다. 신규 단지는 통합유형으로 공급하고, 기존 단지도 차차 통합해 가는 방향이다.
그런데 ‘차별화의 비차별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재명 지사는 (기존의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주택 브랜드’를 하나 또 추가해서 제시해, 공공주택의 난맥에 하나의 새로운 맥을 추가한 셈이다.
앞서의 교복 비유에 대입해 보자면… 노 교장님이 ‘영구교복’, 김 교장님과 또 다른 노 교장님이 ‘국민교복ABC’, 이 교장님이 ‘보금자리 교복’, 박 교장님이 ‘행복교복’을 만들었는데 전교생 중 1~2% 밖에 지급이 안 되게 만드는 바람에 주로 가난한 사람들만 받아서 입고 다녔다. 이는 차별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행복교복’은 중산층도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물량은 아직도 충분치 않으니 정작 못 받은 저소득층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 교장님은 ‘교복 유형 통합하자’고 말씀하신다. 박 교감님은 “교복 업체를 다변화하자”고 주장하다가 그만두셨다. 이 교감님은 “교복 업체는 그대로 두고 기본 교복이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겠다. 이것은 앞서와는 달리 교복 없는 누구든 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량은 미비하다. 대신 앞으로 세탁하려면 무조건 기본 교복으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이랄까…(교복과 주택의 비유라 좀 어색하군요).
뜻은 좋았으나, 역사적 맥락과 전체적 비전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기만의 브랜드를 추가하는 건 다른 정당들의 많은 정치인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러니 정치인들의 본능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봐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전문가라면 성의껏 잘 조언해야 하겠다.
이 문제의 해법은 앞으로 만들 공공주택의 유형을 ‘기본주택으로’ 통합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기본주택의 취지가 썩 괜찮으니 말이다. 이름은 공공주택이어도 좋고 기본주택이 되어도 좋다. 뭐가 됐든, 앞으로 지을 사회주택까지 모두 포괄해 하나의 통합된 유형으로 가야 한다. 더불어 각각의 집에는 면적과 입지 등에 합당한 임대료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로써 개별 가구들이 소득에 따른 주거비 보조를 받아 다양한 공급자나 다양한 입주자가 수평적·수직적 형평성을 누릴 수 있다면 이름이야 ‘기본주택’이든 무엇이든 어떠랴.
3. 리츠가 매개 역할에 나설 필요성
우려라기보다는 의문에 가깝다. 경기도시공사가 그렇게 돈이 없나? 왜 ‘공특법’상 ‘공공사업자’인 경기도시공사가 짓는데 굳이 리츠에 팔았다가 다시 운영위탁관리를 받지? 리츠에 민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면, 민간 투자 시에는 ‘민특법’의 규율을 받아야 할뿐더러 ‘왜 공공자산을 민간(도 투자해서 수익을 챙겨가는?) 리츠에 매각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공공임대 리츠와의 차별성에 대해 질문이 들어올 수 있다.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서라면 애초에 리츠가 왜 굳이 공공사업자와 별도로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만약 ‘입주자들의 보증금’이 부채로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이를 리츠의 부담으로 넘기는 것이라면, 회계장부상의 수치에 불과할 뿐인 보증금으로 인한 부채를 눈가림하기 위해 괜히 리츠를 동원해 비싼 AMC 수수료를 내는 것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있겠다.
4. 관리 부분의 계획이 미비하다
그냥 기존 공공사업자가 위탁받아서 하는 것 같은데, 기존 방식과의 차별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간 공공사업자의 주택관리 운영에 대해서 이런저런 지적사항이 있었던 것에 ‘기본주택’은 잘 유념하고 이미 계획을 다 만들어 둔 것이길 바란다. ‘다 계획이 있는데’ 단지 보도자료나 Q&A에만 없었던 것이면 별문제는 아니겠다.
5. 구체성
시범사업계획이나 구체적 부지를 놓고 현금흐름을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대해서도 별 이야기 없이, 역세권에 용적률 상향해주면 RIR20% 선에서 월세 책정하고 월세의 50배에서 보증금을 책정할 예정이라고 평형별 임대료 예시에서 나와 있다. 그 정도 받아도 손해 안 난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어떤 역세권의 공공택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불가능한 것이야 아니겠다만) 궁금하다. 현금 흐름 분석하고, 내부수익률과 현재가치 등을 다 구해봤는데 할만 하니까 하는 것이고 이번 발표에서는 굳이 안 밝힌 것이리라 생각하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매우 궁금하다.
6. 전월세 구성비
입지와 균형 발전의 고민을 일단 생략하고, 전월세 구성비를 지적해 본다. 임대료의 구성이 월세 중심으로 설계되어 보증금 비중이 매우 낮은 편이라, 목돈이 없는 이들에겐 환영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상한-하한 같은 것을 두어서 입주자의 선호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안 그래도 전세가 줄어드는데, 주택임대차법 개정으로(당장 전세가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세 줄어드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전세를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서 약간의 버퍼 영역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세가 주로 서울의 아파트에서 비중이 높지, 이미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월세의 비중이 훨씬 높으니, 안정적인 월세의 제공만으로도 ‘기본주택’은 큰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7. 하이브리드의 가능성을 열어달라
사회주택과의 협업이 가능한 대목이다. 현재 ‘기본주택’은 ‘공공주택’의 한 유형으로만 되어 있어서, ‘입주자 협동조합의 #시민자산화나 기타 넓은 의미의 ‘사회주택’들이 하는 다양한 실험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공공택지라는 이유로 무조건 전체를 다 임대로 하지 말고, 일부는 소셜믹스 차원에서 환매조건부나 지분적립형, 또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등으로 공급해서’소유-임대’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대안적 주거유형을 실험했으면 좋겠다.
나아가 획일적 인구구조나 소유구조를 지양하고 다채로운 성격의 인구가 사는 다양성이 확보된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공공성의 구현일 것이다. 그린뉴딜의 시대에, 탄소배출 비중이 어마어마한 분야인 주택 부문에서 향후 운영 관리의 영역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앞으로 기본주택이 사회주택과 함께, 운영 관리를 잘하는 장수명 임대주택으로 자리매김해 입주자의 주거복지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도 기여하는 주택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