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발견』은 “도시는 정치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자본과 권력의 정치적 프로젝트들을 꿰뚫어 보자.”라는 얘기를 담은 책이다.
- 『천천히 재생』, 8쪽
도시와 시민 그리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의 이전 책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에서는 어떤 도시가 좋은지 이야기했다면 두 번째 책 『도시의 발견』에서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데 작동하는 원리를 이야기했다. 저자는 동북아도시연구센터와 서울연구원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세계 도시를 연구한 사례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여행서적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1장에서는 도시계획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를 소개한다.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다. 도시계획이나 사회학을 공부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2부에서는 정말 좋은 도시는 다양성이 넘치는 도시라고 소개한다. 다양성을 키워주는 네 가지 요건은 용도복합(mixed use), 작은 블록(small block), 오래된 건물(aged building), 집중(concentration)이다.
- 첫째, 용도들을 함께 섞어 놓으면 활력이 넘치기 때문에 용도복합을 손에 꼽았다.
- 둘째, 작은 블록은 보행자들의 최단거리 통행이 가능케 한다.
- 셋째,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으면 다양성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 넷째, ‘집중’은 의외였다. 보통 고밀도는 나쁘고 저밀도가 쾌적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제인은 반대로 이야기했다. 활력이 넘치려면 어느 정도의 집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루하지만 쓸모 있는 도시학 개념: 조닝(zoning)
도시계획의 핵심은 도시의 땅덩어리를 몇 개의 지역(zone)으로 구분해주는 일이다. 개발제한구역이나 수자원 보호구역 같은 ‘용도구역’도 있고,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같은 ‘용도지역’도 있다. 고도지구, 미관지구, 경관지구, 방화지구처럼 ‘용도지구’를 정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 내 토지를 용도구역, 용도지역, 용도지구로 나누어 배치하는 일을 조닝(zoning)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용도지역제, 용도지역지구제, 지역지구제 등으로 부른다. 각 존마다 허용되는 용도가 다르고, 용도뿐만 아니라 허용하는 밀도(건폐율, 용적률)와 건물의 높이에 제한을 두기도 한다. 조닝의 핵심은 분리하는 것이다. 섞이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다.
- 『도시의 발견』, 73~74쪽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도시에도 조닝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도시의 땅은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녹지지역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주거지역은 다시 전용주거지역과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으로 세분화된다. 상업지역은 중심상업, 일반상업, 근린상업, 유통상업지역으로 나뉘고, 공업지역은 전용공업, 일반공업, 준공업지역으로 나뉜다. 녹지지역 역시 보전녹지, 생산녹지, 자연녹지로 구분된다. (중략) 현재 우리나라 도시계획 제도는 이렇게 ‘분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 앞의 책, 74쪽
문제는 분리하는 것이 무조건 이로운 것이냐에 있다. 주거지역에 공업이나 상업용도의 건물이 섞여 있으면 안 될까? 소음을 내고 매연을 내뿜는 공장이 주택가에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피해를 주지 않는 자그마한 가내수공업 공장들이 주택가에 섞여 있는 것도 안 되는 것일까? 단독주택이나 다가구, 다세대주택 또는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에 상점이 고루 섞여 있으면 큰일이 날까?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분리 조치가 오히려 더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 앞의 책, 75쪽
따로국밥 같은 도시를 섞어찌개 같은 도시로 바꿀 수는 없을까? 방법은 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상가건물을 별도 건물로 짓는 대신 길을 따라 늘어서게 하는 것이다. 지금도 구반포나 이촌동에 가면 아파트 단지 근처 상가들이 길가에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다.
- 앞의 책, 76쪽
덧붙여 떠올린 지역은 여의도와 강남 테헤란로다. 여의도와 강남 테헤란로는 조닝이 적용된 극단적인 지역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여의도와 테헤란로 고층빌딩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건물 안에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어깨를 맞부딪히며 출근하고 이후에는 디스토피아 같은 거리가 된다. 여의도에는 상가가 지하에 밀집되어 있고 강남 테헤란로는 빌딩 숲 가운데 식당과 유흥가가 몰려 있다. 퇴근 시간 이후가 되면 인도는 텅 비게 된다. 간혹 옆으로 걷는 사람들이 출몰하고 누워있거나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내는 거리로 변모한다. 건강한 도시일까?
서울의 거리가게 이야기
2장에서는 도시에 대한 편견을 깨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기억에 남는 사례는 ‘노점’ 사례였다.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는 노점을 없애자는 입장도 있지만 저소득층의 생계 수단이기 때문에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이 대치한다.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노점은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서울시의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첫째, 노량진역 앞 컵밥 거리가게다. 서울시와 동작구는 이곳을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조성하여 2015년 10월 노량진 컵밥 거리로 새롭게 선을 보였다. 둘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신촌로터리까지 이어주는 연세로다. 연세로는 2014년 1월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변화하면서 거리가게도 정비하였다.
추가로 영등포역 앞의 거리가게, 혜화의 거리가게, 창동의 거리가게가 떠올랐다. 영등포역 같은 경우에는 거리가게 위치를 영등포시장 사거리로 이전시키면서 상인과 구 간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개선 후 보행이 편해졌다. 혜화의 거리가게의 경우, 인도가 다른 거리에 비해 넓다. 보행에 큰 불편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관광객 유입이 많은 곳인데 거리가게가 방문객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준다. 창동의 경우에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이와 비슷한 거리로는 종로 2가 포차 거리가 있다.
