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그런데 솔로대첩 정작 남탕 아니었나요?
유태형(솔로대첩 기획자): (굉장히 억울한 표정으로) 여자가 30~40%는 왔었어요. 솔로대첩 유명한 짤 있잖아요. 여자 아무도 없다고. 근데 여자들 많았거든요, 사실 남자 측 진영으로 표시된 곳이 남녀가 다 모인 곳이에요. 여자들이 저한테 메시지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남자들이 말을 안 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을 안 걸어놓고 인터넷에서는 여자가 없었다고 말을 했던 거죠.
리: 마음 아팠겠군요(…)
유태형: 근데 여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되게 재미있었고, 그리고 거기서 버스킹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뭐 파는 사람들도 나오고. 공연도 하고 춤도 추고, 모아 놓으니까 알아서 잘 놀더라고요.
리: 돈 좀 벌었나요?
유태형: 기업에서 연락은 엄청나게 왔어요. 거짓말 아니라 1,000군데 이상? 처음엔 돈 생각도 못 했는데, L모 대기업이 부스 하나를 2,000만 원에 산다는 거예요. 완전 대박이었죠.
리: 떼돈 벌었겠군요!
유태형: 근데 OK를 못 했어요. 일베에서 솔로대첩 가지고 난리가 난 거예요. 성추행하겠다, 이딴 콘텐츠 올라가고… 그러니까 여의도공원 공무원분들이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허가 취소를 했어요. 어린 나이에 부담스러웠죠.
솔로대첩의 시작: 내가 생각해도 웃기기에 시작했다
리: 솔로대첩 전에는 뭘 하셨습니까?
유태형: 그전에는 음악 했어요. 그냥 음악 만들어갖고 나가서 버스킹하고, 그러다 작은 엔터테인먼트 같은 걸 차렸어요.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들 모아서 결혼식장에 보내거나, 관공서 작은 공연에 보내거나 하는… 너무 어릴 때라 돈은 한 푼도 못 벌다시피 했죠. 그러다가 이제 앱을 만들고 싶어서 팀을 꾸렸어요. 그런데 그 앱은 출시도 못 하고 접고…(웃음) 뭐, 그랬습니다.
리: 밥은 어떻게 먹고 살았어요?
유태형: 낮에는 학교 다니고, 밤에는 7080 라이브클럽에서 ‘오부리’ 했어요. 오부리가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그러는 건데, 하다 보면 손님들이 엉덩이를 쓱 만지면서 돈을 줘요. 그런데 무조건 주는 게 아니라 자기 기분이 좋아야지 줘요. 벌이라 할 것도 없었죠.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3만 원? 아예 그냥 공 치는 날도 있었어요.
리: 그러다 이번엔 어떤 도전을 했나요?
유태형: 그때 페이스북을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페이지라는 개념이 거의 생소할 때였어요.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애 관련된 콘텐츠를 계속 만들었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랬더니 좋아요 인기가 있으니 이걸로 돈을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다른 페이지는 주로, 웃긴 것들을 퍼와서 올린 다음에 맨 마지막 장에 불법 광고 같은 걸 올렸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직접 만든 콘텐츠에 불법 광고를 붙이기 꺼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공개 소개팅을 시켜주기로 했어요.
리: 공개 소개팅?
유태형: 네. 소개팅하고 싶은 남녀 한 명씩을 뽑아요. 그런 다음에 콘셉트를 정해서 점심부터 저녁까지 소개팅 프로그램을 다 짜 주는 거예요. 정해진 밥집에서 만나면 미션 카드를 줘요. 거기에 초성이 적혀 있는데, 그걸 보고 카페를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거기서 타로점 봐 주고, 그다음에는 쌈지길에서 서로 첫인상을 도자기에 그려주기, 밤에는 회전초밥집에서 밥 먹고 연극 보고 집에 가는 것까지 풀 세팅을 했죠. 식당, 도자기 공방, 이런 게 다 PPL이었던 거죠. 다행히도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리: 이제 본격 뚜쟁이 장사에 나서는 건가요?
유태형: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여자분한테 전화가 와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당혹스러운데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 여자분만 모자이크를 해서 다시 올렸거든요. 근데 이번엔 또 어디서 전화가 와서 남자분도 내려달란 거예요. 배우 초상권을 쓰면 안 된다고. 남자분은 자기도 몰랐다고 사정사정하면서 내려 달라 하고… 남자분까지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다시 올려놓으니, 둘 다 모자이크… 보니까 이게 소개팅 콘텐츠가 아니라 범죄자 갱생 프로젝트 같더라고요.
