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정치인에서 성공적인 방송인으로 이직에 성공한 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의 주요 프로그램인 ‘강용석의 고소한 19’에서 “이혼 소송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항상 다르다”며,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둘의 입장을 합쳐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치적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다른 입장들을 합쳐서 보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입장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양한 외신들을 종합해서 터키 사태를 바라보면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사태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매체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 될 것이고 비판적으로 상대의 의도를 읽으며 받아들여야겠지요.
이번 외신 정리 글의 큰 한계는 제가 영어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서구세계, 특히 미국과 영국의 신문들만 놓고 이야기를 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두 입장 중 하나의 입장만 주로 다루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해석에서 의식적으로 터키 수상과 터키 지도층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며 해석하는 부분을 제 나름대로 채워넣어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터키의 지도층의 관점을 지지해서가 아닌, 정보 부족을 메꾸고, 나름의 공정성을 기하려는 조치였습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Washington Post : 미국 중도 정론의 입장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나오는 신문답게 미국의 정치 정론 신문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매체의 성향은 중도적입니다. 지역 소식, 사설 등의 예외는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감정이나 의견보다는 정치역학과 전략을 중시하는 차가운 신문이란 느낌을 줍니다.
Prime Minister Erdogan’s strongman tactics in Turkey
과연 워싱턴 포스트의 터키 관련 기사는 굉장히 깔끔하게 기본 사실들을 요약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터키 시위의 시작은 조용한 환경 시위였습니다. 녹지 보존을 외치는 평화 시위가 경찰들의 과격한 진압으로 인해 커졌고, 결국 과격분자부터 현 정부 지지 온건주의자들까지 포함한 거대 시위로 발전했습니다. 정부, 특히 현 터키의 지도자인 수상과 시위대 간의 감정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수상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람이며, 지금도 시위가 격화되고 있지만 50% 이상의 지지율은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수상은 언론을 통제해서 시위대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하고 있고, 그것을 본 지지자들은 자신의 지지를 거두지 않습니다. 시위대는 언론 통제, 시위 제압부터 이슬람적 보수주의의 법제화까지, 정부의 간섭에 대해서 전반적인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수상은 시위를 극단주의자들과 외국의 선동에 의한 분란일 뿐이라고 못박고, 50% 이상의 다수가 지지하는 정부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바마를 포함한 서구 지도자들은 우려를 표명하며 집회의 자유를 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깔끔하고 짧으면서도 대부분의 중요한 사실이 다 나온 깔끔한 기사였습니다. 다만 기사의 내용이 짧은 만큼 사실 이상의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더 깊이 있는 내용과 스토리텔링을 기대할 수 있는 시사 주간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이미 다루었던 내용들은 넘기겠습니다.
2. Economist : 깊이 있는 영국 시사 주간지의 위용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시사, 주간지입니다. 매우 깊이 있고 지적인 내용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의 상류 엘리트들이 특히 애호하는 언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죽하면 ‘I used to think, now I read Ecnomist(난 예전에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냥 이코노미스트를 읽는다.)란 농담까지 나돌까요? 영국의 신문답게 이코노미스트의 논지는 정치, 경제 등의 큰 주제에서는 매우 보수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입니다. 하지만 그 외 문화, 사회, 종교, 도덕 등의 주제에서는 아주 진보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Resentment against Erdogan explodes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좀 더 자세한 스토리텔링이 있습니다. 주간지다 보니 내용의 여유도 더 있어서 마치 소설처럼 평화롭던 반 개발 시위가 외신을 강타하는 사건이 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전반적으로 시위대와 수상 입장 모두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시위대가 오로지 수상 반대파, 이슬람 반대파만 있는 것이 아닌 세속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 심지어 온건파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아울렀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코노미스트는 수상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대통령과 기존 세력은 10년 이상 터키를 집권하며 IMF의 빚을 갚고, 개인당 자산은 세배, 수출은 10배 늘어나는 등 유의미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지지율이 50%가 넘는 민주 정권에게 지지할만한 설득력이 없었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겠지요. 두 세력 모두의 입장에서 지지 세력의 자세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선이 대립하는 정치적 상황의 복잡성을 더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우선 정치에 대해 인정받는 두 매체를 살펴봤으니 이 정도에서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극단적으로 두 세력의 지지자들이 나뉘어서 감정적인 대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작았던 녹지 보존 시위를 과잉 진압함으로써 오히려 시위는 더 커지고, 과격한 사람들도 자연스레 유입되었습니다.
언론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시위의 부정적인 상황만 보도하거나 아예 보도를 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언론을 소비하는 정치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고 보수적이며 안정을 중시하는 다수의 집권당 지지자들은 굳건하게 수상과 집권 세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집권당 지지자들은 경제 성장과 안정된 정치상황의 필요를 강조하고 그에 비해 야당파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보장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나라라더니 과연 한국과 매우 비슷한 상황입니다. 특히 광우병 파동으로 알려진, 소 수입 이슈와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논지에 관한 시위가 대처 미숙과 감정적 대응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가 정권 전체의 지지율과 나아가 통치력 쇄락의 서막으로 이어진 촛불 시위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으로 두패로 나뉘어서 대형 시위가 일어남에도 여당의 지지율이 50%가 넘어간다는 것도 저번 한국의 대선과 겹치는 부분이 있지요.
