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생. 도쿄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사회시스템 이론) 수료. 현재 도쿄 도립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사회평론가.
일본 최고의 서브컬쳐(subculture) 연구자로 오움 진리교, 오타쿠, 원조교제, 대중문화 등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파격적인 주장, 날카롭고 새로운 분석으로 일약 유명해짐. 대중문화 연구에 있어 현재 최고 권위자 중 한 명. 2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각종 문화 잡지에 칼럼을 기고 중.
미야다이 신지 씨와 2000년 가진 인터뷰입니다. 자신이 오타쿠 제1세대로 일본 대중문화와 사회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중인 이 학자가 이야기하는 오늘날 일본 젊은이 문화는 어떤 모습인지 한 번 들어봅시다.
오타쿠의 시작은 여자 꼬시기 열풍에서부터
Q : 오늘은 이 자리를 빌어 일본의 오타쿠 집단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와 현재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자아, 가장 먼저 왜 일본에 오타쿠 집단이 나타나게 되는지, 그 요인은 무엇입니까?
– 으음. 몇가지의 팩터(요인)가 있습니다만… 주된 요인은 두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은 석유위기(오일쇼크)라는 자원불황, 엔고 불황을 극복하고 상당히 사회분위기가 밝아져 안정된 사회로 나가는…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져가는 그런 시기였죠. 이리하여 당시 젊은이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1973년에 ‘서전 올스터즈サザンオ-ルスタズ’라는 밴드가 데뷔, 유명해지고……
그에 의해 ‘쇼난 붐’, ‘서퍼 붐’이라는게 일어나는데요, 뭐 간단하게 말하면 “해변에서 여자애들을 꼬시자” 라는 것이지요. 1978년에 [토요일밤의 열기]라는 디스코 영화가 히트하면서 제1차 디스코 붐이 일어나고 “여자 꼬시기” 문화 붐이 일약 급상승합니다.
예를 들어 [뽀빠이POPEYE]라는 잡지도 77년10월에 별안간 그런 여자 꼬시기 붐에 편승, 편집방침을 크게 바꾸어 “이렇게 하면 여자애를 꼬실 수 있다”, “여자를 데리고 간다면 이런 가게다!” 이런 특집기사를 싣게 됩니다. 각종 미디어가 그런 여자 꼬시기 붐에 크게 일조하게 되는건데… 이렇게 되면 틀림없이 그런 붐에서 뒤쳐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죠. 뭐 어느 나라든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여자 꼬시기 문화'(난파ナンパ文化)에는 미디어가 덤벼들기 마련입니다. 왜냐 하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든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기 쉬우니까… 자기도 어떻든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잡지를 읽고는 “지금은 여자 꼬시기 문화다” 라고 모두 생각해버리게 되지요. 이러니 사실은 여자 꼬시기 문화라는게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 않은데도 갑자기 모두 지금은 여자 꼬셔서 데리고 자는 게 당연한 시대라고 모두 생각해버리게 되는거지요.
자아, 그래서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여자에게 인기가 있을지 몰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책들에 실린 [여자꼬시기 매뉴얼]을 읽고 도움을 얻지만… 하지만 그걸 읽고는 “이건 안되겠는걸… 역시 난 여자 꼬시는건 무리인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량으로 나타나는거지요.
그러니까 이런 여자꼬시기 문화라는 성 개방 풍조에 열등감을 가진 녀석들이 1977년과 1978년에 걸쳐 대량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우연이지만 1977년에 [우주전함 야마토 宇宙戰艦ヤマト]의 극장판이 공개되면서 일본에는 ‘우주전함 야마토 붐’이 일어납니다. (거기에 발맞추어 [아우트アウト] 라든지 [아니메쥬アニメ-ジュ] 등의 애니메이션 잡지도 등장하지요) 아까 말씀드린 여자 꼬시기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우주전함 야마토 붐에 뛰어들게 되지요.