일단 시작했다면 사회적 증거를 만들고 군중을 참여시켜라
리: 뭐가 하는 것마다 다 꼬이는군요.
유태형: 그러고 나니까 따봉이건 뭐건 그냥 꼴도 보기 싫었어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럴 거면 외롭다고 얘길 하지 말든가! 그냥 다 때려 박아 놓고 지네들끼리 알아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어요. 그때가 온몸의 신경이 다 곤두선 상태였거든요. 예민하니까 피식 웃은 걸 알아챈 거예요. 내가 웃었으면 다른 사람도 웃겠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바로 글을 올렸어요.
리: 뭐라고요?
유태형: “형들 누나들, 크리스마스 때 대규모 미팅 한 번 할까?” 이렇게 올리니까 보통은 페이스북 팬 10% 정도만 반응했는데 30% 이상이 반응했어요. 정성 들여 만든 콘텐츠도 아니고 한 줄 글인데… 그래서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서, 바로 우리나라 제일 큰 공원을 검색하고 포스터를 만들어서 올렸죠. ‘남자는 여기서 출발하고 여자는 여기서 출발해서 가운데 만나는 거야’ 올렸는데 갑자기 좋아요가 거의 2만 개 가까이 찍혔어요. 그러더니 막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고 난리가 난 거예요.
리: 그냥 공원에 나와라, 이게 끝이었어요?
유태형: 내가 피식 웃었으니까 얘네들도 피식 웃겠다, 해서 올렸는데 일단 피식 웃었잖아요? 여기서 멈추면 사람들이 피식에서 웃는 것에서 끝나버려요. 이게 진짜 되려면, 진짜 엄청난 뭔가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실행에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아서 준비하는 거를 전부 다 공유를 했어요. 종로경찰서에 가서 집회신고서도 쓰고…
리: 그것도 집회예요?
유태형: 문화행사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긴 한데, 어쨌든 서류는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집회 이름은 솔로대첩, 집회 목적은 2012년 방구석 솔로들의 솔로탈출, 이렇게 적은 걸 찍어 올리니까 사람들이 그때부터 조금씩 믿기 시작하는 거예요. 서울시청에도 제안서 만들어서 가고, 그런 것도 전부 다 찍어 올리고… 그때는 논리보다는 본능이었는데, 여론 같은 걸 좀 생각했어요. 더 유명하게 만들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거고, 이를 기반으로 진짜로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러니까 점점 더 유명해지더라고요. 관심이 관심을 키우는 거죠.
리: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왔나요?
유태형: 그래도 전국에서 한 2만 명 이상은 왔어요. 서울에서만 했던 건 아니거든요. 서울은 여의도공원 절반 정도는 채웠어요.
리: 알겠습니다. 솔로대첩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유태형: 이거는 나온 솔로분들에게 좀 약간 미안한 부분인데, 그때부터 저 개인적으로 기회가 많이 왔어요. 정부청사 가서 캠페인 기획도 하고 PT 심사도 하고… 메세나폴리스 마케팅 외주도 하고, 그때 대학생이 경험해 보기에는 참 힘든 것을 빨리 경험했죠.
리: 좆밥에서 용 됐군요.
유태형: 맞아요. 원래 제일기획 들어가고 싶었는데, 학교 선배들은 꿈 깨라는 거예요. 우리 과에서 많이 가봐야 한 학년에 1명 간다고. 근데 솔로대첩 한 다음에 제일기획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팀장님이 주기적으로 아이디어를 사고 싶다고 하셨어요. 꿈 같았죠. 그 일이 무산되긴 했는데, 솔직히 진짜 행복하더라고요.
솔로대첩의 저주: 나는 그저 운 좋은 한방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리: 맞아요. 대학생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 치고는 크죠. 그래서 계속 잘나갔다?
유태형: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진짜 쓰레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 왜요?
유태형: 다시는 그런 기획을 못 만들어내겠는 거예요. 사실 몇 년간 저주였어요, 그게.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쓴 뒤로 그것만 한 작품이 안 나오잖아요. 저한테도 솔로대첩이 운이었던 거예요. 사람들은 제가 솔로대첩 같은 걸 한 번 더 만들어내라고 섭외한 건데, 그러질 못하는 거죠. 그러니 그때부터는 평판도 엄청나게 깎이고, 일도 다 떨어졌어요. 영광스러운 상처 하나만 남기고 빈털터리가 됐죠.
리: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2차 솔로대첩을 열자.’ 이런 생각을 했나요?
