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코코넛 워터’로, 때로는 ‘샐러리 주스’로 여러분을 찾아가는 마시즘 극한음료 전문 에디터 ‘모모’다. 독특한 음료를 마시는 나라도 쌀쌀한 가을밤이면 메이저 중의 메이저인 ‘와인’ 코너로 향하곤 한다. 혼자서 맥주는 조금 뻔하고, 소주는 처량하잖아.
그래서 준비했다.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를 틀어 놓고 홀짝거릴 (사심)와인 특집이다. 샤또 디켐, 로마네 콩디 나 기다리니? 마시즘에서도 오케이를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병당 1만 원 이하로 고르라는 추가 요청이 없었다면 말이다. 그래도 괜찮아. 편의점에는 가성비의 미니와인이 있으니까.
홈술족과 저가와인: 지금부터는 와인의 시대인 것이야
와인을 ‘신의 물방울’로 배웠다는 선배들은 모른다. 요즘 시대의 와인은 일생에 한 방울 마실까 말까 한 고급술이 아닌 퇴근 후 한 잔을 홀짝이는 대중적인 술이 되어간다. 올해는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이 증가하면서 와인의 매출이 상승했다.
무엇보다 ‘편의점’의 와인 판매가 높아졌다. 세븐일레븐은 전년과 대비해 49.3%가, 이마트24는 145.5%까지 늘었다. 이곳에서 파는 와인들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무엇보다 가격이 착하며, 맛도 나쁘지는 않다. 내가 마셔본 5개의 와인은 그랬다.
와인계의 짜파구리, 푸두 카베르네 쇼비뇽 쉬라즈(칠레)
- 가격: 4,000원
- 용량: 250ml
- 점수: 🍷🍷🍷🍷
새콤달콤 같은 와인이다. 마시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옅은 단맛과 함께 신맛이 올라오는 캐릭터가 뚜렷했다. 너무 달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특징.
바로 쉬라즈와 카베르네 쇼비뇽의 멋진 조합 때문이다. 뭔가 전문가스러워 보였다면 미안. 둘 다 포도 품종 이름이다. (영동 머루포도 같은). 쉬라즈는 ‘카우보이’나 ‘검투사’를 비유할 정도로 전투적(?)인 맛을 자랑하는데 여기에 대중적인 카베르네 쇼비뇽을 섞어 대중성을 챙겼다. 설명하다 보니 짜파구리 같구나.
파리지앵의 깡소주, 로쉐마제 카베르네 쇼비뇽(프랑스)
- 가격: 4,000원
- 용량: 250ml
- 점수: 🍷🍷🍷
프랑스의 참이슬. 로쉐마제는 그만큼 프랑스 국민에게 친숙하고 대중적인 와인 브랜드다. 3병 9,900원에 팔았는데 덕분에 다른 종류를 함께 사서 샘플러 마시듯 다양하게 마셨다. 가격도 줄이고 병의 크기도 줄여서 적당히 마시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음주와 소비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와인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맛은 텁텁함을 줄이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드라이함도 덜하다(보통 달지 않으면 ‘드라이’하다고 하고, 그렇게 말하면 기분도 좋다). 치즈보다는 떡볶이, 튀김, 순대 즉 ‘떡튀순’조합에도 무난하게 어울리는 편의점 와인의 왕좌를 노리는 녀석이 아닐까.
와인은 감성, 감성은 인스타그램! 로쉐마제 생쏘 그르나슈(프랑스)
- 가격: 4,000원
- 용량: 250ml
- 점수: 🍷🍷🍷🍷
(나와 같은) 알콜쪼랩들이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감성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감성은 또 무엇일까.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로쉐마제 생쏘 그르나슈’는 인스타그래머들에게 추천한다. 로맨스 영화 마냥 말랑말랑한 분홍색을 가진 로제와인이다. 적당한 와인잔에 로제와인을 담고, 아이패드에 넷플릭스를 틀고 그 장면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4,000원짜리 와인이 4,000만 원의 감성을 만들어준다.
맛은 앞선 와인들에 비해 상큼하고 싱그러운 편이다. 오히려 안주 없이 호로록 마실 수 있다. 오직 넷플릭스와 인스타그램 감성만 있다면 어떤 안주 부럽지 않다. 생각해보니 밥상 위에 굴비를 걸어놓고 먹는 자린고비와 비슷해 보이는데?
가성비들 사이에서 가성비 있는 와인, 얄리 카베르네 소비뇽(칠레)
- 가격: 12,000원
- 용량: 375ml
- 점수: 🍷🍷
칠레 와인은 짱짱한 가성비로 유명하지만, 이 녀석은 조금 더 가벼운 가격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와인이다. 특히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으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고기 덕후들에게는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와인은 스테이크뿐만이 아니라 탕수육, 불고기, 돼지고기 목살이나 김치찜에도 어울리는구나를 알려준 녀석이다.
물론 앞서 마신 3병의 와인과는 달리 내 입맛에는 달달하게 느껴졌다. 음료도, 커피도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안성맞춤일 것이다. 혹시 나중에 바비큐 파티를 계획한다면 맥주나 소주 대신 이 녀석으로 분위기도 고기도 살려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1만 원 이하로 사라고 했는데 1만 2,000원이네(앞에서 1,000원 많이 아꼈으니 괜찮겠…죠?)
맛있어요, 오프너만 있다면 말이죠. 보데가스 까레 띤도 로블(스페인)
- 가격: 9,000원
- 용량: 375ml
- 점수: 🍷🍷🍷(오프너 찾느라 1점 제외)
편안하게 술술 마시기 좋은 와인이다. 풍부하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과일향, 달지도 쓰지도 않은 적당한 맛이 난다. 이 녀석이라면 치즈와 함께 즐기기 좋은 밸런스 같다(와인 열풍과 동시에 편의점에는 치즈 매출도 늘었다. 문제는 치즈가 와인보다 비싸).
오직 문제는 코르크 마개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자칫 와인만 사서 집에 돌아왔다가 오프너가 없다면 생활의 지혜를 모두 발휘해야 하는 수가 있다. 와인 오프너는 노트북 충전기와 머리 고무줄, 비 올 때의 우산과 같이 찾으려면 없는 은신술 4대장이 아니던가.
편의점 와인을 미리 마셔본 자가 연말을 지배한다
와인의 성수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보통 와인은 연말에 많이 마시고, 선물을 하게 되는 음료다. 매년 그 시즌마다 알지 못하는 언어와 맛 설명으로 라벨만 보고 샀던 것은 옛날 일이 되었다.
조금은 저렴하고 덜 풍부한 맛이 느껴질지는 몰라도 일상에서 조금씩 즐기는 와인은 여러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같은 값이어도 와인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와 기분이 있으니까. 오늘 당신이 마실 편의점 와인은 무엇일까?
음료 TMI 추가
세계맥주의 시대를 연 것이 과거의 편의점이라면, 요즘은 편의점이 와인숍처럼 변하는 듯하다. CU는 점포로 원하는 와인을 미리 주문하는 ‘CU와인숍’을 시험 운영한다. GS25도 앱을 통해 주문하면 당일에 상품을 구매하는 ‘와인 25’를 시작했다. 포지션이 애매했던 이마트24는 와인 창고 매장으로 변했다.
와인 매출이 매년 200% 가까이 늘어난다. 편의점이 왜 와인에 목숨을 거냐고? 다른 것은 다 온라인으로 살 수 있어도, 주류는 오프라인에서만 살 수 있거든.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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