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문학계의 넷플릭스 ‘다물어클럽’을 창업
김민섭(북크루 대표, 이하 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준형(알다 대표): 다물어클럽을 운영하는 알다의 대표 이준형입니다.
김: 다물어클럽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이준형: 한 달에 9,900원만 내면, 150시간 이상의 모든 강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문학, 예술, 기초과학 등을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무제한 지식 교육 서비스’죠.
김: 9,900원…;;; 반응은 어떠한가요?
이준형: 기사 댓글을 보면 벌써 욕이 많아요. 인문학을 이런 식으로 판매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 기본 소양이 안 된 놈들이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인문학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좀 빼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염가에 판다’고도 하고요. 지금은 와디즈에서 학습지를 포함해 6개월 59,600원으로 특별 할인 중이에요.
김: 그렇게 팔아서 돈이 남나요?
이준형: 기존의 인문학 교육은 너무 비쌌어요. 1년에 100만 원 정도는 들었죠. 당장 돈 벌기야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문학이 죽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대중화는 더 어려워질 거고요. 인문학 연구자들이 줄어들며 시장 파이가 작아지는데, 단기적으로 돈 벌려고 해봐야 얼마 벌지도 못할 거예요.
김: 단기적으로 돈을 벌어봐야 미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전략을 짜나요?
이준형: 분야별로 가장 훌륭한 학자를 섭외하고, 그분들과 해낼 수 있는 최상의 퀄리티를 만들어내려 합니다. ‘철학을 공부해 보고 싶어’, 혹은 ‘역사를 공부해 보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누구든 부담 없는 비용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자. 그게 다물어클럽의 기본적인 배경이에요.
2. 인문학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인문학도 예능처럼 재밌어야 한다
김: 아무리 그래도 월 9,900원… 왜 이리 가격을 낮게 잡은 거죠?
이준형: 소위 ‘인문학 애호가’들에게 강의당 10만 원, 20만 원 받으면, 당장은 돈을 더 벌었겠죠. 하지만 대중화 없이는 어차피 다 망할 거라 봅니다. 인문학에 친숙하지 않은 분들이, 좀 더 가볍게 인문학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요. 그래야 파이가 커지니까요.
김: 그래도 넘 싸잖…
이준형: 월 9,900원이 그리 낮은 가격이라고도 생각 안 합니다. 넷플릭스나 왓챠도 그 정도잖아요. 애초에 우리의 경쟁자는 기존의 인문학 판매 업체가 아닌, 소위 OTT라 불리는 미디어 콘텐츠 업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다 같이 재미있는 콘텐츠로,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싸움이니까요.
김: 넷플릭스는 순수 오락이라 잠재 시청자층이 많잖아요?
이준형: 그동안 이 시장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지, 시장이 작은 건 아니라고 봐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도 유료 지식 콘텐츠 이용자가 4억 명에 달합니다. 투자도 크게 받으며 운영되고요. 한국도 EBS에 이어, 네이버와 카카오까지 이 시장에 뛰어든다고 해요.
김: 인문학의 위기라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가 보군요.
이준형: 학보사 시절, 옛날 기록을 다 찾아본 적이 있어요.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현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더군요. 그런데 대안이 항상 이래요. 자기들끼리 “인문학 대중화가 필요해!”라고 외치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로 책을 쓰죠. 그리고 책이 팔리지 않으면 천박하다고 그 탓을 대중에게 돌려요. 그 결과가 지금의 인문학이라 생각합니다.
김: 또 특이한 게, 기존 인문학 콘텐츠처럼 유명인 중심이 아닌 것 같아요.
이준형: 네. 인문학계에서는 교수가 되지 못하면, 가난과 무명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소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하는 경우도 많고요.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자신의 콘텐츠가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다물어클럽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3. 사교육 시장에서 성공한 청년, 인문학 교육에 도전하기까지
김: 어쩌다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준형: 원래는 ‘스터디헬퍼’라는 중∙고등학교 학생용 앱 사업을 했습니다. 앱으로 공부 시간을 측정하고, 더 효율적인 공부법을 제안해줬죠. 150만 다운로드도 달성하고, 투자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데 사교육 시장에 몸을 담다 보니, 세상이 변하려면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부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게 인문학이라 생각했고요.
김: 시작은 어땠나요?
