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시민당은 비례 정당 중에서도 가장 희한한 정당이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연합 플랫폼 정당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연동형비례제의 결함을 이용한 꼼수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이 비례를 싹 쓸어갈 상황이 되자, 더불어민주당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든 일종의 위성 정당이다.
다만 명분 쌓기를 위해 자당 출신은 11위 이후의 후순위로 배치하고, 앞에는 시민사회 후보(?)들과 소수정당 후보들을 넣었다. 여기에서는 시민사회와 소수정당 몫으로 배정된 1~10번까지의 후보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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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현영
- 키워드: 코로나19 최일선, 전문직, 청년(?)의사
비례 1번은 코로나19 사태 최전선에서 뛴 의사, 신현영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대한가정의학회 코로나대응태스크포스, 명지병원 코로나19 역학조사팀장 등을 맡으며 일선에서 활약했다.
정책적으로는 감염병 전문병원, 공공병원 확충, 주치의 제도 도입 등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39세의 비교적 젊은 여성 의사이지만, 이미 의사협회 대변인, 가정의학과의사회 보험이사, 학술이사, 정책이사, 한국여자이사회 국제이사 등 주로 의사사회에서 여러 경력을 쌓았다.
2. 김경만
- 키워드: 정책통, 전문성, 중소기업
2번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30년 동안 ‘정책통’으로 활동해온, 중소기업 정책 전문가 김경만이다. 97년 외환위기,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경제사적 사건 사건들 속에서 계속 정책가로 활동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유명 경영인이나 임원진이 아님에도 비례 2번을 받은 건 상당한 파격으로 여겨진다. 썰에 따르면 더불어시민당 측이 중소기업중앙회 측에 경영진이나 임원진을 ‘제외한’ 정책전문가를 추천해달라고 요구했고, 그 결과가 김경만 본부장의 비례 2번 배치라고.
더불어시민당 출범이 상당히 급박하게 이뤄진 탓에, 비례 후보 추천을 두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런 정책통이 상위 순번을 받게 된 것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보 선정 절차를 진행한 덕분에 벌어진 순작용일지도.
3. 권인숙
- 키워드: 부천서 성고문 사건, 성폭력, 여성, 전문성
비례 3번 권인숙은 여성계, 특히 성폭력 문제에 있어 뼈가 굵은 인물. 거의 대모님 격. 무려 86년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이자, 고발자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이하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짤막한 요약. 권인숙은 86년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노동운동에 투신, 가스배출기 제조회사에 가명으로 위장 취업했다가 주민등록증 위조 등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대학 출신의 노동운동가(소위 ‘학출’)들은 ‘학력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주민등록 그대로는 블루칼라 업종에 취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위조하여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권인숙도 바로 그런 경우.
그런데 이렇게 체포된 권인숙은, 부천서 문귀동 경장에게 2차례에 걸쳐 성고문을 당한다. 이에 권인숙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문귀동을 고발하였는데, 이때가 86년 군사정권 시대라는 걸 생각하면 굉장한 용기였다. 하지만 86년은 성인지감수성도 형편없던 시대였던 데다, 하물며 경찰의 성비위에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리가 없었다. 이를 수사한 검찰은 성고문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했으며, 오히려 권인숙의 고발이 “운동권이 성마저 혁명의 도구로 쓴다는 증거”라 비하했다.
진실이 알려진 것은 6월 항쟁 이후. 88년 대법원이 재정신청을 수용함으로써 사건의 실체가 알려졌고, 문귀동은 징역 5년형을 받았다.
이후 권인숙은 여성문제, 특히 성폭력 문제 등을 깊이 연구, 성폭력 전문 연구소인 ‘울림’의 초대 소장을 맡았고 이후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권력과 폭력의 관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군대 내 성폭력 문제, 검찰 내 성추문 등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야말로 젠더 문제의 살아있는 역사 같은 존재.
4. 이동주
- 키워드: 갑질 문제, 남양유업 밀어내기, 정책통, 전문성, 치킨집 출신
4번은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부회장 이동주. 소상공정책 전문가로서 상위 순번을 배정받았다.
인천 부평에서 치킨호프집을 운영했던 자영업자 출신으로, 국내 상인 운동의 지평을 넓힌 운동가로 평가받는다. 비례 2번 김경만 후보와 마찬가지로 ‘정책통’으로 평가받는 인사다.
SSM 문제가 한창 촉발되던 시절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인대책협의회를 구성했으며, 남양유업, 배상면주가 등의 ‘밀어내기’ 갑질을 폭로하여 대리점법 문제를 공론화했다. 전국 ‘을’ 살리기 운동본부를 발족하여,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 등을 출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 용혜인
- 키워드: 알바노조, 기본소득, ‘가만히 있으라’, 진보
5번 후보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로서, 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본소득을 밀고 있다(…). 그 전에는 알바노조에서 활동했었다. 2013년 창립 때부터 활동했으며, 대학 팀장, 경희대분회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아르바이트 노동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를 전국구 네임드로 만든 건 바로 ‘가만히 있으라’ 운동.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희생자 추모를 위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주도했다. 검찰은 이에 징역 2년을 구형했고, 1심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후 다시 알바노조의 정체성(?)으로 회귀하여 기본소득 운동에 매진. ‘모두에게 월 60만 원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 ‘디지털 공유부배당’, ‘탄소배당’, ‘주 30시간 노동제’ 등의 정책을 주창하고 있다.
