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편 ‘트와이스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1편 「트와이스, 완전히 새로운 걸그룹의 시작을 알리다」와 2편 「3세대 아이돌(혹은 트와이스)로 읽는 아이돌 국제정치」에서 연결되는 글입니다.
1. ‘7년 전’ K-POP 기획자의 고민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인데 필자도 잠시나마 K-POP 산업을 취재했던 적이 있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한 대목이 있다.
2010년 무렵, 오늘날 크게 히트한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만든 방시혁 빅히트 대표를 어렵사리 만났을 때 얘기다. 당시 방 대표는 JYP에서 독립해 2AM를 프로듀싱하면서 MBC 위대한 탄생에서 ‘매서운 비평’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사동 사무실은 예상보다는 어수선했고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막 연습생을 모아 데뷔를 준비하던 때였다.
순간 방 대표의 사무실 정중앙에 붙어 있는 ‘회사의 목표’가 외부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훈과 같은 1번 목표는 이것이었다.
우리는 아시아 넘버1 엔터회사가 된다.
이보다 더 야심차면서도 핵심적인 키워드가 있을까, 하고 감탄했다. 그런데 더 놀라던 점은 당시 ‘아시아 넘버 1’의 개념이 필자의 생각과는 크게 달랐던 것. 당연히 K-POP이 ‘아시아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했지만, 방 PD의 관점은 오히려 방어적인 개념이었다.
남자 아이돌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과연 서양 여성들이 동양 남자들을 보고 ‘섹시하다’고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이에요. 그 때문에 세계 1위가 아닌 아시아 넘버 1,이란 목표가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성 아이돌을 먼저 준비했다. 그런데 불과 6년 만에 그는 자신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여성 아이돌로는 실패하고 ‘남자 아이돌’로 초대박을 이루는 믿기 힘든 현실을 이뤄 낸 것이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북미와 남미 소녀들이 ‘한국 남성’을 보고 섹시함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시대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K-POP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진 것일까?
동시에 걸그룹 준비에도 여러 가지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얘기도 떠오른다. 당시 여러 기획자들과 얘기를 나누며 고민을 엿들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걸그룹 프로듀싱이란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들이 상존하는 지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걸그룹을 준비하는 데 연습생을 캐스팅하는 단계서부터 따지면 최소 3~5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그 기간 안에 트렌드도 바뀌고 실제 연습생이 성장하면서 외모와 목소리도 크게 바뀌곤 합니다. 기대와 크게 달라질 때가 많아 쉽지 않아요. 게다가 걸그룹은 유행이 빨리 장기간 사랑받기 쉽지 않고요. 멤버 구성도 마찬가집니다.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걸그룹이더군요.”
2. “당신은 트와이스 외모 보고 좋아하지?”
글쓴이가 ‘트와이스’에 본격 입문한 지 석 달 차에 돌입했다 슬슬 전투력이 떨어질 때가 됐다. 입문 날짜를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2016년 10월 24일이 미니 3집 TT 공개일이었고, 나흘 뒤인 28일 SNL을 방영했기 때문이다. 정연으로 입덕 이후 <SIXTEEN>을 3회 시청하고 주말 가요프로그램을 섭렵하는 등 팬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입덕’이란 표현을 못 쓰는 이유는 그사이 여러 경쟁 걸그룹에도 눈길을 건넸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이 ‘블랙핑크(BlackPink)’다. 한때 투애니원 팬을 자처했던 필자에게 블랙핑크의 등장은 아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YG 브랜드가 이마 위에 선명하게 붙은 이들에 눈길이 안 갔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휘파람’을 불렀던 올여름에는 비교적 무덤덤하게 바라봤다. 지나치게 ‘투애니원’의 기시감이 강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과거 좋아했던 그룹에 대한 의리랄까? 한 가지 더 있다면 비현실적으로 예쁘고 날씬한 것도 문제였다. 외모가 워낙 뛰어났기에 눈길은 빼앗겼지만 정은 쉬이 가지 않는 상황.
이상하다, YG가 예전 컨셉을 버린 걸까?
그러나 10월 31일 ‘불장난’을 보고 난 이후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이 친구들은 정말 ‘예쁜’ 2ne1이구나!
