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분명>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여성 혐오라는 지적에 광화문 집회에서 DJ DOC가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꽤 논란이 많은데,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문제가 되는듯 하다.
1. <수취인분명>의 가사는 여혐인가?
여혐이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이미 많이 지적된 부분으로는 ‘미스’라는 호칭이 한국에서 직급이 낮은 여성을 하대하는 표현이라는 점이 있다. 아가씨라는 뜻의 스페인어 ‘세뇨리따’와 새누리당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쎄뇨리땅’ 같은 표현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부분보다는 후렴구의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부분이 더 여성 혐오적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에 미용 시술에 사용되는 약물들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한 공적 문제 제기보다는, 성형을 하고 자동차라는 남자의 물질적 풍요에 매혹되는 여성 스테레오타입(흔히 말하는 된장녀)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누차 지적된 부분이지만, 우리가 비판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지, 여성으로서의 박근혜가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점을 비판해야지,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을 후려쳐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수취인분명>의 박근혜 비판은 방향이 잘못됐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정당한 비판이 아니다.
2. 가사가 여혐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 아닌가?
만약 이 노래가 대중에 공개되지 못했다면 잘못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이미 대중에 공개됐고, 그 가사가 공론장에서 논의됐다. 공개되지 못했다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이미 발화가 이루어졌는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느니 하는 건 억지다. 이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은 게 아니라, 공론장에서 <수취인분명>이라는 하나의 발화가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반대 측의 발화에 패배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의견을 합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검열’이라고 표현하는데, 검열이란 사전에 심사를 하고 발언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을 뜻한다. 비판과 검열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3. 사족
박근혜를 비판함에 있어서 박근혜의 여성성을 후려치는 건 대단히 쉽다. <수취인분명> 이전에 <SNL>도 있었고, 산이의 <나쁜년>도 있었다. 박근혜의 어떤 행동이 우리 사회에 해가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어도, 그냥 박근혜가 여자라는 점만 알면 되니, 쉬운 건 당연하다.
하지만 쉬운 만큼 게으르고, 무책임하다. 게다가 더 나쁜 건 그게 해롭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여성성을 욕하기 전에, 매주 토요일 추운 날씨를 견뎌가며 광장에 모이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을 위한 것인가? 분명 그것이 일차적인 목표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던가.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이루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가. 각자 마음에 품고 있는 세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세상에 여성 혐오가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원문 : 윤지만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