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 이전에 <북유럽 모델의 핵심과 오해>라는 글을 기고했던 필자의 후속편입니다. 오늘은 그가 북유럽 모델이 극복해야 할 가장 거대한 난관과 이에 대한 그들의 대책을 이야기합니다. 강조색은 모두 편집자가 처리했습니다.
본지의 다른 필자가 기고했던 <조세 부담과 복지-북유럽 공구하실 분?>에서도 언급되었던 것과 같이, 복지에는 돈이 든다. 북유럽 모델은 미래에 상당한 재무적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주된 이유는 고령화되고 있는 인구구조 때문이다. 이들이 내놓은 해법은 뭘까?
Ⅰ. 인구 고령화가 초래할 문제
위 그래프 참조. 위와 같이 북유럽 국가의 국민은 어릴 때 보육과 교육관련 공공서비스를 통해 혜택을 받고, 그 후 경제활동에 참여하여 조세 부담에 의한 기여를 통해 복지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다가, 은퇴 이후 다시 연금 및 요양 서비스 등 공공서비스의 수혜자가 되는 게 보통이다.
북유럽 국가의 베이비 붐 세대들이 이제 곧 공공서비스에 대한 기여자에서 수혜자로 변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또한 점점 길어지는 학업 등으로 경제활동에 늦게 참여하는 경향, 소득의 향상으로 인한 조기 퇴직, 평균수명의 연장은 모두 주로 세금납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공서비스의 비용 충당을 축소시키며 반대로 지출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거다.
Ⅱ. 손쉬운 해법은 존재하는가?
북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식적인 해법은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북유럽 경제학자들은 아래의 대책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1) 출산율을 높인다면?
전체 인구에서 고령 인구의 비중이 높아진 게 문제니까, 직관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이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인 것 같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는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첫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한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과거 50년대 수준의 출산율로 복귀해야 하는데,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낳기 시작해서는 이미 늦다.
둘째, 출산율 높여 봐야 그 아기들도 언젠가는 노령 인구가 된다. 이 아이들의 기대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길 거다. 따라서 전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2) 이민을 많이 받으면?
출산율의 증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면, 이민을 통해 경제활동 인구를 증가시키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이민자를 마구 받기 전에, 북유럽은 (아마 정치적으로 용납될 수 없을) 아래의 세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이거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첫째, 노동력으로 즉각 활용될 수 있고, 노동에 참여할 의지를 가진 젊은 연령대의 이민자만 선택적으로 받아야 한다. 이는 이민자의 연령, 교육수준, 건강상태, 어학 수준 등에 따라 이민 희망자들을 명시적으로 차별대우 해야한다는 뜻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이상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둘째, 복지 시스템의 기여자를 늘리겠다고 기러기 아빠만 골라 받을 수는 없다. 이민자들이 가족 단위로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나?
셋째, 이민자들이 북유럽 국가의 복지재원을 축낼 경우를 대비해 이들이 복지시스템(병가, 실직수당, 조기퇴직 등)을 남용하지 않도록 차별적 예방조치를 취해놔야 한다. 그럴 수 있겠나. 없다.
(3) 성장중심의 경제정책을 채택한다면?
고성장으로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워서 복지 비용을 충당하면 어떨까? 막 그럴듯하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에서의 고성장은 주로 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달성 가능한데, 그러려면 임금 올려야 한다. 게다가 높아진 소득 수준만큼 복지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과 수요도 증가하게 될 것. 결국 고성장 정책은 세수를 증대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이와 거의 비슷한 규모의 공공 부문의 비용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에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거다.
해법 세 개를 내놓았는데 다 거절당했다. 그렇다면 북유럽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뭘까?
Ⅲ. 더 많은 사람이 더 길게 일하게 하자
리스크를 사회 전체가 공유(collective risk sharing)하는 것과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개방성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북유럽 모델의 두 요소다. 따라서 북유럽 국가의 노동시장도 위의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북유럽 국가들의 성평등에 대한 고려는 보육시설 및 양육제도 등을 통하여 여성 노동력의 참여를 높여 노동력의 공급을 증대시켰고 이는 다시 고용과 생산을 증가시켰다.
물론 그들의 제도 및 정책은 대부분 1950-60년대에 설계된 것들이라, 현재의 환경을 미루어 볼 때는 적합하지 않은 디테일이 존재한다. 따라서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개혁이 필요한 것.
