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그 남자가 2만 명이 모이는 소셜 이벤트 ‘솔로대첩’을 기획한 이유」에서 이어집니다.
나만 괴로운 게 아니다, 모두가 괴롭다
2012년, 한 번의 큰 경험 후에 3년에 걸쳐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큰 회사들은 나에게 흥미를 잃었고, 공동 창업한 회사에서는 쫓겨나듯 도망쳐 나왔습니다. 어느새 통장은 바닥을 보였습니다.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태형인데’ 싶었지만, 이제는 불러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단 살고 보자, 취직을 준비했습니다.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인 정보를 확인하다 보니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자격증도, 영어 점수도 없었습니다. 고졸은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도 다 지원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그래도 유태형인데.’
요즘은 답장도 빠르더군요. 다음 날이면 바로 메일이나 문자가 옵니다. 항상 ‘안타깝지만’으로 시작하더라고요. 유명한 회사라면 무조건 지원합니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 그런 거 없습니다. 일단 살아야지요. 직무도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괜찮습니다.
다시 수많은 ‘안타깝지만’을 마주합니다. 그들에게 ‘유태형’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유태형’은 나에게만 있었습니다. 나만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TV에서는 ‘도전적인 인재’, ‘창의적인 인재’를 그렇게 외쳐대더니만. 지금껏 해왔던 소중한 경험들이 아무런 가치 없게 느껴졌습니다.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이제는 눈물도 납니다. 무의식적으로 SNS를 켭니다. 한 친구가 글을 올렸습니다.
불합격, 탈락, 자격 미달. 오늘 완전 걷어차이는 하루다.
이 친구도 취직 준비를 했나 봅니다. 명문대에 학점도 좋고 성실한 친구였는데도 탈락했습니다.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흘렸던 뉴스 기사가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취업률 최악.”
정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더 고통스러운 건, 내가 느끼는 이 비참한 감정이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기가 생겼습니다. 한번 깨부숴보고 싶어졌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하지요? 오랜만에 ‘일’에서 벗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했습니다.
왜 ‘경매’인가
저에게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인재의 가치는 무엇으로 증명되나요? 실력인가요? 인성인가요? 저는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기준이 하나 있잖아요. 돈. 돈으로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취업 시장은 동등하지 않다.
취준생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과 반대의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기업이 인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취준생이 기업을 선택한다면?
취직에 성공하고, 그 과정을 기업, 취준생들과 공유한다. 단, 최종 선택권은 취준생에게 있어야 한다.
경매를 하기로 했습니다. 나를 경매에 부쳤습니다. 물건은 내가 되고, 입찰자는 기업이 됩니다. 입찰자가 많아질수록 나의 가치는 올라가고, 그것을 관전하는 다른 기업과 대중 들은 손에 땀을 쥐고 프로젝트를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경매를 하기로 했으니 경매처럼 보여야지요. 웹사이트를 만듭니다. 웹사이트 첫 화면에는 아주 큰 글씨로 현재 입찰 상황을 볼 수 있게 꾸몄습니다. 이 경매 현황판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됩니다. 한편에는 아주 기본적인 프로필을 적어 놨습니다. 키, 나이, 성격 등. 포트폴리오 몇 개를 넣습니다. 대단해 보일 수 있는 것은 일부러 넣지 않습니다. 내 또래의 취준생과 가장 비슷해 보이도록 적습니다.
입찰은 메일을 통해 2주간 받기로 했습니다. 연봉과 복지를 적어서 입찰서를 보내 달라고 명시했습니다. 경매 이름도 정했습니다. 사람을 경매에 부치는 것은 링컨 대통령 이후에 없어졌으니까 최대한 사람이 아닌 물건처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고 장터가 생각났습니다. 장터에는 대부분의 글이 ‘~삽니다’ ‘~팝니다’로 끝납니다. 이름 정했습니다.
유태형 팝니다
준비 끝! 이제부터 경매를 시작합니다. 즉각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유태형 팝니다’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재미있는 기획으로 느껴졌는지 관련 기업인들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저를 더 잘 어필하기 위한 입찰 제안서도 만들었습니다. ‘유태형 팝니다’가 적힌 예쁜 봉투를 제작해 제안서를 담았습니다. 명함도 만들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 부하직원으로 어떠세요?
아침마다 역삼, 판교, 광화문에서 명함과 입찰 제안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공유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SNS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하나둘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SNS에, 카카오톡에, 친구의 친구들에게 전해집니다. 각자 한 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의견이 분분할수록 메시지는 빠르게 퍼져 나갔고, 어느 순간 첫 번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첫 입찰이었습니다. 경매를 시작하고 딱 세 시간 만이었습니다.
현실적인 소설이야말로 현실이 된다
조금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큰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요. 인사 담당자가 직접 연락을 주었습니다. 저의 구직 활동에 관심이 있고, 회사 시스템상 자기소개서와 이력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어서 또 다른 제안들이 도착했습니다. 모두 훌륭한 회사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즐겁고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입찰서를 제출한 모든 기업은 그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큰일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취직은 할 수 있어도 프로젝트는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취준생들에게 용기를 주기는커녕 내 욕심만 채운 사람이 되게 생겼습니다.