유태형: 아니요, 그거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솔로대첩을 저주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제 경쟁 상대는 솔로대첩을 열었던 저였어요. 경쟁 상대가 운 좋은 나 자신이었던 거죠. 운을 어떻게 이겨요? 운은 못 이겨요… 그래서 스타트업에 C급으로 들어가서 몇 년 고생하고 나왔죠. 계약서도 없는데 지분 뱉으라 하고… 나는 월급도 못 받을 때 있었는데, 대표는 저렇게 이기적인 존재인가… 그리고 나와서 진지하게 창업을 했죠.
리: 뭐로 했습니까?
유태형: 결혼할 때 필수 요소 중 하나가 ‘스드메’에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이 중 드레스 시장 하나는 꽉 잡을 수 있겠다 싶어서, 웨딩드레스 업체 데이터를 모은 O2O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모 대기업에서 투자 직전까지 갔죠. 중국에서 우리나라 드레스가 명품이에요. 아, 이제 뭐가 되겠다 싶을 때, 투자 직전까지 갔는데 웨딩업계에서 오래 굴렀던 동업자가 자취를 감췄어요. 또 백지가 됐죠.
리: 하는 것마다 다 꼬이네요, 뭔가.
유태형: 그랬죠. 그것까지 어그러지고 나서 저 자신을 돌아봤어요. 솔로대첩 후, 일반 대학생에서 갑자기 상승 곡선을 탔다가… 4년 동안 계속 내려오며 바닥을 친 거죠. 이제 통장에 돈도 없고, 빚은 쌓여가고, 그러니까 취직을 해야겠더라고요. 큰 꿈, 뭐 이런 것들은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생각하자… 일단 살아야 하니까, 그런 큰 꿈은 나중에 꾸더라도 일단 살자…
리: 뭐, 이력이 있으니 취업은 잘되지 않겠습니까?
유태형: 저도 진짜 취직 잘할 줄 알았어요. 이 정도면 능력 있지, 이 생각 했거든요. 근데 진짜 아무 데도 저를 뽑아주는 데가 없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가고 싶었던 그런 기업들에 넣었어요. 복지 좋고 좋은 회사라고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그런 회사들. 안 돼요. 다 떨어져요. 그다음에 대기업에 넣어요, 또 떨어져요.
리: 왜 떨어졌을까요?
유태형: 그거는 모르죠. 아쉽지만, 안타깝게도, 맨날 이런 연락이 오잖아요. 맨 처음에는 그런 문자를 받으면 ‘아, 진짜 안타깝게 떨어졌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열 번 이상 받잖아요? 그러면 그냥 덤덤해져요. 그래서 거의 100개? 나중에는 집 주변에 알바같은 데도 떨어졌어요.
역전 만루홈런: 취준생을 역경매해 1억을 찍은 ‘유태형 팝니다’
리: 뭔가 멘탈이 완전 바닥까지 갔겠네요.
유태형: 내가 진짜 쓰레긴가? 진짜 이렇게 쓸모가 없나? 생각이 들다가, 제 친구 중에 노력의 결정체가 있거든요. 실업계 다니던 친구였는데, 온갖 추천서를 다 모아서 고려대를 들어간 놈이에요. 근데 얘도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걸 보니 이거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준생 입장에서는 자기가 아무리 잘나도 계속 원서 쓰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럼 이걸 좀 바꿔 보자, 좀 통쾌하게 해보자… 그래서 저를 경매에 내놓았어요. ‘유태형 팝니다’.
리: 그것도 엄청나게 화제가 됐죠.
유태형: 어떤 회사에서는 1억에 입찰을 했을 정도니까요. 사실 공개된 회사만 7개였고, 비밀 제안만 수십 개 받았어요. 옐로모바일 합병되는 회사 대표를 하라는 제안도 있었고… 결국 인큐라는 회사 가서 즐겁게 일했어요. 정말 행복했죠.
리: 아무튼 두 번째 성공 축하드립니다. 한 번 성공은 원 히트 원더라고 볼 수 있지만, 두 번 성공부터는 좀 실력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유태형: 네, 두 번째는 진짜 달랐어요. 특히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은 벽을 깨뜨린 느낌이라서… 기업 입장에서도 잘 뽑으려고 노력하는 건 사실인데, 취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생명줄이거든요. 취준생이 을인 입장인데, 이걸 반대로 해소한 느낌을 줬으니까. 그 프로젝트 때문에 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어요. 솔로대첩 때는 이게 운이라는 걸 누구보다 제가 더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유태형 팝니다’를 성공시키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는 ‘이런 식’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람임을 알았죠.
리: ‘이런 식’이란 건 뭔가요?