이준형: 기존 인문학 교육은 일방적으로 강의만 듣고 끝인 게 불만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대로 공부했는지 점검하고, 복습도 할 수 있도록, 학습지 형태의 교재를 제공했어요. 매주 함께 공부하고, 독서 모임도 가졌죠.
김: 잘 됐나요?
이준형: 생각보다 수요가 꽤 있었어요. 처음에는 철학 한 과목만 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역사와 문학도 개설했어요. 1년 정도가 지나며 20개 반 정도가 개설됐습니다. 이제 제대로 확장해도 되겠다! 싶을 때쯤 코로나가 터졌죠.
김: 코로나가 터지니 어떻던가요?
이준형: 매출도 매출이지만,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10명이 신청했지만, 2–3명 오는 날이 태반이었죠. 1–2주 연기하기다 보니, 맥이 끊기는 느낌도 들고… 이렇게 할 바에야 온라인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존 오프라인 서비스를 중단하고,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김: 온라인 강의는 어떤 식으로 접근했나요?
이준형: 항상 가졌던 문제의식이, 학문적 성취가 많은 분이 이 시장에선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보통 인문학 강연은 유명 강사를 내세우잖아요. 이분들이 학문적 성취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대중이 좋아할 이야기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저희는 아직 이름이 조금 덜 알려졌더라도, 정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자 노력했어요.
4. 말라가는 자금, 뜻으로 길을 찾다
김: 온라인 서비스 반응은 어땠나요?
이준형: 사실 초기에 제작한 영상은 시장에 내놓을 수도 없는 수준이었어요.
김: ……
이준형: 인문학 강연으로 유명한 분들을 보면, 대중에게 먹히는 부분이 뭔지 알아요. 짧고, 명료한 어조로 쏙쏙 박히게 말하죠. 일종의 ‘일타강사’예요. 그렇게 재미있게 전달해도 안 보는데, 대중강연을 거의 안 해본 학자분들이 말을 잘하긴 힘들었죠. 초반에 지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수강했던 분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했는데, “차라리 전공 서적 읽는 게 더 재밌겠다”는 피드백도 있었습니다.
김: 타 플랫폼처럼 슈퍼스타 강사를 섭외할 수도 있지 않나요?
이준형: 장기적으로는 우리도 슈퍼스타가 나와야겠죠. 하지만 슈퍼스타를 대표 강사로 세우고, 그 사람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는 지식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낮추는 거라고 봅니다. 유명세에 끌려다니기도 쉽고요. 유명 강사 한 사람보다, 더 좋은 학자들이 모이고, 다물어클럽이 정말 유익하고 재밌다는 걸 대중이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김: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이준형: 싹 다 갈아엎기로 했어요. TV나 유튜브를 보면,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나왔는데도, 진행자와 패널이 살려주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영상들을 보다가 ‘칠판 앞에 서서 하는 강의를 벗어나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위 ‘예능형’ 강의를 만들어 보기로 한 거죠.
김: 그런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요?
이준형: 사업성 측면에서 실패가 불 보듯 뻔한 콘텐츠를 내놓는 것보다는, 초기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게 맞다고 봤어요. 이전 사업 지분을 정리하며 얻은 여유 자금도 있었고요. 그런데 예상한 것보다 비용이 더 들더라고요. 끼 넘치는 연예인들로 재밌게 만드는데도 비용이 많이 드는데, 연구자분들과 재밌는 영상을 만들려니 촬영과 편집 시간이 너무 길어진 거죠.
이런 퀄리티를 2시간 이상 하면 700–800은 그냥 깨진다.
이준형: 조금이라도 더 저렴하게 강의를 만들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죠. 그런데, 또 단가를 낮추면 퀄리티도 떨어져서 재미가 없어요. 반대로 재밌게 하려다 보면, 촬영 편집 시간이 길어지고 비용은 늘어났고요.
김: 뭔가 노답 상황에 처했군요.
이준형: 그러다가 인문학 학습지 사업을 하며 알게 된, 영상 제작 사업하는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인문학 애호가이신데, 그때도 젊은 친구가 좋은 사업 한다고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요. 부탁드리기 죄송해서 연락 안 하다가, 한 번만 더 도와달라고 연락을 드렸죠. 그랬더니 오히려 본인이 제작을 맡을 테니, 수익쉐어 형태로 가보자고 역으로 제안을 주시는 거예요.