또 같은 시기에 코믹마켓이라는 이벤트도 시작돼서 당시에 유행이던 타카하시 루미코의 [우루세이 야츠라], [메존일각]등의 (당시에는 [아니 파로アニパロ] 라고 했습니다만…) 패러디 물이 큰 인기를 끌게 되고 그런 붐에도 이렇게 여자꼬시기 붐에 뒤쳐진 사람들이 대량으로 참가합니다. 그러니까 일본 오타쿠 문화의 직접적인 루트는 1977-1979년 경이지요. 말하자면 당시 일본을 휩쓸던 여자 꼬시기 붐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공간을 찾기 시작하던 시기라는 것이지요.
애니메이션과 함께 성장한 신인류, 1960년생 내외 세대
Q : 그렇다면 성性적인 요인이군요. 당시의 성 개방풍조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택했다…
– (웃음) 직접적인 요인은 그것이지요. 그러나 앞서 우연이 많이 겹쳤다는 이야기는 드렸습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단순히 우연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 부분이 있지요. 저는 1959년 생입니다만… (필자 : 그러니까 1977년 당시 10대 후반) 우리들 1959년 생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꼬시기 붐을 일으킨 것도 우리고, 이게 입맛에 맞지 않아서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것도 우리죠. 그러니까 1959년생, 우리들 세대에는 여자 꼬시기 파(뭐 이 사람들을 新人類界신인류라고 불렀습니다만)와 오타쿠 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이지요.
정확히 애기하자면 처음부터 이렇게 갈라져 있던 건 아니고 처음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여자 꼬시기와 우주전함 야마토를 똑같이 즐기고 있었습니다만… 우리 다음의, 2, 3년 후의 세대들, 말하자면 당시의 중학생 들이 고등학생들이 가지고 있던 여자 꼬시기 측면과 오타쿠적인 측면중 여자 꼬시기가 맞는 녀석들은 그쪽을,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오타쿠 쪽을 받아들이면서 급속하게 갈라지게 된 것이지요.
자아, 어쨌건…… 당시의 코믹마켓이던 애니메이션 잡지든 그때 갑자기 나타났다고 보는건 힘들고… 우리들 1959년 생은 말이죠…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 특히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이 키운 세대이지요. 제가 4살, 5살 때 [철완아톰]의 방송이 시작되었고, 그 뒤를 이어 [철인 28호], [슈퍼 제트], [에이트 맨], [유성가면], [초능력 소년 오스파]등이 줄줄이 방영되었습니다. 전 초등학교 때 여섯 번 전학했습니다만…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보고있는 한은 공통된 화제가 있기 때문에 절대 소외당하지 않았지요. (웃음) 그래서 전 소외 안 당하려고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진짜 열심히 봤었거든요. (큰 웃음)
그런 애니메이션을 보며 큰 우리 세대가 고등학생이 되던 시기가 ’70년대 후반 이지요. 이런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어린아이 만화, 애니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서 좀 더 고도의 상품, 예를 들면 [우주전함 야마토] 이후… 뭐 1982년에 들어서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ナウシカ]가 등장하고… 그 중간엔 [기동전사 건담 機動戰士ガンダム ]이 1979년에 등장하지요. 스토리 적으로도, 세계관을 구축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매우 수준이 높아서 어른이 보아도 매력적인 그런 상품들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코믹마켓도,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고컸던 만화나 애니를 패러디하고 동인지를 만들면서 형성된 것이고요.
정리하자면 우리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텔레비전에 애니메이션 방영(뭐 당시에는 텔레비전 만화テレビマンガ라고 얘기했습니다만…)이 개시되어 일본에 최초의 거대한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 애니들을 보고 큰 사람들이 1970년대 후반 고교생이 되었다… 이게 가장 큰 팩터(요인)가 되겠네요.
