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썩었다. 자살률 최상위, 출산율 최하위. 이것부터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증거다. 게다가 살인범죄 발생률은 OECD 국가 중 9위. 주거침입절도, 대인절도, 성폭력범죄 등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아서 치안도 그리 좋지 않다. 매일매일 영혼을 팔아가며 아등바등 살아봤자,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그대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곳. 한마디로 지옥이다. 최악은 아니라 해도, 지옥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나 하며, 겸손하게 이번 생은 꽝이라 치고 도를 닦을 수도 있다. 세상 어딜 가도 다 똑같다며, 모든 걸 포기한 채 죽은 듯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다. 과거의 업보다 현재의 행복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다는 그 권리, 행복 추구권. 나도 좀 더 좋은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볼 권리가 있다.
그래서 떠났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일자리를 구해서 안정적인 이주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그건 무리였고, 다른 사람들의 경우가 내게도 잘 맞는다 할 수 없으므로, 나는 나만의 방식을 찾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이것저것 다 귀찮았고, 어느 날 갑자기 당장 이 암울하고 갑갑한 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훌쩍 떠나버린 것에 더 가깝기는 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여행이란, 태어나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살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내 지난 모든 여행을 통틀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저 문장 하나로 표현이 가능하다 할 정도로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니 비록 이번 시도도 또 하나의 긴 여행으로 끝맺음할 뿐이었더라도,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숨 쉬는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행복으로 느껴질 그 어떤 곳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공개하고 나누고 더 살을 붙이다 보면, 이 땅 위에 누군가 나처럼 암울하게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훌쩍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소 미약하고 정돈되지 않았더라도, 내 나름의 경험을 내놓아 보고자 한다.
태국은 어떤 나라?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 사이에 걸쳐 있는 나라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 공개되어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위키피디아를 참고하기 바란다.
추가로, 본격적인 내용을 전개하기 앞서서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태국, 특히 방콕은 수많은 항공편들이 운항되기 때문에, 유럽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스톱오버를 할 정도다. 그래서 나도 해외여행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많이 들락거린 경험 때문에 태국을 선택하게 됐다.
대략 9개월 동안 태국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했고, 그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치앙마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글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은 주로 치앙마이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미리 밝혀두겠다.
생활비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돈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숨기며 잘 언급하지 않으려는 내용이다. 수많은 자료들과 책들을 보면서 정말 갑갑하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금전 문제를 꺼내다 보면 필자가 가진 재산이 대략 드러날 테고, 그러면 의외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들어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난뱅이다. 그래서 아예 글 시작하자마자 비용 부분부터 쫙 펼쳐 놓고 시작하려 한다.
한국도 서울에서 생활할 때와, 지방에서 생활할 때 들어가는 생활비가 다르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태국의 수도인 방콕은 서울보다 큰 도시라서, 태국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수많은 외국인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따라서 방콕은 태국의 다른 지방 도시보다 물가가 높고, 생활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방콕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쓸 글에 따로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대략, 방콕의 생활비는 치앙마이를 비롯한 지방 소도시에 비해 1.5배 정도 높게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방콕을 제외하고 태국 여러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활했는데, 한마디로 압축해서 말하자면 생활비는 매월 60만 원 정도 들었다. 이 금액은 한 달 동안 생활하면서 쓴 모든 비용을 포함한 금액이다. 즉, 숙박비로 들어간 월세와 전기요금, 수도요금, 인터넷 비용, 그리고 식사를 위해 지출한 돈과, 가끔 어딘가 놀러 나가면서 쓴 돈까지 모두 합친 금액이다.
월평균 생활비로 합산하기엔 좀 아니다 싶어서 뺀 비용은, 한국에서 태국까지 오가는 항공권 요금, 태국에서 새로 산 노트북 컴퓨터,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지출한 수리비와 병원비 등이다.