심각한 내적 혼란을 거쳤음을 고백한다. 이 밖에도 ‘여자친구’와 ‘마마무’, 그리고 ‘오마이걸’에도 눈길을 빼앗겼다. 작곡가와의 궁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아주 개인적인 감상평이지만, 올해 걸그룹 노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곡은 오마이걸의 <WINDY DAY>, 레드벨벳의 <Russian Roulette>, 블랙핑크의 <불장난>이었다. 걸그룹 노래가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감격했다).
최근 이러한 저러한 이유로 트와이스’를 연구(?) 중이라고 지인에게 SNS을 통해 고백하자 갖가지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주책이지만 이해한다”는 반응이 점차 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이들을 향한 가장 대표적인 묘사는 ‘예쁜 애’라는 표현이다. 연말 수상식을 전후로 트와이스가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멤버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개 뉴스나 CF를 통해 쯔위 정도를 아는 수준. 결과적으로 이름은 몰라도 ‘예쁘다’라는 사실엔 공감한 셈이다. 이른바 ‘예쁜 걸그룹’!
당연히 반발도 없지 않았다. 과거 엔터 업계에서 일했던 ‘대중문화 K 박사’께선 필자의 관심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렇게 지적했다.
JYP도 (하다하다) 이젠 안되니 결국 외모로 미는 거죠(당신은 거기에 넘어간 거고).
이 질문은 걸그룹을 좋아하는 모든 남성들이 갖게 되는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 과연 우리는 노래가 좋아서 트와이스를 좋아한 것일까? 아니면 예쁜 외모에 반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들의 ‘꽃다운 청춘’을 예찬하는 것일까? K-POP 3세대의 특징은 전례 없이 상향된 외모도 포함된다. 과연 K-POP의 ‘예쁜 애 옆 예쁜 애’ 전략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3. 비선실세가 ‘뮤직비디오 감독’인 나라
한류라는 말은 사그라졌고 촌스럽다 요즘은 각 분야에 ‘케이(K)’라는 수식어로 대체됐다. K-POP, K-드라마, K-푸드, K-문학…한국산 제품에 손쉽게 붙는 ‘K자’ 하나에 글로벌 트렌드가 되는 시대다.
그런데 ‘케이(K)’자가 앞에 들어가니 기분이 심히 불편하다. 그 이유는 케이스포츠-미르재단-차은택 등으로 이어지는 최순실 라인의 횡포 탓이다. 그러고 보니 차은택은 잠시였지만 ‘K-POP’ 진영이 배출한 사상 ‘최강의 권력자’로 활약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참사가 한국 문화계서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각을 바꿔보면, 차은택 사건은 거시적인 흐름에서 살펴보면 ‘K-POP’의 급속한 시각 중시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판에선 함부로 적이 되어선 곤란하다.
어느 업계에나 마찬가지인 격언이지만 대중문화계에선 특히나 뼈저린 조언일 수 있다. 권력 교체가 빠르기 때문이다. 한때 공무원이 주도권을 쥔 적이 있고, 공중파 PD가 권력을 쥔 적도 있다. 라디오 PD가 갑질을 했다가도 순간 예능국 PD가 주도권을 쥐기도 한다.
또 대기업 계열사 광고회사가 권력의 정점에 오른 적도 있고, 스타를 대거 보유한 대형기획사가 부각되기도 했다. 아예 직접 스타가 권력자와의 친분을 이용해 칼자루를 쥔 적도 있다. K-POP 최고의 실력자가 라디오 PD에 뒷돈을 준 게 불과 15년 전. 그러고 보니 MB정권 시대 문화권력자는 전원일기 출신인 ‘유인촌’ 씨였다. 이렇게 권력은 숨가쁘게 움직인다.
