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양이가 위독했다. 급성 폐수종으로 호흡곤란이 온 것이었다. 지금은 약 일주일 정도 인큐베이터에서 집중 치료한 결과 다행히 폐에 찬 물이 많이 빠졌다. 내일이나 모레쯤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늦어도 3일 정도 뒤면 곁에 돌아온다.
폐수종의 원인은 HCM(비대성 심근증)이었다. 퇴원하고도 심장병 약을 평생 먹여야 한다. ‘평생’이라고 적어는 놨지만 기대 수명은 길면 2년, 짧으면 6개월 정도다. 함께 보낼 수 있는 남은 시간이 저렇다.
2.
치료비가 많이 나왔다. 각종 검사와 약 열흘 간의 입원비로 2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퇴원하고도 첫 달은 일주일에 10만 원씩, 그 이후로 얼마간은 2~3주기로 비슷한 액수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아무래도 죽다가 겨우 살아난 고양이인 지라 당분간은 예후를 살피기 위해 검사와 통원 치료를 계속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후에는 고양이가 죽을 때까지 복용시켜야할 심장병 약이 매달 발생한다. 현재까지 견적이 그렇고, 아마 더 늘어나지 싶다.
구구절절 액수를 적는 이유는 동물을 기르고자 하는 사람 혹은 이제 막 기르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기르고 있는 사람들 보라고다. 생활인에게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이번에 병원에서 영수증을 받아올 때마다 나는 ‘아, 이런 이유로 동물을 버려버리는 사람이 꽤 많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돈 들고 귀찮아서 라는 게 단순히 사료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것 때문에.
물론 나는 각자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함께 살던 동물과 더이상 공존할 수 없게된 피치못 할 사정이라는 게 있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다른 존재와 함께 살려거든 미리 준비는 하시라. 나 같은 실수는 하지 말고.
3.
동물은 말을 못한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하다고 의사표현를 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는 게 가시적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할 땐 사실 이미 많이 늦은 거다.
이 고양이는 내 첫 반려동물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조금만 뛰면 헥헥거리곤 했다. 나는 어리고 조그만 했기 때문에 그냥 덥고 지쳐서 그렇겠거니 신기하고 귀엽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HCM확진을 받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보통 동물은 사람보다 체력이 좋을 텐데, 겨우 조금 뛰어 논 정도로 숨을 가쁘게 몰아 쉬는 건 실은 어디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때 병원에 데려 왔다면 달라졌을까?’
내 질문에 수의사는 원래 사람이 동물의 사소한 이상 증세를 바로 포착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로 나를 위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더 살릴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속 떠올려 볼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려 왔으면, 좀 더 세밀하게 관찰했으면, 집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등등.
부질없는 생각이다.
4.
‘뭘 고양이한테 그렇게까지 돈을 써?’라는 말을 심심찮게 접한다. 무슨 말인지 안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한다. 나도 셈할 수 있는 인간인다. 근데 어쩔 수가 없다. 이제 와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고 죽이거나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동물은 망가지고 번거로워졌다고 처분할 수 있는 인형 같은 게 아니다. 경제적 가치의 우선순위를 내 마음대로 정해서 힘 없는 동물에게 내 마음대로 선고하고 싶지 않다. 고양이에게 나는 그럴 힘이 있는 존재일 테지만, 내가 사람인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귀엽고,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데리고 왔다. 보고 있으면 행복하니까 길렀다. 나름대로 책임질 각오와 준비를 했다. 동물이 아프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 이미 흔히 들었다. 그렇구나, 그냥 느슨하게 지불하면 되지 뭐 생각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이 고양이만을 위한 예비비용을 따로 빼서 모아뒀어야 했다. 그게 정말로 각오와 준비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천만 원도 안 나왔으니 목숨값으로 아주 싸게 치였다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내 기준에선 몇 개월에서 몇 년 정도의 수명 연장의 값이라고 생각해도 아주 싸게 치인 것이다.
5.
예쁘고, 마음에 들고, 반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들이대서 관계를 맺고는 시간이 지나자 돈 들고, 귀찮아지고, 권태로워지고,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고 손쉽게 관계의 최소한의 책임 조차 방기하는 수많은 케이스를 떠올린다.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과의 관계는 최소한 상호합의에 의해 시작되지만, 동물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동물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맺는다. 동물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래서 동물은 인간의 변덕 때문에 엄하게 죽을 수도 있다.
동기가 동정이든 애정이든 결과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관계를 맺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정 기르고자 한다면 그냥 책임지겠다고 마음만 먹는 게 아니라 실천적으로 준비하길 권한다. 각오는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얼마든지 약해진다. 그러니까 경제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소 소득을 잘 분절해서 순전히 반려 동물만을 위한 돈으로 세이브해 두시길.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나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같은 진심어린 각오를 다지는 데서 종결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감당해내는 것 말이다.
원문: 하헌기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