월평균 생활비에서 절반은 주거 비용이다. 위치나 형태,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TV, 에어컨, 냉장고, 침대 등이 갖춰진 조그만 원룸에, 수도요금, 전기요금까지 합치면, 대략 한 달에 6000~8000 바트, 약 24~32만 원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식비는 쌀국수나 볶음밥을 사 먹는다고 치고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두 끼를 먹기 때문에 하루 60바트, 한 달이면 1800바트다. 대략 7만 원쯤 된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맨날 밥만 먹고 사나. 고기도 먹고, 야채도 먹고, 빵, 과자, 아이스크림도 먹고 하면, 식비로는 한 달 평균 15~20만 원 정도 나간 걸로 계산된다.
나머지는 가끔 오토바이 빌려서 라이딩을 한다거나, 어딘가 놀러 가서 입장료를 낸다거나, 카페를 간다거나, 혹은 사람들을 만나서 차나 술을 마신다거나, 쓸 데 없이 외로움에 사무쳐 애인 한번 사귀어 보겠다며 밥값 한턱 쏘는 비용과, 세븐일레븐에 에어컨 바람 쐬러 들어갔다가 지르게 되는 과자 같은 기타 잡비들이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도 좀 아끼며 가난하게 사는 편이고, 어려서부터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끼니를 두 끼로 줄였을 정도로 생활비 최적화가 돼 있는 상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생활하던 것이 있어서, 태국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것만큼 싸게 생활하지는 못했고, 물가 싼 곳에서는 나름 정해진 범위 내에서 호사를 좀 누려보자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 바닥권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외국인으로써는 중하권 정도 되는 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생활비는 개개인마다 편차가 클 수밖에 없는 항목이므로, 당연히 참고자료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다만 이 정도 금액이면 한국의 원룸 정도의 방을 얻을 수 있고, 가끔 외식도 하고, 야외로 놀러도 다니고, 한량으로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한들한들 쉴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두면 되겠다. 참고로, 생활비를 더 아끼려면 더 아낄 수도 있다. TV, 냉장고 등이 없고, 침대 하나 정도만 덜렁 있는 좁은 방은 한 달에 4000바트, 한국 돈으로 15만 원 정도 하는 방도 있다.
주거 형태
태국이 물가가 싸다는 인식이 강해서, 숙식 또한 아주 싸게 해결될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물건값에는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도 지방으로 아무리 내려가 봤자, 월세가 엄청나게 낮아지지는 않는다. 단지 서울에서 30만 원 하는 월세방보다, 지방에서 30만 원 월세방이 공간이 좀 더 넓고 쾌적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태국 또한 그렇다.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는 숙박시설은 획기적으로 싼 가격이 없다. 물론 현지인들처럼 산 아래 허름한 판잣집에서 산다면 아주 싸게 지낼 수도 있다. 낮에는 맑은 공기 아래 푸른 산 위로 밝은 하늘이 쫙 펼쳐지며, 밤에는 하얀 별빛 초롱초롱 이슬처럼 내리는 그런 곳 말이다. 푸른 초원에는 귀여운 뱀이 기어 다녀서 언제 방 안으로 들어올지 알 수 없으며, 문만 열면 온갖 벌레들이 반가워, 같이 놀자 하며 얼굴로 날아들고, 조그만 모기 친구들은 밤낮없이 내 몸속의 더러운 피를 뽑아 주겠다며 달려드는 정다운 곳에서 살 요량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활하던 습관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하층민 생활을 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나처럼 조금씩 단계를 낮춰가면서,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처럼 조금씩 적응기간을 가지면서 하층민으로 내려간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적응할 수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한국인인 여러분이, 태국 혹은 동남아에서 숙박을 아주 싼 값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그래서 주거 형태는 외국인들이 주로 생활하는 형태들을 항목별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1. 도미토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방 하나에 2층 침대 여러 개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잠을 자는 형태다. 주로 배낭여행자들이 싸게 묵기 위해서 많이 찾는 숙소인데, 의외로 이런 곳에서 장기투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장기로 지내면서 오래 머물다 보면, 왕 고참이 되어서 나름 편해지기도 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서 감 놔라 배 놔라 참견도 할 수 있는 등 즐거운 면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 공간이 없다 보니, 밤에 야동을 볼 수 없는 등의 불편한 점도 많다. 가격은 대략 하루에 5천 원에서 1만 원 선이다.