평범한 뮤직비디오 감독이던 차은택은 어떻게 대기업 CJ까지 넘어선 대중문화계 비선실세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엔 다름 아닌 ‘K-POP 세계화’의 원동력인 뮤직비디오가 있다. 초고속인터넷으로 깔린 광대역 망 위에 공짜콘텐츠 ‘뮤직비디오’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유튜브가 열어준 광고기반 (공짜)콘텐츠 물결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바로 K-POP이었다. 싸이 강남스타일 28억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K-POP의 성공은 ‘듣는 음악’ 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과감한 전환이었고 그 과정에서 뮤직비디오 감독도 공을 인정받은 셈이다. 권력은 아무나 비선실세로 고르진 않는다. 업계에서 말발이 먹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맥의 중심에 설 수 있게 여러 비즈니스를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적어도 그 후보군에 MV감독도 한 축을 차지했다는 얘기다.
차은택 감독의 ‘악행’은 여기선 논외지만, 그가 K-POP 발전에 기여한 바도 없진 않다. 세기 말부터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찍어온 그는 2007년과 2008년 K-POP의 성장가 함께 비약적인 질적 성장의 한 축이 된 것. 2007년 빅뱅의 <거짓말>, 2008년 빅뱅 <하루하루>, 이효리의 <U-GO-GIRL>이 대표적이다(싸이의 <행오버> MV도 앞선 작품과 영상 문법이 동일하다). 표절 논란도 일었지만 차은택은 미국의 뮤지컬 형식을 적절히 빌려오고, 노래 부르는 장면이 대부분이던 기존 형식을 파괴하며 영화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절하게 접목하는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4. 절대 잊지 말아야 할 ‘투애니원’의 유산
2016년 11월 25일 ‘투애니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차은택의 급부상 및 몰락과 더불어 올가을 K-POP 진영의 가장 큰 충격은 YG의 대표 여성그룹 2NE1의 해체였다. 2009년에서 2011년 무렵 필자가 ‘삼촌팬’ 과 ‘오빠팬’ 사이이던 시절 가장 아끼던 걸그룹은 투애니원이었다. 물론 그때도 소녀시대 팬이긴 했다. 하지만 소녀시대를 좋아한 이유는 압도적 규모의 콘서트 매력에 흠뻑 매료됐기 때문이다. 음악과 뮤비 관점으로만 본다면 투애니원은 노래 하나하나, 영상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는 K-POP의 보석과 같은 존재였고, 세계적 흐름에 가장 근접한 선두주자였다.
특히 멤버 네 명의 개성과 음악적 역량이 착착 들어맞는 상쾌함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일각에선 ‘여자 빅뱅’이란 폄하도 없진 않았지만, 오히려 빅뱅이 갖지 못한 장점도 많았다. 때문에 6년 전 필자는 세계 시장에서 빅뱅보다 그녀들의 성공이 더 빠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현재(공정위가 권한 걸그룹 계약 표준) 빅뱅이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고 반면 투애니원의 현실은 자못 실망스럽다.
이들의 갑작스러운 해체는 걸그룹이 당면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증거가 된다. 반대로 걸그룹의 위상 회복이 여전한 숙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팬들이 절대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연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녀들은 이리 쓸쓸히 인사하고 떠나야 할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비선실세 차은택, 투애니원의 해체와 블랙핑크의 등장, 그리고 ‘대세돌’ 트와이스의 급부상은 2016년 K-POP 진영의 흐름이 완벽하게 비디오(외모)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다. 우연일지 몰라도 ‘트와이스’란 이름의 작명 배경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번’을 뜻하는 영어 Twice(트와이스)를 택한 이유가 ‘귀로 한 번’, 나아가 ‘눈으로 또 한 번’ 감동을 주겠다는 의도라는 것.
가수의 노래는 원래 ‘귀’로 듣는 법. 때문에 트와이스는 ‘시각적 만족’을 강조한 작명일 수밖에 없다. 이는 멤버 9명의 비주얼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얘기다.
실제 <SIXTEEN> 방영 전 일본팀 멤버로 JYP 연습생을 했던 한 연습생이 트와이스 결성 뒷얘기를 커뮤니티에 비화처럼 풀어 놓은 적이 있다. 자신이 일본으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외모에 대한 부족함을 고백하며 “JYP는 연습생들의 실력도 중시하지만 외모를 더 중시한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걸그룹의 장인’, ‘걸그룹의 명가’로 꼽히는 JYP에는 실력 있는 여자 연습생들이 대거 집결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장소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 결정판인 공개오디션 <SIXTEEN>의 등장은 사실상 팬들의 ‘시각적 자극’을 근거로 화려한 외모의 걸그룹을 만들려는 명분을 얻기 위한 행사라는 해석도 심심치 않게 제기됐다. 후보들과의 스킨십이 불가능한 시청자들에게 TV 화면으로 멤버를 뽑는 오디션이란 결과적으로 ‘시각적 매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엠넷의 <Produce 101>도 마찬가지다. 공개오디션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다.
