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3법. 반시장적인 정책일까? 그렇다. 그래서 나는 찬성하지는 않는다. 통과 절차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주택정책을 시장에만 맡겨놓는 나라는 없다. 근본적으로 주택시장은 공급이 무한정 확대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수요 공급원리에 의한 시장의 자동 조절기능이 완벽하게 작용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부동산 3법을 찬성하지는 않지만, 찬성하는 사람은 다 틀리고 내가 맞다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세입자 대항력을 2년으로 늘릴 때도 어마어마한 반대가 있었다. 반대 논리도 지금과 비슷하다. 반시장적이고 전세금 급증 등 부작용이 많다고… 실제로 전세금은 급증했다. 특히, 집주인이 2년 치 보증금을 한꺼번에 받으려는 과정에서 세입자 몇몇 분이 자살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러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나는 대항력 2년 연장은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3법이 반시장적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장에 맞서 싸우지 말라고 한다. 시장과 싸우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반대의 근거가 전세시장 축소다.
그런데 전세시장 유지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반시장적 정책이다. 전세시장 유지 정책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전월세 금리와 시장금리의 차이는 어마무시하다. 이러한 아비트레이지(무위험 차익거래)가 형성되면, 시장원리로만 보면 바로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중장기적으로 전세 시장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시장에 맞서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소프트랜딩할 수 있는 장치는 만들어놔야 한다. 시장 참여자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야 한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소프트랜딩 정책이고 어디까지가 반 시장정책일까? 아무도 모른다.
절대 쉽게 풀 수 없는 문제
부동산 정책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문제가 집약된 어마어마하게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어렵고 복잡한 영역이다. 시장과 싸우지는 않으면서도 적절히 시장을 규제할 수 있는 황금률을 찾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참 많다. 한쪽에선 용적률 높이고 고밀도 개발하여 주택공급만 늘리면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쪽에선 다주택자만 규제하면 해결된다고 한다. 주장은 넘치지만 실증적 데이터는 부족하다.
부동산 문제는 수요공급에 의한 시장원리 외에도, 도시정책, 금리정책, 조세정책, 부의 재분배 문제 등이 한데 섞여 있다. 조세정책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리부터 1세대 1주택자 양도소득세 비과세라는 국룰(?)사이에서 황금률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반된 가치가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양도차익이라는 어마무시한 소득이 생겨도 1세대 1주택자 양도소득은 원칙적으로는 비과세다.(1세대1주택자의 거주요건을 채운 9억원 이하 주택은) 노동수익이 2천만 원이 생기면 세금을 낸다. 그런데 부동산 매매수익이 2억 원이 생기면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게 정상일까?
반대로 양도소득세를 늘리면 주택 거래가 줄어 부동산시장에 악영향을 준다. 시장에 주택이 공급되지 않으니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양도소득세의 동결 효과도 사실이다.
조세원칙과 부동산 정책 사이에 모순이 생긴다. 또한, 1세대 1주택자는 주택을 팔면 다른 주택을 사야 하는데 양도소득세를 내면 같은 가치의 주택에 이사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글로벌룰’과 1세대1주택은 비과세라는 ‘국룰’이 배치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과 현실을 조화시키고자 1세대 1주택이 비과세가 아니라 과세를 하면서 9억 원의 소득공제를 도입하자고 생각하지만… 물론 내 생각도 절대적이지 않다. 내가 모르는 허점이 있을 수 있다.
부동산,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는 세계
이 세상에 팬시한 정책은 없다. 결국 정책믹스를 찾는 사회적 합의, 정치적 합의가 해결방안이다. 그런데 여당은 부동산 3법을 절차를 위배해서 몰아붙이고 국민들은 정파적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자기가 생각하는 정책만 옳다고 한다. 한쪽에서 다주택자 규제를 하자는 사람은 현실과 시장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욕하고, 다른 쪽에서는 욕망이 도덕을 잠식한 나쁜 놈이라고 욕한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에는 절대 악도 없고 절대 선도 없다. 현실은 정책 믹스가 유일한 대안이다. 내 페친처럼 훌륭한 분들도 어찌 자기가 지지하는 정책만 옳고, 다른 정책은 다 틀리다고 생각할까. 아니, 다른 정책을 말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놈이 아니면 다 무식쟁일까. 사회적 합의, 정치적 합의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가능하다. 이런 기초적인 합의 과정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아 걱정이 많다.
뉴욕식의 고밀도 마천루가 있는 도시도 있지만 파리처럼 낮은 건물만 있는 대도시도 많다. 개선문 위에서 보니 더 높은 건물이 없어 파리 시내 전체가 다 보이더라. 강남을 고밀도 개발하자는 정책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강남 약속이 있으면 웬만하면 피한다. 그 교통지옥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더 고밀도 개발했을 때 그 교통 문제에 대한 복안은 있는 것이겠지?
원문: 이상민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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