북유럽 국가들의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할 때, 노동력과 고용 문제가 경제발전의 가장 큰 제약조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성 높은 노동력이 거대한 공공서비스 부문의 인력 수요와 동시에 공공 서비스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세원을 확보해야 하는 것. 따라서 높은 고용률은 북유럽 모델이 유지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높은 고용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1) 총 노동공급의 증가 – 더 많은 사람들을일하게 하라
(2) 인당 평균 노동시간의 증가 – 더 길게 일하게 하라
(3) 실업률의 감소 – 실업급여, 일하는 복지(workfare), 실업자 능동화 조치(activation)
그럼 이제부터 북유럽 국가들이 이 세가지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게 하라
각 연령대별 집단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조세제도와 사회보장 제도 등의 정책 목적에 있어서 더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의견이 최근 유력한데, 조세가 노동시장 참가에 미치는 영향은 연령대별, 계층별로 다르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는 연령층의 남성 근로자는 세금 좀 더 내거나 덜 내는 문제 때문에 일을 더 하거나 덜 하지 않는 반면, 저임금 계층인 청년층과 노년층은 조세제도, 사회보장, 연금제도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최근 저임금 저숙련 근로자의 한계세율을 경감시키는 소득세 제도를 도입함과 동시에 실업급여의 보상률을 낮추는 개혁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노동 참여율을 1~1.5% 정도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경제활동 참여자는 인센티브의 설계에 반응하고 노동시장의 참여는 조세와 소득이전 제도에 의해 영향을 받으므로,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더 길게 일하게 하라
근로자가 한번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일할 수 있게하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설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평균 노동시간을 증가시킨다고 해서 각 개인에게 ‘더 열심히 일하자!’라는 도덕적 책무를 주입시키는 것은 그 해법이 될 수 없다. 잘 버는 사람들은 덜 일한다. 소득 수준의 향상은 여가에 대한 수요을 증대시키니까. 만약 여가의 가격(포기한 소득)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총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면, 개인이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여가를 즐길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에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사회보장, 쾌적한 환경, 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이 구축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정부의 관대한 대중교통, 주거, 예술 등에 대한 보조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공재는 국민의 높은 조세부담률에 의해 충당되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은 일할 이유를 찾는 것보다 놀 이유를 찾기가 쉽다. 즉 북유럽의 ‘복지국가’라는 제도의 틀은 개인의 선택을 여가를 더 선호하는 쪽으로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은 사회적 관점에서 요구되는 것보다 더 적게 일하고 싶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북유럽 국가들이 저 문화, 예술 공공재를 전부 버릴 수는 없고. 결국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제도들을 활용해, 안식년 제도와 같이 여가를 장려하고 노동참여 인센티브를 훼손할 수 있는 제도들은 점차적으로 폐지할 수밖에 없겠다.
추가적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인 집단화된 임금 조정 메커니즘은 더 짧은 근로시간을 유도하기 쉽다. 때때로 산업별 노조에서는 연봉을 더 받아내는 것보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협상이 더 쉽기 때문. 따라서 비록 중앙집중화된 노조-고용주 레벨에서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전체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되,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환경 아래서는 탈 중앙화된 근로자 개별 임금 및 노동조건의 협상이 더 적절할 것이다.
(3) 실업급여, 일하는 복지(workfare), 실업자 능동화 조치(activation)
마지막으로 실업에 대한 위험 보장을 어떻게 설계하느냐 라는 문제가 남는다. 실업대책에 대한 세부사항을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신도 악마도 디테일 속에 있다.
실업급여 제도의 기본적인 딜레마는, 존재 자체가 각 경제주체의 행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실업급여는 실업자의 구직활동 노력을 감소시키거나, 기존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상승시켜 자발적/비자발적 실업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실업급여가 기간에 제한을 두고 실업전 노동시장 참여 정도에 따라 조건부로 설계된다면 그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는 있다. 또한, 실업급여는 실직 직후 일정한 지급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그래야만 제도를 악용할 유인을 제거할 수 있다.
한편 실업급여의 지급을 직업 교육 등과 연계하는 이른바 일하는 복지(workfare) 요소의 추가도 꽤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구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성향의 사람들에게 실업을 덜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이게 한다.
스웨덴의 1950년대 부터 실시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 국가가 노동자를 새로 발전하는 산업에서 새 일자리를 찾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 – 은 1990년대 경제위기의 발발과 대규모 실업사태로 실패한 실험으로 결론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특히 청년층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캐리어 패스가 과거 직장이력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참여해서 지속적으로 캐리어 패스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청년층이 초기 구직활동에서 실패하는 것과 비교할 때 장기적으로 경제에 매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북유럽 국가들이 열심히 참고하고자 하는 덴마크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도 있다. 이 제도는 실직자들에 대한 보상을 실직전 소득의 유지에서 구직활동과 재취업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인데, 단순히 실업자 능동화 조치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실업 급여를 보장하지 않으며 실업급여의 지급 기간도 단축시키는 제도다. 또한 실업자들이 구직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실업 수당이 빠르게 감소하여 실직자들의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유도할 필요도 있다. 또 재취업 기회를 거부한다면 일정한 절차에의해 실업자의 실직급여를 일정기간 동안 취소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Ⅳ. 마치며
앞으로 한국도 복지지출의 비중이 상당히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북유럽 모델은 우리에게,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와 복지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한편 복지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높은 고용률이다. 한국에는 고용률을 끌어올려 국면을 전환할 기회가 아직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용률 상승 – 경제 참여활동 인구의 증가 – 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기회는 여성 노동력의 적극적 활용이다.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면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를 상당히 미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인센티브를 높일 수 있도록 남녀 임금격차의 축소, 보육서비스의 강화, 출산휴가 기간의 증가, 탄력근로제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또한 능력을 갖춘 여성 노동력이 이른바 마미 트랩(Mommy trap)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적 배려도 강화해야 한다. 안정적인 캐리어 패스를 밟아 중간 간부급 내지는 관리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하여 중간 탈락으로 인한 사회적 기회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
이러한 고용률과 여성 노동력에 대한 중시는 이미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에 복지의 확충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지금까지 설명드린 북유럽 국가들의 고민과 그 해법들이 잘 반영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참고문헌
Torben M. Andersen, Bengt Holmström, Seppo Honkapohja, Sixten Korkman, Hans Tson Söderström, Juhana Vartiainen (2007),
“THE NORDIC MODEL, Embracing globalization and sharing risks”, The Research Institute of the Finnish Economy (ETLA)
OECD (2012), “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2”, OECD Publishing
Torben M. Andersen, Michael Svarer (2007), “Flexicurity – Labor Market Performance in Denmark”, CESIFO Working Paper No.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