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요새 죠르디가 인기라고는 하지만 역시 카카오프렌즈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뭐니 뭐니 해도 라이언이 아닐까 싶다. 2016년 카카오프렌즈의 새로운 멤버로 등장해 폭풍처럼 인기를 끌었던 라이언. 라이언의 인기로 카카오의 여러 신사업들도 함께 흥행하자, 장난처럼 사내에서 붙여진 별명이 라상무님이었다. 그런데 카카오는 한술 더 떠, 정기인사에서 아예 라이언을 전무로 승진시킨다. 이 정도로 라이언은 카카오를 상징하는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랬던 라이언이 2020년 5월 경쟁사 라인의 스티커로 출시된다. 응?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일본 라인이니 그렇지 하고 넘어갔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상대 진영의 대표주자, 라인의 브라운이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출시된다. DC코믹스의 베트맨과 슈퍼맨이 어벤저스에 출현하는 느낌이랄까? 정말 낯선 일들이 유독 2020년부터 일어났다. 이 이상한 일들이 그동안 비즈니스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졌던 캐릭터가 그 자체의 사업성을 인정받았다는 신호로 여기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알고 보면 고작 캐릭터라고 칭하기에는 오늘날 그들이 창출하는 가치가 너무나 크다. 2019년 라인프렌즈의 매출액은 2,000억 원 규모, 그보다 작지만 카카오프렌즈가 거둔 매출도 1,500억이나 된다.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의 매출을 캐릭터들이 거두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캐릭터는 안 사던 물건도 사게 만든다.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펭수가 성공시킨 컬래버레이션 상품이 어디 한둘이던가. 2020년 1분기 유튜브 리더보드 광고 10편 중 펭수가 등장한 것이 3편이나 될 정도로 그 파급력은 웬만한 톱모델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이다.
팬덤을 모아야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전혀 없던 일이 새롭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사실 팬을 모은 브랜드가 성공한다는 건 마케팅의 오랜 격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특히 일부 컬트적인 인기를 끈 브랜드들이 존재했는데, 할리 데이비슨이나, 애플과 같은 브랜드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성공은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이 있어서 가능했고 현재도 팬들 덕분에 돈을 번다.
하지만 현재의 트렌드는 그 양상이 과거의 것과는 약간 다르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자체가 팬덤을 가진 모양새였다. 일단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그 브랜드에 반한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였다. 하지만 현재는 팬을 모아야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식으로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 즉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사랑받는 이가 만들게 맡긴 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은 유튜브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통용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콘텐츠보다 유튜버가 더 핵심인 경우 상업적 활용이 더 쉽다고 한다. 팬 입장에서 스타가 뭘 하든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반면 콘텐츠 자체가 더 메인인 경우 섣부른 상업활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고 한다. 구독자들이 기대하는 범주가 정해져 있고, 그것을 벗어나면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라인과 협업한다면, 진지한 사업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라이언이 라인에 떴다는 것은, 내 자식이 성공한 것처럼 같이 신나서 응원하게 되는 법. 이처럼 일단 한번 팬덤을 만들면 확장성 측면에서 너무나 유리해진다.
하지만 사람은 위험해
원래 이와 같이 팬을 모아 비즈니스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인플루언서 브랜드들이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뜬 인플루언서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만든 브랜드나 쇼핑몰들이 이에 해당되는데, 한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특히나 전설로 남은 사례가 스타일난다이다. 로레알에게 수천억 원대에 매각되면서 성공적으로 엑시트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로 흥한 브랜드가 스타로 인해 망한 사례가 속속들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사그라들게 되었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임블리 논란이다. 특정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브랜드인 임블리는 공격적인 확장을 지향하다가 품질 논란으로 좌초하고 만다. 팬덤 중심의 커머스가 확장성이 좋다고 무리하게 여러 영역으로 넓히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인플루언서의 인성 논란으로 홍역을 겪은 브랜드도 여럿이다. 하늘하늘이나 안다르 같은 브랜드들은 나름 특정 카테고리에서 전문적으로 역량을 잘 쌓아 왔지만 대표 리스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팬덤을 모으는 주체는 사람보다 리스크가 덜한 캐릭터로 관심을 옮기게 되었다. 캐릭터는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성이나 과거 논란이 나올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직접 사업을 영위하기보다는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추진하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전문성 부분도 보완 중이다.
브라운 냉장고가 나온다고요?
이렇게 어느 정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팬덤 커머스는 점차 그 영역이 커지고 있다. 와디즈가 라인과 손잡아 진행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변화된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와디즈가 엄선한 스타트업이 제품 출시를 할 때 라인의 IP를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즉 전문성은 스타트업의 역량에 맡겨두고, 대신 라인의 캐릭터가 가진 확장성을 덧붙여 활용하는 영리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브라운 냉장고 등이 출시되었는데, 해당 펀딩은 무려 3억 8,000만 원이 모이며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카카오도 이에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카카오는 조직 개편을 통해 카카오프렌즈 사업을 그룹 내 커머스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카카오커머스로 이관했다. 본격적으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커머스로 활용되는 모습을 앞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이미 이모티콘 이벤트 등으로 신사업 출시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험이 있는 카카오니 말이다.
잘 만드면 팬을 알아서 따라온다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팬덤 커머스라는 건 기존에 존재하는 캐릭터나 스타들과 협업해야만 가능한 것인지 말이다. 바로 결론을 이야기하자만 전혀 그렇지 않다. 방법론만 빌려 직접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대성공을 거둔 것이 바로 빙그레우스다. 빙그레우스는 빙그레에서 2020년 광고를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다. 빙그레우스는 별다른 광고 없이도 MZ세대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 하는 행동마다 이목을 끌며 한 마디로 대박을 냈다. 다소 올드했던 빙그레 브랜드가 한결 젊어진 것은 물론, 향후 어떤 식으로 확장될지 정말 기대가 될 정도다.
또한 팬덤 커머스가 꼭 캐릭터로만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콘텐츠이든 잘만 붙이면 된다. 예를 들어 CJ가 만든 테이블웨어 브랜드 오덴세는 윤식당 덕분에 금방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다. 윤식당이 가진 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이 브랜드에 그대로 녹아들면서 말이다. 지금 오덴세는 그 자체만으로도 팬을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기 어려울 땐 팬덤에 의지해라
팬덤을 활용한 비즈니스의 가장 발달된 모습은 아마 엔터테인먼트, 특히 아이돌 그룹을 운영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아이돌 굿즈를 보면 정말 팬심이 아니면, 저걸 왜 사지 싶을 정도의 상품이 많다. 그럼에도 굿즈가 팔리는 것은 팬들은 굿즈를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팬이기에 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커머스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커머스의 기본은 고객이 물건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점점 물건을 사게 만드는 일은 어려워진다. 가격 비교나 상품 정보 탐색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날로 쉬워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래 차별화 자체가 어려운 저관여 상품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시대에 팬덤 커머스는 점점 더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비슷한 거 팬이니까 산다. 굳이 필요해 보이진 않지만 팬이니까 한번 사볼까? 이런 식으로 구매유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펭수가 한창 유행을 끌던 당시, 사무실 책상 전체를 펭수 관련 상품으로 꾸민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사무용품의 교체가 필요했던 게 당연히 아니었다. 단지 펭수의 팬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뿐. 그래서 그렇게 모두가 펭수를 광고모델로 모셔가려고 난리였던 것이다. 아마 내일의 커머스는 이러한 모습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내일의 커머스는 팬을 가진 이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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