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일랜드〉의 질문
2005년에 개봉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는 복제인간을 소재로 다룹니다. 영화 속의 복제인간들은 자신들이 오염된 지구환경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하 공간의 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관리받으며 생활합니다. 영양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체력 관리, 또 인간관계를 맺는 것까지 모두 관리를 받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체질에 맞춰 관리된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지냅니다.
이들에게 이런 판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땅인 아일랜드로 가는 것입니다. 아일랜드는 한정된 공간이기 때문에 아무나 갈 수 없고 선택된 자들만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기 위해 오매불망 자신도 선택되기를 기다리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누군가 선택을 받았다고 발표되면 모두가 축하하며 자신도 선택받을 그 날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선택 받은 날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돈 많은 사람이 선천적인 질병에 대비해 만든 복제인간들입니다. 신장이 안 좋은 유명인은 자신에게 신장을 공급할 복제인간을 만들고 자신의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복제인간의 신장을 떼어내 사용하고 심장이 안 좋은 부호는 복제인간의 심장을 떼어내 사용하는 식입니다. 복제인간들이 아일랜드로 간다는 그 날은 의뢰자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장기를 떼어내는 날로, 복제인간은 장기가 적출되고 죽음을 맞는 날인 것입니다.
액션이 가미되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복제인간에 대한 윤리입니다. 복제인간은 의뢰자의 필요에 따라 유전자를 제공받아 만들어졌고, 또 의뢰자의 막대한 비용으로 관리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비록 누군가의 비용과 필요에 의해 복제되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복제인간도 또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입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생각을 하고 고통을 느끼는 복제인간을 단지 누군가를 위한 소모품으로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요? 개별적인 이익을 갖는 주체라면 그 주체는 다른 주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이익의 주체로써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혈견의 열악한 관리 실태
얼마 전에 공혈견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직까지는 신체의 구성 요소를 인간이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혈액이나 신장이나 심장과 같은 장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물 또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 혈액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발적인 헌혈에 의해서 피를 구할 수 있지만 개들은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동물혈액을 제공해주는 모 업체에서 혈액을 제공받습니다. 이곳에서 피를 채혈하기 위해 키우는 개를 공혈견이라고 합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공혈견들이 보신탕집에 팔리는 육견들을 키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뜬 장에 갇힌 채 음식물 쓰레기로 사육되며 고통당하고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모 업체 대표는 광견병 전염의 우려로 인해 뜬장에 사육하게 되었으며 미국 농림부 동물복지규정에서 제시된 최소 규정보다 1.5배 넓은 공간에 사육하니 문제 될 것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글쎄요. 저로서는 이런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물보호단체와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설 유기견 보호소들 다녀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대형견들을 뜬장에 키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유기견 보호소에서는 최소한 마리당 4평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 편안히 쉴 곳과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간이 넓으면 보호소의 공간도 넓어야 하고 또 청소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그럼에도 그런 환경에서 유기견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뜬장을 본 것은 모두 보신탕용 육견을 키우는 곳들이었습니다. 이 육견들이 광견병 전염 우려 때문에 뜬장에 사육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좁은 공간에 육견을 과다 사육하면서도 대소변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뜬장에서는 대소변을 보면 바로 밑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하루 혹은 2~3일에 한 번만 청소를 해도 되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편하게 대소변을 관리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대형견을 뜬장에 가두어 사육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육중한 체격의 대형견들이 뜬장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 공혈견을 사육하면서 그것이 미국 농림부의 동물복지규정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모 업체의 대표는 공혈견의 위생과 동물복지 측면에서 지적된 사안에 대해 다음 네 가지를 중심으로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 문제가 된 음식물 가공 사료는 적합한 대체 사료를 선정하는 대로 교체
- 뜬장의 일부분에 스테인리스 발판을 만들어 편히 쉴 수 있는 방식을 도입
- 준비되는 대로 운동장을 만들어 공혈견이 돌아가면서 주기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 조성
- 부지가 확보되는 대로 사육장의 크기를 확장
동물혈액은행도 현실적인 여건들이 있을 터이므로 점진적인 개선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공혈묘들의 경우
이 글을 쓰는 것은 지나간 이야기를 되풀이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공혈묘의 문제입니다. 아픈 개들에게 피를 공급해주는 공혈견이 있듯이 아픈 고양이들에게 피를 공급해주는 공혈묘도 있습니다. 모 업체는 공혈묘는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을지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가 밝힌 공혈묘의 실상은 이러합니다. 모 업체에 고양이 혈액을 주문했을 때 혈액은 대구 수성구에서 배달되어 왔습니다. 카라에서 찾아가 보니 그곳은 ‘한약마을’이라는 간판을 단, 전면이 파란색으로 썬팅된 상가였습니다.
