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개발사들은, 어떤 앱이든 모든 앱 마켓에 출시해야 한다’는 이상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한준호 의원 등 27인이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안’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개발사가 모바일 게임 등 모바일 앱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일정 점유율 이상의 ‘모든’ 앱 마켓에 차별 없이 똑같은 조건으로 앱을 출시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애플 앱스토어에 앱을 출시하고 싶으면 당연히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도 출시해야 하는 건 물론, 원스토어에 갤럭시 스토어까지 모든 앱 마켓에 전부 다 앱을 출시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앱 스토어 독점 게임, 플레이 스토어 독점 게임 같은 건 앞으로는 ‘당연히’ 출시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애플 앱 스토어 /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 운영체제별 대표 마켓에만 앱을 등록하는 것도 안 된다.
개정안은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에서 (콘텐츠를)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건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도록 하여” “앱 마켓사업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모바일콘텐츠 유통구조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사실 ‘공정하고 차별 없는’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분 자체야 전혀 반대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개정안이 그 명분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H 마트에서 물건 팔려면, 다른 마트는 물론 다른 모든 백화점에도 입점해야 한다’면?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자.
1. 자체 제작한 캐릭터 굿즈가 좋은 평가를 받아 H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열게 된 ㅍㅍㅅㅅ 디자이너 리승환 씨. 그런데 입점을 준비하던 중, 이상한 얘기가 들린다. H 백화점에 입점하려면 L 백화점, S 백화점, G 백화점 등 경쟁 백화점은 물론 H 마트, L 마트, E 마트(… 이건 어째 이니셜 처리가 소용이 없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에도 입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차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2. 해외에서 먼저 발매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스탠드얼론 VR 기기, ‘눈탱이 대모험’. 올가을 ‘눈탱이 대모험 2’가 발매되며 성능은 대폭 업그레이드되고 가격은 크게 낮아지며 국내 유저들의 이목도 집중되었는데, ‘눈탱이 대모험’ 측도 이런 반응을 알고 마침 자사 쇼핑몰과 아마존 등을 통해 한국으로 직배송해주는 옵션을 추가하… 려 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눈탱이 대모험 2’를 팔기 위해선 꿉빵, 액션, 사이공원 등 한국 쇼핑몰에도 같은 조건으로 판매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포기했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차별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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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겨냥한 스파이 게임, “우리사이에 나는잘하는데팀이못함”을 런칭하기로 한 게임사 ㅍㅍㅅㅅ.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게임 판매 플랫폼인 ‘스팀’을 통해 게임을 유통하기로 한다.
하지만 법령에 따르면, 스팀에 게임을 등록하려면 경쟁 플랫폼인 에픽스토어는 물론 국내 포털 사이트인 N, K 등 다른 플랫폼에도 함께 게임을 등록해야 한다. 결국 ㅍㅍㅅㅅ는 “우리사이에 나는잘하는데팀이못함”의 국내 런칭을 포기하고 해외 시장에만 유통하기로 결정한다.
위의 사례는 가상의 사례일 뿐이지만, 위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모바일 앱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날 일이기도 하다.
독점 출시를 포기할까, 아니면 그냥 한국 앱 시장을 포기할까
실제로 당장 일어날 일들만 해도 아래와 같다. ‘애플 아케이드’ 같은 서비스는 앱 스토어 독점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이런 서비스는 당연히 그냥 금지된다. ‘슈퍼 마리오 런’ 같은 게임은 어떤가? 이 게임도 앱스토어 독점으로 발표되었다가 후에 플레이 스토어에도 추가되었는데, 이런 식의 사업 모델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게임들은 어쩌면,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원스토어와 갤럭시스토어에도 출시하는 길 대신 그냥 한국 시장 출시를 포기하는 훨씬 쉬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 개발사와 국내 개발사 사이의 역차별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해외 개발사보다는 국내 개발사를 규제하는 게 훨씬 쉬울 테니까 말이다.
유통 경로를 늘리는 건 그냥 클릭 뚝딱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 개정안의 근간에는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오해가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현물 재화라면, 유통경로를 늘리는 게 당연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공간을 임대해야 하고, 재고도 쌓아 둬야 하며, 물류를 이동시키기도 해야 한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비용이고 부담이다.
디지털 콘텐츠는 이처럼 ‘현물’을 유통하는 비용만큼은 확실히 절감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 경로를 늘리는 건 그리 큰 부담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물류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해서, 클릭 한 번 하면 뚝딱 유통 경로를 추가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마켓마다 별도의 개발 빌드를 만들어야 하고, 런칭하고 각각 업데이트하는데도 별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유지 보수와 QnA, 리뷰, 환불 응대에 대응하는 데도 추가적인 수고가 들어간다. 다양한 앱 마켓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의 자체 결제 솔루션 외에 결제 모듈을 추가 / 변경하기도 해야 한다. 클릭 한 번만 하면 추가 런칭, 결코 이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만일 복수의 앱 마켓 런칭이 강제가 된다면, 개발사 측에서도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요식행위로 대응할 가능성도 높다. 예를 들자면, 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등 양대 앱 마켓 외에 다른 앱 마켓에 대해서는 런칭만 할 뿐 업데이트, 사후 대응 등은 손을 놔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오히려 질 낮은 앱들이 양산되며 사용자들은 골탕만 먹을 가능성도 있다.
이모티콘도 카카오, 라인, 텔레그램, 애플… 에 전부 출시하도록 강제할 것인가
개정안은 모바일 콘텐츠 전반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앱 말고 다른 콘텐츠의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이모티콘 같은 것 말이다.
