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나는 평범한 경영학도였습니다. 뭘 본격적으로 공부해볼까 하다가 회계는 지겨울 것 같고, 정보시스템은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마케팅은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마케팅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무척 단순한 결정이었습니다.
뭘 할지 정했으니, 이제 마케팅 쪽에서 취업할 만한 회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기획이 가장 크고 알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재미있고 도전적인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았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인생의 목표가 ‘제일기획 들어가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큰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3, 4학년 선배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였는데, 그날 처음으로 온 선배가 후배들에게 취업 정보를 이것저것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나도 자리에 껴서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선배님, 제일기획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너 학점 몇인데?
3.0이요.
선배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일기획은 과 수석도 힘들어. 한 학년에 한 명 갈까 말까야. 그냥 포기하고 다른 데 찾아봐.
처음에는 화가 났습니다. 다음 순간에는, 헛고생을 사전에 막아줘서 참 고맙다 생각했습니다.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데 포기도 할 수도 없는 느낌 아시나요? 포기는 쉽사리 되지 않았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기획에서 필요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일까, 아니면 광고를 잘하는 사람일까? 혹시 광고를 잘하기 위해서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것이라면, 광고 능력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광고 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순간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엄청 큰 것을 만들자. 누구나 인정할 만한 엄~청 큰 것.
이것저것 찾아다녔습니다. 음악도 해보고, 사업도 해보고, 대회도 나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한참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솔로대첩’이 그것입니다.
2012년 솔로대첩, 그 화려한 시작
아마 들어 보신 분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201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대한민국을 후끈하게 달궜던 소셜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전국 10개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 행사에는 2만 명의 솔로들이 모여들었고, 검색 포털 3사 실시간 검색어 1위 두 번, 각종 뉴스와 신문은 물론이며 CNN,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도 소개된 행사였습니다. 현재 대통령인 그분도 솔로대첩을 패러디해 유세 활동을 했습니다.
소셜에서 시작된 최초의, 최대의 페스티벌. 이 정도면 의미 있다 할 수 있겠지요. 함께했던 300명의 동료와 국민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행사였습니다.
페이스북이 이제 막 한국에 상륙했을 때. 저는 연애 관련 페이지를 운영했습니다. 학교 수업도 잊고 푹 빠져서 콘텐츠를 만들었죠. 제가 만든 콘텐츠들을 본 사람은 대부분 ‘외롭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때,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에 외로운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사람들끼리 만나면 되잖아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도 피식 웃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적었습니다.
딱 저 한 문장이었습니다. 감성적인 글귀도, 사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미팅을 하자는 글에 30%가 넘는 사람들이 반응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 것 같더라고요.
지도 앱을 켰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광화문 광장. 이 정도면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이쪽에서, 여자는 저쪽에서.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가운데에서 만나 서로 짝을 찾게 될 거라는 간단한 포스터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이름도 정했습니다. ‘솔로대첩’.
입소문은 SNS의 묘미입니다. 3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아이디어뿐인 이 행사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겠다’ ‘너 외로우면 한번 가봐라’ ‘어차피 크리스마스에 만날 사람도 없잖아’ 등 행사에 관심을 가지기도, 친구들을 초대해 놀리기도 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200만 명에게 이 행사의 내용이 전달되어 버렸습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이제는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신이 났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이게 진짜로 진행될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행사가 진짜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가서 집회 신고서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습니다. 제안서를 작성해 서울시청에 갈 때도, 광화문 광장의 사용이 불가하자 장소를 옮겨 여의도 광장에 허락을 받으러 갈 때도. 모든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놀랐습니다. 장난인 줄만 알았던 이 행사가 진짜로 이루어질 것 같으니까요. 그 과정을 본 사람들은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행사를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서포터스 100명이 모였습니다. 멀어서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직접 동명의 페스티벌을 열겠다고도 했습니다.
내킨 김에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대학교 강의실이나 카페, 혹은 잠깐 머물러 있다가 가는 모든 곳에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티슈도 좋고, 종이쪽지도 좋으니 다음에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볼 수 있도록 ‘2012년 12월 24일 광화문 광장 솔로대첩’이라고 적어놓아 달라고요. 그러자 사람들이 카페 티슈에 메시지를 적어 자신의 SNS에 인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진화하더라고요. 누군가는 강의실 칠판에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서 인증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아르바이트 중인 카페의 유리창에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파스타집 셰프는 손님에게 내는 피자에 데코레이션으로 이 메시지를 적었고, 옷집 사장님은 쇼윈도의 마네킹에게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들려주었습니다. 재미있는 메시지를 만들수록 많은 사람이 보았습니다.
사실 ‘솔로대첩’ 관련한 수많은 포스터와 이미지, 영상 중 내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이 행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솔로대첩’이라는 하나의 공통 주제가 있었고, 그 주제를 가지고 서로 웃고 떠들고 만나며 지냈습니다.
행사가 어느 정도 커지면 스폰서가 붙게 마련입니다.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한 드레스 코드가 있었는데, 몇몇 쇼핑몰 업체가 ‘솔로대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옷을 판매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 문의한 것입니다. 하루 세끼를 컵라면으로 때울 정도로 빈곤한 시절이라 적당히 타협해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이 규모가 여전히 내 성에 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국에 소문이 나야 하는데 아직 솔로대첩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묘수를 두었습니다. 쇼핑몰 업체에서 ‘솔로대첩’을 사용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사용하게 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글도 올리고, 메일도 보냈습니다. 딱 한 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광고에 솔로대첩 행사 일시와 응원 메시지를 포함해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날부터 한국의 온라인 배너는 솔로대첩을 응원한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었습니다.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기 시작했고, 거짓말처럼 실시간 검색어에 ‘솔로대첩’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뉴스에서는 연신 ‘솔로대첩’을 다루었습니다. 정말로 짜릿했습니다.
