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혼술을 내일이 모르게 하라
사람들은 말한다. 올 한 해는 와글와글한 회식이 줄어들었으니, 음주는 물론 숙취해소음료를 찾는 발걸음도 줄어들 것이라고. 이는 코로나는 알고 코로나 맥주는 모르는 인간들의 순진한 착각이다. 단지 마시는 장소가 술집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 부장님의 노랫소리가 넷플릭스로 바뀌었을 뿐. 우리의 음주 총량의 법칙은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숙취도 패키지로 온다는 것이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한 해 숙취해소시장의 규모는 3,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600억 원이 상승했다. 이 계획적인 음주자들… 혼자서 술을 마셔도 내색을 안 하려 숙취해소를 한 게 분명하다. 이 정도라면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송년회, 신년회도 혼자서 다른 사람의 몫까지 마실 것 같아.
그래서 준비했다. 오늘 마신 혼술을 내일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줄 숙취해소음료의 모든 것을.
2020년 숙취해소음료 스카우팅 리포트
‘숙취해소음료’란 나 같이 알콜이 조금만 들어가도 머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신비의 명약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다른 음료에 비해 비싼 가격대는 선택에 신중함이 필요한 법.
그래서 마시즘은 매년 연말마다 살신성인으로 숙취해소음료 실험을 진행했다. 물론 어떤 것이 제일 좋다기보다는, 효과는 물론 맛이나 취향까지 ‘자신에게 잘 맞는 숙취해소음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올 한 해도 새로운 숙취해소음료들이 많이 나왔다. 이를 비교하기 위해 휴일을 제외한 2주 동안 매일 같은 맥주(올해의 실험 맥주는 덕덕 구스)를 같은 양(500ml 2캔)을 마셨다. 그리고 아침(9시 반)에 출근하여 숙취해소음료를 달리하여 마신 후, 30분 간격으로 효과를 체크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실험군에 참가한 음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블라인드 테스트로 맛을 구분했다. 주요 평가기준은 아래와 같다.
- 맛평가 : 단맛, 신맛, 산뜻함, 시원함, 감칠맛, 쓴맛의 비교평가
- 체감성능 : 1시간을 기준으로 술이 깨는 시간 비교평가
- 디자인 : 구매, 보관하기에 심미적 기준을 만족하는가
- 편의성 : 프로레슬링처럼 힘을 덜 주고 뚜껑 까는데 소리가 찰지는가?
레디큐 프로, 김치가 숙취에도 효과가 있나요?
‘맛있는 숙취해소’를 표방한 레디큐가 변했다. 기존에 강황과 커큐민을 넣었던 노란색 레디큐는 개인적으로 일본의 숙취해소음료 ‘우콘파워’가 겹쳐서 떠올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한 한국화에 성공했다. 아니 김치를 넣었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김치에서 유래한 식물성 유산균을 넣은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몸살이 나도, 여드름이 나도 김치를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믿는(…) 김치덕후 한국인에게 딱 아닌가. 맛으로도 충분히 새콤한 유산균음료의 느낌이 나서 즐거운 편. 다만 묘하게 술맛을 방해한다. 음주 전에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모닝케어 H·S·D, 숙취저격형 해소음료가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숙취해소음료 3대장은 모닝케어와 컨디션, 여명을 꼽는다. 각각 숙취해소음료 파트에서도 성격이 다르다. 모닝케어는 기존 ‘알콜 분해력’만을 높이는 것이 아닌 음주 후 발생하는 두통이나 구취 등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져 많은 알콜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모닝케어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아예 숙취유형별로 버전을 달리한 것이다. 깨질 듯 한 두통에는 ‘H’, 푸석푸석한 피부에는 ‘S’, 더부룩한 속에는 ‘D’로 나누어 사람마다 다른 숙취에 뒤 따르는 각종 불편을 잡았다. 총알처럼 생긴 디자인이 숙취를 날리는 스나이퍼가 된 것일까? 문제는 숙취유형이 2개나 3개가 겹친다면 초… 총알이 부족할수도 있다는 것.
여명1004, 808위에 천사가 있다
모닝케어가 전면개편을 해서 세련되어도 좋을 음료라면, 여명은 절대 바뀌면 안 되는 음료다. 마치 해방 전후 같은 디자인의 제품(심지어 ‘숙취에 조은차’라고 써 있다)은 이곳의 아이덴티티요, 국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명도 업그레이드를 했다. 바로 여명 1004!