2. 게스트하우스 싱글룸/더블룸
태국의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들이 주로 제공하는 방들은 싱글룸이나 더블룸이다. 기본적으로 침대와 에어컨, TV 등이 있는 방이다. 싼 방일 경우는 냉장고가 없는 경우가 많고, 세탁기는 거의 대부분 공용으로 동전을 넣고 사용해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태국 게스트하우스들은 무료 와이파이(WiFi)를 제공하기 때문에,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도미토리도 무료 WiFi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룸 가격은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라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3. 게스트하우스 룸 장기 임대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한 달 단위로 장기 임대할 경우, 하루씩 묵는 것보다 싸게 지낼 수 있다. 집집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대략 평균을 내어 보자면, 하루 숙박 요금의 열흘 치에서 보름 치 가격으로 한 달을 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 숙박 요금이 400바트라면, 한 달 요금은 4000~6000바트 정도 된다. 물론 요금은 선불로 한꺼번에 내야하고, 중간에 나가도 돌려주지 않는다.
임대비용과는 별도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받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만약 모든 비용이 다 포함된 가격이라면 정말 싸게 한 달을 지낼 수 있다. 한두 달 정도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딱 좋은 숙박 형태다. 다만,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서,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이 흠이다.
4. 서비스 아파트
태국에는 간판이나 건물에 ‘서비스 아파트먼트(service apartment)’라고 적힌 건물들이 많은데,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작은 원룸들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는 건물 형태가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아파트 같은 형태도 있다.
공통적인 특징은 월세를 내고 월 단위로 빌린다는 것. 6개월이나 1년 치를 한꺼번에 내면 가격을 많이 깎아주기도 한다. 대체로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은 별도다. 인터넷도 따로 요금을 받는 곳과 무료인 곳이 있으니, 미리 들어가기 전에 잘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서비스 아파트는 일정한 비용을 더 지불하면 청소를 해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 청소는 침대 시트를 갈아주고, 간단한 방 청소를 해주며, 화장실 휴지와 수건 등도 갈아준다. 한 달에 몇 회로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이 보통이고, 이 비용은 월세와 함께 선불로 낸다. 물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혼자 청소하며 살겠다고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경우는 너무나 더러운 방을 청소부에게도 보여주기 싫어서 청소 서비스는 항상 거절했다. 물론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자고 그런 것이 아닐 수는 없다.
서비스 아파트는 보통 2~3개월 치 월세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금으로 낸다. 나중에 퇴실할 때, 이 보증금에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등을 한꺼번에 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보증금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하는 집주인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기물이 부서졌다거나, 전기요금을 좀 더 높게 계산한다거나, 들어갈 때는 언급이 없었던 봉사료나 세금 등을 계산에 넣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래서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곳들은, 일단 보증금이 높으면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이 좋다.
서비스 아파트는 외국인들이나 중산층 이상의 현지인들이 도시에서 생활할 때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현지 서민들이 사는 집보다는 좀 비싼 편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의 원룸과 비슷한 환경이므로 아주 친숙한 거주 공간이다. 위치나 방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대략 한국 돈으로 한 달에 30만 원 정도를 예상하면 그럭저럭 불편 없이 지낼 만한 곳을 구할 수 있다.
5. 무반
보통 1~2층 정도 규모의 주택으로,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집 안 마당에 정원이 있을 수도 있고, 방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으며, 주방이 갖춰진 곳도 있는 등, 그 형태가 아주 다양하다. 무반은 거의 임대용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고, 도시 외곽지역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서, 보통은 실내 면적이나 주위 환경 등이 아파트보다는 쾌적하다.
무반이 특이한 것은, 이런 주택에 방 하나만 빌려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집 전체를 통째로 빌리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낼 경우나, 돈 좀 쓰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경우에 어울리는 주거 형태다.
사실 무반도 잘 찾아보면 서비스 아파트보다 월 임대료가 싼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내로 갈 때 오토바이 등의 교통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을 넣으려면 최소 1년 이상 약정을 걸어야 한다는 점 등이 걸림돌이다. 특히 인터넷이 기본으로 설치된 무반은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 큰 단점이다. 그래서 무반은 대체로 아파트보다는 전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1년 이상 조용한 생활을 할 생각이라면 괜찮은 선택이다.