5. 외모로 관심이 집중되면 K-POP의 미래는?
오사카 인근에서만 3명을 뽑았는데 적수가 없네.
– 한 한국 누리꾼의 한탄
K-POP이 뮤직비디오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걸그룹 멤버들의 ‘외모’에 무게를 두게 됐다는 주장은 너무 뻔한 얘기다. 걸그룹에게 외모는 오래 전부터 본질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왔다. ‘예쁘지 않은 아이돌’이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그러나 예쁘장한 외모에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자원이 충분할 리 없다. 때문에 과거 1세대와 2세대 걸그룹은 멤버들의 역할을 ‘보컬’ ‘퍼포먼스(댄스)’, ‘미모’, ‘외국어’ 등으로 나눠 팬들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연습생 수급이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되면서 이같은 고민이 해소가 된 것이다. 최근 방송사 오디션에 등장하는 연습생 일부만 슬쳑 쳐다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필리핀계 크리샤 츄와 같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K-POP 도전까지 심심치 않게 이뤄지는 형국이니, 걸그룹의 데뷔 (외모, 능력치) 기준 자체가 한 단계 이상 높아진 셈이다.
최근 트와이스 ‘미사모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온라인에선 한국인의 외모 경쟁력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과거 외국인 멤버들는 적지 않았지만 ‘미나-사나-모모-쯔위’ 만한 경쟁력을 지닌 이들이 흔치 않았던 탓이다. 트와이스의 외모 경쟁력은 탁월한 수준. 때문에 많은 팬들은 “(수많은) 연습생을 갈아 넣었다”는 잔인한 표현까지 내뱉을 정도다.
아이돌 팬덤에는 ‘회전문’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그룹의 멤버 1명에 일단 매력을 느꼈다면 곧 그 애정이 점차 바뀌어 전체 멤버를 한 번 돌고 나서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트와이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정연으로 시작했지만, 곧장 사나로 바뀌었고, 다시 미나에게 관심이 쏠렸으며, 다시금 나연과 채영에게로 돌아갔다가 다시금 정연에게 돌아왔다. 회전문을 타게 되면 몸과 마음이 굉장히 바빠진다. 멤버가 9명쯤 되면 2명씩 이뤄지는 조합도 36가지나 나온다. 예를들어 ‘사이다(사나+다현)’, ‘미챙(미나 채영)’, ‘나모(나연 모모)’ 등 봐야할 콘텐츠도 늘고 자연스레 트와이스 소비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면 소속사 수익은 올라간다
‘애교 섞인 미모’를 싫어할 이는 없지만 한 편으로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트와이스의 출중한 외모가 장기적인 관점에선 K-POP 진영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다. 한국인의 신체 조건이나 외모가 아시아에서 뚜렷한 장점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사모쯔’의 위력에서 느꼈겠지만 신체적 조건에서 한국의 자원은 5천 만 인구라는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다. 인구대국인 중국과 패션 강국 일본의 옆에서 K-POP을 단순히 비디오 중심으로 만들게 된다면 장기전에서 K-POP의 근거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6. 정상에 선 트와이스의 ‘위협요인’
트와이스에 대한 첫 번째 글을 쓰던 두 달 전과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미 두 달 사이에 정상급 가수로 올라선 것이다. 그 덕에 불과 두 달 전 글은 ‘칭송’으로 일관했다면 마지막 3편에서는 ‘위협 요인’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게 됐다. 신인에겐 칭찬이 필요하지만 1등에게는 비판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시장의 무게 축이 ‘예쁜 애’와 ‘예쁜 짓’을 좋아하는 트렌드로 바뀐 것이 가장 중대한 위협 요소라고 생각한다. 1편에서 필자는 그녀들의 인기의 비결을 ‘당당한 애교’라고 표현을 한 바 있다. 5~7년 만에 K-POP 문화를 돌아보며 삼촌 팬 혹은 아재 팬으로서 느낀 점은, 트와이스의 인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일종의 ‘일본화(재패니피케이션)’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였다.
