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죽기 전 마지막 만찬으로 어떤 음식이 좋을까? A. 슴슴하게 끓인 돼지고기 짜글이에 얼기 직전으로 시원해진 소주 한 잔. 천국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서늘해질 무렵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여운이 가시기 전에 뜨끈한 짜글이 국물에 쌀밥 슥삭 비벼 한 숟갈 물고, 큼직한 계란말이 가득 욱여넣어 오물오물 씹으면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소리가 절로 난다. 크으, 소울 푸드 뭐 거창할 거 있나. 바로 이 맛이다. 술을 썩 잘하지는 못한다. 뭐, 잘하는 것만 좋아하라는 법은 … [Read more...] about 술, 그 이상의 의미
찌질함에 대하여
스무 살 여름방학 이후부터 스물한 살 겨울까지 치킨이 주메뉴인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저시급은 3,770원이지만 암흑세계에서 형성된 다크 시급 2,800원만 줘도 별문제 되지 않던 시절이다. 주 4일. 월수금토. 오후 5시부터 새벽 4시까지. 마감하고 나면 해 뜨는 걸 보며 귀가한다. 서른다섯 테이블을 혼자 뛰어다니며 열두 시간을 밤새 일해도 하루 일당이 3만 5,000원을 밑돈다. 부모님께서 주시는 용돈이 모자라지도 않았다. 내 욕심이었나. 생각해 보니 공부를 열심히 … [Read more...] about 찌질함에 대하여
미워하든지 말든지
‘저 사람이 날 싫어하진 않을까’란 생각이 들면 80퍼센트 이상은 그 직감이 맞다. 그 사람은 너를 싫어한다. 혹시 이 사람은 나머지 20퍼센트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긴가민가 면 대부분 민가다. 호의로운 마음은 헷갈리게 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사실 확인하고자 애쓰지 말자. 감정 소비를 넘어선 낭비다. 열에 일곱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둘은 날 싫어하고 하나는 호의적이다. 둘러봤는데 한 명은 나에게 호의적이네 싶으면 잘살고 있다. '이유 없이 날 싫어한다면 이유를 만들어 주자'라는 문구가 … [Read more...] about 미워하든지 말든지
회사원은 되기 싫었는데
부먹이든 찍먹이든 돼지고기 튀긴 것만 입으로 들어가면 된다. 짜장, 짬뽕 기로에서 괴로울 땐 혜성처럼 등장한 짬짜면을 먹는다. 결정해야 할 게 자취방 헹거만큼 빽빽한데 중국음식 시켜 먹을 때 정도는 쉬고 싶다. 취향이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취향이다. 둘 중 하나 고르는 건 노동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때부터 기미가 보였던 결정장애다. 직업에도 짬뽕, 짜장 고르듯 선택지가 있었을까. 어떤 고사든 지문을 제대로 안 읽으면 땡이던데, 내가 회사원이 된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라는 착각에 … [Read more...] about 회사원은 되기 싫었는데
스마트스토어와 흑자부도
올해 3월.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했다. 사업자를 내고,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고,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 자체로 아구가 당기는 설렘이다. 처음엔 블로그 마켓으로 시작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사업자들의 가장 큰 과제는 마케팅이다. 좋은 물건을 내놔도 노출이 안 되면 그게 있는지 없는지 소비자가 알 길이 없다. 이미 인플루언서 이거나 많은 이웃을 보유한 파워블로거라면 마케팅이 한결 수월하겠지만, 가진 건 뜬구름 같은 열정뿐인 회사원 투잡러는 어디가 시작점인지도 모르게 밑바닥부터 두드려야 한다. 이런 … [Read more...] about 스마트스토어와 흑자부도
32세의 지갑, 32세의 어정쩡한 소비
중고거래를 즐겨한다. 늘 멋진 아이템을 들고 등교하는 친구가 있었다. 하고 다니는 모든 게 부러웠다. 나이키 에어맥스, 키플링 가방, 빈폴 지갑, 폴로 니트 조끼. 소위 ‘쌔삥’ 은 알바비를 받아도 덜컥 사기 힘든 가격이다. 자전거 타는 아저씨의 그 체크 반지갑이 눈에 아른거려 잠 못 들던 날, 중고나라에 가입했다. 스포츠 찍찍이 지갑 속 잔고가 딱 배송비 포함한 금액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사야 할 운명이라 생각했다. 18년 인생 첫 중고거래였다. 친구들이 물어보면 친척 언니가 줬다고 … [Read more...] about 32세의 지갑, 32세의 어정쩡한 소비
홧병이라는 진단에 처방은 퇴사
원인은 스트레스예요. 내복약으로는 힘들 것 같고. 아, 퇴사가 좋겠네요. 퇴사하고 2주 뒤에도 안 좋으면 다시 오세요. 실비가 무색하게 병원에 가지 않는다. 병원 갈 돈으로 고기 사 먹는다. 스무 살 때 다리를 크게 접질려 삼선 슬리퍼 신고 학교 다니던 시절, 못 참고 한의원에 갔다. 일주일 만에 나았다. 병원에 가면 일주일, 안 가면 칠일 만에 낫는다는 얘기가 있다. 내 몸이 딱 그렇다. 굳이 안 간다. 어차피 듣는 얘기는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이다. 잔고가 마르지 않는 통장이 생기지 … [Read more...] about 홧병이라는 진단에 처방은 퇴사
소처럼 일한다는 말에 소는 어리둥절하다
먹는 게 일입니다만… 소처럼 일한다는 표현에 당사자인 소는 어리둥절하다. 닭 알 낳을 무렵 출근해서 샛별 뜨면 퇴근하고 풀로 쑨 여물로 배 채우던 농경사회는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 21세기 소는 먹고 자는 게 일이다. 사료로 급식을 하고 나면, 후식으로 제공되는 지푸라기를 씹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놀고먹는 게 그들의 일이다. 나태한 소일수록 무게가 나가니 값도 많이 쳐준다. 그 '슬픈루팡'들의 이야기 '소처럼 일한다'는 건 농경시대와 함께 막을 내렸다. … [Read more...] about 소처럼 일한다는 말에 소는 어리둥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