참고로 태국은 집 안에 주방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식사는 밖에서 해결한다. 현지인들이 주로 먹는 음식들이 워낙 싸기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싸게 친다. 그래서 서비스 아파트도 대체로 주방이나 가스레인지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방이 있다 해도 전기를 사용하는 핫 플레이트나, 전자렌지, 커피포트 정도만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임대를 목적으로 만든 무반의 경우는 주방시설이 갖춰진 곳이 많으므로,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을 즐긴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각종 공과금
외국인 여행자로서 태국에서 몇 달을 산다면, 대체로 주거 형태는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장기로 임대하거나, 서비스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공과금을 별도로 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입자가 내야 하는 공과금은 주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이다.
1. 전기 요금
집주인에게 전기요금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면, 유닛(unit)당 얼마라고 가르쳐 준다. 여기서 1유닛은 1킬로와트(kw)다. 집집마다 이 요금이 다른데, 싼 곳은 유닛당 4바트도 있고, 비싼 곳은 10바트가 넘는 곳도 있다. 보통 유닛당 6~8바트 정도가 일반적이다.
사람 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냉장고를 간단한 물건 몇 개만 넣고 종일 돌릴 경우, 3유닛 정도가 올라간다. 유닛당 8바트 짜리 방에 거주한다면, 냉장고를 돌리면 하루에 전기 요금이 기본으로 24바트가 나온다는 뜻이다. 밖에서 사 먹는 볶음밥이 30~40바트 정도이니, 냉장고를 돌릴 바에야 외식을 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또한 태국은 낮 시간이 더운 경우가 많아서 에어컨을 켜야 하기 때문에, 전기 요금은 더더욱 무시할 수가 없다. 어떤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인에게 들은 얘기인데, 한 서양인 여행자가 한 달 내내 에어컨을 켜고 생활하는 바람에, 전기 요금이 1만 바트(약 40만 원) 정도가 나온 적도 있다 했다. 하지만 대체로 하루에 6~8시간 정도 에어컨을 켤 경우, 한 달 전기요금은 1~2천 바트(대략 4~8만 원) 정도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2. 수도 요금
수도 요금은 따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다. 보통 한 달에 기본요금으로 100~200바트(4~8천 원) 정도를 내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다. 유닛당 얼마라고 말 해 주기도 하는데, 물을 하루 종일 틀어 놓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기본요금보다 더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중저가 임대형 룸에는 욕조도 없고, 세탁기도 없으므로, 수도요금은 보통 기본요금 정도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인터넷 요금
대부분의 경우, 세입자에겐 건물 전체가 공동으로 쓰는 WiF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어떤 곳은 인터넷 요금을 별도로 받기도 하고, 2회선 이상 사용할 경우에는 기기당 별도의 요금을 받기도 한다.
주로 조금 그럴듯하게 생긴 건물이나 호텔급 숙소에서 인터넷 요금을 별도로 징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정말 돈 뜯어 먹으려고 작정했다고 볼 수 있다. 별도로 징수할 경우는 한 달에 300바트(12,000원)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금을 별도로 청구한다고 해서 인터넷 라인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돈을 낸다면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으므로,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하게 해 주는 곳보다는 조금 더 빠를 수는 있다.
4. 쓰레기 요금
쓰레기를 버리는 데 별도의 돈을 받지는 않는다. 종량제 봉투 따위 살 필요도 없다. 아무 비닐봉지에나 쓰레기를 넣어서, 집 앞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이다. 한국처럼 세금 걷어서 감투 쓴 사람들 월급 주려고 그딴 치사한 짓 하지 않는다. 맘껏 버려라! 소비는 자본주의의 미덕이자 이 체제를 굴리는 바퀴 아닌가. 한국에서 버릴 이불까지 싸 가서 버려라. 만세!
5. 도시가스
도시가스 같은 건 아예 없다. 주방이 갖춰진 서비스 아파트는 주로 전기로 가열되는 핫 플레이트 같은 것을 사용한다. 조금 허름한 무반의 경우에는 조그만 가스통과 버너가 일체형으로 된 것이 있는데, 이 가스는 동네마다 있는 충전소에 전화를 해서 충전하는 방식이다.
