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 K-POP의 핵, 연습생 제도
요즘 한창 인기 있는 <K-POP 스타 6>에서 연습생들의 경쟁 오디션 심사에 처음 참가한다는 유희열이 옆 좌석의 전문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우와! 이런 연습생 제도가 다른 나라에도 있나요?
안테나 뮤직의 수장은 17살의 나이에 기획사 연습생을 위해 미국에서 건너온 필리핀계 크리샤 츄, 5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던 이수민, 그리고 2년 차 김소희의 뛰어난 재능에 놀랐던 것 같다. 그러나 JYP나 YG는 이미 오래전 조사를 마쳤다는 듯 자신 있게 답한다.
없어요. 일본과 한국 정도?
거기에다 일본 아이돌과 한국 아이돌의 차이는 여러모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마치 ‘서울대 입시’ 준비하듯 높은 완성도를 위한 치열한 연습생 제도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SES와 H.O.T. 등을 성공시킨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하여 1990년대 메이저 기획사를 중심으로 태동한 이 제도는,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해외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취재 대상이 되어왔다. 10대 중후반의 꽃다운 청춘이 학업 대신 연예인이 되기 위해 단체로 합숙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영국의 BBC는 2011년 K-POP의 연습생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노예계약의 실태를 보도했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BBC는 한국을 “작은 나라임에도 콘텐츠 분야에선 슈퍼 파워”라고 묘사하며 한국의 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소개하고 나섰다. 그 중심에는 아시아 10대 컬처 시장을 장악한 K-POP이 자리하고 있고, 이 시스템의 핵심은 ‘끊임없이 젊은 인재’들의 끌어당기는 연습생 제도에 있다. 현재 K-POP 산업의 경쟁 우위는 최고 수준의 안무가와 작곡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슈퍼 기획자들과 유기적으로 협업해 ‘스타’라는 상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데 있다.
영상의 ‘때깔’이 좋아지고 멜로디의 중독성이 높아질수록 이에 동조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산업이 커진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세계 각국의 젊은 영재들이다. 대중가요 시장은 드라마와 영화와 달리 국적과 문화에 비교적 자유롭다. 유럽의 대표적 축구리그 EPL이나 라리가에서 운영하는 ‘유스 시스템’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K-POP의 연습생 제도다. 아시아의 젊은 예능인이라면 한국 시장을 한번 두드려보고픈 욕망을 품게 만든 것이다.
해외파 연습생, K-POP스타의 본격적인 등장은 ‘한류’의 위대한 성취이자 과거와 달라진 새로운 ‘리스크’라고 정의해도 될 듯싶다.
2. MAMA 올해의 ‘노래상’과 모모 친언니
지난달 「‘트와이스’, 완전히 새로운 걸그룹의 시작을 알리다」를 쓰면서 겁부터 덜컥 났다. 젊은 세대의 관점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악평보단 “무난히 정리했네”는 밋밋한 평을 주로 들었다. 글 전반에 트와이스에 대한 호감이 깔렸던 덕분이다.
물론 몇 가지 지적도 받았다. 첫째는 트와이스의 차별점으로 거론된 ‘애교’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지적, 그리고 트와이스가 ‘K-POP의 3세대 기준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트와이스의 애교가 ‘과거와는 달라진 적극적인 태도’라는 사례와 ‘비글미 넘치는’ 생동감, 그리고 ’10년 주기설’을 예로 들었다. 이에 미진함을 느껴 이번 글을 준비하게 됐다.
과연 K-POP의 근미래는 어떻게 펼치질까? 트와이스 얘기를 근거로 풀어나갈 수 있을 듯 싶다. 아래 이미지는 2016년 12월 3일 트와이스가 Mnet이 주관하는 MAMA ‘올해의 노래상’이라는 대상을 탄 다음 날의 트위터다.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모모’의 친언니가 올린 감상이 담겼다.
