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놓는 글쓰기
나는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흰 여백을 채우려 하거나,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려 할 때 글쓰기는 멈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내어놓아야 한다. 그것들은 내 감정일 수도 있고, 생각과 기억일 수도 있다. 그러면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히려 글이 술술 써지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글쓰기의 시작일 뿐이다. 그 단계를 지나고 나면 내어놓은 내 글들이 영 마뜩잖다. 다시 읽는 내 글엔 온갖 틀린 맞춤법과 비문이 가득하다. 아무리 시작이 중요하다지만 얼기설기한 내 글을 만인에게 보이도록 발행했다는 것은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내 글을 다시 본다는 것
그래서일까. 내가 쓴 글을 다시 본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쉽지도 않은 일이다.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며 써 내려 간 글은 발행과 동시에 내동댕이쳐진다. 마치 손에 묻은 끈적거리는 무언가를 재빨리 씻어 내거나 닦아내는 것처럼. 서둘러 잊으려는 안간힘이 과할 정도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쓴 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글을 쓰고 항상 다시 읽는다. 심지어는 몇 년 전 글도 다시 읽고 수정한다. 바로 ‘퇴고’ 하는 것이다. 퇴고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설픈 내 글을 내어 보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것을 좀 더 완성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퇴고’는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 가며 다듬어 고치는 일’이다. 나는 완성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면 내 글은 다듬고 고쳐야 할 것들 투성이다. 문법이나 어법에 어긋나는 문장, 소위 말해 ‘비문’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내 글을 다시 볼 때 즉, 퇴고할 때 중점적으로 보는 항목은 아래와 같다.
- 제목은 적절한가?
- 더 매력적으로 바꿀 수 있지는 않은가?
- 제목이 전체 문장을 아우르는가?
- 전체 스토리 라인이 잘 잡혀 있는가?
- 서론-본론-결론의 흐름과 핵심 메시지는 서로 일관성이 있는가?
- 맞춤법은 틀리지 않았는가?
-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어색한 문장은 없는가?
- 문장은 짧고 간단하게 썼는가?
- 문장이 길어지는지 모르고 이어 붙인 문장은 없는가?
- 중복되는 단어, 문장은 없는가? 그래서 줄일 수 있는 문장은 없는가?
효율적이고 확실한 나만의 퇴고 방법
물론, 모든 단어나 문장을 쥐 잡듯 교정/교열하면 남는 글이 없을지도 모른다. 비문을 용인하자는 건 아니지만 비문이 나올까 봐 지레 겁먹고 글쓰기를 어려워하거나 각자의 개성이 담긴 표현을 제한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글을 ‘퇴고’해야 한다. 틀릴까 봐 두려워하기보다, 무엇이 틀렸는지 어디가 어색한지 먼저 알아내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스스로 틀린 걸 고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 글의 질이 올라가고, 기꺼이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예의를 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전문 교정/ 교열자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확실한 나만의 퇴고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맞춤법 검사 기능은 기본적으로 실행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의외로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지금 당장 브런치나 블로그 글 몇 개를 골라 읽어 보자. 독자를 교정/ 교열자로 만드는 글들이 생각보다 많다. 맞춤법 기능을 적용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글을 써냈다는 희열과 후련함 그리고 다시 자신의 글을 마주하기 어려운 마음 때문에 이마저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더불어, 맞춤법 기능이 모든 오류를 잡아 주지는 못한다. 맞춤법 기능만 믿을 게 아니라, 내 글을 꼭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여러 번 읽는다. 심지어 몇 년 전 글이라도.
한 번 마주하는 게 어렵지, 다시 보면 꽤 할 만하다. 게다가 여러 번 읽으며 얻는 통찰은 꽤 쏠쏠하다. ‘아, 내가 문장을 주로 이렇게 쓰는구나’, ‘이 단어와 말을 반복하는구나’,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구나’ 등. 내 글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된다. 해서, 나는 몇 년 전의 글들도 찾아 다시 읽는다. 지금 다시 읽으면 다듬고 고쳐야 할 것들이 태산이다. 그것들을 보완하며 나의 글쓰기 실력은 더 나아지는 것이다.
셋째, 자기 객관화: 소리 내어 읽는다.
내 글을 메타 인지해서 보는 아주 좋은 방법. 바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 신기하게도 속으로 읽을 때와는 달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맞춤법’은 물론 ‘이리저리 이어 붙인 긴 문장’부터 ‘주어와 술어가 호응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문장’까지. ‘소리 내어 읽기’는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여러 번 읽는 중에 한두 번 이상은 꼭 소리를 내어 읽어 보길 추천한다.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또 다른 나’가 교정/ 교열자가 되어 잽싸게 이상한 것들을 찾아낸다.
넷째, 다른 환경에서 읽는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쓸 때 항상 PC를 통해 웹으로 글을 작성하고 모바일로 퇴고한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내 글을 읽으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소리 내어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모바일로 퇴고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모바일로 내 글을 읽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해서, 모바일로 글을 읽으며 문장 구조나 단락의 구분 등을 그에 맞게 재조정한다. 일종의 배려다. 최대한 깔끔하고 편하게 읽으실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위의 것들을 떠올린다.
대충 쓰고 나중에 고치자는 생각은 금물이다. 쓸 때도 정성 들여 써야 하고, 퇴고할 땐 그 정성을 더 들여야 한다. 글쓰기는 단지 ‘쓰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이해할 것이다. 소재를 찾고 제목을 짓고 글을 써 내려가며 고치고 다듬는 일까지. 글쓰기는 이 과정의 총합을 말한다.
그러니, 이제는 쓸 때부터 퇴고를 함께 고려하며 쓸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반복적으로 내 글을 다시 읽고, 동시에 다듬고 고치며 글을 완성해 가는 것.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퇴고’는 죽은 글도 다시 살려낼 수 있다
‘퇴고’의 중요성을 제대로 안다면 쓸 때부터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글은 천 번을 고쳐도 완벽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완성에 가까워질 수 있을 뿐이다.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조금은 더 완성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내 글을 다시 보고 다듬어 고치는 일. 바로 ‘퇴고’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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