태국의 인터넷
태국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하기 전에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바로 인터넷 속도였다. 주식매매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과연 태국에서 한국에 접속해서 주식매매를 해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태국에서 키움증권이나 이트레이드증권 등의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으로 접속해서 주식매매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 몇 초에 승부를 내는 스켈핑(극초단타 매매)는 좀 어렵지만, 장 중에 여러 번 사고파는 단타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그러려면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일단 안정적인 매매를 하려면, 지방 소도시라도 일단 도시에 살아야 한다. 시골 쪽은 인터넷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루 공 치고 손해 보기 십상이다. 시골구석에서 살 때, 잦은 끊김 현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이 끊겼다 붙었다 했는데, 그 상황이 익숙해질 무렵엔 아예 인터넷이 며칠 동안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주인 말로는, 인터넷 선을 쥐가 갉아 먹어서 그랬다고. 그 선을 다시 복구하는 데는 3일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나마도 집주인이 경찰이었기 때문에 빨리 복구된 거였다.
그리고 방콕 같은 도시라도 인터넷 끊김 현상은 고질적인 문제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인터넷 회사에서 연결을 끊어버려서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개는 몇십 초에서 몇 분 안에 다시 복구가 되어 정상적인 사용이 가능하지만, 폭우가 쏟아지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태국 인터넷은 우울한 기분에 잠시 창 밖을 내다보며 작동을 멈추기 때문에, 몇 시간씩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대략 평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발생하지만, 가서 적응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적응하게 된다. 주식을 팔려는 찰라 인터넷이 끊겨서 못 팔았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주가가 더 올라서 이득을 봤던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냥 운명이려니 생각하면 모든 게 편안해지고, 쪽박을 차도 운명이려니 하게 된다.
게스트하우스나 서비스 아파트에서는 주로 10Mbps 짜리 저가형 라인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선을 PC에 연결해서 사용하는 경우보다는, WiFi를 이용해서 인터넷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기기로 인터넷을 접속하더라도, 인터넷 라인을 사용할 수 있다면 라인을 연결하는 것이 조금 더 빠르므로, 선을 하나 사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인터넷 선도 도시에선 쉽게 살 수 있고, 가격도 한국과 비슷하다.
10Mbps 인터넷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건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100가구 정도가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사람들이 집에 다 들어와 있는 시간에 인터넷을 사용해도 다운로드 속도가 대략 400Kbps 정도는 나왔다. 이 정도면 한국의 웬만한 인터넷 사이트들도 큰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해외 사이트들은 한국에서 접속하는 것보다 오히려 빠를 때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인터넷 뱅킹을 비롯한, 각종 액티브 엑스(Active X)를 사용하는 사이트들은 굉장히 느리거나, 사용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인터파크의 항공권 조회/예약 페이지 같은 경우는, 태국에선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요약하자면, 숙소에서 제공하는 가장 느린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도, 웹 서핑이나 메신저를 이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유튜브로 동영상을 보거나, HTS로 주식매매를 하는 것도,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방을 임대할 때 확인해야 할 사항들
혹시나 이 글을 매뉴얼 삼아 현지에서 생활할 사람들을 위해서, 방을 임대할 때 어떤 것들을 미리 따져보고 체크해야 할지 나열해 보겠다.
1. 월세와 보증금
매월 얼마를 내야 하는지, 보증금이 얼마인지 알아보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체크해야 할 기본 사항이다. 월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증금이 너무 많다면 나중에 떼 먹힐 가능성도 있고, 또 목돈이 묶이게 되어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보증금을 퇴거 후 한 달 안에 은행 계좌로 입금해 주는 방식이라면 고민을 좀 해봐야 한다. 은행 계좌 개설은 돈만 내면 쉽게 되지만, 이미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 돈을 돌려받으면 좀 곤란해진다. 따라서 직원들이 내 주는 계약서는, 영어로 돼 있어도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계약서를 들고 가서 여행자들이나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문서를 보여주면, ‘나 잘난’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경쟁해가며 열심히 문서 번역을 해 준다.
