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자급률은 높으면 좋은 것일까? 토론을 하다 보면 기본 개념에 대해 헷갈리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또 이 바쁜 와중에 정리를 해봤다.
1.
식량자급률: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식품량 대비 국내 생산량의 비율을 나타낸다. 수식으로는 이렇다.
식량자급률 = (곡물 생산량 ÷ 국내 소비량) × 100
사람이 먹는 곡물만 대상으로 한다. (대개는 식량안보라는 의미와 혼용되어 쓰이면서 혼란이 발생한다.) 식량자급률 통계는 1959년 100.4%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2015년에는 50.2%였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의 절반은 수입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여기에 사료로 수입하는 곡물까지 더해지면 23%대로 떨어진다. 대충 전체 곡물 중 절반은 동물을 먹이는 데 사용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2.
식량자급률이 높으면 좋을까? 당연하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곡물이 많다는 뜻이니 높아서 나쁠 게 뭐가 있을까. 많아서 나쁠 거야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이 있다.
자, 우리나라 식량(곡물)자급률이 낮은 건 왜일까? 그건 사람들이 밀이나 다른 곡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다. 또 논에 하우스를 짓고 채소를 생산하니 쌀을 덜 생산하는 것이고. 높이려면 논밭에 곡물을 재배하게 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럼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당연히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쌀은 지금도 재고를 보관하는 데 수조 원을 쓰고 있다. 비상시를 대비한 측면도 있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채소나 다른 작물의 수입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비용도 더 들고 환경적으로 바람직하진 않다. 농민들의 수입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3.
이런 우려가 큰 것 같다.
전쟁이 나면 어떡하느냐?
전 세계가 다 흉년이 들어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면 국민이 굶게 되지 않느냐?
그러니 식량안보를 튼튼히 하는 게 맞지 않느냐!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위험을 대비해서 과도하게 돈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석유 비축분은 대개 3~6개월 정도라고 한다. 식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 다른 나라도 식량자급률을 계산할까? 관심이야 있지만 우리처럼 예민한지는 모르겠다. 대신에 ‘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라는 지표가 있다. 우리말로는 ‘세계식량안보지수’다. 이코노미스트 신문에서 2012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2019년 113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29위를 했다. 농업의 규모치고는 나쁘지 않다. 그럼 1위는? 싱가포르이다. 땅도 거의 없는 나라가 1위이다.
GFSI는 크게 3개의 지표를 가지고 측정을 한다. 식량에 대한 Affordability(경제적인 접근성), Availability(충분한 공급), Quality and Safety(질과 안전성) 등이다. 우리나라는 골고루 70점대를 받아서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여기서 크게 마이너스 점수인 것은 관세이다. 또 하나 도전과제로 나타낸 것이 ‘농업 R&D에 대한 공공지출’이다.
4.
우리는 식량안보라는 용어를 위험 대비 안전망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대충 찾아봤지만 ‘Food Security’라는 용어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정확한 정의는 이렇다.
모든 사람들이 항상 건강하고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식이 요구와 음식 선호도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가 있는 음식에 대한 물리적, 경제적 접근을 갖는 상태.
전쟁이나 기후 위기를 대비해서 비축하거나 자급률을 높이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에 가깝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보험에 전 재산을 올인하며 살 수는 없는 것처럼, 과도한 위기 대응은 위기가 아니라 그 두려움 때문에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한두 가지 곡물로 식단을 구성하기에는 이미 너무 부유하다. 지금도 우리가 먹는 절반 정도는 수입농산물과 식품이다. 이걸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 게 최선일까?
5.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곡물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여러 대륙별로 공급망 구성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농업투자도 좀 하고.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다. ABCD라고 불리는 글로벌 곡물 기업들이 대개의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해 움직이는 영역이다. 그래도 싱가포르나 일본처럼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내 농업생산기반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충분한 예산이 투자되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개입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비용이 많이 들면 지속가능성은 떨어진다. 글로벌농업으로 관점을 좀 더 확대하면 오히려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지구라는 한배에 올라탄 이상.
원문: 남재작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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