유태형: 일은 문제해결의 연속이에요. 근데 우리에겐 계속 다른 문제가 주어지거든요. 그래서 잘하려면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아요. TV를 마케팅한다고 하면, TV, 마케팅, 시장, 경쟁사 등등을 다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따라잡으려고 열심히 하면 잘되긴 해요. 그런데 열심히 하다가 죽을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다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TV를 보는 것도 사는 것도 사람이에요. 그렇게 사람이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알면 이런 것들이 다 해결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든 거죠.
리: 그게 마케팅 기법 아닌가요? 사실 가격 결정이나 할인 정책도 인간 본성을 노리죠.
유태형: 그렇긴 한데, 전 일단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자는 쪽이에요. 사람들은 선입견이 있잖아요. 예로 누가 어떤 행동을 하면 ‘얘는 감성적이어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라는 식이죠. 그걸 ‘얘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라고 딱 현상만 보는 거예요.
리: 현상을 보고, 본질을 읽어내서, 기획에 반영하는 건가요?
유태형: 네. 그걸 잘 활용하면 정말 편해지죠. 예를 들어서 ‘좋은 것’과 ‘예쁜 것’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비슷하게 인지해요. 예쁜 걸 보면 좋은 걸로 여기죠. 그렇게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을 잘 캐치해서 물건을 팔았다, 그러면 내 의도대로 이 사람이 움직인 거잖아요? 그렇다고 하면 이 기획은 성공한 거죠.
기획의 1법칙: 행동을 불러일으키도록 인간 본성을 자극하라
리: 그러면 관찰을 통해 얻은 영감은 무엇입니까?
유태형: 제가 얼마 전까지 착각하던 게 있어요. ‘감정이 있으면 사람은 움직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감정이 없어도 행동을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자극이에요. 자극이 있으면 호르몬이 나오고 인간은 행동해요. 마음이 아픈 것도 신체가 아픈 것과 같아요. 호르몬 분비에 따른 통증이니까요. 생각도 뇌 안에서 일어나는 전기 자극이잖아요. 그러면 감정과 행동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감정도 행동이란 거죠.
리: 음…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유태형: 예로 ‘유태형 팝니다’는 ‘통쾌하다’라는 감정을 이용한 거죠. ‘뭘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끼지?’, 이걸 생각하고 세팅한 거죠. 우리가 계속 가졌던 믿음, ‘취준생은 약자다’ 아니면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다’ ‘그들에게 간택을 받아야 한다’ 이런 믿음을 반대로 보여줬을 때 통쾌함이라는 감정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더 주목하고 좋아요 한 번이라도 더 누를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거죠.
리: 마치 『스틱!』이라는 책 이야기와 비슷하네요. 성공하는 메시지의 특징, 구체성, 의외성, 스토리 같은…
유태형: 네, 맞아요. 예로 인큐에서 일할 때, 전환율이 거의 10% 정도 되는 콘텐츠를 하나 만든 적이 있어요. 프로젝트를 홍보해야 하는데 좀 복잡해서 사람들에게 딱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뭘 했냐면은 이 프로젝트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H의 상담일지』라는 소설로 만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에게 광고는 걸러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광고를 소설로 만들고, ‘무료 소설’이라고 홍보했어요. 다 본 다음에도 불쾌감이 없으니 ‘나도 한번 상담받아볼까?’ 하고 전환이 많이 일어난 거고요. 목표를 설정하고, 사람이 이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감정을 일으켜야 할까, 그러려면 어떤 자극을 줘야 할까, 등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거죠.
리: 근데 그게 또 타깃에 따라 다 다를 거 아니에요?
유태형: 맞아요. 타깃팅은 이렇게 봐요. 사람의 과거를 훑어보자. 예를 들어서, 대표님은 지금 아이스크림 가격을 좀 비싸다고 생각하잖아요. 어릴 때 막 200원하고 그랬을 거니까. 근데 지금 10살짜리 친구한테는 2000원이 비싼 게 아니에요. 한 번도 아이스크림 가격이 그렇게 싼 적이 없었으니까. 타깃은 이런 거라고 생각해요. 겪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믿음이 아예 달라요. 타깃을 설정한다는 것은, 가상의 그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무얼 경험했는지 상상해 보는 거예요. 궁금하면 검색을 해 봐도 되고요.
리: 굉장히 깊게 들어가네요.
유태형: 그렇지도 않아요. 검색하면 다 알 수 있거든요. 그렇게 좇아가다 보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죠.
