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는 해외에서 회사를 구한 사례는 아니고,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개발자 이야기다. 구직 전에 영어 학원에 다니는 중이고, 사실 어떻게 보자면 구직을 빙자한 칩거 모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소개 정도로 봐 주시면 좋겠다. 세상 그 어디에선가 그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도 필요로 하리라 여겨서 인터뷰를 글로 옮겼다.
지금에야 밝히지만, 이 인터뷰 시리즈들은 ‘여행과 IT’라는 나름의 주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행과 IT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여행을 좋아하는데 IT로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둘을 접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들이 대책을 내 주진 않으며, 이 모든 정보를 취합해서 융합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깨달음이 내려오면 여러분에게도 알려 드리겠지만, 일단 여러분은 이런 주제에 크게 개의치 말고 인터뷰를 즐겨 주기 바란다.
-미국 왜 갔나?
오우~ It’s interesting question. 영어 수업 시간에 그런 질문 받으면 이렇게 답하라고 배웠다.
-an 이 빠졌다.
넘어가고.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간 이유가 뭔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서너 개 있었다. 맨 처음 생각나는 건 까마득한 상사와의 대화다. 그분이 그 회사에서 20년인가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 이거 개발하면서 연봉이 얼마다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너도 이렇게 돼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얘기를 했다.
보통은 ‘오오~ 연봉 ㅇㅇㅇㅇ원~ 오오~’하며 뽐뿌질을 받아야 정상인데, 알다시피 내가 정상은 아니지 않나. 그 말을 듣고 생각난 것은, 일단 그 진급 자체가 굉장히 잘 된 케이스라는 거다. 정치적으로 봐도 그렇고. 그런데 그렇게 진급을 굉장히 잘했는데도 정작 우리와 같이 야근하고 있다는 현실이 보였다.
그걸 종합해보니, 진짜 열심히 일하고, 진짜 줄 잘 타서, 진짜 진급 잘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20년 뒤에 돈만 좀 더 받지 야근은 똑같이 하는구나 싶더라.
게다가 부서 내에서 올라오는 사안들을 전부 파악하고, 사람 관리하고 그러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음, 이건 지금은 절대로 안 되는군. 그래, 이 사안은 폐기다’ 할 수 있는 그런 권한 같은 게 없다. 그냥 ‘위에서 하라고 했으니까 해야지’ 하면서 같이 야근할 뿐.
-그래서 그분 연봉은 한 1억 되나?
확실히 알 수는 없다. 2억 약간 안 되는 느낌이던데…
-오오, 그 정도면 대충 할 만한 것 아닌가!
20년간 같은 직장에 붙어 있으면서, 아주 화려하게 진급을 거듭해서 연봉 2억을 받아내는 정도의 끈기가 있는 사람이면, IT 업계에 있으면 안 되지 않나 (후훗-). 어쨌든 나는 애초에 저렇게 하려고 이 바닥에 발들인 게 아니었다.
-그럼 어떤 걸 하고 싶었던 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어떤 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그렇게 큰 회사 들어가면서 생각했던 건, 여기 어느 방에 들어가면 레지던트 이블에 나올 듯한 그런 엄청난 연구실이 있어서, 거기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실험해서 짜잔~ 오, 이게 된다! 이러면서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뭐 그런 걸 꿈꿨다.
-거기 들어갈 때 나이는?
이십 대 후반.
-꿈과 희망이 애를 망쳐 놨군. 그래서 어떻게 됐나?
그래서 결론은, 그 전에 다니던 중소기업이나 거기나 똑같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 그런 게 원래 불가능한 거구나’를 느꼈다. 모르지, 소니나 구글 어디 구석엔 실제로 그런 게 있을지도…
-그런 걸 꿈꿨다면 국회의원을 했어야지. 국회의원들이 왜 출석을 잘 안 하는 줄 아나? 국회의사당 지하의 태권브이를 연구하느라 그런 거다.
…어쨌든 그래서 회사 내의 아이디어 게시판을 전전했는데, 그것도 대체 왜 있는지 모르겠더라.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아이디어를 냈는데도, 전부 쏴 하고 다 버려졌다. 그게 경직된 구조의 영향도 있겠지만, 어쨌든 결국은 그런 것들이 회사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지더라. 내가 무슨 아이디어를 내든 얘들이랑은 별 상관없다는 생각.
웃긴 건,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왜 아이디어 안 내느냐’라고 독촉하더라. 아니, 내가 낸 아이디어들은 다 어쩌고? 나중에 깨닫게 된 건데, 내가 낸 아이디어들은 그들이 원하는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정의하는 아이디어라는 것은 이런 거더라. 1) 현재 상태에서 뭔가 더 연구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님. 2) 금전적인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건 대체로 아이디어가 아님. 3) 현재 상태, 현재 시점에서, 시간과 인력만 잘 갈아 넣으면 뭔가 더 좋아지는 것이 아이디어임.