2. 전기 요금, 수도 요금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따로 내야 하는지, 따로 내야 한다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도 꼭 체크해야 한다.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비싼 곳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태국은 더운 곳이므로 에어컨을 돌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때때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쓴 만큼 내지 않고, 정해진 금액만 매달 내면 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이라면 월세가 좀 비싸더라도 다른 곳보다 싸게 치는 경우가 있으므로, 웬만하면 득템했다 생각하고 냅다 주워 가지기 바란다.
3. 인터넷
인터넷은 유료인지, 무료인지, 제공하는 속도는 얼마인지 미리 물어보자. 인터넷 사용료를 터무니없게 높은 가격을 부른다면, 그곳은 나중에 봉사료라든지, 부가세 등을 별도로 청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방을 보러 갔을 때,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와이파이 속도를 미리 체크해 두는 것도 좋다.
때때로 WiFi를 제공하기는 하는데, 하나의 기기만 공짜로 이용하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즉,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있다면, 둘 중 하나만 공짜고, 다른 하나는 매월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항은 물어보기 전에는 잘 알려주지 않으므로, 미리 체크해야 한다.
4. 청소비
게스트하우스든 서비스 아파트든, 유료로 방 청소 서비스를 해 주는 경우가 많다. 바닥이야 그냥 놔두면 바람이 쓸어가겠지만, 침대 시트 같은 경우는 한 번씩 갈아줘야 하므로, 그 비용이 얼마인지도 미리 체크해두자. 침대 시트만 갈아주는 데 얼마라고 조건을 내거는 경우도 있으니, 꼼꼼하게 알아볼수록 좋다.
5. 퇴거 시 들어가는 비용
퇴거 시에 청소 비용이나 세금 등을 떼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이런 조건들을 종이 하나에 잘 적어두고 알려주지만, 간혹 따로 명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비용들은 나중에 나갈 때 보증금에서 모두 제하므로, 아무리 항의하고 싸워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낼 수밖에 없으니, 잘 따져보자.
6. 조식 제공 여부
보통 장기 임대는 조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때때로 간단한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숙소에 식당이 보인다면 한 번 물어보도록 하자. 건물에 자체 식당이 있다면, 일정 금액을 내고 조식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7. 방 내부 상태
방을 구해서 머물기로 결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는, 관리인이나 집주인과 함께 방 체크를 한다. 보통 관리인들은 설렁설렁 방을 보여주는데, 나중에 나갈 때는 꼼꼼하게 체크해서 파손된 물건들을 변상해 내라고 한다. 그러므로 들어갈 때부터 꼼꼼하게 체크해 두는 것이 좋다.
사용하든 안 하든, 방 안에 있는 전자기기들은 모두 관리인이 있는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침대나 화장대, 책상, 의자, 세면대 등이 파손된 부분이 있는지도 모두 체크하고, 특히 침대 뒤쪽 벽에 금이 가 있는지도 미리 체크하자. 침대 뒤나 냉장고 뒤의 벽에 금이 가 있다고 나중에 변상 요구를 할 수도 있다.
방에 이상이 있다면 대체로 관리인은 그런 사항을 종이에 적어서 계약서와 함께 보관한다. 그와는 별개로 세입자도 방 내부 상태를 모두 사진으로 찍어두고, 동영상으로도 또 한 번 촬영해 두는 것이 좋다. 일단 그런 꼼꼼한 모습을 보여주면, 아 이놈 피곤하겠다 싶어서 나중에라도 이상한 것들로 바가지 씌우려고 하지 않게 된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꼼꼼해서 나쁠 것은 없다.
8. 영수증
언제 들어와서 언제까지 머문다는 내용을 꼭 문서로 작성해서 보관해야 한다. 특히 보증금을 얼마나 냈다는 영수증은 꼭 가지고 있자. 태국에서 집을 가지고 임대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꽤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통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서든 돈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법적으로 취약한 외국인이므로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너무 크게 걱정하지도 말고, 기본적으로 조심하고 챙길 것만 잘 챙기도록 하자.
태국으로 피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