경제 용어에는 재패니피케이션(Japanification:일본화)이란 개념이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원래 이 말은 아시아 젊은이들이 일본 문화에 열광하며 동조하는 현상을 의미한 것이다. 어느 한 문화가 소극적인 유미(유미)주의로 흘러간다는 얘기다. 바둑에서도 한때 일본 바둑을 세계1류로 대접했지만 기사들이 관념주의와 낭만주의에 빠져 ‘전투’라는 개념을 소홀히 하면서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빼앗긴 것과 같은 이치다. 일종의 갈라파고스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반복된 현상이다.
사례로 설명을 해보자.
10년 전 아이돌의 팬클럽 사인회나 악수회는 결코 흔한 문화가 아니었다. 일단 스타와의 만남 자체가 극히 제한됐다. 한국적 개념에서 ‘스타’란 쉽게 볼 수 없는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 서태지가 일군 K-POP 문화의 기저에는 ‘슈퍼스타’라는 개념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2세대 아이돌 그룹의 등장과 미디어 시장의 다변화로 이런 구도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적극적으로 팬덤을 관리하고 인기 유지의 수단이 된 것이다. 자연스레 팬들은 ‘고객’이 됐다. 팬들의 눈높이에 기준점을 낮춘 것이다.
최근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트와이스 사인회’는 필자에겐 일종의 충격이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멤버 이름을 호칭 없이 “정연아, 나연아, OO야”라고 부르며 막 대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나는 자신보다 나이가 1~2살 많은 팬을 향해서도 ‘언니’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무대 위에서는 ‘여신’일 수 있지만 무대 아래서는 친근한 ‘언니 동생’으로 남는다는 아이돌그룹 시장의 생존 전략의 실천이었다. 치열한 경쟁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고, 혹은 ‘친근한 동생으로 남겠다’는 일본식 아이돌 문화의 연장선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최근 등장하는 걸그룹들이 늘씬한 아이들이 섹시한 복장을 버리고 여리여리한 복장을 입기 시작한 점도 심히 마음에 걸린다. 과거 ‘섹시’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2.5세대 K-POP 걸그룹은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J-POP을 압도한 전과는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K-POP의 ‘섹시’ 코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러 아시아 지역에서는 여전히 급진적인 코드이기도 하다.
반면 급속도로 늘기 시작한 세라복이나 청순 애교 코드는 분명히 이는 일본화의 한 징후로 읽힌다. K-POP 팬의 관점에서 일본의 아이돌 문화는 굉장히 ‘퇴행적’으로 본다. 그런데 K-POP이 어느새 그길로 갈 수도 있는 갈림길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앞서도 강조한 ‘외모 중심주의’가 돌아올 부메랑 효과가 있다. 현재 K-POP 걸그룹을 준비 중인 수많은 연습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외모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 그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치열해질 것이다. 게다가 트와이스는 성공의 한 방정식을 풀어낸 3세대의 선두주자가 됐다. 사실상 트와이스와 엇비슷한 컨셉이 반복 재생산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그것이 외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문제다. 결과적으로 트와이스가 과거 소녀시대처럼 롱런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올 수 있다.
트와이스는 노래 가사에서도 일부 재패니케이션의 징후가 읽힌다. 대표곡인 <Cheer up>의 훅 가사를 살펴보자.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 그래야 니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
하지만 2010년 소녀시대는 <The Boys>에서 이렇게 외친 바 있다.
Girls, Bring the boys out
당장 가사 속의 태도만 살펴봐도 크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아이돌 산업의 본질적 존재 이유와 맞닥뜨리게 된다. 산업이지만 예술성을 담보해야 하는 대중문화의 딜레마를 말이다. 소비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소녀들이 단순히 인형이 아니었으면 싶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험하다.