그쯤에서 ‘회사라는 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던데, 결론은 사원들 시간을 모으고 모아서 가치를 창출해서 물건을 파는 거였다. 결국은 사람들이 시간을 팔고 돈을 받는 거더라. 그 돈으로 사람들은 남은 시간 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거고.
근데 정작 돈이 적어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은 있다. 게다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 시간은 언제 다 떨어질지 모르는 거다. 그렇다면 돈을 모으기 위해 팔아야 하는 시간은 적당해야 한다. 적당히 팔고 남는 시간에 돈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니 시간 다 내 꺼야!’ 하는 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 헐값으로 시간을 파는 행위를 아주 영예롭게 여기는 분위기다. 회사에선 사람들 시간을 잘 뽑아내야 하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채찍질을 하고, 그렇게 인력을 갈아 넣는다. 거기까지 보고 나니까 ‘아, 이건 안 되겠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더라.
-그럼 스타트 업 같은 회사는 생각 안 해봤나?
생각은 해봤는데, 결론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물론 좋은 스타트 업 회사들이 있기는 하고, 그렇게 시도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500원에 사서 당첨되면 2천 원 받는 복권이랑, 똑같은 가격에 당첨금이 1만 원인 복권이 있다면, 당첨 확률이 똑같다면 어떤 복권을 사겠는가.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이 나라 자체에서 발 빼고 싶어지더라.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스타트 업을 한다면 일단, 다른 대기업들이 견제를 하기 전에 중소기업까지 올라서는 게 목표일 텐데, 동일한 아이템으로 대기업들이 뒤늦게 참여해서 압도적인 물량과 생산력과 자본으로 밀어붙였을 때 과연 그걸 이길 수 있겠는가 싶었다. 물론 어딘가에 있을 천재는 하겠지만, 나는 못 하겠더라.
서양이라면 좋은 아이템의 스타트 업이 있다면 비싼 값에 인수를 해 줘서, 그 돈으로 또 다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게 아니다. 그럴 거면 내가 뭐 하러 스타트 업에 가겠나, 그냥 대기업에 있어도 되는데.
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 다른 회사에서 관리직을 하다가, 개발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몇 번 옮긴 분을 만난 적 있다. 그분, 처음 관리직 할 때보다 연봉이 반이 깎였더라. 나로서는 이런 일들이 참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모든 게 왜곡된 상황과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대기업에 있을 때 ‘니가 하는 일을 확실히 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그러다가, ‘내가 왜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먹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됐다(?).
-지금까지 한 말을 종합해보면, 미국에서 차고 하나 사서 벤처 시작할 포스다.
취업할 거다. 차고 살 돈이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가능하면 회사에서 내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내 이름도 남기고 회사에 보탬도 되고 그러고 싶다.
-미국 회사에서는 그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나?
아직 안 해봤으니 알 수 없다. 물론 처음 대기업 들어갈 때처럼, 또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외국행을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아내는 반대하지 않았나? 당장 수입이 끊기는데. 그리고 미국에서 그렇게 생활비 까먹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나?
사실 아내와 얘기하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의외로 잘 풀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멋진 게, 전세금을 빼면 그 돈으로 한 번쯤 큰 도박을 할 수 있더라.
-말 그대로 정말 도박인 듯싶다.
최근 구글과 애플 등의 IT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이민자 비자 수를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실리콘 밸리 쪽에선 개발자 인력이 아주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개발자가 영어만 되고 미국만 건너오면 어떻게든 된다고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왔으니까, 일단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하자며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미국과 캐나다가 이민법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뉴스가 있긴 있다. 하지만 무작정 그렇게 가는 건 너무 위험이 큰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물론 똑똑한 우리 아들 세뇌 효과가 있어서, 나 스스로는 똑똑해 보이기는 하는데, 남들이 보기에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내가 그만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그냥 이 정도 해왔다는 걸 보여주고, 그게 먹히면 붙는 거고, 아니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한국 가는 거고, 그런 거다. 일단 학원 다니며 영어 공부하고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넣을 계획이다.
-그런데 보통 어학연수는 필리핀이나 캐나다 같은 데서 하는데, 어떻게 바로 미국에 가서 할 생각을 했나?
아내가 필리핀은 위험할 것 같다고 해서.
-그게 이유인가?
그렇다.
-그럼 학원은 어떻게 구했나? 그리고 숙식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학원은 그냥 한국에서 유학원을 통해서 구했다. 값은 좀 비싸도 그게 편하니까. 숙소는 처음엔 학원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아내와 함께 2인 1실을 쓰는데도 돈은 따로따로 머릿수대로 받더라. 그 돈이면 차라리 월세를 구하겠다 싶어서, 지금은 스튜디오 형 원룸에서 살고 있다.
