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자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은 대형 V자 반등을 잘 믿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희소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단기간에 3~40%의 반등을 추구하는 투자자나 트레이더를 만나본 적은 아예 없다. 소위 손익비가 좋지 않다고 집단적으로 믿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은 이번 시장에서 완전히 틀렸다. 2019년 초에도 틀렸다. 일 년 반 사이 두 번이나 틀렸으니 앞으로는 시각을 교정해볼 만도 할 것이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대다수 전문 투자자들에게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패턴은 몰라도 대형 V자 반등만큼은 의도적으로 소외되는 길을 택해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확률적으로 높지도 않고, 그것을 기대하다가 놓치는 작은 조정들의 기회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에. 한 번씩 소외됨으로써 더 큰 수익구조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거칠게 말하면 아마추어의 핑크빛 희망이라고 치부했다. 한두 번 당해도 장기적으로는 치룰만한 비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건 시장 전체에서의 이야기다. 잘 나가던 섹터들은 V자 반등을 종종 경험하지 않는가. 그래서 종목 단으로 내려간 투자자들은 이런 베팅을 잘한다. 하지만 폭락장이 석 달 만에 8~90%를 회복하리란 베팅은 일반적이지 않다.
2.
어쨌든, 왜 전문 투자자들은 V자 반등을 잘 믿지 않을까? 시장은 근본적으로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것은 어제의 시장이 오늘 눈꼽만큼이라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주의 시장이 이번 주 투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장이 오르면 부동자금이 점차적으로 천천히 유입되고 점차적으로 천천히 유출되는 경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금과 개인투자자들의 유입이 일거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분위기를 타고 퍼져나가기 때문에, 그 와중에 각자의 의견과 투자 지평이 첨예하게 다르기도 하기 때문에, 적정한 마찰을 겪으며 시장상황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모든 투자자가 매일 밤 인베스팅닷컴을 6시간씩 보면서 매수 매도를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시장이 어느 정도 느림세를 가지고 있다면, 한 번에 모든 자산을 팔았다가 다시 급격하게 사들이는 단기투자의 행태가 쉽게 나타나기 어렵기 마련이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5분 후에 별안간 날씨가 개이지는 않으리라는 전제이다. 날씨가 개이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보통 날씨는 점진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헷지펀드 매니저만큼 손바닥 뒤집듯이 매매를 번복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마저도 모두 변화해버렸을지 모르겠다.
그런 전제들은 이번 장에선 결과적으로 틀렸다. 순식간에 폭포 같은 폭우가 쏟아졌고, 순식간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올랐다. 옳았건 글렀건 간에 전문 투자자들은 소외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3.
앞으로는 어찌 될까? 눌림목을 사는 팀, 시간을 더 벌어드리는 팀, 하락 압력을 믿는 팀, 저가 매수를 기다리는 팀, 더블딥을 믿는 팀, 순환장세를 보는 팀, 각자의 영역에서 수 싸움을 시작할 여건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시장이 급격히 움직인 직후엔 급격한 행동을 보이는 팀이 더 크게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예측력이 매우 떨어지는 시장이니까.
물론 급락에는 다들 습관적으로 매수를 할 수 있는 상황 같다. 유동성 장세니까 몇 달이 걸리건 어쨌건 하락 시에는 돈이 더 풀릴 것을 가정해도 좋지 싶다. 장은 고점을 뚫는다는 가정이 간단하고 유효하다.
하지만 이번에 느리게 오래도록 하락하면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화두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번 상승장 끝자락에서 산 사람들은 저점을 테스트하게 되면 버틸 수가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러기에 너무 쉽다는 이야기다.
복잡한 장세가 일시적으로 유지되더라도 일반 투자자들의 결론은 간단해야 한다. 살 거면 장이 빠져도 지속적으로 사야 되고, 팔 거면 장이 오르더라도 긴 소외를 각오하고 기다려야 한다. 흔들리는 장에서 단기 추세를 추종하며 갈팡질팡하면 장이 어디로 가든 손해이다. 유동성 장세라 믿으면 손절을 두둑히 잡고 버티고, 변동성 장세라 생각하면 염가매수할 기회를 충분히 넉넉하게 기다려서 매수해야 한다.
하락세를 보고 인버스를 진입했다면, 시장이 행여나 고점 돌파할 때는 칼같이 끊어줘야 한다.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접근하자. 어차피 시장은 예측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내 간격에 잘 들어와 있으면 내 스타일대로 꿋꿋이 대응하고, 결과에 대해 받아들이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원칙을 지키더라도 뒤통수를 호되게 많이 맞는 장이다. 원칙이 손실까지 보호해주진 못한다. 하지만 원칙이 없으면 홀리듯이 빠져들 수 있는 시장이다. 많이 벌고 많이 터지고 웃고 우는 사이에 내 돈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기 쉽상이다.
결국엔 최소한 ‘3년 장사’를 하자. 3년 안에 마진콜 당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버티면 다 먹는 장이 있다고 본다.
원문: 천대표의 무형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