터키와 한국이 우연히 비슷한 상황일 수도 있고, 이미 몇백년간 싸워오며 민주주의를 발달시킨 일부 서구국가가 아닌 대부분의 나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이 정도에서 생각을 멈추고, 다른 매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Wall Street Journal : 미국을 대표하는 실용적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월스트리트의 저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경제지입니다. 전반적인 논조는 재계의 신문답게 보수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총기 소유의 자유를 옹호하는 칼럼이 올라오는 신문이라는 것이지요. 실용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문답게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기사가 아주 충실한 신문이기도 합니다. 그럼 WSJ의 터키 시위 관련 기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Turkish Protesters and Premier Dig In
우선 눈에 띄는 차이는 이전의 두 정치를 주로 다루는 매체와는 달리 첫 문단부터 시위 사태가 촉발한 경제적 타격, 즉 ‘주가 폭락’을 명시했습니다. 또한, 시위를 지지하는 노동조합 모임 (KESK)이 파업을 선언했다는 것도 알리고 있습니다. 비록 그 참여율은 의문부호지만요. 인터뷰도 터키의 Danske Bank의 수석 애널리스트를 섭외하여 정치적 불안정성이 주가와 시장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심도 있게 알아보았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떤 것이 옳은가, 어떤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질문에 앞서 시위라는 혼란 상황이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을 중점적으로 알리는 실용성이 눈에 띕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매체의 장점이자 한계가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수상과 시위자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사람인 대통령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터키의 정치제도에서 대통령은 수상만큼은 힘이 없지만, 충분히 유의미한, 말하자면 이인자라고 합니다. 그는 터키의 수상과 같은 당을 같이 만든 정치적 동지이자, 내년에 처음으로 치러질 대통령 직접 선거를 놓고 경쟁할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논지 상 내년에 선출되는 대통령은 현재와는 달리 명실상부한 나라의 일인자일 듯 합니다.)
대통령은 수상과는 달리 온건파로 알려져 있고, 그에 걸맞게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설파해서 터키 수상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집권당 내에서의 의견대립은 이전 매체의 기사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 기사에서는 시위대의 입장에서는 묘사가 부족한데요, 그래서 시위대와 터키 민중들의 의식, 정치사에 대해 집중한 WSJ의 다른 기사를 살펴보았습니다.
WSJ에 따르면 냉전 당시에 터키는 정치적으로 좌파와 민족주의자들의 대립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또 종교, 문화적으로는 세속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들의 대립도 격화되었고요. WSJ에 따르면 이 시위는 새로운 중산층이 대두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좌우, 종교를 떠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50%의 지지율을 믿고 수상이 견제 없는 힘을 누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10년 넘게 집권한 현 터키의 Erdogan 수상은 원래는 더 이상 대권에 도전할 수 없음에도 임기를 늘리려 시도하려고 합니다. 이런 견제 없는 힘을 두려워하는 여당 지지자들 조차도 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고 WSJ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WSJ에 대칭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특히 좌파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영자 신문인 NYT는 같은 사건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4. New York Times :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의 성전
뉴욕 타임즈는 자사의 편집 방향이 기자들 사이에서 정론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매체입니다.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신문이며, 경제지에 가까운 WSJ와는 달리 돈이 안 되는 비실용적인 주제들까지 모두 깊이 있게 다루면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주간지이고 따라서 대상 시장도 작은 이코노미스트와는 달리 일간지인 NYT는 그 양과 깊이 모두를 잡고 있는 대단한 신문이죠.
다만 그 깊이와 균형감각이 대중성에서는 해가 되어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들조차 NYT를 독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에 20%조차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NYT 기사는 하나밖에 안 다룰 겁니다.ㅈㅅ) WSJ보다는 전반적인 구독률이 조금 더 낮아 2위에 머물고 있습니다만, 많은 언론인들이 최고의 언론으로 주저 없이 뽑는 매체입니다.
As Turks Challenge Their Leader’s Power, He Tries to Expand It
NYT는 현 터키 수상의 정권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수상의 정치적 기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수상의 지지자들에 대한 인터뷰까지 실으면서 나름 터키 수상의 입장도 균형 있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상은 IMF 빚을 갚고, 부채를 청산하는 등 많은 긍정적인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대국민 담화에서는 인권과 대중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온건성이 이슬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반대편에게도 받아들여져 오랫동안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한때 이슬람의 영향을 아예 사회에서 없애려 했던 터키의 엘리트들에 대한 다수 온건파들의 반발심이 여당 지지자들의 기본적인 지지 사유이겠습니다만.
그런데 그렇게 실적이 늘면서 앞서 다루었듯 임기를 늘인다거나 ‘터키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견제를 막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NYT는 터키 이스탄불의 Bilge 대학의 정치학 교수를 인터뷰하며 현 대통령의 통치 문제를 조목조목 짚고 있습니다. 그는 견제와 균형을 바라지 않으며, 또한 다수의 이해를 바탕으로 소수를 존중하지 않는 ‘다수에 의한 독재’를 민주주의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다수주의가 이슬람 근본주의와 만나 현 수상은 술을 규제하고, 국민이 먹는 빵의 종류에 간섭하고, 여성들이 많은 아이를 낳을 것을 종용하는 등, 개인적인 도덕을 사람들에게 강권하며 요즘 사람들 말로 ‘꼰대’스러운 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권위주의적인 통치자가 되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수상은 시위대를 무시하고 북아프리카로 출장을 가버림으로써 대화로 사태를 풀어가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미국에서 NYT가 가장 존경받는 매체라면 가장 놀림을 받는 불명예적인 매체는 아마 Fox News일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폭스 뉴스는 물론 중동의 대형 언론 알자지라(Al Jazeera),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를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터키 시위에 대한 외신 보도 분석 2/2 (FOX, Al Jazeera, Foreign Policy)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