기업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삼성, 한화, 롯데, 쌍용 등등……. 나는 대기업에 계열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도착한 메일을 세어보니 3,000통 정도 되었습니다. 그걸 보다 또 글을 올렸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휴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귀사의 솔로 직원들에게 솔로대첩 당일 유급 휴가를 주시면, 그에 걸맞은 홍보 효과를 누리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글의 의도를 빨리 파악한 기업은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렸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아웃도어 브랜드 K2였습니다. 약속대로 솔로 직원들은 유급 휴가를 받았고, 대표님이 직접 서명해 결재한 문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습니다. 그 사진 하나에 100개가 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포털 메인에도 걸렸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한 홍보 효과를 누린 것입니다.
그 뒤로도 꽤 많은 기업이 이벤트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참여한 기업만큼의 효과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과감하게, 최대한 빠르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효과도 별로 없다는 말을 몸으로 체험한 사건이었습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획의 기회
행사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열기가 너무 뜨거웠던 걸까요, 어떤 커뮤니티에서 성추행 범죄를 공모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재미있다’라고 연신 보도하던 기사들의 헤드라인은 ‘위험하다’는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욕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쓸데없는 행사 열지 마라’ ‘성추행당하기 딱 좋은 행사다’라고요.
가장 문제는 여의도 공원에서 행사 허가를 취소한 것입니다.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행사는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만약 행사를 진행한다면 고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데. 어떻게든 행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여의도 공원 측에서 고소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행사를 취소해야겠네요. 저는 그날 여의도 공원에서 산책이나 해야겠습니다. 산책하시면서 짝을 찾아보실 분들은 함께 걸어요.
살면서 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벌인 일에 매듭은 지어야겠더라고요. 플래시 몹(flash mob, 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목적된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일) 형태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여의도 공원의 절반을 채웠습니다. ‘남자밖에 안 올 것이다’라고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여자도 꽤 많이 왔습니다. 어림잡아 30% 이상은 되었습니다.
연예인도 몇 명 왔습니다. 요청한 적도 없는데 개그맨 유민상 님이 직접 행사를 진행해주었습니다. 이렇다 할 음향 장비 없이 군중을 통제하는 그를 보며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준비는 부실했습니다. 돈도,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환호가 들려왔습니다. 짝을 찾았다는 신호겠지요. 그 추운 날 누구는 버스킹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이벤트를 열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회사를 홍보했습니다.
그냥 모두들 외로웠던 것 같아요. 나는 그들이 집 밖으로 나올 명분만 제공해줬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복해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렇게 모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런데 그 후 또 기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솔로대첩. 비둘기, 경찰, 남자밖에 없었다”
이런 기사가 한번 나기 시작하니 다른 곳에서도 따라서 올라오더군요. 나중에는 정말 행사에 비둘기만 있었던 것처럼 여론이 형성되더랍니다. 그 기사를 보고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참여한 척하며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속상했습니다. 이 기사들은 현장에 있었던 여성분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행사에 참여했던 여성분들은 솔로대첩을 즐겼습니다. 당일 여성분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남자들이 용기가 없어 말을 걸지 않는다”였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상황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참 사람 같아서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게 사람이잖아요.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기자도, 대중도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재미있다 생각했습니다.
여담으로 부모님은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내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9시 뉴스를 틀었는데 내 얼굴이 나오더래요. 그 후로 두 분은 아들이 감옥 가는 건 아닐지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다행히도 감옥에는 가지 않았고, 비둘기와 경찰과 남자의 행사는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확률은 끌어올릴 수 있다, 원한다면
화려했던 그 날의 여운을 즐기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유태형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는 제일기획의 XXX 대리라고 합니다. 저희 팀장님이 한번 뵙고자 하시는데…….
제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제일기획이었습니다. 심지어 미팅을 제안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이디어 부분에 주기적으로 협력해줄 수 있는지 제안해 왔습니다. 말단 사원도 아닌 동등한 관계로써 제안해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여기까지 온 히스토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입사에 대한 내용도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답변을 받았습니다.
굳이 왜 돌아가려고 하세요? 제가 유태형 님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미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던지. 내가 원했던 것은 제일기획이었을까요? 아니면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때부터 나의 삶은 참 많이 변화했습니다.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내 안에 있던 거대한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세상에는 이미 정해진 룰이라는 게 있고, 그 정해진 것을 지켰을 때 보상이 오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버렸습니다. 직접 경험해버렸거든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제일기획은 과 수석도 힘들어. 한 학년에 한 명 갈까 말까야. 그냥 포기하고 다른 데 찾아봐.
만약 그 선배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도 모르죠. 선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이 선배의 말은 ‘확률’로 들렸습니다. ‘안 된다’가 아니라 ‘안 될 확률이 높다’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과의 취업 데이터를 보니 확률이 높지는 않더라.’
반대로 저는 조악하지만, 나름의 논리로 접근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일기획에서 연락이 왔고, 확률로 접근했던 그 선배의 판단은 틀린 것이 되었습니다. 선배에게 제일기획 입사 확률은 0.5%지만 내가 세운 가설에서는 100%였습니다.
만약 그 선배가 내가 했던 방법을 이미 알았다면, 그때도 0.5%라고 대답했을까요? 아니겠죠. 분명 100%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 더 자세한 목소리를 듣고 싶으시면 ㅍㅍㅅㅅ의 유태형 인터뷰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