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진 않지만 책을 한 권 썼다. 기후변화에 대한 <알쓸신잡>과 같은 느낌의 책이다. 오랫동안 농업환경과 바이오에너지 연구를 하면서 분석했던 자료들, 그리고 기후변화 협약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감상을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2000년대 초부터 기후변화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이 분야를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
이 책을 쓴 후(2013.11.) 바로 라오스로 떠났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다. 일년 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쓴 책이지만 내겐 그렇게 잊혀졌다. 지금은 이 책을 펼칠 때마다 내가 쓴 책이 맞나, 라는 착각도 든다. 내게도 낯설다.
많이 읽히진 않았다. 많이 팔리지도 않았다. 참고 및 인용문헌이 수백 개인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감상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지식이 기후변화를 말하게 하고 싶었다. 아마도 다시 쓴다면 훨씬 더 대중 친화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도 지나고 나니 남았다. 책을 출판해준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라오스에서 돌아온 후 의외의 사람들로부터 가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개는 호평이다. 아마도 예의상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몇 주전에 만난 기상과학원장은 자신이 추천할 수 있는 서너권의 국내 저자 책 중 하나라고 추켜세웠다. 기후변화 분야의 최고 전문가의 평가라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부정확한 지식이 있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마음이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었다.
라오스로 떠나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몰아쳐서 글을 섰다. 편집장도 처음 다루는 과학분야의 글을 편집한다고 진땀을 흘렸다. 출판사 윤 대표는 내가 떠나기 전에 책을 보여주기 위해 인쇄소를 찾아가 사정을 했다.
더 변덕스러워진 기후를 보면서 다시금 기후변화를 생각한다. 아래는 책 소개를 써 달라고 해서 그 당시에 쓴 글이다.
『기후대란 – 준비 안 된 사람들』 (2013. 11.)
이 책은 기후변화 이야기이다. 신문과 TV에서 너무 자주 들어서 마치 모두가 전문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잘 모르고 있는 기후변화 이야기이다.
우리는 “기후가 변할 것이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물음이다. 기후는 이미 변했다. 올여름 한반도는 30도가 넘는 바닷물이 감쌌고, 연일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럼에도 아직도 예전과 같은 기후라고 생각하는가? IPCC는 0.8도가 올랐다고 한다. 단지 0.8도. 하지만 이는 단지 평균일 뿐이다. 더운 때는 더 더워졌고 추운 때는 더 추워졌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후대란 – 준비 안 된 사람들』은 기후과학이라는 한 분야에 치중하기보다는 기후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전 분야의 지식을 망라하고 있다. 이 책은 과학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풀어쓴 책이다. 읽고 나면 기후를 둘러싸고 있는 그간의 논쟁과 음모, 식량위기와 물 부족, 급격한 기후변화 등 기후변화의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가이든 기업을 경영자이든, 그리고 말단 직장인이라도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의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기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기후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목적은 기후변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데 있다. 독자들에게 무엇이 변해갈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려주는 데 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우리가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의 기후변화 협약과 많은 과학적 연구들은 기후변화를 멈출 목적으로 추진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인류는 절대로 기후변화를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럴듯한 제도를 만들고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합의를 도출하겠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경제시스템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준비 안 된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지 이 책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기후변화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적절한 준비를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는 새로운 빈곤층을 만들어 낸다. 준비된 국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에는 재앙이 뒤따른다.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내전이 벌어진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인 석유생산은 한계에 다다르고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런 현상들은 전 세계로 확산된다. 생물 종들은 빠르게 멸종하고 적응하지 못한 문명도 어려움에 처한다. 세계 경제규모에 비해 대안기술은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인류에게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까? 우리나라는 올해 참 더운 여름을 보냈다. 원자력 발전소가 고장 나면서 더 더운 여름을 보냈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단지 준비 안 된 인간만 있을 뿐이다.
라는 스코틀랜드의 속담처럼 아마도 여름이 더 더워져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비가 더 크게 내려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준비만 되어 있다면. 우리 모두 준비된 모습으로 기후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에필로그
이 책을 쓸 당시 예상했던 시나리오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렇지만 태양광은 그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갖추어 가고 있다. 라이프 사이클 관점에서 화석연료보다 더 온실가스 발생량이 낮을지는 검토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상당 부분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에너지를 다루면서 “먹을 것인가, 탈 것인가?”라는 고민을 했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쌀이 태양광 발전과 경쟁할 것이란 상상까진 미치지 못했다. 쌀 과잉과 에너지 문제 해결에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은 현저히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기후변화란 변수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당장 필요한 현금이 아니라 먼 훗날 도래할 어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4대 강과 환경정책,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식량안보를 접근하는 방식, 전기자동차 등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기후변화 적응 역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긴 쉽지 않다. 기후변화는 여전히 트렌디한 패션처럼 느껴진다.
오랜 논쟁 끝에 합의에 다다른 파리협약은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선언으로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여전히 화석연료 시대가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산다. 무한할 것 같은 셰일 오일과 셰일가스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석기시대, 돌이 부족해서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을 더 자주 맞닥뜨릴 것이고, 그것도 익숙해지는 지점이 올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변화된 기후에 적응해 갈 것이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단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느냐만 문제이다.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원문: 에코타운(eco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