중학교 때 TV에서 보던 세계에
내 동생이 나와서 굉장하다고 느꼈다.
나 자신, 더 많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내일 일찍 자♡’
‘댄스 자매’로 유명한 모모의 친언니는 JYP의 일본 오디션 때 모모와 함께 응시를 했다가 탈락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실력만 보면 엇비슷했겠지만 아마도 JYP 실무자 입장에선 실력과 발전 가능성, 한 집안에서 두 명을 뽑는 것에 대한 부담 등의 이유로 모모를 선택했을 것이다. 1996년생인 모모가 한국에 온 시점이 2012년이란 점(당시 16살)을 고려하면 19살을 전후로 데뷔하는 걸그룹 시장의 특성상 모모의 언니는 시대가 미묘하게 맞지 않았다. 경쟁자이면서도 후원자인 언니가 ‘아시아 최고의 음악상’인 MAMA의 상을 받은 20살 된 동생에 느끼는 감정은 얼마나 특별할까? 아주 짧은 트위터에 그 감상이 오롯이 담긴 것이다.
‘중학생 때 TV에서 보던 세계에 동생이 나왔다’
이 간단한 표현에는 깊은 함의가 담겨 있다. 13살에서 16살에 이르는 중학생 시절은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 첫 단계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사회와 충돌하며 자의식을 넓혀간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이들은 또 앞세대와 다른 자신만의 스타를 발견하고 공유하며 동질감을 획득한다. 이들 소년, 소녀의 눈에 간택되기 위해서는 동시대 가장 세련되고 첨단 문화이어야만 한다는 것. 한마디로 ‘섹시’하고 ‘쿨’내 넘쳐야 한다.
그런데 오사카에 사는 10대 소녀들의 눈에 간택된 ‘섹시한 음악’이 미국, 영국의 팝이 아니고 자국의 J-pop도 아닌 이웃 나라의 K-POP이라는 점은 놀라운 변화다. 전례도 없고 어디서든 유사 사례마저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의 10대 청소년들이 K-POP에 매료된 계기는 ‘TV에서 나오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즉 눈으로 보는 ‘공짜 음악’이었다는 게 핵심이다. 꽉 막힐 정도로 답답한 학교와 기성 사회라는 굴레를 인식한 청소년들이 청량한 TV 속 세계에 열광하는 것이다.
화려한 조명과 스타, 그리고 춤과 음악의 자유가 있는 세계. 일본인 모모와 언니 하나는 2010년 K-POP의 전성기 시절을 TV와 유튜브를 통해서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모모는 우연한 행운을 붙잡아 연습생이 된다. 4년 뒤, 일본인으론 처음으로 한국에서 주는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모모의 고향 교토에서 TV로 이를 지켜본 언니의 감정이 아주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세계에 내 동생(트와이스의 모모)이 나와서 굉장하다고 느꼈다.
K-POP은 분명 토머스 프리드먼이 묘사한 ‘평평한 세계’의 덕을 보는 동시에 다시금 평평해질 수 있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굴곡진 역사를 가진 아시아 시장이란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
3. (아시아) 외국인 멤버는 왜 3세대의 근거일까?
K-POP 3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전편에서 언급한 것과 동시에 ‘외국인 멤버’ 혹은 국제화로 요약된다. 남자 아이돌인 EXO나 GOT7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2015년 이후 등장하는 K-POP 걸그룹들은 외국인 멤버가 주요한 트렌드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CLC : 중국인 1명, 태국인1명 (2015년 3월 데뷔)
- 트와이스 : 대만인1명, 일본인3명 (2015년 10월 데뷔)
- 우주소녀 : 중국인 3명 (2016년 2월데뷔)
- NCT : 일본인 1명, 태국인 1명, 중국인 3명 (2016년 4월 데뷔)
물론 반론도 나올 수 있다. 이미 1990년대 후반에 ‘써클’이라는 한일 합작 걸그룹이 존재했고, 2세대 걸그룹의 막내인 MISS A에도 중국인 페이와 지아가 있었다. f(X)에도 대만계 미국인 엠버와 중국인 멤버 빅토리아가 있었고, 1세대 원조 아이돌인 SES에는 재일교포 슈가 있었다. 그런데 이같은 해외파 멤버에도 일정 정도의 흐름이 있다.
