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디플레이션 구간, 즉 물가 수준이 하락 압력을 받는 현상이 이 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가 수준 중에서도 교환 가치를 가진 ‘준화폐적 자산’에 속할지도 모른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가격이 냅다 오르고, 필수 소비재, 특히 인건비와 연관된 소비재들의 물가는 낮아지고 있다.
‘준화폐적 가치’란 표현이 나도 참 어색하다. 하지만 중요한 개념이다. 예전엔 교환 가치가 있는 달러나 현금, 그리고 그에 준해 보이는 MMF 등 단기채권이 교환 가치가 높았다. 반대로 수집품과 부동산은 물론, 주식 등 장기적으로 교환이 어려운, 혹은 다른 말로 ‘유동성 리스크가 있는’ 자산은 그 반대의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투자란 ‘원하는 시기에 현금으로 교환이 어려울 가능성’ 때문에 수익률의 상당 부분이 결정되었다. 10년간 묵혀 둬야 하는 토지가 잠재 수익률이 높다거나, 벤처 회사에 7년간 돈이 묶여야 할 때 잠재 수익률이 높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 시간을 버틸 여건이 되는 투자자가 적기 때문에 상당히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10년 후에 200만 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이 현재 100만 원이라면, 연 기대수익률은 7.2% 정도 예상된다. 그런데 중간에 급하게 팔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50% 할인된 헐값 50만 원에 거래된다면, 이 상품을 샀을 때의 연 기대수익률은 14.9%로 올라가게 된다. 이 높은 수익률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부자들이다. 버핏처럼 10년 안에 팔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이 사치를 누릴 수 있다. 투자 수익이란 간단한 공식인 셈이다. 유동성 할인이 상당 부분을 설명한다.
심화 학습으로 넘어가 보자. 유동성이 없던 물건이 거래가 늘어나며 유동성이 증가하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2년에 한 번 거래되던 10억 원짜리 통일신라 금관이 갑자기 1년에 100번씩 거래되면 어떻게 될까? 위의 원리가 유지된다면, 유동성이 증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은 오를 수 있다. 50% 할인해서 당근마켓에 물건을 올려뒀던 사람들이 점점 할인 폭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사례는, 뮤추얼 펀드와 부동산 리츠, 하이일드 혹은 정크 본드 등일 것이다. 거래가 많으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값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더 높은 가격에 사게 된다. 이를 유동성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유동성이 가장 높은 화폐는 가격이 충분히 높아서 시간에 따른 투자 수익이 발생할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화폐를 찍어내며 화폐 가치의 하락을 유발하고 있다. 즉 화폐가 아닌 모든 것들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이고자 한다. 보통은 이 자금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에게 대출의 형태로 흘러 들어가서 더 많은 투자와 기업 확장을 유도하고, 그러면 사업자들이 돈을 벌어서 약간이나마 흥청망청 쓰면서 옆 가게의 매출에 기여하고, 그러면 다시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물가가 오르는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대형 IT 플랫폼들의 막강한 디플레이션 머신들이 작용하면서, 실물경기에서 돈이 퍼져나가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화폐 가치만 하락하게 된 것이다. 이럴 땐 자금이 화폐와 가장 비슷한 것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다. 첫째는 단기 채권, 둘째는 장기 채권, 그 이후는 거래량이 많은 아무 자산이나 다 주워 담는다. 투자로서 자산규모를 늘리는 게 아니라, 거래량이 많으면 언제든 던질 수 있다는 화폐적 가치만 생각하여 자산을 사들인다.
그게 요새 핫한 중고 스니커즈든, 금화든, 펭수 인형이든, 병뚜껑이든 상관없다. 거래만 많이 되면 오케이니까. 그렇게 자금이 몇몇 자산군의 밸류에이션을 무시하고 쏠림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게 준 화폐적 성격을 가진 자산에 돈이 몰린다는 이야기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유동성 장세와 비슷하다. 다만 밸류에이션에 집착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 설명해본 것이다.
이 유동성 장세는 근본적으로 근로소득의 상승이 소외된 장세다. 그래서 근로소득과 연관된 대부분의 영역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자산과 관련된 영역은 인플레이션을 겪어 양극화가 심화된다.
물론 요새 사람들은 수백 가지 이유로 근로소득의 보상이 점점 떨어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재테크를 하고, n잡을 찾고, 회사에서의 장기근속을 점점 기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뜬금포지만 그런 의미에서 스톡옵션을 받을 수 없는 회사에서 월급만으로 장기근속하는 것은 되도록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기술 기업들만이 스톡옵션을 주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보자.
어쨌거나 각설하고 이 현상을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 디플레이션은 기술로 인한 디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기하급수적인 IT 및 데이터,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일까?
아니다. 나름 건강한 디플레이션 기간은 역사상 누차 반복되었다. 특히 재화의 생산 비용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생산성 혁명의 시기, 그런 기술적 혁명의 시기에 상당수 재화의 가격이 떨어지며 디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예컨대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며 자동차 가격이 수십 년에 걸쳐 1/3 토막 났고, 그에 따라 운송에 관련된 모든 비용이 하락하며 다양한 상품들의 가격이 떨어져서 거대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만들어냈다. 물론 경제는 활황 속에 성장했고, 1920년대의 소위 ‘포효하는 20대’라는 대호황 시대를 만들어냈다.
그 시절 그때를 상상해보면 19세기 말부터 세 가지 기술 혁명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전기, 내연기관, 전화기였다. 이들이 경제구조를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꾸었는지를 상상해보시라. 셋 다 기타 산업에 막대한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이 시기의 50년을 ARK의 캐서린 우드 대표는 디플레이션 붐(deflationary boom)이라고 부른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밥 먹듯이 일어나던 시절이다.
우드에 따르면 현재 DNA 분석, 로봇, 에너지 보관,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 등 다섯 가지 기술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변화 강도는 19세기 후반 이후로 역대급이다. 그러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디플레이션 압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할 수밖에 없고, 이게 꼭 경제적으로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와 다른 것은, 평균적인 근로소득자의 기여도가 그때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낮아진다는 데 있다. 기술과 자본이 기업 수익의 대다수를 설명해버리고 있다. 아닌 증거가 있으면 부디 말씀해주시라.
그러니 일반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투자하는 것이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인 기술을 가진 산업에 투자하자. 그리고 다른 산업들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자. 짧게는 유동성이 풍부한 곳에 투자하고, 길게는 유동성이 풍부해질 여지가 있는 곳에 투자하자. 후자가 수익률이 월등히 높을 것이다. 굳이 비상장으로 거래되는 우리 회사 주식에 투자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상장 주식들이 향후 수익률이 월등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투를 해야 한다. 질척거리자면 역시 최고의 장투는 스톡옵션이다.
두 번째는 교육과 통찰의 힘을 더 믿자는 것이다. 예전엔 노력과 땀의 가치가 엄청나게 높았다. 이젠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다. 내 현재와 미래의 자원을 더 똑똑하게 투입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더 읽고 더 보자.
디플레이션 이야기를 하다가 어쩐지 액션 플랜으로 이어지는 글이었지만, 우리 모두 급변하는 시대에 잘못된 기차를 타고 있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번 주말도 모두 화이팅!
원문: Julius Chun – 무형자산 유형자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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