그 외에도 무상 대중교통, 무상보육돌봄서비스, 무상교육, 의료비 본인 부담 100만 원 상한제 등 여러 무상 복지를 주장한다.
6. 조정훈
- 키워드: 소수정당, 중도실용, 기본소득 + 규제완화
6번 역시 소수정당 몫으로, 시대전환 공동대표 조정훈에게 돌아갔다.
‘시대전환’은 산업화도 민주화도 아닌 ‘다음’ 성공시대를 연다는 뜻을 가진 정당명으로, 30~40대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 (조정훈 공동대표는 아슬아슬하게 47세지만…)
시대전환은 좌우 보혁의 도식으로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정책을 주장한다. 월 30~60만 원의 기본소득, 네거티브 규제로의 과감한 전환, 스타트업 진입 장벽 철폐 등이 대표 경제 정책이다. 기존의 좌우 도식대로라면 기본소득은 좌파적, 규제 전환은 우파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좋은 이웃론’을 기반으로 하여, 북한의 이웃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통일에 경도되지 않고 평화를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통일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7. 윤미향
- 키워드: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정대협, 평화의 소녀상, 인권운동
7번은 일본군성노예(위안부) 문제에 매진해온 인권운동가 윤미향에게 돌아갔다. 2008년부터 정대협 상임대표를 역임했고, 현재는 정대협과 정의기억재단이 통합되어 출범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가 속한 정의기억연대는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 부분에서는 두말할 것 없이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체로, 수요시위, 평화의 소녀상 등을 기획한 것도 바로 이곳이다. (정확히는 통합 전 정대협 시절) 대충 말하자면 일본군성노예 문제 공론화를 위해 한 사람을 대표로 국회에 보내야 한다면 바로 이 사람이란 얘기.
다만 남편 문제가 아킬레스건으로 거론된다. 윤미향 이사장의 남편 김삼석 씨는 1993년 ‘남매간첩단 사건’의 주인공이로, 2014년 재심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한통련 의장 등을 만나고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여전히 유죄로 인정되었다. 최근에는 지역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16개 대학교에 과도하게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 6천만 원 가량을 갈취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8. 정필모
- 키워드: 언론개혁 또는 폴리널리스트 논란
8번은 전 KBS 부사장 정필모의 몫이 되었다. 원래는 예비후보였다가, 재심을 통해 올라온 케이스.
KBS 적폐청산 기구인 ‘진실과 미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정부 이후 KBS에서 발생한 불공정 방송, 인사 불이익 사례 등에 대한 과거사 조사를 이끌었다.
다만 언론인으로서 바로 정치권으로 직행한 데 대한 논란이 있다. 2월 19일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한 달 만에 비례 후보로 올랐기 때문. KBS 기자협회에서도 유감을 표명했으며, KBS 노동조합에서는 후보직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본인은 겸허히 비판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9. 양이원영
- 키워드: 탈핵운동, 그러나 전문성 논란
9번은 탈핵 운동으로 유명한 환경운동가 양이원영이 받았다. 삼척 신규 원전 유치에 반대했고 경주 방폐장 지질의 활성단층 문제를 처음 제기했으며, 월성 1호기 가동 연장 등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발맞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양이원영이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건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는데, 더불어시민당 합류 직전 올린 아래의 글 때문(…)
한편 2019년에는 핵융합 발전에 반대하면서 “핵융합은 태양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핵융합을 실현시키는 것은 지구에 태양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식의 비과학적 논리를 펴 물의를 일으킨 바도 있다. 여러모로 전문성 논란이 큰 인물.
10. 유정주
- 키워드: 애니메이션, 콘텐츠 산업, 신머털도사(?)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회장, 꽃다지 대표이사. 유정주 대표는 ‘머털도사’의 제작자 유성웅 감독의 딸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사 ‘꽃다지’를 대표이사로서 활동한 현업 종사자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2012년 EBS에서 방영된 ‘신 머털도사’가 있다.
콘텐츠 산업과 관련된 입법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총평
아무래도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에 대응하기 위해 급히 마련된 정당인만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인선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뜻밖의 인선들도 나왔다. 여성계에서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고발자 권인숙(3번), 일본군성노예 문제에 수십 년간 매진해온 윤미향(7번) 등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나섰다.
한편 중소기업 정책통 김경만(2번), 자영업 정책통 이동주(4번) 등도 오히려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덕분에 찾을 수 있었던 정책 후보. 선거에 유리한 ‘네임드’ 후보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정책통인만큼 충실한 의정 활동이 기대된다.
한편 검증 부족이 지적받는 편. 양이원영(9번) 후보는 전문성에 있어 논란이 있는데다 비례정당을 비판했던 인물이고, 정필모(8번)는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크다. 소수정당 후보(5번 용혜인, 6번 조정훈)는 공히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데, 이를 여당에서 공약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만큼 정체성 논란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