국내에서 카카오톡의 점유율은 압도적이다. 당연히 이모티콘 제작자들은 카카오톡으로 주로 이모티콘을 내놓는다. 설령 카카오의 수수료율이 다소 비싸다고 해도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이를 카카오가 독점적 지위에 있다며, 강제 조치로 카카오와 라인, 나아가 텔레그램과 애플 아이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시징 앱에 이모티콘을 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어떨까. 이건 말이 안 된다. 독점적인 지위를 흔드는 것도 좋지만, 그로 인해 이모티콘 제작자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이모티콘을 앱으로, 카카오를 구글 플레이 / 애플 앱스토어로 바꾸면 바로 지금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된다. 이모티콘에 비해 앱은 개발 규모가 비교적 크기 때문에 1:1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여기에서도 똑같이 발생한다. 각 개발사들의 자율적인 시장 경쟁을 침해하고, 독점을 흔든답시고 개발사들을 옥죄는 문제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왜 카카오 이모티콘은 괜찮고 앱은 안된다는 의문이 생긴다.
콘텐츠 제작사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일 뿐
디스이즈게임의 기사는 독점을 견제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더불어, 콘텐츠 사업자들의 우려를 함께 다룬다. 사실상 원스토어와 갤럭시스토어에 앱 런칭을 강제하는 이와 같은 해법이, 제작사들에게는 또 다른 족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기사가 말하듯, “다수의 콘텐츠 사업자에게 원스토어와 갤럭시스토어는 유력한 선택지가 아니다. 구글과 애플이 자사 플랫폼에게 앱을 내라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스토어와 갤럭시스토어에 게임을 낼 이유가 없어서 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사는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거의 대부분 그럴 것이다.
인벤의 기사는 개발사들의 반응을 다룬다. 정작 ‘구글에 독점 출시를 강요받은 사례로 꼽힌’ 엔씨소프트는 “불공정 계약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익명을 원한 게임사 관계자는 “사업자에게 계약 내용을 규정하게 함으로써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등 해외 게임사에 반사이익이 될 거라는 역차별 논란도 불거진다.
이 개정안의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이것이 사실상 통신3사+네이버의 ‘원스토어’를 강제하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독점을 견제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크다 하겠지만, 그 수혜가 거의 온전히 통신3사라는, 국내 통신업계를 쥐락펴락하는 공룡에게 간다는 것은 충분히 의구심을 자아내는 면이 있다.
정작 한국에 앱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가 출범하기 전 한국의 모바일 환경은 어땠나. 외국에선 아이폰과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대를 이미 활짝 열었지만, 한국은 위피(WIPI) 의무화 때문에 스마트폰 따위 접할 기회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갈라파고스였다. 여전히 낮은 성능의 피처폰을 강제로 써야 하고 속 터지는 구닥다리 모바일 앱밖에 쓸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통신3사의 제멋대로 규격대로 앱을 세 번씩 만들어야 하고, 모바일의 잠재력은 이미 저 높은 경지까지 올라갔는데 여전히 구닥다리 플랫폼에 묶여 있어야 했던. 그러면서 이런저런 명목으로 50% 가까운 수수료를 뜯기고, 와이파이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앱 하나 받을 때마다 수천 원의 통신비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뜯겨야 했던 그런 시절. 그 ‘갈라파고스화’의 주범이 바로 정부 당국과 통신 3사였다.
그 구닥다리 시스템에 개발사들을, 그리고 사용자들을 가둬놓은 채 수익을 챙겨가던 게 바로 통신3사였는데… 이제 와서 원스토어를 정의의 사도인 양 추켜세우기는 조금 낯뜨겁지 않나. 원스토어가 SK텔레콤 자회사 중 처음으로 내년에 상장 예정이라는 점도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시장을 함부로 건드리면 반드시 탈이 나는 법
뭐, 그건 벌써 십 년 전 얘기고 지금은 어쨌든 사정이 다르긴 하다. 이제 구글과 애플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경쟁을 촉진하는 합리적인 정책은 언제든 환영할 일이다. (물론 통신3사의 독점적 지배력이 줄어들었냐 하면, 그건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장을 억지로 건드리는 건 늘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불러오는 법이다. 특히 이 경우에는 정책이 오히려 개발사들의 족쇄가 되기 십상이다.
앱 마켓마다 특성이 서로 다르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스토어는 광범위한 유저층을 갖고 있고,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자체 운영 시스템과 홍보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대신, 그만큼 수수료는 다소 높다. 반면 원스토어 등은 시장이 국내에 국한되며 유저층도 적은 편이다. 다만 수수료율을 최근 10% 인하하며 수수료는 조금 낮아졌다.
타겟으로 하는 고객층도 다르다. 예를 들어 원스토어는 흔히 19금으로 부르는 성인 전용 콘텐츠의 유통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와는 또 다른 유저층이 있고 이를 타겟으로 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업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조건 모든 앱 마켓과의 계약 체결을 강요한다. 이로 인해 개발사들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오히려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한다. 원치 않는 마켓까지 지원하느라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경쟁력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규모 개발사야 별 일 아닐지 몰라도, 중소 규모 개발사들은 그 자체가 대단히 큰 부담이 된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게 가장 좋다. 부득이한 경우라면 당연히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시장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대단히 조심스러워야 할 일이다. 개발사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이 개정안이, 과연 시장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지는 – 아마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