지하철 노선이 구불구불한 이유
무엇이 도시를 움직이는가? 정답은 자본과 권력이다. 그리고 시민이다. 3장은 무엇이 도시를 움직이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그중 ‘지하철 노선이 구불구불한 이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부분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었던 주제였다. 지하철 노선은 구불구불하고 지하철역의 밀집도는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3호선은 구불구불하다. 직선으로 뻗어가지 않고 돌아간다. 압구정역에서 고속터미널역으로 가는 구간이다. 밀집도에 대한 예는 신논현역을 들 수 있다.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총 6개 노선과 15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반면 수서역 주변 반경 2킬로미터 안에는 총 3개 노선과 7개 역밖에 없다. 저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지하철역을 유치하고자 하는 정치적, 경제적 힘이 작용했을 거라고 예측한다.
굴절버스를 아시나요?
스위스 여행 때였다. 지하철처럼 생긴 긴 버스가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도로가 엄청 넓은 것도 아니었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 내리는 효율적인 버스였다. 지하철처럼 기다란 버스는 쿠리치바 시의 굴절버스를 차용한 버스였다.
자이메 시장이 쿠리치바 시를 혁신한 것은 1974년부터였다. 그는 굴절버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도입 당시 하루에 총 2만 5천 명을 실어 나르던 굴절버스는 25년 뒤인 1999년에는 220만 명을 실어 날랐다.
- 앞의 책, 168쪽
자이메 시장은 굴절버스뿐 아니라 간선급행버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간선급행버스는 널리 보급되어 전 세계 80여 개 도시가 이 제도를 따르고 있다. 한국에도 간선급행버스(BRT)는 운행되고 있다.
굴절버스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튜브 정류장을 설치해야 한다. 튜브 정류장은 휠체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시민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된다. 하지만 새로운 지하철을 건설하거나 자가용을 더욱 수용하기 위해 도로를 넓히는 건설보다는 적은 비용이 들면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교통 시스템이다.
현재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보자. 지하철과 버스가 있다. 지하철은 서울과 수도권 권역을 돈다. 서울 버스는 간선버스와 지선버스로 나뉜다. 간선버스는 주요 지점을 통과하는 버스로, 파란색이다. 지선버스는 간선버스가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도는 버스로, 초록색이다. 이 외 이명박 시장 시절 생긴 마을버스가 있다. 예를 들면, 동작 05번 버스와 같은 버스다. 지선버스가 닿지 않는 골목골목을 도는 버스로, 언덕이나 좁은 도로들도 통과한다. 이 외에도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이 중 휠체어와 유모차가 이용할 수 있는 버스는 많지 않다.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승차가 불가한 버스들이 대부분이고 승차가 가능하더라도 출퇴근 시간에 가득 메운 버스 안을 휠체어나 유모차가 무슨 수로 비집고 탈 수 있겠는가.
서울시 교통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배차 간격을 줄여 운행 대수를 늘리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도시에서 생략된 휠체어와 유모차 이용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굴절버스’ 시스템 도입이 시급히 필요하다.
공동주택이 아니라 공동체주택?
5장에서는 마을 이야기를 한다. 공동주택과 공동체주택의 차이에 대해 주목했다. 공동주택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아파트다. 아파트 말고도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도 공동주택에 포함한다. 그런데 공동주택에 과연 ‘공동’이 있을까? 공동은 없고 ‘주택’만 잔뜩 모여 있는 건 아닐까? 공동체주택의 등장은 개인 공간에만 머무르지 말고 공동의 공간, 즉 ‘공유공간’을 늘려서 주민 개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더욱 효과적으로 채워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공동체주택의 대표적 사례로 마포 성미산 마을의 ‘소행주’를 꼽을 수 있다. 은평구 불광동 ‘구름정원사람들’과 부산시 남구 대연동 ‘일오집’도 공동체주택 사례다. 주거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도서관, 수영장, 문화공간, 주방, 공방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주거인들의 필요에 따라 형태는 달라진다. 상가 공간을 지어 수익을 내기도 한다. 공동체주택은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사는 맛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서울 SH공사도 공동체주택 형태의 사업을 하고 있다. 사례로는 성북구 삼선동 ‘배우의 집’이 있다.
저자는 공동체주택의 사례를 보이면서 공동체주택을 넘어 공동체마을을 꿈꾼다며 해당 주제를 마무리한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참한 도시는 어디입니까?”
강연이 끝날 무렵쯤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을 한다.
“참한 도시는 어디에 따로 있지 않습니다. 참한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참한 도시입니다.”
- 앞의 책, 26쪽
뻔하고 애매모호한 답이라 생각할 수 있다. 역으로, 특정 도시를 참한 도시라고 손꼽을 수 있을까? 수많은 도시가 있고 『도시의 발견』 책에서도 수많은 참한 도시가 나오지만 어떤 한 면을 잘 수행하고 있는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도시 곳곳에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다. 그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는 결국 시민이다.
도시의 문제가 시민의 탓이라는 뜻이 아니다. 도시라는 공간이 자본과 권력의 영향을 받지만 자본과 권력은 결국 시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책은 끝났다. 책에 기록된 도시의 이야기도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고 그 도시를 변화시킬 이는 우리 자신이다. 어떻게 우리 도시를 변화시킬지 고민하고 적용하는, 주체적인 시민이 돼보자.
도시가 결국 정치라면 우리 시민도 정치적이어야 한다. 다수의 힘을 모아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 의사를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말하고 행동해야 우리가 원하는 도시를 가질 수 있다.”라는 절절한 외침이었다.
- 『천천히 재생』, 8쪽
원문: 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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