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세가 나쁜가? 나쁘지 않다. 아니, 전세보다 훨씬 편리하다. 전세는 집주인이 갑. 월세는 아니다. 서울시내 아파트 임대차 국룰이 무엇인가, 월세는 집주인이 도배해 주지만 전세는 그런 거 없다. 보일러 정도 고장나면 모르겠지만 수전같이 자잘한 물건은 세입자가 부담하고 고친다. 몇 억 되는 돈을 보증금으로 디파짓했지만 별 권리는 없고, 오히려 만기 시점에 목돈 떼일 걱정을 해야 한다. 반면 월세는 한달만 돈 며칠 늦게 밀려도 집주인이 난리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렇게 전세에 집착하는가?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이자율 차이일 것이다. 요즈음 전세대출 받으면 이율이 3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연리 2퍼센트에도 억 단위로 가능한 것이 전세 대출이다. 2억을 빌린다 해도, 한달 이자가 40만원도 되지 않을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정책적인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월세는 어떠한가? 원룸, 오피스텔도 기본 50만원에서 시작을 한다. 하다못해 대학가 하숙집도 그렇다. 그런데 2~3인가구의 서울시내 아파트 주거라면? 돈 백만 원이 쉽게 느껴진다. 물론 월세도 집주인 입장에서 수익률 안 나오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4억 전세 월세로 바꿔도 월 100만원 나올까 하기는 하지만, 여하간 지출의 개념을 굉장히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2.
게다가 월세와 전세의 가장 주요한 차이를 하나 짚는다면 금융대출의 경험 여부인데, 4억짜리 임차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전세에 살았고, 한 명은 월세에 산 경우 전세 세입자는 1~2억 대출을 받아보았을 것이고, 한 명은 받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금리가 완전히 똑같다는 전제하에 아무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이는 훗날 아주 큰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막상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말이다.
2억 대출을 받아본 사람은 어느순간 ‘이러느니 그냥 집을 사겠다’는 마음을 먹고 1~2억 대출을 더해 자가전환이 가능해지지만, 월세로 대출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갑자기 3~4억 대출을 받아 장기 모기지 카드를 쓰겠다고 마음먹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평생 벌어도 갚지 못할 돈으로 여겨지는데다가 나는 보증금 몇천 내본게 전부이니, 집을 갖는다는건 남의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설령 실질적으로 그 돈 이자를 더 비싸게 다 내고 있었더라도 말이다.
젊을 때, 가진 자본이 충분치 않을 때, 임차인으로 거주하는 것은 딱히 이상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본을 충분히 모은 이후 그것을 굳이 주택에 깔아놓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개인적인 것이므로 존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임차로 시작해 자가주택을 갖추고, 조금씩 집 한 칸씩 늘려가는 것이 중산층 진입의 가장 빠른 지름길인 수가 많다. 이 때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가, 아닌가는 굉장히 다른 것이 된다.
3.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이미 LTV규제가 가혹하리만큼 차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주택시장에서 월세 비중을 늘려나가겠다는 정책방향은, 젊은이들에게 결코 유리할 수가 없다. 40억짜리 강남 집 월세값을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전세 보증금 4~6억짜리 집들은 월세가 해봐야 100~150만원이다.
그리고 거기에 젖어가며 그냥 안주하는 순간 인플레션과 지가상승이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서 크게 불만은 없겠으나, 집을 살 수도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29살에 결혼해서 어쩌다보니 자기 집도 갖고 자산을 키워 나가고 있는 후발 세대로서, 기득권층이 월세시대를 나서서 권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를 굳이 알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나는 더이상 굳이 나서서 설득하거나 권하지 않을 것이다.
원문: 김민규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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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