3일이 지났지만 공개적으로 입찰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무도 입찰하지 않고 경매가 마무리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연락을 주었던 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리고 왜 공개 입찰을 원하지 않는지 여쭤봤습니다.
나는 꽤 크게 착각했습니다. 프로젝트와 사업을 몇 번 해보고 세상을, 사회를, 회사를, 비즈니스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채용 과정에 대한 오해도 풀렸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웠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보다 그 인재와 원래 있던 직원들의 상호작용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입찰을 제안한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태형 님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공개한다면 누군가는 이 채용을 시기하지 않을까요? 허무하게 느끼지는 않을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대중은 우리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나 만들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믿을 만큼 현실적이며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믿을만한 이야기라면 진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호기로운 어떤 청년이 자신을 판매한다며 공개 경매에 나섰다. 그가 공개한 것은 나이와 키, 몸무게와 같은 인적 사항과 몇 가지 포트폴리오였다. 평소에 보기 힘든 이색적인 구직 활동이었기 때문에 경매가 시작되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3일 만에 첫 입찰을 받게 된다. 그 기업은 A였으며, A답게 재치 있는 입찰서를 보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기업이 너도나도 입찰서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의 연봉은 조금씩 올라 XX원까지 입찰 되었다. 경매 마지막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B 기업이 XX원에 입찰한 것이다. 구직자 유태형은 그동안 응원해준 많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거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제 이 소설을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재치 있는 입찰서를 보낸 A는 어디일까요? 공기업이나 대기업보다는 친숙하고 재미있는 회사, 성공한 스타트업이 딱 맞겠다 생각했지요. 다행히도 이 프로젝트에 대해 상의를 드렸던 분 중 이러한 회사의 대표님이 있어서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에서 입찰하면 분명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겁니다. 입찰서에 기업의 복지나 정신에 대해서 언급한다면 평소 대중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가 생깁니다. 맨 처음에 입찰한 회사와 맨 마지막으로 입찰한 회사가 가장 큰 홍보 효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담스러우시더라도 먼저 입찰하시면 분명 더 높은 금액으로 입찰하는 기업이 있을 겁니다. 없다면 대표님의 회사에 손해가 되지 않도록, 죽도록 일하겠습니다.
허허, 그냥 들어오셔도 돼요.
A 회사의 대표님은 흔쾌히 입찰해주었습니다. 재치 있는 입찰서도 만들어 보내주고, 홍보까지 해주었습니다.
친숙한 기업이 첫 입찰을 하니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기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연이어 많은 기업이 공개적으로 입찰했습니다. 각 회사는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입찰서를 세상에 선보여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비공개 입찰은 더 많아졌습니다. 입사 제안이 아닌 비즈니스 제안이 더 많이 왔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상황이 정말 그 소설처럼 되어가서요. 그렇게 경매는 막바지를 향했습니다. 남은 시간은 5일, 다섯 건의 공개 입찰, 최고 입찰가 연봉 4,200만 원.
곧 경매가 종료됩니다. 이제는 이 프로젝트가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많은 사람이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봅니다. 이쯤 되면 B 기업이 등장해야 합니다. 어떤 기업이 어떤 입찰서를 들고 무대에 등장할까요? 이 정도의 관심이 몰려 있는데,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될 텐데.
B 기업은 화끈했습니다. 연봉 1억 원을 제시했습니다. 주류 관련 회사라 스케일이 남달랐습니다.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미남 미녀들이 많은 큰 호텔의 어떤 클럽에서 만났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는 듯해서 참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내가 이 손을 잡는 순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길 테지요. 마지막까지도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경매 종료 직전, 시나리오에 없던 C 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무척 독특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연봉 1,000만 원에 한 달에 하루 출근을 제안하는 겁니다. 구인이 아니라, 관계를 맺자는 뜻이었죠. 이 기업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곳과 함께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를 공부하는 학교 ‘인큐’였죠.
나는 최근까지도 이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뜨겁게 일했고, 사랑으로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훌륭한 일자리가 아니라, 따뜻한 친구였다는 것을요.
같은 과거를 가질수록 성공률은 높아진다.
그렇게 경매는 막을 내렸습니다.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즐거워했고, 기업들은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나는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내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초대받았고, 수십 개의 기사가 났고, 새로운 제안들을 받았습니다. 예전의 운 좋았던 대학생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습니다. 두 번째로 해냈으니까요. 이제 사람들도 믿기 시작했습니다. 유태형은 그저 운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그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도 했다.
문제는 ‘누구를 궁금해할 것인가’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나요?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죠?
나는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열정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듭니다. 걱정, 두려움, 설렘, 흥분. 이제는 그 감정이 힘들지 않습니다. 제가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그러니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용기가 필요하다면 꼭 기억하셨으면 해요. 지레 겁먹고 포기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감정일 뿐이며, 되레 건강한 것입니다. 가지고 싶은 그것은,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가지게 될 것이니까요.
※ 더 자세한 목소리를 듣고 싶으시면 ㅍㅍㅅㅅ의 유태형 인터뷰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