즉 1세대 서막을 알린 SES에는 미국에서 잠시 살다온 유진과 재일교포 슈가 있었다. 막강한 경쟁자 핑클은 한국인 4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2세대 걸그룹의 기준이 된 소녀시대는 한국계 미국 출신 교포가 2명(제시카, 티파니), 슈퍼주니어에도 중국인 멤버 일부가 있었다. 2NE1의 경우 산다라 박이 필리필 문화를 비교적 오래 경험한 편이다. 그리고 3세대 걸그룹인 ‘트와이스’에는 아예 일본인 3명, 대만인 1명이 포진해 있다.
즉 1세대는 선진 문물을 접한 ‘교포’ 출신이 일부 존재했다면, 2세대부터는 교포 영입이 보다 활발해졌다. 해외 시장(특히 중국) 진출을 위해 픽업 형식의 인재 영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3세대부터는 K-POP의 매력을 알기 시작한 해외팬들이 직접 한국 연습생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각 기획사의 공개 오디션이나 방송국(<슈퍼스타K>, <K-POP 스타> 등의 프로그램)의 오디션을 통해 K-POP 가수들의 출신 국적이 다양해진 것이다.
- 걸그룹 1세대 (한국인) → 2세대 (한국인+교포) → 3세대 (한국인+ 아시아 주요 도시 출신)
얼마 전 태국에서 연예 관련 기획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A사장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음악 강국 태국은 K-POP의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그는 최근 JYP의 GOT7과 YG의 블랙핑크가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각 그룹에 소속된 태국인 멤버들 덕분이다. GOT7에는 뱀뱀이라는 태국 출신 멤버가 있고, 블랙핑크에는 멤버 리사가 태국 출신이다. 이들은 10살이 갓 넘었을 때 한국으로 건너오는 도전에 나서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스타가 될 기회를 낚아챘다. 이들의 진출이 K-POP의 폭과 깊이를 더한 셈이다.
동남아의 대표적인 산업국가이자 예능 대국인 태국은 이미 2PM의 닉쿤을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다. 훤칠한 키에 화려한 외모, 그리고 태국인 특유의 공손한 매너를 지닌 닉쿤을 통해 K-POP과 태국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 태국에서 한류의 인기는 대만 버금갈 정도로 높다. 트와이스를 선발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SIXTEEN>에서도 닉쿤과 최연소 참가자 ‘나띠’가 서로 태국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A대표에게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한 가지 더 있다. 블랙핑크의 리사는 10살 소녀 시절에도 춤으로는 대적할 경쟁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YG 오디션 당시 많은 태국 연예계 관계자들이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로 YG는 선머슴 같던 그녀를 선발했고, 6년 만에 미국의 정상급 팝스타와 경쟁해도 전혀 눌리지 않을 최고의 스타일로 환골탈태시켰다. 단순히 예쁜 외모가 아닌 개성미 넘치는 힙합 분위기를 더한 것이다.
이 장면을 태국 연예계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리사를 접했다던 한국인 대표 역시 “K-POP의 경쟁력을 리사의 예시에서 단적으로 찾을 수 있다”면서 “여기선 상상할 수 없었던 무대 매너와 더불어 핫한 스타일을 입혔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4. K-POP 아이돌에게 위험한 것, ‘국기(國旗)’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3세대 논쟁의 핵심은 K-POP의 ‘아시아 소비자’들이 다시 ‘생산자’로 유입되는 선순환 구조다. 이 관점은 한편으로는 K-POP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복잡한 국제문제의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K-POP 아이돌 산업은 현재 아시아 국제정치 지형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고, 또 그만큼의 영향력을 되돌려줄 위상을 확보한 셈이지만 결론적으로 셈법이 확실히 복잡해진 것이다.