5. 인문학을 넘어 ‘유료 구독 지식 플랫폼’에서 B2B까지 확장
김: 세상에는 참 신기한 분들이 많네요. 이 돈 안 되는 인문학에…
이준형: 사업도 사업이지만, 뜻이 잘 맞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지만 그분도, 길게 보고 가는 ‘업’으로 여겨요. 당장의 이익을 떠나,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적 미래가 있고, 이를 위해 젊은 인문학자들의 목소리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김: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부하라고 하시지요…
이준형: 그러면 감사하겠지만(…) 돈은 벌어야지요. 기존 인문학 서비스들이 한때 폭발적이었던 인기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은, 단기적인 돈벌이에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고고하게 돈을 멀리하다 유지를 못 한 곳도 있어요. ‘인문학’ 사업이 아닌, 인문학 ‘사업’이라는 생각으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김: 콘텐츠 반응은 어떤가요?
이준형: 실제로도 가벼운 포맷과 콘셉트의 강연 조회 수가 훨씬 높아요. 그럼에도 고민은… 저나 초기에 결제한 인문학 애호가분들이야 원래 관심 있는 분야니까 재미있게 보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봤을 때도 과연 재미있을까 싶은 걱정이 있네요.
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준형: 기존 인문학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야죠. 무겁고, 품위 있어야 하고, 그런 거요. 그냥 들어가서 봤는데, 웃기고 재미있어요. 여기에 정확하고 유익한 정보를 주는 서비스… 지식 콘텐츠 플랫폼이 가져야 할 무게는 그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물론 유료로 파는 거니, 넷플릭스보다는 좀 더 깊이 있는 지식을 담아야 하고, 무료인 유튜브보다 퀄리티가 높아야 하겠죠. 이 지점을 찾아 나가기 위해, 연예인을 비롯한 재미있는 진행자와, 깊이 있는 선생님들을 출연시키는 거고요.
김: 말이 쉽지, 재미와 깊이의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준형: 맞아요. 큰 고민이기는 해요. 너무 학문적으로 무겁게 매달리면 시장이 너무 좁아지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그것도 유튜브와 다를 게 없고요. 균형을 잘 잡는 게 다물어클럽의 과제예요.
김: 그나저나 연예인은 대체 어떻게 섭외하셨나요?
이준형: 돈도 많이 못 드리는 상황에서 섭외가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의외로 쉽게 진행됐습니다. 독서와 인문학 좋아하는 분들이, 오히려 먼저 도움을 주려고 하기도 했고요. 새로운 분야를 촬영한다고 하면, 관심 있는 분야이니 함께 해보자는 식으로 연락 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6. 실용적인, 변화무쌍한 인문학으로
김: 대표님이 생각하는 인문학은 어떤 건가요?
이준형: 사실 저는, 인문학이 무척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김: 인문학이 실용적이란 말은, 전공한 사람에게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이준형: 직장인으로서든 대표로서든, 어떤 일을 한다는 건 그 일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를 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논리 구조의 근원은 ‘인간의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 사고방식의 틀과 과정들을 인문학을 통해 배웠어요.
김: 하긴 인문학을 파고들면, 인간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지요.
이준형: 물론 저처럼 느끼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죠. 딱딱한 학문으로의 인문학만 접해왔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다물어클럽은 정말 가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의 쓸모를 깨닫기까지 겪어야 하는 지루한 과정을, 조금 더 가볍고 즐겁게 접근하게 해주니까요.
김: 기존의 인문학과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군요.
이준형: 인문학도 변해야지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정답을 이야기하는 건, 오히려 인문학을 배신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계속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문학, 그게 다물어클럽이 말하는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을 실용과 엮어 재밌게 풀어낸다.
이준형: 네. 지금 당장은 오프라인이 너무 위축된 상태라 힘들겠지만, 코로나에서 안정화된 이후에는 당연히 에이전시 역할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 B2B 협업 제안이 들어와요. 기업에서는 콘텐츠 계약을 원하고, 출판사들과는 다물어클럽에 업로드된 강의와 연계한 출간 사업을 이야기해요. 이렇게 다양한 파트너들과 지식산업의 시장을 넓혀 나가고자 합니다.
김: 인문학을 염가에 파는 데 꼭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준형: 인문학으로 돈을 번다는 게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조금 더 우리의 곁으로 오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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