리: 그러다 너무 세부적으로 가면 또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유태형: 타깃 설정을 없앨수록 공통점이 사라지죠. 그런데 제가 큰 걸 좋아해서 솔로대첩을 만든 것도 있지만… 특정 타깃만 좋아하는 것을 키워드로 내세웠을 때는 절대로 큰일을 할 수 없어요. 타깃층이 커지면 커질수록, 공감하는 키워드가 인간 본능에 가까워져요. 그래서 솔로대첩이 이슈가 됐었죠. 연애하고 싶은 거야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래서 저는 마케팅하는 분들과는 좀 안 맞는 게 있긴 해요. 그분들은 더 세분화시키려고 하는데 저는 더 넓히려고 하니까요.
리: 그런데 모두가 좋아하는 건 어떻게 보면 좀 뻔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유태형: 그렇죠. 모두가 좋아하는 거는 뻔하죠. 근데 그 타깃층이 좋아하는 것도 사실 뻔해요. 그 뻔한 거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누구나 이성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보통 이성을 만나는 방식은 굉장히 개인적이고 조심스러워요. 솔로대첩은 이걸 완전히 바꿔버린 거잖아요. 주제와 욕망은 같을 수 있는데, 보여주는 방식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거죠. 욕망이 뻔하다고 해서,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봐요.
리: 하지만 같은 욕망을 노린다면 대자본이 이기겠죠. 할리우드 영화나 유니클로처럼…
유태형: 그런 건 있어요. 사실 솔로대첩에 정말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는 하지만, 2회가 열리지도 않았잖아요. 전체 연애 시장을 생각하면 주목은 얻었지만, 이걸 계속하면서 수익을 얻은 건 소개팅 앱이겠죠. 하지만 한 방을 노려야 할 때는 분명히 있어요. 이럴 때 내가 원하는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의 본능에 주목해야 한다는 거죠.
리: 그렇다면 그 인간의 본능에 기반한 기획안은 정교하게 짜는 편인가요?
유태형: 네. 저는 시간별로 생각해요. 만약에 어떤 자극을 받는다면 그 사람이 0.5초 후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그려봐요. 매장에 들어왔을 때 무엇에 첫 시선이 가고, 다음에 어디로 시선이 옮겨갈지, 전부 초 단위로 생각해요. 그렇게 행동의 순서를 만들면서 편향, 오류를 줄여나가죠. 웹 콘텐츠라면 첫 문구가 제대로 인지될까, 필요 없는 문장이 괜히 시간을 뺏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오.
리: 검증은 어떻게 하세요?
유태형: 사실 저는 검증은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기획하는 데 시간은 진짜 오래 걸리는데… 그렇다고 아주 사고실험만 하는 건 아니고 주변 사람에게 많이들 물어보죠. 저도 AB테스트 유용성은 인정하는데, 그렇게 실험 기반으로 가면 진득하게 생각할 여유가 사라지는 것 같아요. 특히 오프라인 행사 같은 건 실험을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럴 때는 이런 기획이 유용하죠.
책 안 사도 좋으니까 그냥 읽어주세요
리: 자… 이제 뭔가 또 거대한 프로젝트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유태형: 사실 거대한 거에 조금 질렸어요. 전 진짜 재밌어야 움직이는 것 같아요. 흥미가 생기면 설계를 하고 뭔가를 해 보는데, 마냥 크고 자극적인 것만 하다 보니, 그것도 이제 조금 뻔해지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사람들에게 놀랍다거나 신기하다는 감정을 일으키고 행동하게 하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감동적인 것도 해 보고 싶고, 사랑에 관련된 것도 해 보고 싶고…
리: 내 책은 이런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사람?
유태형: 새로운 일을 하게 됐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그런 분들이라면 책을 읽으며, 내가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 누구고,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잘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얻을 수 있겠죠.
리: 실제로는 고객을 어떻게 움직일지만큼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게 더 어려울 때도 있고요.
유태형: 저는 그래서,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관찰에서 비롯되는데, 예로 제가 기획안을 결재받아야 해요. 그때 초콜릿을 함께 가져갈 때와 아닐 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사람은 자극에 의해 움직이고, 자극 포인트를 알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동료를 관찰해야 한다, 가 제 생각입니다.
리: 마지막이 제일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초콜릿을 줘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아무거나 하시지요.
유태형: 책 안 사도 좋으니까 그냥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리: 출판사 대표가 되게 싫어할 발언이네요. 도서관에라도 넣어달라 하든지…
유태형: 출판 시장을 보니까 많이 팔려도 별로 못 벌더라고요. 또 책을 사는 사람도 완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책이 팔리는 것’보다 ‘끝까지 읽었다’가 더 기분 좋을 것 같네요.
리: 책 사서 인증샷 찍으면 만나줍니까?
유태형: 저 같은 놈 만나 달라면 당연히 만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