3세대의 대표격인 트와이스가 바로 그 경험을 한 첫 번째 사례다. 공교롭게도 일본과 대만은 한국과는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1세계의 일원이지만 정치경제학적으로는 최대 시장 중국과 노골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인 회색 지대에 있는 국가에 가깝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 보자. 중화권 첫 여성총통이 탄생하는 날인 2016년 1월 16일이다. 야당 소속 민진당 차이잉원의 승리는 예정된 결과였다. 당시 국제부에서 일한 필자는 당시 현장취재를 위해 타이페이 출장을 간 특파원과 다음과 같은 통화를 나눴다.
특파원 A : 와, 쯔위가 누구야? 이번 선거는 쯔위가 판가름한 선거네.
필자 : 에이, 설마요, 원래 차이잉원이 이길 선거였잖아요?
특파원 A : 물론 그렇긴 한데, 대부분 사람들이 쯔위와 대만 국기 얘기를 하네.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어.
K-POP의 오늘과 내일을 논할 때 꼭 빠질 수 없는 이야기다. 바로 쯔위의 ‘청천백일만지홍기(대만국기)’ 사건이다.
요약하자면, 대만 출신으로 처음 K-POP에 발탁된 16살 쯔위라는 소녀가 한국의 한 방송에 대만 국기를 들고나와 큰 후폭풍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에 황안이라 불리는 대만 출신 연예인이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중국에 충성서약을 하고 나섰고, 결국 중국 정부가 ‘트와이스 = 친 대만 독립파 연예인’으로 보게 된 황당한 사건이다.
대만 출신인 쯔위의 입장에서는 대만인이 대만 국기를 흔드는 이 장면이 별 이상할 것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으로 시야를 확대했을 경우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때문에 한국 방송계나 연예계는 미처 예상치 못한 파장에 당황해야 했다.
아시아 정치 지형의 갈등을 상징하는 국기와 관련된 갈등은 비단 쯔위 사건뿐만이 아니다. 예능인으로 발걸음을 옮긴 소녀시대 티파니의 꿈을 좌절시킨 것은 본인의 SNS에 올린 한 장의 ‘욱일승천기’ 이미지였고,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미나의 미래에 먹구름을 끼게 할 뻔한 ‘반쯤 접힌 전범기’ 모자 사건도 있다. 한국과 중국인 정서에 반하는 일본 제국주의 ‘전범기’는 K-POP의 미래에 치명적인이다. 이 점은 직관적인 교육이 가능하기에 JYP나 SM 등의 대형기획사라면 상식적인 대처가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쯔위의 사건은 조금 다르다. ‘하나의 중국’이란 대명제는 오로지 중국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시키거나 대응하지 결코 쉽지 않은 사안이다.
5. 홍콩과 태국, 일본 출신 K-POP 스타가 가능한 이유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K-POP의 상징이 된 ‘소녀시대’의 단독콘서트가 이뤄진 국가들은 어디일까? 상식적인 선에서 예측 가능하다. 충분한 팬을 확보했으며 티켓파워를 가진 아시아 선진도시를 떠올리면 그게 정답이다.
일본(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중국(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만(타이페이), 홍콩, 싱가포르, 방콕 등이다. 그러니까 소녀시대 단독 콘서트가 이뤄질 만한 도시는 아시아의 가장 첨단 문화가 유통되는 곳이면서, 흥미롭게도 중국의 ‘베이징’을 제외하면 모두가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개인적으로 2009년 무렵 캄보디아에서 만난 영국인 기자를 한 명 알고 있는데, 태국과 미얀마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일한 이 친구는 2013년 무렵에 내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얘기를 건넨 적이 있다.
