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정적자 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하다고 전세계가 다들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문제 해결은 어이없을 정도로 쉬울 수도 있다. 그냥 간단하게 세금 올리면 된다. 그럼 차근차근 원금 까나갈 수 있다. 물론 쉽게는 안 된다. 이유는?
예전(1997년)에 한번 소비세 올리다가 아주 그냥 된통…
경기 좀 살아나나 싶어서 세금 올렸더니만(소비세 3% -> 5%로 인상), 바로 소비가 팍 죽어 버려서 또 디플레 지속.. 그거 한방이 컸다. 물론 재수도 엄청나게 없었다. 97년이라면 어떤 때인가? 바로 아시아 외환위기, IMF 때라는 것이다. 일본이 세금 올리고 딱 3개월 있다가 외환위기 터지고 일본 바로 옆 나라인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일본의 텃밭인 아시아 시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으니, 일본 국내라고 좋을일이 뭐 있겠나? 결국 일본의 소비세 인상안은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이번 아베노믹스의 아주 큰 과제 중의 하나도 소비세 인상(5% -> 1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 목표)이다. 그러나 또 타이밍 못 맞추면 경기 팍 죽어 버리고, 그럼 세금 더 안 걷히고, 그럼 진짜 국가채무 골로 간다는 공포가 있다. 어차피 자유국가에서 선거 떨어지면 정치인들은 동네 백수 되는 거다. 선거 떨어지는 정치인 개인의 극단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국가의 공익을 도모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남게 된다.
물론 이번 아베노믹스가 성공한다면, 아베는 승승장구할게 분명하다. 세금이 오르더라도 24년간 지속되는 이 지겨운 일본 불경기를 탈출하게만 해 준다면 일본인들은 표를 몰아 줄 것이다.
일본의 소비세는 5%이다.
한국 부가세는 10%이다. 일본은 한국 간접세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엄청나게 높구나 싶겠지만, 북유럽에서는 20%도 흔하고, 유럽에서는 어지간하면 15%가 넘더라구. 간접세가 “소득역진적 조세”이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는 말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런 소득역진적 조세가 매우 센 국가에서 이상하게 평등이 잘 구현되어 있다. 아래 표를 보자.
위 표에서는 미국의 소비세가 아예 표시가 안되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소비세를 걷는데, 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평균 내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곳은 시카고로 11.5%인데, 아예 소비세가 없는 알래스카나 오레곤, 뉴햄프셔 같은 곳도 있다. 이러니 부가세 없는 곳으로 쇼핑 원정을 가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와 같이 미국은 소득역진적인 간접세를 주별로 걷는데 별로 높지도 않고, 대신 소득누진적인 소득세가 발달했다. 근데 아시다시피 미국은 매우 불평등한 나라이다. 뭐지?
OECD 국가의 지니계수.
맨 왼쪽에는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소비세 25%짜리 나라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일본, 미국 등 소비세 5% 짜리 나라들이 보인다. 출처는 OECD.
직접세 비중이 높은 게 맞는 것 같은데, 북유럽 국가가 소비세 25% 때리는 이유?
국민의 평등한 경제적 삶을 위해서 소득누진적인 직접세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옳다. 일단 수익을 많이 올리는 기업의 법인세와 고소득자의 소득세를 올리자는 주장이니 그 자체로 옳은 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야 에블바디 땡큐. 그럼 부가세 올리면 서민만 죽어나고, 부자들은 노가 난다는 식의 초단순 사고도 과연 옳은가?
물론 기본적으로 부가세는 소득역진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소득대비로 저소득층이 많은 비율로 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수입 100만원인 가구는 100만원으로 도저히 살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돈 꾸거나 원조를 받아서 120만원 정도를 쓰게 된다고 치자. 그럼 이 돈에 모두 소비세가 붙는다면 월 12만원을 소비세로 내게 된다.그럼 자기 소득의 12%를 소비세로 낸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월수입 1,000만원인 가구를 생각해 보자. 이 가구는 월 500만원을 쓰고 남은 500만원은 저축한다. 그럼 500만원 소비에 대해 전부 세금을 내면 50만원을 내게 된다. 그렇다면 전체 소득의 5% 밖에 내질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월수 100만원의 저소득층은 매월 자기소득의 12%를 세금으로 내게 되고, 월수 1000만원의 고소득층은 매월 자기소득의 5%를 내게 된다. 이러니 소득역진적인 구조라는 것이 매우 분명해 보인다.