여명 1004는 여명808 특유의 맛은 덜되 굉장히 깊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괜히 캔의 겉면에 얼음과 함께 온더락(?)으로 마시라는 말이 써 있는 게 아니다. 고오급 숙취해소랄까. 문제는 가격도 2 배로 뛰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가격도 비싼데 보안도 뛰어난 철캔이라 까지지 않는다는 것이(…)
컨디션, 이름 빼고 다 바뀌는 변신의 귀재
김치를 넣고, 디자인이 바뀌고, 가격이 바뀐(?) 다른 음료와 다르게 컨디션은 항상 여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컨디션은 출시 이후 살짝살짝 디자인과 맛과 성분도 업데이트하는 일종의 잠수함패치를 한 변신의 귀재다. 물론 모르는 사이 CJ헬스케어 로고까지 바뀐 게 함정. 전혀 몰랐는데 컨디션이라는 이름만 빼고 회사까지도 바뀌었구나.
사명이 바뀐 후의 컨디션은 더욱 대담한 변신을 진행 중이다. ‘환’으로 가기도 하고, ‘라면’과 콜라보를 하기도 한다. 아니 마실 거로 변해야 마시즘이 응원도 하고 마시는데…
헛개파워, 헛개차로 시작된 헛개유니버스
‘헛개차’를 통해서 ‘숙취에는 헛개다’라는 공식을 만들어버린 광동제약의 숙취해소 음료다. 이름도 ‘헛개파워’. 사소한 이야기지만 숙취해소음료는 자고로 뚜껑이 커서 손으로 돌릴 때 또도독 소리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녀석의 휠… 아니 뚜껑 지름은 무려 4cm다(컨디션은 3.3cm). 그래서 뚜껑을 깔 때부터 기분이 좋다.
마셔보면 거의 여명808을 처음 마셨을 때의 강력한 한약 느낌이 쏟아진다. 같은 헛개를 넣어도 컨디션처럼 가볍고 상쾌하게 들어가는 타입이 있다면, 이쪽은 완전 진중 그 자체…지만 이럴 거면 한약을 마시는 게 낫지 않아?
깨수깡, 이런 맛도 숙취해소음료라고?
숙취해소음료계의 가장 막내다. 하지만 그 위상만은 앞의 다섯 병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충분하다. 숙취해소음료를 탄산음료로 낸 것도 재밌지만, 제주산 감귤농축액을 넣어서 굉장히 상큼하게 만들어낸 것. 거의 헛개파워의 완전 반대되는 맛을 낸다고 보면 된다. 아기 입맛에 딱 어울리는 음료다.
아쉬운 건 맛 자체가 탄산음료라서 사람들이 숙취해소음료로 느끼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이정도의 라이트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왠지 술보다 탄산음료를 더 사랑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정도?
술 사는 데 돈 다 썼는데… 숙취해소음료가 꼭 필요한가요?
필요하다.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숙취해소음료란 건강한 음주의 마지막 단계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숙취해소음료는 치명적인(?) 상황을 준비하는 음료였고, 때문에 맛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홈술러에게는 맛까지 생각하며 꼭 구비해놓는 하는 소화기 같은 음료가 됐다. 더 나아가 마시즘은 술과의 페어링(?), 그리고 선물을 할 때의 좋은 점들을 생각해봤다.
술과 함께 숙취해소음료를 안주 삼는다면
- 레디큐 프로 : 내가 방금 술 마셨어? 혀에 남은 술맛을 아예 날리고 싶을 때
- 모닝케어 : 과하지 않은 상큼함으로 하이볼과 토닉워터와 함께
- 여명1004 : 위스키(절대 이 녀석보다 싼 술과 마시면 안 된다)
- 컨디션 :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맥과 함께 마실 때
- 헛개파워 : 찐찐한 막걸리와 함께
- 깨수깡 : 소주와 함께 마시면 발랄해지는 느낌
누군가에게 선물로 줄 때
- 레디큐 프로 : 음주의 세계에 갓 입문한, 애기입맛들에게 주기 좋음
- 모닝케어 : 디테일 있는 챙겨주기로 센스 있는 사람 등극 가능
- 여명1004 : (는 주지 말고 혼자 드세요)
- 컨디션 : 취향에 상관없이 중간은 가는 선택
- 헛개파워 :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
- 깨수깡 : 후배님!! 얘들아!! 아니 과장님은 빼고요!
올해의 음주총량을 맞추기 위해 벼락치기 하듯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어제의 음주를 후회하기보다는 적당히 조절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 하지만 지키기가 어렵다면 숙취해소음료 하나쯤은 괜찮잖아? 자신의 숙취 정도나 증상, 또 취향에 맞는 최애 숙취해소음료만 있어도 내일의 나에게 미안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물론 나는 틀렸어. 이거 조사해본다고 너무 많이 마셨어. 술도… 숙취해소음료도…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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