내가 동남아에서 8년을 살았는데, 어딜 가도 10대 청소년들은 K-POP을 듣고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영미팝, 혹은 일본의 노래를 주로 들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시아에서 K-POP은 진정한 1세계 문화라고 본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의 ‘K-POP=1세계’ 표현은 나의 머리를 ‘쿵’ 치고 지나가는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과감한 가설을 세울 수 있는 바탕이 됐다. 바로 K-POP이 ‘아시아 1세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그리고 주된 소비처는 아시아의 1세계와 제3세계라는 점이고, 연습생을 배출한 미국 서부, 태국, 홍콩, 일본, 대만, 중국 해안가 등지가 바로 아시아 1세계라는 점이다. 그리고 반대로 1세계와 대립하는 아시아의 2세계가 존재한다면 바로 거대 문화시장을 배경으로 1세와의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중국 본토라는 가설이다.
K-POP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가 있다지만, 사실 아시아는 그렇게 ‘평평한 세상’은 아니다. K-POP의 소비자가 되기는 쉽지만, 생산자로 바뀌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팝스타는 대중문화의 최고 엘리트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습득하는 문화는 엄마 뱃속에서 나자마자 받게 되는 온갖 미디어 세례의 총합이다. 그 격차는 한두 세대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트와이스의 모모가 3살에 스트릿 댄스를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적어도 ‘춤’에 대해 기본적인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멋스럽게 뽐낼 줄 아는 ‘스웩’을 몸으로 체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쟁 체제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예쁜 춤선과 고급스러운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레 등의 클래식 문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풍부한 곳에서 자라야 하는 것이다.
2, 3세대 연습생들의 출신지를 들여다보면 대개 아시아 1세계 출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지역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충분한 문화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곳이다. 즉 정부에 대항하는 ‘촛불시위'(한국), ‘우산시위'(홍콩), ‘레드셔츠'(태국) 등이 존재하는 곳이다.
즉, K-POP의 생산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의 요체는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라는 이야기다.
6. 중국의 한류 금지령(한한령)이 의미하는 바는?
SM의 이수만 회장은 1990년대 후반 H.O.T를 이끌고 중국 베이징에서 마주했던 감동을 자주 이야기한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중국의 10대 청소년들, 한마디로 그는 아이돌 문화의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했고 이후 중국 시장 개척에 몰두하게 된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난관에 봉착한 것도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K-POP 산업이 미래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을 노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동안 규모 있는 중국의 예능 관련 학교에 한국 연예기획사 캐스팅 담당자들이 휩쓸고 다녔다는 것 또한 공인된 이야기다. 이들이 중국의 틴에이저 엘리트 예능인을 발굴해 한국으로 뽑아와 ‘톱스타’ 교육을 시킨 것이다.
하지만 K-POP 시장에서 성장한 이후엔 거대한 중국의 힘에 이끌려 중국 시장으로 흡수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중국(2세계) 시장의 힘과 인력(引力)이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3세대 개화를 앞두고 터져 나온 사건이 ‘쯔위 국기’ 사건과 2016년 여름의 ‘한한령(限韓令, 한류를 제한하는 명령)’이다. 이 정책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 수위와 강도에 대해서 논란이 있지만, 중국에서 한류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 조치가 ‘사드 배치’ 논란의 연장선에 있는지가 논란이 됐지만, 이제까지 중국이 자국의 산업을 키운 전례로 미루어 볼 때 예정된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대중문화와 관련된 부분은 정치와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이 손쉬운 ‘통제’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단적인 사례로, 중국은 1998년 인터넷 혁명 이후 줄곧 자국의 인터넷 시장을 해외와 단절시키며 ‘웨이보'(트위터), ‘웨이신(페북)’, ‘알리바바(아마존)’ ‘텐센트(게임)’ 등을 키워냈다. 덕분에 현재의 중국은 미국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IT 거인이 됐다. 이 같은 과정이 방송과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리라는 게 이미 공인된 예측이다. 그리고 이 모든 중국의 대전략의 한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이다.