월세는 1년 계약으로 할인해서, 각종 공과금 포함, 한 달 2300달러 정도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 식기 세척기 등이 모두 갖춰져 있다. 학원은 한 달에 1700달러고, 식비는 한 달에 대략 400달러 정도 든다. 비자는 어학연수로 왔기 때문에 학생 비자로 지내고 있다.
-학원은 어떤가? 혹시 거기까지 갔는데 필리핀 강사 있고 그런 건 아닌가?
이 학원이 좀 비싼 학원이라 그런지 미국인 강사가 수업한다.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대략 다섯 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그런데 웃긴 건, 학생의 1/4이 한국인이다. 아마 다른 학원들은 더 심할 거다.
-그럼 학원 다니는 것 외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영어 공부하고, 잉여짓 하고, 오락하고, 미드 보고, 트위터에 뻘소리 적고.
-취업 준비는 안 하는 건가?
영어 실력 좀 늘고 나서 여름부터 시작할 거다. 요즘은 개발해 보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만들어 볼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 일단, ‘취업하려고 갔다’에서 취업 기행은 끝나는 건가?
그렇다. 차라리 나중에 회사에 붙든지 떨어지든지 하고 나서 인터뷰를 하는 게 낫지 않나?
-나중엔 내가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르니까 미룰 수 없다. 단지 이런 사람도 있다고 소개하는 거지 뭐.
그럼 이제 인터뷰는 이걸로 끝내자.
-아니다. 취업 관련해서 유용한 정보가 없었으니, 이제 인터뷰는 샌프란시스코 여행 정보로 넘어가는 거다. 뭔가 하나라도 유용한 정보를 남겨야 할 것 아닌가.
샌프란시스코에 금문교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다. 안 가봤다. 알카트라즈라는 유명한 감옥도 있다. 안 가봤다. 유니온스퀘어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등교할 때마다 지나다니니까 별 재미가 없더라. 케이블카는 한 번 타봤다.
이 동네 바로 아래쪽 골목이 슬럼인데, 거긴 당연히 위험해서 안 간다. 이 동네는 괜찮은 편이라는데, 청결 같은 면에서 한국이 훨씬 낫다. 미국이 사람이 많아서 싸이코가 많이 나타나긴 하는데, 비율 상으로 따져보면 미국이 더 적은 것 같기도 하고. 근처에 일본 타운이 있는데 딱히 뭔가 시도해 본 건 없다.
인상적인 거라면, 사이렌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막 지나다닌다는 것과, 가끔 밤에 총소리 같은 게 들린다는 것. 그리고 트위터 본사가 위치한 곳이, 야근하고 나오면 무섭겠다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좀 별로라는 정도?
놀러다니는 거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집과 학원만 오간다. 가끔 코스트코를 버스 타고 가는 정도다.
-흔히들 미국은 차 없으면 마트도 못 간다고 하던데, 그래도 버스 타고 잘 다닐 수 있나 보다?
좀 빡치긴 해도 꽤 다니는 편이다. 20분에 한 대 있는 버스가, 간혹 한두 대 건너뛰고 와서 그렇지,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오긴 온다. 월 정액 카드도 있지만, 난 자주 이용하지는 않기 때문에 현금 내고 탄다. 한 번 타는 데 2달러인데, 요금 내면 현재 시각이 적힌 종이를 준다. 그거 들고 다니면 3시간인가 무제한 무료 환승이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 버스비가 쌀 수도 있다. 버스 노선은 구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버스 타고 코스트코 갔다 오는 것 말고, 캘리포니아 장기 체류자가 할 만한 건 뭐가 있는가?
집에서 뒹굴기가 있다. 너무 밖에 안 나가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만 극복하면 할 만하다. 그것 말고 굳이 귀찮은 짓을 하려면, 내가 참여하려는 것들이 좀 있다.
취미 맞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사이트도 있고, 언어교환을 할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근데 여행으로 온다면 샌프란보단 베가스에 가라고 하고 싶다. 샌프란에서 돈 내고 즐기는 것보다 베가스에서 돈 안 내고 즐기는 게 더 재밌는 게 많다. 예를 들면, 분수 쇼 보고 돌아오면서 해적 쇼 보고, 중간에 카지노 들러서 잘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1센트짜리 게임기 돌려보고, 공짜 음료도 마시고, 이 호텔 저 호텔 1층 구경하고, 그것만 해도 멋지고 좋은 거 많다.
-그렇군. 결론은, 이왕 도박을 하려면 라스베가스를 가라, 정도가 되는 건가…
그럴지도. 어쨌든 아내가 부른다. 이제 가봐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