오타쿠 탄압이 지나가고 소재로 서브컬처를 즐기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시기
Q : 한국에서는 ‘오타쿠’라고 그러면, ‘히키 코모리ひきこもり’ 그러니까 하루종일 음침하게 방 안에 앉아서 만화, 애니만 보고 있는 폐쇄된 사람들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 (쓴웃음을 지으며) 일본에서도… 사실은 옛날엔 그랬었어요. 1983년에 오타쿠라는 단어가 태어납니다만… 이는 저의 친구인 작가겸 편집자 나카모리 아키오가 발명해낸 단어로, 그 친구는 당시 [만화 브리코]라는 로리콘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칼럼에 “(당시 여러군데 있던) 만화 찻집에 가면 뚱보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옆에는 만화를 끼고 앉아서는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키들키들 이야기하는 기분나쁜 녀석들이 잔뜩 있고 이놈들 서로를 부를땐 오타쿠라고 부르더라… 그러니 우리가 이녀석들을 부를 때는 오타쿠라고 하자”라는 글을 실었거든요. 이거 엄청나게 차별적인 글이었어요.
그 당시 편집장인 오오츠카 에이지씨( 필자주 : 만화 [다중인격탐정 사이코]의 스토리 작가. 편집자, 비평가로도 유명하다)가 이글을 읽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나카모리 아키오씨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어요…(글쎄!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잡지에!) 이래서 화가난 나카모리가 연재를 그만두는 일이 있었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1983년엔 이미 “오타쿠라는 놈들은 위험한 놈들, 해 다니는 복장도 이상, 말투도 이상, 여자에게 인기도 없는 놈들”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하고 있었다는 거죠. 역시 1978년을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면 오타쿠는 인기 없는 놈들에 따돌림 당하는 녀석들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리고 이게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어요. (웃음)
하지만 말이죠… 1989년 미야자키 츠토무라는 오타쿠가 연속유아 유괴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이 사람이 방에 변태 유아 포르노 비디오 6000개를 가지고 있던게 발각, TV, 라디오 신문 전부가 “오타쿠는 큰일 날 놈들이다!!” 라고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면서 지독한 오타쿠 차별과 오타쿠 탄압이 시작되지요. 1983년 오타쿠라는 단어가 생겨날 때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나 알고 있던 이 단어가 이 사건 이후,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아는 단어가 되는데요.
그런데 웃기는게… 이 사건이후로 오타쿠 세계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일단 오타쿠들의 옷차림, 외양이 조금 깨끗해집니다.(웃음) 그러니까 차별 당하지 않을 정도로 재대로 된 옷을 입고 깨끗하게 된 거지요.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 이리하여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겉으로 봐서는 오타쿤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되지요.
그리고 그 다음 1992-1993년에 ‘부르세라’, ‘원조교제’ 붐이라는 대소동이 일어나는데요… 저도 그 원인제공자의 한 명 입니다만(쓴웃음) 제가 아사히 신문 등에 부르세라 숍(주 : ブルセラショップ : 여고생이 입던 속옷이나 교복, 체육복 등의 물품을 파는 가게, 물론 이를 주로 사는 이들은 중년 샐러리맨 등을 중심으로 한 남성들이다)의 여고생들과 원조교제하는 날라리 여고생들(주: 高ギャル 고갸르. ‘고’는 고교생을 ‘갸르’는 영어로 어린 소녀를 의미하는 ‘걸’을 일본식으로 표현한 것 )에 대한 기사를 싣고 소개를 하면서 엄청난 센세이션이 일어났지요. 그 이후 4년간 대소동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시기에 이미 여자 꼬시기 파와 오타쿠 파의 구분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여자 꼬시기 파라는 큰 집단, 오타쿠 파라는 큰 두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어 서로를 차별했었지만… 하지만 이때가 되면 이 내부도 자질구래한 소집단으로 나뉘어져 버리게되고…
이러니 “뭐 사람 여러 종류가 있지 않겠어?”하고 이해를 하게 된 거지요. (뭐 위의 날라리 여고생들 애기를 하자면… 룸살롱에 나가는 애, 원조교제를 하는 애등 등으로 따로따로 놀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아주 죽이 잘 맞는 몇 명이 뭉친 소집단으로 토막토막 나누어지고 다른 집단에 대해 무관심해진 겁니다. 해서 꼬시기 파가 오타쿠파를 차별한다든지 그런게 없어져버립니다. 뭐 완전히 조그만 소집단으로 따로따로가 되어버려서…. 어느쪽이든 어느 파에 속해있던 남이 자기 안 알아줘도 난 그냥 이게 좋으니까 한다… 이런 움직임이 일반화되지요.