손문이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이후, 복잡하게 뒤엉킨 중국의 역사를 통합하고자 했던 베이징 공산당 정부의 최종 목표이자 세계 전략의 핵심이 바로 이 ‘하나의 중국’ 원칙이다. 이는 아마 중국 정부가 존속하는 한 꾸준하게 제기할 명분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나 다를 바 없는) 중국 입장에서 ‘쯔위 사태”를 바라보면서 “K-POP은 상당히 위험한, 문화산업의 경쟁자를 넘어 체제 유지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시각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이미 20년 전 단교를 한 상태인 만큼, 한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입장에 동조해 대만 국기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지 않아야 지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편 대륙의 영향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대만의 진보 민진당은 보수여당 국민당을 패배시키고 정권을 획득하는 와중에 쯔위라는 K-POP 가수의 지위를 정치적으로 활용했고, 그래서 쯔위는 의도치 않게 아시아 정세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현재 아시아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현실을 정확히 보여주는 가늠자가 됐다. 즉, 아시아 예능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사이에 급속도로 틈이 생기고 있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중화권 내의 ‘주종 관계’를 확약받고 싶어 하는 2세계 중국과 기존 1세계의 충돌은 앞으로 아시아 국제정치 지형도에 심상치 않은 후폭풍을 던질 것이다.
1세계 진영의 관계도 역시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일본과 한국만 해도 양국의 과거사와 일본의 우경화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트와이스 사례에서 보듯이, 여전히 민간 분야에서는 양국이 주종 관계없이 활발하게 교류를 펼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일본에서는 트와이스를 통해 ‘일본인이 3명이나 끼어 있는 그룹이 단숨에 인기 정상으로 올라간 사례’에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단순히 일본인을 적으로 인식하며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대만과 태국(을 포함한 아세안)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문제는 돌고 돌아서 다시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7. 트와이스는 대만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을까?
2015~2017년 트와이스 3개의 공식 뮤직비디오 <OOH-AHH하게>, <Cheer Up>, <TT>는 차례대로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유튜브 1억 뷰를 달성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2억~3억 뷰 수준까지는 올릴 여력을 확인한 셈이다. 3세대 K-POP의 거대한 성취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억 명이 봤다는 이 3대 뮤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5%(1/4) 정도다. 놀랍게도 2위는 대만이다. 그러니까 대만 인구에 가까운 1,500만 명이 3대 뮤비를 다 시청했다는 얘기다. 대만인들이 쯔위에 대해 갖는 애정 또한 특별하다. 트와이스에 대한 대만 청소년들의 애정 표현은 대만이 K-POP 시장과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면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과연 JYP는 대만에서 트와이스의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을까?
아마도 트와이스가 대만에 가게 된다면 2만 명이 찰 수 있다는 타이페이 아레나는 ‘청천백일만지홍기(대만국기)’로 물결칠 것이다. 그 순간 트와이스의 중국 진출 가능성은 ‘0%’가 된다. 대만 청소년 2만 명을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옳다. 이것은 비즈니스 하는 기업인 입장에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위기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IT 계의 거목인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구글은 중국 시장이 막힌 상태에서도 전 세계 시장을 싹쓸이하면서 1세계의 지존이 됐다. 이처럼 K-POP은 중국 시장 없이도 1세계의 지지만으로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반대로 중국이라는 커다란 시장에 집착하다 첨단의 세련미를 잃을 가능성은 없을 것인가?
과연 SM과 JYP YG는 어떤 전략으로 이 위기를 대처할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인가? 트와이스는 대만과 일본, 아세안 시장에 진출할 것인가? 반대로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인가?
이 대목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필자는 이미 기사 안에서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더 자세한 얘기는 ‘트와이스’ 특집 3편에서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