7. 다시 문제는 ‘시장의 민주주의’로 돌아간다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연극의 4대 요소’라는 퀴즈가 있다. 정답은 짐작한 대로 ‘무대, 배우, 희곡, 관객’이다.
앞의 세 가지 요소는 기획사에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관객만큼은 절대 불가능하다. K-POP이 이제껏 성장한 배경에는 다름 아닌 높은 관객 수준이 유지됐기에 가능했다. 시민사회에서 불공정 계약을 견제하면서 어린 연예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드라마와 영화시장의 동반성장으로 뮤직비디오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음악인들의 층이 두꺼워지면서 음악을 소비하는 안목과 취향이 높아지고 다양해진 덕분이다.
일본 J-pop이 몰락한 배경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다. 최근 해체를 선언한 아이돌 그룹 SMAP, 그리고 또 다른 인기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가 20년 남짓 정상의 자리를 지킨 것이 대표적 징후이기도 하다. 호황기에 탄생한 스타를 불황기 스타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로 기획사 ‘쟈니스’의 장기 집권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단일 기획사가 남자 아이돌 시장을 장악하면서 시장의 왜곡이 장기화된 것이다. 이른바 팬들도 기획사의 입맛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필자 역시 SM와 YG, JYP 등 유력한 기획사의 행보에 관심이 간다. 특정 기획사가 장기집권하는 모양새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음악적 DNA를 어떻게 계발하고 자사의 대중예술가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특히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트와이스의 급부상을 바라보며 PD로서의 박진영을 다시 평가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 엔터 산업의 거목 JYP에 대한 필자의 인식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사실 필자 세대는 박진영PD와 같은 문화를 향유한 ‘동시대 음악 소비자’였다. 우리 세대는 10대 시절 서태지로 영감을 얻었고 20대 브릿팝의 세례를 받았으며 미국의 록과 재즈 언플러그드 영향을 받은 세대다. 그런데 그 시절에 비닐 바지를 입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며 춤추는 그에게 존경심이 생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묘한 잘난 체나 근거 없는 자신감 역시 비호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K-POP STAR>와 <SIXTEEN>을 보면서 그에 대한 편견을 깨우친 것이다. 그는 이미 걸그룹 거장이 되어 있었고 스타들의 큰 스승이 되어 있었다. 그의 세밀하고 조근조근한 심사평, 과장되어보이지만 선수에 대한 애정과 찬사가 필자의 맘을 사로잡은 것이다. 10대 엔터테이너 지망생에 대한 조언을 과연 그만큼 맛깔나고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것인가? 그것도 사려 깊은 수준으로 말이다.
차제에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JYP를 필두로 보다 다양한 기획자들이 보다 공정한 플랫폼 위에서 다채로운 경쟁을 벌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을 감시하는 것도 또한 팬들의 의무이자 소비자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K-POP 시장은 마치 영국의 EPL처럼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시장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젊은 인재들이 빠르게 유입된다. 당연히 우리 1류 기획자들도 그 젊은 외국인 인재들을 한국식으로 육성해 K-POP 산업 안으로 포섭해 낸다. 자연스레 해당 국가의 10대 20대 젊은이들은 다시 이런 시스템에 열광한다.
여기에 뛰어난 작곡진, 뮤직비디오 감독들, 그리고 방송산업 관계자들이 톱니바퀴처럼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워 나간다. 소녀시대 시절의 유튜브 조회수가 곡당 1억 대였다면, 트와이스와 블랙핑크 시대는 가뿐하게 2억 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멤버들은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 K-POP의 패션과 문화를 전파할 것이다.
이는 이른바 EPL의 명문구단 맨유, 첼시, 아스날 등의 사업 확장 전략이다. 물론 시장이 커지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규제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왕이면 EPL의 레스터시티 같은 동화스토리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7부 리그 출신 제레미 바디와 아프리카 출신 마레즈와 캉테가 K-POP에서도 더 많이 출연해야 한다.
당분간(중국이 민주화되기 전까진) K-POP 신이 아시아 10대 엔터 시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기왕이면 중국도 ‘한한령’이 아니라 한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중문화 교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과연 그 이후 한국의 가요시장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가? 아니 트와이스 9명 멤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필자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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