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다이 신지 교수 인터뷰 1 – 오타쿠의 기원과 문화적 기여 / 미야다이 신지 교수 인터뷰 2 – 오타쿠 문화의 악영향 “더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에서 이어집니다.
세분화된 문화, 독선적인 크리에이터를 낳다
Q. 지금(2000년 당시)의 일본인이 사회에 별 관심이 없다고 보시는 거로군요.
– 지금 일본사람들은… 정말 위기의식 없고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죠… 실업율이 높다고 해도 겨우 5%, 유럽은 10%정도가 당연할 정도라고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있기를 합니까? 인종차별이 심해서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거나 죽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북한이 쳐들어올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아무것도 고민 안해도 살수 있는 거죠… 그러니 진짜 아무 고민도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잔뜩 있고, 게다가 거기에다 “아무것도 생각 안해도 되용~”하고 속삭이는 ‘오타쿠 미디어’가 발달되어 있으니…
예를 들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은 타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작품을 만들면 괜찮은 작품이 나옵니다. [패트레이버 시리즈]라든지 [공각기동대]라든지… 하지만 자기가 원작, 각본을 쓰면 대단히 독선적인 작품이 나오죠. [天使のたまご 천사의 알],[アバロン아바론]등등… 자기 작품을 보는 수용자-관객들에 대해 배려하지도 않고, 별반 관심도 없지요… 이런 점을 보면… 최근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들 자체가 사회에 대한 관심, 자기작품을 보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를 않아요. 이래서 대단히 독선적인 작품이 나오기 쉽지요…
크리에이터란 역시 ‘관객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가?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 중국 영화를 일본보다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역시 관객이 처한 여러 사회적인 상황을 잘 분석한 뒤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일본사회는 너무 세분화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만… 이러니 영화 같은 거 만들어도 처음부터 자기와 똑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만 보니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게 세분화의 문제점입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작품을 만든다는 건 자기와 다른 사람이 본다. 의견이 다른 녀석이 본다는 전제하에 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만든다는 건… 이러려면 역시 다른 사람(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죠.
헌데 만일 한국에도 일본과 똑같은 사회의 세분화가 진행된다면… 자기 주변, 소수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상황이 된다면…. 유감스럽게도 일본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Q : 역시 소집단으로 사이좋은 친구들에게만 둘러싸여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군요.
– 그렇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면 안되고, 사회- 외교, 군사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도 좋지 않죠.
80년대의 마크로스, 90년대의 에반게리온과 오타쿠 문화
Q : 아이고… 이거 오타쿠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 … 1980년대 오타쿠 문화의 전성기, 90년대 오타쿠 쇠퇴기… 라고 그럽니다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애니 작품 하나씩만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아이쿠,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아서(웃음)… 으음 뭐… 미야자키 하야오씨의 일련의 작품…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도 좋구요… 하지만… 역시 우리들에게 대인기였던 [超時空要塞 マクロス- 愛,おぼえていますか?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 사랑 기억하십니까?]이지요. 이 작품은 당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후 1990년대 후반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만… ‘마크로스’라는 우주전함의 외부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지만 주된 이야기는 소년과 소녀의 인간관계, 히카루가 민메이를 찼다, 민메이가 왜 차였나? 라는 그런 이야기… 이런 도식이 우리들에게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또 상당히 영향을 미쳤지요.
Q : 으음 그러고보니 ‘마크로스’라는 전함 자체가 선생이 앞서 이야기하신 하나의 소우주이군요. 외부와 고립된… 마치 일본 그 자체같은…
– 그렇죠(웃음) 외부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내부에는 도시가 있고 아이돌 여가수가 노래하고 춤추는 괴리된 세계… 조금 설명을 드리자면, 일본에서 말이죠… 개인 개인의 소세계를 둘러싼 커다란 세계를 묘사하는 곳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 뿐이에요. 실사의 영화는 그 조그만 개인간의 세계뿐이죠. 예를 들어 한국의 [쉬리]같은 영화는 두 연인의 관계에 거대한 국가간의 암투가 끼어들어 둘을 갈라놓아 버리잖아요? 이런 것은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에서나 그려지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애니도 결국 허구의 세계이니… [쉬리]의 현실감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90년대의 대표작을 들자면 역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입니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와는 절친한 사이입니다만… 이 친구는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건 버스터 – 톱을 노려라!][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를 만든 뒤… 우울증에 걸려서 한 4년간 쭉 작품 활동을 쉬었었어요… 그리고 겨우 우울증에서 회복되서 만든 게 [에반게리온]인데… 아 보통 우울증에서 회복될 때는 상당한 에너지가 발산되요… 그래서 자살도 많고, 에너지가 없을때는 자살할 에너지도 발산이 안되죠. 하여튼 이 작품은 우리들의 어린시절 – 1960년대 특수 촬영영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만화의 인용으로 가득 차있지요.
