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로 비유하여 한 주 동안 논란이 됐다. 이에 새누리당은 “여야가 정치적 공방을 하더라도 금도가 있다”, “대한민국과 전체 국민을 모욕한 것”이라며, 국회 활동 전면 중단까지 선언했다. 홍익표가 원내대변인을 사임하며 국회정상화 합의에 이르렀지만 이는 위기관리에서 민주당의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나꼼수와 김용민으로 읽어보는 민주당의 말말말
시계를 작년 총선으로 되돌려 보자. 나꼼수와 김용민은 총선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선거학회와 <와이티엔>이 역시 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기간이었던 지난 7~8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김용민 막말이 선거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36.7%는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김용민 막말에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은 고연령층(44%)과 보수층(43.5%) 유권자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민 이슈가 새누리당 지지층의 결집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한겨레, 김어준 “나꼼수 탓은 진보-보수 국공합작”, 2012년 4월 27일)
슬로우뉴스의 나꼼수의 잡놈 정치, 미국이라면 어떻게 됐을까? 에서 읽을 수 있듯, 나꼼수가 전면에 나서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B급 잡놈으로서 내부의 지지자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할 때는 (이후 사실로 밝혀진 것도 있으나 당시) 부정확한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진영을 모욕을 주는 발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어떤 세력의 대표가 돼서 상대진영과 마주보며 말을 할 때는 그 스탠스가 정당과 진영 이미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간의 ‘막말’이 민주진보 진영에 독이 되고 총선 전체에 큰 악영향이 되는 것이다. 항상 진중한 태도로 상대를 존중하고 사실에 근거한 말을 해야 한다. 심지어 김용민의 발언은 총선 이전, 심지어 나꼼수보다도 이전이었음에도 민주당에 이미지 타격을 줬고, 이는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민주당의 억울함, 새누리는 더하잖아!
물론 민주당 측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 귀태(鬼胎) 발언에 “감히 최고존엄 박통을 욕하盧” 맹비난에서 읽을 수 있듯, 새누리당의 막말은 그 이상이다. 그것도 외부에서 수혈된 인사도 아닌 현역들이 하는 말이 그렇다.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려야 한다는 게 상당수 소속 의원들의 공통된 심정”
“시도때도 없이 지껄이고 어디로 튈 줄 모르는 개구리 같은 존재”
“대통령은 중층자아병, 쉽게 얘기하면 자아균열 현상이 굉장히 강하다”
“대통령에 대한 정신건강 모니터링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 정부는 정말 외교등신 정권”
이러한 발언으로 인해 당시 국정이 중단되는 사태는 없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귀태’라는 단어를 빌미 삼아 국회 활동 전면 중단까지 이야기할 정도였다. 민주당의 억울할 법하다. 새누리당 의원의 성추행도 정당 이미지에 별 타격을 주지 않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5.18 때 룸을 가면 정당 이미지가 훼손된다. 여기에는 평소에 나쁘게 사는 게 유리하다는 자이언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누리당 지지층의 충성도가 민주당의 지지층보다 더 높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자이언 효과 이전: 막말은 약자의 언어
그런데 생각해 보자. 뭐,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막말연극 ‘환생경제’는 더했다. “육시랄 놈”, “자지를 떼어버릴 놈”, “개잡놈”이라는 언어를 국회의원들이 연극을 빌미삼아 마구 내뱉었다. 그런데 이게 도움이 됐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당시 한나라당은 망가진 상태였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며 전열을 재구축하기 이전 당장이라도 망할 분위기였다.
이전에 민주당에게는 진보 삥뜯기라도 있었다. 진보는 상대적으로 민주당보다 언어 관리가 되지 않으며, 따라서 위기관리가 더욱 취약하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바닥으로 떨어진 지금 그 빈자리는 안철수가 차지하고 있다. 항상 “싸우지 마”식으로 착한 사람 포지션을 취하는 안철수가 밉다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안철수는 조롱과 독설을 하지 않는다. 언행에 있어서는 이쪽이 좀 더 듬직해 보인다.
말실수의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번에 민주당 대변인의 귀태발언, 민주당에 별 관심이 없어서 대변인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귀태발언이 나왔다는 것을 듣는 순간. “아… 또!”하는 발언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어찌 그리 감정적이고 미련할 수 있을까? 이미 수 차례 실수가 있었음에도.
하필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넘어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제는 65%, 70%의 지지율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박정희에 대한 비난적인 말은 오히려 화를 부를 뿐이다. 이 상황에서 귀태라는 말이 과연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하나? 일부 열광적인 지지층이 환호할 뿐이다.
그 결과 이번 귀태발언 건으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양보해줘야 할 정치적 카드가 얼마나 많은가? 굉장히 민감한 이슈들을 다 놓치게 됐다. 이제 국정원과 NLL은 며칠 동안 뒤로 물러났다. 그동안 다양한 일이 터졌고 때문에 행여나 국정원과 NLL이 묻히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그 걱정을 실현시킨 건 새누리당이나 국정원의 물타기가 아닌 민주당이었다. 그것도 그 정당의 대변인이.
* 글의 논리를 도와주신 백수광부님과 캡콜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