예로 왜 “원조교제 하냐? 친구가 하니까.” “왜 힙합 가수하냐? 오빠가 힙합 가수거든요.”
“왜 코믹마켓에서 동인지 파는가? 누나가 코믹마켓에서 동인지 파니까요.” 이렇게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우연히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걸 할 뿐이에요. 이래서 90년대 후반이 되면 오타쿠 차별이란 의식은 사라져버리지요. 오타쿠란 단어는 남았습니다만 ‘팬’, ‘매니아’란 단어와 똑같은 의미가 되어버렸어요. 1980년대에는 굉장히 위험한 놈들이란 의식이 있어서… “너 오타쿠지?!” 이런 말을 들으면 “난! 오타쿠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그것과 동시에 90년대 중반부터 역시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성性이라는 측면에서부터 좀 주춤 물러서 버렸어요. 뭐 성 性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는거 보다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좋다라고 생각한 애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겁니다만…이게 90년대 말이되면… 예를 들어 코믹마켓에서 수려한 얼굴의 미소년, 엄청나게 예쁜 여자애가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은 과거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80년대에 코스프레하는 애들은 왜 코스프레하는지 알만한 얼굴을 한 애 들 뿐이었거든요(웃음)
이런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과거와 같은 오타쿠 차별은 이미 사라졌고…지저분한 복장을 한 오타쿠도 사라졌고 예쁜 여자애나 남자애들도 실재의 인간관계보다는 가상현실속의 인간관계, 세계를 더 재미있어하고… 예로 이 게임을 하고 있다든지, 이런 만화의 패러디를 하고 있다든지…이러면 역시 똑같은 세계를 여러 사람과 즐기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거지요.
옛날 다른 학교에 전학갔을때의 저처럼 살아온 배경이나 환경이 전혀 다른 데도 같은 애니메이션, 만화를 본 것만으로 대화가 생겨나게 되니까요… 뭐, 이런 것이 겹쳐서…. 지금의 일본에 전개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만화와 애니의 질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오타쿠 문화
Q : 전 오타쿠 문화라는게 일본 문화에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영향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합니다만…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 으음…전 좀 반대입장이군요. 뭐 긍정적인 면이라… 간단하게 말하자면…. 애니나 만화가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미국이라면 TV드라마나 영화, 소설 쪽으로 갈 인재들이 일본에서는 애니나 만화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리하여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걸쳐 뛰어난 질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대량으로 등장했지요. 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씨와 그의 후계자들이 만들어낸 애니들이고…
또 하나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는게 오시이 마모루씨의 [攻殼機動隊공각기동대]가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 일이고… 만화얘기를 하자면… 미국 헐리웃과 필적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이미 만화계에 밖엔 없지요.
최근 연재가 끝난 [몬스터 MONSTER/우라사와 나오키/쇼가쿠칸]라든지… 그 제작시스템 자체가 그렇습니다만 헐리웃 영화라면 일단 한사람이 각본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최소3-4명이 각본에 참가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각본을 완성합니다.
일본영화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건 만화계 밖에 없지요. [몬스터]의 경우도 만화가 본인, 원작자, 편집기자등 최소 3인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작품이지요. 300만부 400만부씩 팔리는 잡지가 있고 엄청난 돈이 움직이니까 모두 신중하게 일하는 겁니다. 뭐 이래서 만화든 애니든, 대~단히 퀄리티가 높다…
그러나 일본영화계는 감독과 원작자의 세계가 지나치게 존중되는 편이라…. 그래서 여러사람이 의견을 낼수 없지요. 하지만 애니는 그런 작가주의 세계가 아니죠… 왜냐하면 여러사람이 기술자로서 참가하고 서로 의논할 때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주의에 빠진 재미없는 엉터리가 나오기 힘들다는 겁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장점은 어쨋든 퀄리티가 지극히 높은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는 점. 자아 이제부터 악영향을 이야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