하지만 안노는 이런 의식을 하지 않고 있는거 같아요. 뭐, 어쨌거나 의식을 하고 만들었건, 하지 않았건… 이 작품은 그 당시(1960년대 텔레비전 특촬 영화, 애니의 전성기)의 일본 애니, 영화의 역사를 축약해낸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대의 공기를 아주 훌륭하게 읽어낸 작품이고… 최근의 젊은이들은 세상에 관심이 없다… 라고 비난을 받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를 아주 잘 그려냈습니다.
Q : 전 예전의 지면을 빌어 “오타쿠의 종언”을 선언한 작품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만…
–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많습니다… 역시 마지막에는 자신의 내부에 틀어박혀있던 주인공 이카리 신지가 그 외면의 세계에 첫 일보를 내딛는 장면에서 끝나게 되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예로 [기동전사 건담]의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씨 같은 사람은, 이현석씨가 느낀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에반게리온]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왜, 인간내면의 이야기나 자의식을 이렇게 궁시렁궁시렁 이야기하고 있냐? 좀 더 외부의 세계를 확실히 그려내라!!”라는 게 토미노 씨의 주장인데…
이런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이 그가 이번에 내어놓은 [턴 에이 건담]시리즈 이지요. 그러니 실제로는 매우 미묘해서… “그렇구나 이렇게 그냥 속으로 끙끙 고민만 해도 좋은 거야… 봐, 주인공 이카리 신지 군 도 그렇지 않아?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거야” 라고 받아들인 녀석들이 오히려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위기의 오타쿠 문화, 다양한 계층과의 커뮤니케이션만이 돌파구다
Q : 하지만 제가 일본에 온 뒤 사람들에게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가지지 않으세요? 라고 물으면 오히려 바보취급을 당해버린 일이 많았습니다만…
– (웃음)앞서 말씀드린 전후 일본의 모순이 있고, 과거의 일본인은 되도록 미국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뭔가 문제라는 걸 알고 있어도 말하지 않고 꾹 참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시간이 갈수록 당연한 게 되어버리고 결국에는 ‘왜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라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마저 까먹어버렸지요. 제 경우도 뭐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사회문제라든지 발언을 하면 “이렇게 좋은 세상인데 즐겨야지? 왜 쓸데없이 사회라느니, 9.11테러니 떠들고 그래?”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성 문제라든지 젊은이 문화라든지 자기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으면 주위로부터 “당신 이상한 사람이구만”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하나도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 보통사람들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요. 뭔가 사회에 불만과 문제의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걸 단지 애써 표현 안할 뿐이다, 억지로 즐겁게 살고 있는 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게 착각으로 정말 사회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놈들이 99%더라고요…”그래서 이거 진짜 큰일났다!”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가 처한 이 사회… 세상….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뭔가 불안이 있다. 이 불안을 해결하고 싶다. 그러나, 어찌해야 좋은지 대처방법을 모른다. 즉, 뭔가 하고 싶다는 에너지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라는 사람이 소수지만 분명히 있어요. 자아, 이 사람들 왜 방법을 모르는건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거지요. 이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몇가지 선택을 제시해주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자아 쇠퇴기라고… 매우 어두운 전망을 가지고 계십니다만… 그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해주실수 있겠습니까?
– 일본 영화는 이미 쇠퇴가 진행 중이고…. 만화계도 슬슬 크리에이터 부족으로 쇠퇴가 시작되고 있고… 게임도 애니도 아마 이제부터 곧 쇠퇴기가 닥칠 겁니다. 대책은 뭔가? 일단 쇠퇴가 온 원인을 봅시다. 거기에는 앞서 말씀드린 몇몇 죽이 맞는 주변사람으로 구성된 조그만 소우주화, 세분화, 그 조그만 소집단 내부의 동질화가 있습니다. 이걸 거꾸로 뒤집으면 간단히 해결되는 거지요. 자기와 의견이 다른 인간, 다른 집단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걸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거지요.
전 영화, 만화, 애니에 여러 가지 의견을 내는 아이디어 제공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 기본적으로 사회학자인데도… 오히려 제가 아는, 그들이 모르는 전혀 다른 정보가 도움이 되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모여서 서로 의견충돌도 벌이고 해서 기획을 한다든지 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계에 영화만 좋아하는 놈만 모이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영화만 만들면, 그건 끝난 거지요. 만화 좋아하는 사람, 음악 좋아하는 사람, 영화 좋아하지 않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들 까지 ” 어라, 영화가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었구나!!”라고 탄복시킬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영화계의 미래는 없는 겁니다. 이는 영화만이 아니라, 만화, 애니, 소설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이야기고요.
이런 생각을 시나리오, 각본, 기획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혀 다른 분야의 인재,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그 세계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지요. 어쨌든 똑같은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무리지어 모여드는 걸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Q :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이 아닌 다른 분야, 문화, 장르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군요.
– 그렇지요. 쇠퇴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지요.
Q: 긴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별말씀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