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실검은 AI알고리즘이기에 조작이 불가능하다? 네이버 실검 논란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공명정대한 AI님이 실검 순위를 만드시니 몽매한 닝겐은 토 달지 말지어다.’ 그러나 공정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정위는 네이버가 ‘네이버쇼핑’ 알고리즘을 임의조정했다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많은 뉴스가 그 사실을 전했다. 요것만으로도 잼난 뉴스.
이제부터가 진짜 잼난 일. 관련 뉴스가 많아지자 네이버 뉴스토픽에도 뜨게 되었다. 그런데 네이버 뉴스토픽에는 ‘네이버 과징금 260억’이 아니라 그냥 ‘과징금 260억’이다! 그래서 이를 ‘시선집중’에서 지적하자 네이버 뉴스픽은 결국 ‘네이버 과징금 260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결국 공명정대한 AI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이 조작했다는 얘기라는 주장.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요즘 AI 기술은 정말 빠르게 발전한다. 바둑의 빅데이터(기보 16만 건)를 분석해서 인간대표를 이긴 알파고도 업계에선 거의 퇴물 취급 받는다. 인간의 바둑기보를 한 건도 보지 않은(인간한테 바둑을 배운적이 없는) 새로운 AI가 알파고를 100대 0으로 꺾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AI가 왜 기사에 주어를 빠뜨리는, 초보 기자도 하지 않는 실수를 했을까? 그것은 바로 AI가 드디어 사회생활까지 잘하기 시작한 거다. 네이버에 소속된 AI가 자회사에 불리한 뉴스토픽에 주어를 빼고 게재하는 엄청난 사회생활 센스. “부장님 나이스 샷” 정도를 외치고 뿌듯해하는 인간은 보고 배울지어다.
더 놀라운 건 시선집중에서 이슈가 되자 바로 주어 네이버를 찾아 놓는 센스. 이는 AI의 뛰어난 정무적 감각 아닐까? 별것도 아닌 실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아 일을 더 키우는 정치에 종사하는 인간은 보고 느낄지어다. 이하 다른 얘기니 네이버 정보독점에 관심 있는 사람만.
우리나라 인터넷 콘텐츠 발전을 가장 저해하는 게 ‘네이버’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여야 한다. 토플러 같은 사람이 인터넷 시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대자본이 없어도 창의력과 콘텐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본력이 최고인 굴뚝 산업은 독점이 발생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좀 더 다원화되고 창의적인 사회가 된다고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것 같다.
그런데 네이버라는 공룡이 인터넷 검색시장을 독점하자 대한민국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가두리 양식장이 되었다. 네이버는 정보의 바다에 있는 콘텐츠를 찾아주는 검색창이 아니라 자기 네이버 서버에 있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네이버쇼핑, 네이버영화, 네이버블로그, 네이버책, 네이버웹툰, 네이버뮤직…
결국 이런 불공정 행위는 지난 2013년에 공정위에 제소가 되었는데 공정위는 ‘동의의결’을 통해 사실상 면죄부를 준 적 있다. ‘동의의결’은 앞으로 잘할 테니 과징금 등 제재를 면제해 주는 제도. 그런데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해준 건 이 건이 역사상 첫 번째 일이다.
당시 앞으로 잘한다는 동의의결의 조건은 네이버 자체 콘텐츠에는 반드시 ‘네이버영화’ ‘네이버쇼핑’ 이런 식으로 네이버 자체 콘텐츠라는 사실을 명시하겠다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었다. 당시 공정위, 기재위 담당 당 전문위원 자격으로 나는 공정위 결정을 참 아쉬워했다. 그래서 네이버가 ‘동의의결’ 약속 사항을 과연 잘 지킬지 여부를 모니터링을 했다.
그 후 1년 뒤 국감에서 네이버가 동의의결을 지키지 않고 네이버 자체 콘텐츠에 ‘네이버’ 콘텐츠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사례 수십 건을 캡처해 이슈화하려고 했다. 나의 전략은 당시 공정위원장 입에서 “네이버가 동의의결 사항을 어긴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말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공정위원장은 국감에서 동의의결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더라. 그냥 잘 검토해 보겠다는 말만…
동의의결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네이버만 욕먹는 게 아니다. 네이버의 약속을 믿고 제재를 면제해 주면서 ‘동의의결’이라는 초유의 조치를 한 공정위도 욕을 먹게 되겠지. 아니 욕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국회를 떠난 게 안타까운 일.
사실 나는 당시 네이버가 동의의결을 어기고 네이버 콘텐츠라는 사실을 빼놓은 것은 대단한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감 질의 이후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내가 지적한 부분은 죄다 네이버 콘텐츠라는 표시가 다 붙더라. 그렇게 빈틈이 많았던 네이버가 이젠 놀랍도록 사회생활 마인드와 정무적 마인드까지 겸비한 AI를 계발하고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참 뿌듯(?)하기도 하다.
원문: 이상민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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