그럼 왜 사회평등에 목매다는 북유럽 국가들은 25%씩 소비세를 때려 대는 걸까?
다시 월수 100만원인 가계를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쌀, 배추, 두부, 콩나물 같은 음식료품이나 생필품의 소비가 대부분이지 않겠나? 이런 물품은 면세품이 많다. 그러니 소비의 딱 1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고소득층의 소비를 생각해 보면, 자동차, 골프채, 고급가전제품 등일 것이다. 이런 품목은 부가세 10%는 물론이고, 여기다가 온갖 개별소비세가 또 붙는다.
이런 부자들이 위스키 마시면서, 고급스포츠카 타면서 기름 펑펑 떼면 이거 세금 장난 아닌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세금의 절대량은 말할 것도 없고, 비율로 따져봐도 그렇게 역진적인 세금은 아니다. 여기다가 부가세는 탈루가 거의 불가능하다. 요즘 카드 안 받는 곳이 어딨나? 반면 소득세나 법인세는 온갖 공제제도 때문에 합법적인 구멍이 엄청나게 많은 세금이다.
결정적으로 부가세는 총액수가 크다. 2011년 국세수입을 보면, 총 국세 수입 187조원 가운데 소득세 40조원, 법인세 41조원, 부가세 53조원이다. 세금을 많이 걷는게 필요하다면 무슨 세금을 많이 걷는게 좋겠나는 뻔한 이야기이다.
복지가 공짜냐고? 웃기는 소리
장하준이 정확하게 지칭한 바, 복지는 공동구매이다. 공동이라는 접두사가 붙긴 하지만, 복지도 “구매”이다. 돈주고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대신 “공동”으로 사니깐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싸게 사든 비싸게 사든 어쨌든 돈주고 사는 것이다.
브라질의 부자들은 치안이라는 복지서비스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경호회사라는 사적 서비스를 매우 비싸게 산다. 유럽의 부자들은 소득세로 뜯기고 유럽의 서민들은 간접세로 엄청나게 뜯기면서도, 의료와 치안 등의 서비스를 매우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북유럽이 어떠느니 하는 소리 들을때마다 필자는 마음 한구석에서 짜증이 올라온다. 교통사고 한번 나면 3종선물셋트(대인, 대물, 렌트)로 대박나겠다는 심산이 온 거리를 휩쓸고 있는 나라에서 세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내고 복지를 누려 보겠냐는 제안이 얼마나 공허하냐는 말이다. 세금 한달에 돈 만원 더 내야 한다는 소리에 온 국가가 다 들고 일어나는 판국에 북유럽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 동네 사람들 부가세 25%씩 내고 산다. (노르웨이는 논외로 잡아야 한다. 북해 유전 비 오펙 국가중 1등, 세계 5위의 석유자원 보유국이다. 핀란드 스웨덴도. 거긴 우리만큼이나 심한 독점기업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들이고.)
북유럽은 됐고!
그거 한번 장기적으로 (그래봐야 25년) 바꿔 보자는 주장이 비젼 2030이었다. 그때…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소위 입달린 인간들은 전부 까고 봤다. 그러고는 지금 북유럽 복지가 어떠느니.. 웃기고 있네. 참말로.
북유럽은 됐고, 그냥 OECD 평균만 가보자는 제안이 비젼 2030이었다. 근데 복지에 대한 욕심은 북유럽 수준이고, 내는 세금은 일본 수준으로 가자고… 차라리 세종대왕을 DNA 복원으로 되살려서 대통령 시키자는 주장이 훨씬 현실적이겠다. 물론 세종대왕이 살아온다 하더라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세종대왕이 엄청난 천재성으로 핵융합 발전을 울 나라에서 성공시켜서 전세계에 에너지를 수출하면 어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