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동물, 도시의 동물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이 동/식물을 대하는 태도와 감수성은 무척 다른 것 같다. 도시에서만 40년 넘게 살다가 시골에서 산 지 겨우 5년 차인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모로 혼란을 겪었고, 여전히 그렇다.
나는 도시에 살 때와 달리, 시골에 와서 수도 없이 생명을 죽이곤 한다. 작물을 심은 밭에 온갖 풀을 뽑아 죽이고, 쐐기며 지네며 이름도 모를 온갖 벌레들을 시시때때로 죽이고, 때로는 쥐덫을 놓아 쥐를 죽인다. 개나 고양이 한 번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사람 외 생명체라고는 기껏해야 파리나 모기 말고 볼 일도 죽일 일도 없었던 도시에서 쭉 살아온 내가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나?
민들레처럼 살아야한다고 노래나 할 줄 알던 사람이 이제는 뽑아도 뽑아도 밭에 퍼지는 민들레가 미워서 발로 짓밟게 될 때가 있고, 몇 포기쯤은 남겨뒀다가 거둬서 나물을 무치거나 장아찌를 해 먹기도 한다.
닭이나 돼지를 키우는 선배들이, 걔들을 키울 때 쏟는 정성과 애착을 보면 저걸 어떻게 잡아먹나 싶은데… 선배들은 식구처럼 돌보던 동물을 손수 잡아 나눠도 주시고 팔기도 하신다.
도시 사람들은 자기가 키우던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을 보고 야만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시골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를 실내에 두고 키우는 것에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린다. 온갖 예방주사를 맞고도 조금만 아파도 동물병원에 안고 가 치료를 받는 도시 사람들의 반려견과 달리 우리 밭에 집을 두고 장마비도 눈도 그대로 맞고 자라는 우리 개는 태어나서 네 살이 넘기까지 병치레 한 번 없이 닭뼈도 뭣도 씹어삼키는 튼튼한 이로 온갖 먹을 것을 소화시키며 산다.
동물을 대하는 감수성
도시 사람들은 자기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대개 ‘가족’이라 여기는 것 같은데, 시골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나 가축은 밥을 나눠먹는 ‘식구’지만 사람은 사람이고 동물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가족은 아니다.
농사 자체가 인간이 생존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작물의 군락을 만드는 일이니… ‘동물권’이니 ‘생명권’이니 아무리 외쳐봐야 자연계에서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존중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시골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먹고 먹이는 관계
그래서 내 좋은 선배들은, 세상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 먹고 먹’이’는 관계로 이루어졌다고 역설하신다. 닭이나 돼지를 키울 때도 남을 먹’이’는 일이니 정성을 다하고, 그걸 잡을 때도 남을 먹’이’는 일이니 정성을 다할 수 있는 것.
여전히 ‘동물권 운동’에 무지하다시피 하면서 여러 모로 혼란을 겪는 내가, 따라 배우려는 태도와 감수성은 바로 이 선배들의 것이다. 나를 먹이는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을 일상적으로 품고 살면서 그게 무엇이든 남을 먹이는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일.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먹고 마시며, 누가 나를 어떻게 먹이고 있는지에’ 대한 천착이 없는 생각들을 그래서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원문: 명인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