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나라 한국에서 ‘밀떡볶이가 맛있나, 쌀떡볶이가 맛있나’의 논쟁이 있다면,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는 보리로 만든 일반 맥주와 밀맥주의 논쟁이 있다. 보리맥주가 쌉싸름하고 시원한 매력이 있다면 밀맥주는 거품이 부드럽고 달달한 느낌이랄까. 요즘 같은 쌀쌀함에도 잘 어울리는 맥주다.
하지만 밀맥주는 많은 위기가 있었다. 맥주는 정한 재료로만 만들라던 ‘맥주순수령’의 리스트에 보리만 들어가고 밀이 들어가지 않은 것. 이걸 견디니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밀맥주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오늘은 수많은 위기를 겪어온 ‘위기탈출 밀맥주’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맥주는 물, 보리, 홉으로만 만들어라
아! 밀맥주는 빼고
지난 <순수하지 못한 맥주순수령의 속사정>에서도 말했다. 태어나자마자 맥주를 마실 것 같고, 한국 사람 김장하듯 가 족행사로 맥주를 만들 것 같은 독일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위험한 재료도) 맥주를 만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밥… 아니 주식인 빵을 만들 밀도 맥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는 이에 한 가지 법을 내린다. 앞으로 맥주는 물과 보리, 그리고 홉만 사용해서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맥주순수령’이라고 한다.
맥주순수령의 의미 그대로라면 밀맥주 역시 제조금지를 당할 수순이었다. 그러나 금지하기에는 밀맥주가 너무 많은 (고위층의) 사랑을 받았다.
결국 1548년에 ‘바론 폰 데겐베르크’가 밀맥주 양조의 허가와 특권을 받는다. 맥주순수령 때문에 다른 이들은 밀맥주를 못 만들지만 데겐베르크 공작 가문은 만들 수 있게 된 것. 매점매석으로 데겐베르크 가문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라기에는 1602년 가문의 대가 끊겨서 밀맥주 독점 양조권은 풀리게 된다.
위기의 밀맥주: 요즘 애들은 라거만 마시거든요?
19세기 밀맥주(를 비롯한 모든 전통 맥주)의 위기가 터진다. 바로 황금빛 투명한 ‘필스너’ 맥주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이 마시던 맥주는 코젤 다크 같은 짙은 갈색이거나, 밀맥주 같은 베이지 컬러의 맥주였다. 하지만 이 새로운 황금 맥주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덩달아 양조자들도 필스너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씨가 마를 위기의 밀맥주를 구한 이들이 있다. 첫 번째는 ‘게오르그 슈나이더’라는 사람이다. 1855년 그는 바바리아에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밀맥주 양조장을 사게 된다. 그리고 밀맥주의 명맥을 쌓기 위해 밀맥주 양조에 전념하게 된다. 해외맥주코너에 가면 (희귀하게) 볼 수 있는 ‘슈나이더 바이세’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는 마을 단위에서 시작되었다. 뮌헨에서 20km 정도 떨어져 있다는 에딩이라는 마을이었다. 에딩의 맥주 양조자들은 밀맥주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1949년에는 ‘에딩거 브로이하우스’라는 명칭이 되었다. 밀맥주 대중화에 공신이 된 것이다.
마을 단위로 소비되는 독일 맥주들 사이에서 독일 전 지역에 밀맥주 유통하는 독보적인 시스템을 만들었고, 세계 곳곳에도 수출을 하게 된다. 아마 한국에서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독일식 밀맥주가 아닐까 싶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 필스너 계열의 라거들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만, 맥주취향이 점점 다양화 되면서 밀맥주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오직 문제는 이게 밀맥주는 밀맥주인데 어떤 게 바이젠이고, 어떤 게 위트비어고… 이름이 어렵다는 것뿐이다.
밀맥주면 밀맥주지 바이스, 바이젠, 위트비어… 가 뭐람
밀맥주에도 종류가 있다. 먼저 독일식 밀맥주는 보통 ‘바이스 비어(줄여서 바이쎄)’ 또는 ‘바이젠’이라고 부른다. ‘바이스’는 ‘희다’라는 뜻인데, 기존의 어두운 색깔의 맥주가 아닌 ‘밝고 흰 맥주’라는 뜻이다. ‘바이젠’은 한국어로 ‘밀’. 그냥 밀이 곧 밀맥주라는 뜻이 아닐까(아니다). 보통은 ‘헤페바이젠’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헤페(Hefe)’는 한국어로 ‘효모’다. 즉 ‘효모가 살아있는 밀맥주’라는 뜻이다.
벨기에식 밀맥주는 독일과는 다르다. 독일은 맥주순수령을 지키면서 밀을 하나 추가시킨 정도라면, 벨기에는 맥주를 만드는데 제한이 없다. 하지만 보통 벨기에식 밀맥주는 ‘오렌지껍질’과 ‘고수’가 들어가 과일 향이 나는 것들이 많다.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호가든’맥주다. 호가든에 고수가 들어가다니…
여기에 크래프트 맥주로 요즘 떠오르는 미국식 밀맥주도 있다. ‘아메리칸 위트 에일’은 유독 ‘홉’이 강조된다. 부드럽고 담백한 독일식 밀맥주보다 열대과일 향도 많이 나고, 상큼한 맛이 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밀맥주는 곰표… 는 언젠가 구해보고 족보를 정리해보겠다.
밀맥주는 거품빨(?)
밀맥주를 마시는 완벽한 방법
세상에는 병맥이냐 캔맥이냐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지만 밀맥주는 무조건 컵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 일단 다른 맥주보다 거품이 훨씬 풍부한 맥주이기도 하고, 병 안에 효모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밀맥주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따라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에딩거 아카데미에서 배웠는데 이렇게 마시는 편이 멋은 물론 맛도 좋다.
- 잔을 기울여 거품이 나지 않게 조심해서 2/3 정도 따라준다
- 거품이 조금 단단해지게 대기하며 병을 흔들어준다
- 똑바로 세운 잔 위로 나머지 맥주를 따르며 컵 밖으로 거품을 쭉 올려준다
- 거품과 효모가 완벽한 밀맥주를 즐긴다
밀맥주는 특유의 바나나 같은 달달한 향이 나고, 쌉싸름한 맛보다는 빵과 같은 고소함을 느낄 수 있는 맥주다. 물론 정향이라고 불리는 냄새도 나서 호불호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약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거품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데 기네스가 약간 크림 거품이라면, 밀맥주는 목욕 거품같이 가볍고 부드러움을 자랑한다.
쓴맛보다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피자부터 떡볶이까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페어링을 자랑한다.
법을 어겨서라도 지키고 싶은 밀맥주의 맛
맥주순수령이라는 법에 걸리기도 했고, 전 세계적인 필스너 열풍에 사라질 뻔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밀맥주의 전통은 오랫동안 지켜져 오고 있다. 밀맥주의 맛을 본다면 ‘아 이런 훌륭한 전통이 사라지지 않았다니’ 하며 밀맥주를 지킨 조상님들(한국인은 아니시지만 맥주 안에서 우리는 한민족이므로)의 고집에 감사드리게 된다.
다양한 맛을 누리는 것은 다양한 전통을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다행히 구할 수 있는 밀맥주들이 많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에딩거’나 ‘파울라너’, ‘곰표밀맥주’가 있다. 취향에 맞는다면 구하기 어려운 바이엔슈테판이나 슈나이더 바이세까지 손을 댈지도 모른다.
아니, 한 번 마셔보고 내가 사실 밀맥주 취향임을 알았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나처럼.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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