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 주위에는 모두 자취를 원하거나, 자취를 예찬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난 자연스레 여럿이 사는 불편함에서 해방된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자취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직하면서 시작된 내 첫 자취 라이프는 엉망진창이었다. 바로 내 성향 때문에. 힘들었던 요소 반지하 공간편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는 바로 ‘라이프스타일 성향’에 관한 이야기이다.
혼자 살 때 좋은 점은 방귀를 빵빵 자유롭게 뀔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무도 날 보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여기서 갑자기 쓰러져도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와도 같다. 극단적 예시지만 나는 그토록 원했던 자취생활 단 한 달 만에 혼자 지내는 건 내게 맞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집에 나 말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무섭게 짓눌러왔거든.
‘대체 그게 뭐가 힘들어? 그러려고 혼자 사는 건데.’라고 말하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내가 이상한 성격인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이 시기를 겪으면서 분명 자취에도 맞는 성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올라온 후 나는 줄 곧 하우스메이트 생활을 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 밥 먹듯 야근을 했기에 집에 많은 시간 붙어있진 못했지만 내가 퇴근하고 돌아가는 집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밤늦게 불 꺼진 집에 조심스레 들어올 때면 다른 방 언니들이 해먹은 저녁 냄새도 났고, 방에서 통화하는 소리나 화장실에 물소리도 들렸다.
많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주말 점심이 되면 느즈막히 일어나 떼꼰한 얼굴로 주섬주섬 각자의 점심을 차려먹었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내가 자는 중에도 옆 방에 서로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꽤 큰 안정감을 얻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취를 하게 된 이후로는 내가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나는 늘 불 꺼진 빈 집에 들어와야 했다. 혼자 있는 공간은 항상 조용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주 조용한 미세소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우웅-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나 환풍구 소리 같은 거.
처음에는 그 적막을 즐기며 사색도 하고 멍도 때리며 지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누런색 천장을 바라보며 이 조용한 소리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도 점점 내가 꺼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난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고 흘러나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의지해 공간을 채워버렸다.
집 밖을 나서기 귀찮은 주말이면 종일 집 안에서 혼자 쉬다가도 ‘아 내가 오늘 아무와도 얘기를 안 했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방 밖에서라도 오고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이 없으니, 가족이나 친구, 남자 친구에게 더 자주 전화를 걸게 됐다.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도 전화를 끊으면 또다시 적막. 세상과의 연결이 작은 전자기기 하나로 끊어지는 이상한 느낌.
그러면 나는 다시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떨어지는 감정들을 애써 잡아보곤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게 한심해서 속으로 외치는 말들. ‘야 니가 애냐? 혼자 있는 게 뭐 그렇게 힘들다고… 따흐흑… 따흑…’ 창피하게도 그렇게 많은 날들을 울며불며 지냈다.
근데 그게 사실은 힘들만했다는 거다. 나는 본 투 비 극외향인 ENFP 유형의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매우 매우 중요시하는 성향의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대화하기 좋아하고, 서로 공감해주고, 사람 옆에 있기 좋아하고, 나를 주목해주면 더 좋아하고, 넘어서서 좋은 뜻으로 ‘관종’기가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자취를 한답시고 혼자 있는 집에만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힘들 만도 했을 거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헤이조이스 같은 커뮤니티 모임이나, 트레바리 같은 것도 없던 시기였고.
기분이 쳐진다 싶으면 조금 부지런히 일어나 가까운 카페라도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돈 아낀다고 집에만 뒹굴거리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뤘다. 돌이켜보면 내가 쉐어하우스가 잘 맞았던 이유도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인공간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용공간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다.
자취는 늘 좋다고, 옳다고, 자유롭고 최고라는 예찬만 들어왔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는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이 힘든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나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정말로 확고했던 독신주의에서 ‘누군가와 함께 사는 라이프’를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혹시라도 나처럼 혼자 지내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성향을 한번 점검해보면 좋을 것 같다. 독립을 했다면 가족과 다시 살아도 되고, 친구랑 살아도 되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을 꾸려도 되고, 반려견과 함께해도 되니까. 아니라면 쉐어하우스 입주라는 후보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고 그중에 내게 더 잘 맞는 삶이 분명 있을 거니까.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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