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이 논란은 천일염이 우수하다는 주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금에도 족보가 있다는 전통파와 소금은 소금일 뿐이라는 과학파가 맞붙으면서 이 논란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그래서 소금이라는 것에 대해 정리해봤다. 화학 전공자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소금, NaCl(염화나트륨) 이다. 소금은 미네랄, 즉 무기성분의 일종이다. 소금은 체내에서 대사조절과 소화효소 등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미네랄이라는 용어에 혹한 경우가 많은데, 미네랄은 칼슘, 철, 망간, 마그네슘 등 무기성분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신비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금의 종류
소금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천일염, 정제염, 암염(岩鹽), 자염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상품화 방법에 따라 다시 재제염(再製鹽), 가공염, 태움·용융염(태우고 녹인 소금)으로 새롭게 분화되기도 하지만 위에서 만들어진 4가지의 기본 소금(鹽)을 기반으로 가공한 것이다.
천일염은 염전에서 태양빛을 이용해 수분을 증발시키고 바닷물에 포함된 소금을 결정화시켜서 만들 때 붙여지는 명칭이다. 정제염은 비교적 최근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본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바닷물을 이온교환수지를 통과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고 염도를 높인 후 끓여서 결정화하여 만드는데, 염화나트륨 함량이 99%를 넘을 정도로 순도가 높다.
암염은 육지에서 소금의 결정을 캐어낸 것으로 염화나트륨 함량이 98~99%로 높다. 당연히 소금이외의 다른 미네랄과 같은 불순물은 매우 적은 양을 포함하고 있다. 자염은 소금을 끓여서 수분을 증가시킨다.
암염을 제외하고는 소금 제조란 결국 소금이 결정화될 수 있을 정도로 수분을 어떻게 분리해낼 것인가가 핵심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물을 걸러내기 위해, 햇볕을 쓰느냐, 불을 쓰느냐, 또는 이온교환 수지를 사용하느냐라는 방법론의 차이에서 오늘날 천일염 논쟁이 생겨났다.
이런 논쟁은 자연적인 것이 좋은 것일까? 미네랄은 과연 좋은 것일까? 전통은 더 좋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만들어 냈다.
왜 소금을 먹는가?
짠 맛을 내기 위해서이다. 소금을 먹지 않아도 될까? 안 된다. 꼭 먹어야 한다. 체내대사 조절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그럼 미네랄은 꼭 먹어야만 할까? 이건 “글쎄다”이다. 미네랄은 뼈와 이빨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축 재료이고, 체액과 세포 내에서 대사 조절에 관여하며, 음식을 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음식에서 충분한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소금을 통해서 미네랄을 추가적으로 섭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영양학적인 소견이다. 물론 아주 일부 사람의 경우 미네랄을 포함한 영양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전통 논쟁과 갯벌
우리는 전통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민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을 둘러보면 전통적이라고 불릴만한 것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서인지 전통이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통이란 이름이 붙여지면 일단은 한 끗발 죽어주고 들어간다. 그래서 뭔가를 차별화 시킬 때, 특히나 음식에서는 전통적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천일염은 어느날 전통적인 소금 제조방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실 자염, 즉 바닷물을 끓이는 방식이 전통적인 방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은 기후대가 천일염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다.
천일염은 일제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천일염이 전통이기 때문에, 서해의 갯벌이 훌륭하기 때문에 우리 천일염이 좋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떨어진다.
소금은 소금일 뿐
소금을 좀 더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일은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소금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가치와 마케팅에 지갑을 열고 싶은 소비자는 항상 존재한다.
천일염을 용해 후 재결정하여 분말로 만든 꽃소금, 대나무 통에 구웠다는 죽염, MSG를 첨가했다는 맛소금 등이 그런 상품이다. 같은 천일염이라고 염전 바닥의 재질이 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런 다양한 욕구에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느낌이다.
소금에서 염화나트륨의 농도도 중요한 논쟁으로 다루어진다. 짜지 않은 소금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붙으면서 촉발된 논쟁이다. 소금이 짜야지 짜지 않다니. 뭐 이럴수도 있겠지만 상대적인 개념이다.
당연히 모든 소금은 짜다. 정제염과 암염은 염화나트륨 함량이 높아 더 짜게 느껴진다. 천일염은 염화나트륨이 80%대 중반에 머문다. 전통파들은 이런 단점을 짜지 않은 소금, 건강에 좋은 소금으로 마케팅 했다. 그냥 좀 덜 넣으면 되는 문제인데…
이게 과학파들이 보기에는 기가 찬 일이었다. 아니 불순물(기타 미네랄)이 많아서, 수분함량이 높아서 생기는 문제인데 이게 장점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또 숙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과학파들은 불만이다. 천일염에 포함된 불순물, 즉 마그네슘화합물 때문에 생기는 쓴맛을 줄이기 위해 천일염은 숙성기간이 필요하다. 습한 창고에 보관하여 간수를 빼야, 즉 다른 미네랄을 제거해야 소금맛 다워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정제염은 이온교환수지를 이용해서 해결했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게 전기분해소금, 화학조제소금 등으로 폄하되었다. 값싼 소금을 만드는데 비싼 전기분해 공정을 쓸 회사가 있을지. 얼토당토 않은 소설이다.
암염이든 천일염이든 자염이든 정제염이든, 어떤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 지더라도 소금은 소금일 뿐이다. 공업용 소금이라고 뭐가 더 다르지도 않다. 그냥 소금은 소금이다. 화학실험실에서 쓰는 소금, 그냥 순도만 좀 더 높인 것일 뿐이다. 먹어도 이상없다. 소금은 소금이니까.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소금 이야기이다.
천일염에 대한 신화
그런데 왜 소금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을까? 그건 대부분 천일염에 대한 신화가 생겨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마케팅적인 접근이 과학적인 반론과 만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충돌은 특히나 잘못된 지식이 과학인 양 포장된채 유통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과학파들에 의해 시작됐다. 소금은 짜지만 이 논쟁에서 만큼은 양측다 공격에 인색함이 없다. 소금에 대한 논쟁을 보다보면 잘못된 지식의 유통과 이를 바로잡아 나가는 하나의 역사를 보는 듯 해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슈퍼에 가면 나도 정제염보다는 천일염을, 천일염보다는 죽염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소금이 그냥 소금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싼 값을 치뤘으니 뭔가를 더 기대하는게 당연한데, 소금은 구워도 짜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건강이 좋아지는 느낌을 소금에서 받기는 아무래도 어려웠지만 다음에 슈퍼에 가더라도 똑 같은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위대한 마케팅이다.
원문: 에코타운(eco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