그리고 썬팅이 되지 않은 틈으로 내부를 살펴보았을 때 그곳은 전형적인 고양이 번식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청소하는 시간 외에 별도의 고양이 관리자는 목격되지 않았으며, 사료는 대형 사료통에서 자율 배식 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은 유리판이 올려진 철제 선반 위에 올라가 모여 있었고, 발톱갈이용 스크래처나 장난감, 캣타워 및 고양이들의 습성을 충족하기 위한 따뜻한 깔판이나 박스 등 숨을 곳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전면 유리문이 가려져 있고 사면의 문이 닫혀 있어 햇볕이 들지 않았고, 내부 환기가 불량해 보였다고 합니다. 이웃 주민들은 그곳을 고양이 판매업소로 알고 있었습니다. 청소해주시는 분이 하루에 한두 차례 와서 청소하고 50~60여 마리 고양이의 먹이를 주고 가며 대학교수라는 수의사가 며칠 간격으로 온다고 했다고 합니다.
카라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곳이 모 업체에서 고양이 혈액을 공급하는 곳이 맞는지요? 모 업체의 대표 수의사는 공혈견의 혈액관리가 위생적이며 전문성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처리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모 업체의 혈액 관리는 인의의 혈액관리 시스템과 동일한 수준의 위생 수준과 전문성을 가지고 진행되었음을 밝힙니다. 채혈은 농장 옆에 있는 채혈실에서 무마취로 무균적으로 이뤄지고, 채혈된 혈액은 속초에 있는 혈액처리실로 냉장 운반되어 대형원심분리기를 이용해 무균 적혈구/혈장분리, 기본 혈액검사(혈액형 검사, CBC, 단백질 농도 측정, ELISA 키트 검사)를 실시하며, 심층 혈액검사는 대학 내 설치된 혈액연구실(KABB Bio; 혈액검사실 1개, 연구실험실 2개)에서 시행합니다.”
공혈묘의 혈액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또한 소동물 임상을 하고 있고 고양이를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혈묘는 어떠한 방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으며, 어떻게 채혈을 하는지 더욱 궁금합니다.
공혈견은 그나마 체중이 많이 나가고 낯이 익은 사람은 수월히 다량의 혈액을 채혈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체중이 대개 비슷하고 고양이의 성격상 채혈할 때 가만히 있을 고양이가 드물기 때문에 채혈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고양이를 상대로 어떻게 채혈해 혈액을 공급하고 있습니까?
이런 상식적인 물음에 대해 모 업체 측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동물보호단체나 동물반려인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의혹을 잠재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라에서는 모 업체 측이 공혈묘의 관리 상태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일체 대화에 응하지 않으며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윤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울러 생명윤리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모 업체의 대표는 대학원 시절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들의 치료를 위해 믿고 사용할 수 있는 동물들의 혈액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동물병원에 질 좋은 혈액을 공급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고 혈액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모든 과정을 정당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복제인간의 경우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이익을 갖게 된 복제인간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접함에 있어 필요한 것이 의료윤리나 연구윤리 혹은 생명윤리와 같은 윤리의식입니다.
우리는 2005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그가 수의사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일으킨 문제를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수의사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일으킨 문제는 난치병 치료라는 목적을 위해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윤리적 사항들을 어긴 것입니다.
그는 인류의 난치병 해결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위해서 연구윤리쯤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목적이 모든 과정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지고지순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선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 연구윤리이며, 이는 의료윤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모 업체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반려견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혈액을 생산한다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공혈견과 공혈묘가 고통받을 상태에 놓이게 했습니다. 이런 처지에 놓인 공혈견과 공혈묘는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개나 고양이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만 동물 학대고 수의사가 다른 개나 고양이를 살리기 위한다는 이유로 고통을 주는 것은 동물 학대가 아니라는 이중적인 기준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누가 하든 동물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가한다면 그것이 바로 동물 학대입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채혈 당하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동물의 5대 자유인 ⓛ 배고픔과 갈증, 영양불량으로부터의 자유 ② 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③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④ 통증과 상해,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⑤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지켜지더라도 보호자가 있는 반려동물을 위해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를 뽑히는 공혈견이나 공혈묘로 다루어도 되느냐는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더 나아지기 위해
모 업체는 동물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혈액의 공급과 관련된 기반이 없던 불모지에서 연구하고 또 혈액공급 시스템을 마련하느라 남모를 많은 고생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몰두하다 미처 공혈견이나 공혈묘의 복지에 깊은 고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문제시되는 일은 많습니다. 유럽에서는 산란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4~5단씩 쌓아놓고 사육하는 배터리식 양계장을 점차로 없애기로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동물의 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공혈견이나 공혈묘의 복지에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개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