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은태의 성희롱을 폭로한 여성,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계정을 삭제한 고은태, 이에 대해 폭로한 여성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은 고종석을 둘러싼 이슈에 대한 총정리이다. 피해자 본인은 여전히 계정을 공개하고 있으나, 보도를 통해 이를 찾아갈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개인에 대한 비난을 가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모자이크 한다. 시작은 한 여성의 폭로였다.
여기에 고은태는 반성의 트윗을 올린 후, 몇 시간 후 계정을 삭제한다.
쟁점 1. 그녀의 ‘폭로’라는 판단은 현명했는가?
답변 1. 아니다. 그랬으면 퍼거슨 감독 말대로 트위터를 애초에 안 했겠지(…)
교훈 1. 트위터를 하지 마라… 폭로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피곤하게 하고 문제 해결과도 멀어진다. 문제가 생기면 우선은 전문가를 찾도록 하자.
그녀의 트위터 폭로는 사실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홍성수@sungsooh님 (법학 교수)은 “피해자가 혼자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피해자로서도 너무 힘들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도 힘들고, 가해자도 적절한 처벌을 받지 못하는 (과소 또는 과잉처벌 가능성)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더욱이 트위터라는 이런 문제해결에 매우 부적절해 보입니다.”라는 말은 폭로가 문제 해결에 좋은 수단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문제 해결을 떠나 이는 그녀에게 그리 도움이 될 일도 아니다. 김고기님@Demagogy의 “폭로라는 방식에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건(특히 이런 사건에) 폭로를 통해 공론화가 되면 대중의 관음증과 사적 제제가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가해자도 가해자지만 피해자에 대한 광범위한 2차 가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극히 문제적이다.”라는 트윗처럼 그녀 자신에게 엄청난 비난과 피로가 쏟아졌을 것이다.
어차피 대중은 예측 불가능하다. 단편선 @danpyunsun 님은 “지금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적절하고 사리판단 분명하고 유능한 대리인이다. 이렇게 계속 가면 그냥 사회에 도처한 방향 없는 분노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듯, 이왕이면 폭로보다는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얻는 쪽이 모두에게 좋은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쟁점 2. 트위터에서 사적 도덕성 폭로는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가?
답변 2. 문제가 있지만, 폭로 자체를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힘들다.
교훈 2. 우리 모두 떡밥은 천천히 물자.
이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왈가왈부를 낳은 부분은 그녀의 폭로가 올바르냐는 점이다.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압락@abraxaas님은 “이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스트레스 받은 지점은, 피해자와 같이 멘붕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멘붕하는 건 연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건의 경중이나 내용을 떠나, 너무 많은 사람이 격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남긴 트윗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그녀의 트윗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진실한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 구성요건에 해당할 수 있다. 본 건은 정통법이 적용되는 매체이고, ‘비방의 목적’이 있다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녀의 폭로는 분명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 그녀가 법적으로 ‘유죄’라 말하기는 어렵다. 고은태는 대학교수이기에 청렴성 등 ‘공익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사익이 목적이라 해도 위법성은 조각될 수 있다. 어차피 정당함은 주관적 측면을 가지니 여기까지 하자. 사실 고은태에 대한 폭로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1의 홍성수 교수가 이야기하는 ‘피해자가 받는 피해’이거나, 아래에서 이야기할 ‘가해자가 받는 지나친 피해와 비난’이다. 쟁점 3에서 후자에 대해 살피도록 하자.
쟁점 3. 고은태는 과도한 욕을 먹었나?
답변 3. 그렇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예인들강인구속을 떠올려 보자.
교훈 3. 지위와 명성에 합당한 자기관리 없이는 쫑나기 쉬운 세상이니 조심하자.
트위터에서의 폭로가 가지는 문제점 중 하나인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MECO@meco_vibre님은 “지금 피해자가 하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이 검사가 되어 자신을 참고인으로 증언석에 세우고 스스로 판사가 되어 판결을 내리려고 드는 짓이다.”라고 했으며, Alan@AlanSNi님은 “잘못한 자는 무슨 짓을 당해도 용납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정말 무섭다.”고 트윗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고은태를 ‘공인’이라 보기는 어렵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인데, 그는 교수이자 논객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유명인’으로 보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연예인도 유명인이고 파워 트위터리안도 유명인이다. 유명인은 항상 ‘과도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예로 연예인이 음주운전을 했을 때, 우리는 과도한 비난을 쏟는다. 결국, 유명인은 ‘명성’으로 먹고 사는 존재이고,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나 역시 김형민@sanha88님의 “고은태 교수의 실수는 인간적인 실수이지(오해하지 마시길 그 실수의 가벼움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정치적인 실수가 아니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불일치에 대한 문제도 무시할 문제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capcold님의 자이언 효과에 속지 말자: 공직자의 자진사퇴 열풍(?)에 즈음하여를 참조하자.
쟁점 4. 고은태의 행위는 성희롱인가?
답변 4. 그렇다. 물론 아래 트윗을 보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교훈 4. 성희롱 자체는 자의적이지만 세상의 시각은 그렇지 않으니, 알아서 사리고 살자.
Jason@DrPatariro님은 “성추행이나 강간과 달리 성희롱은 1) 인간들의 일반적인 구애행위와 행위 자체만 보고 구별하는 게 불가능한데 2) 피해자는 기분이 나빴고 3) 가해자의 가해 의도는 입증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상황임”이라 주장해서 논란을 낳았다.
국어사전을 뒤져보자. 성희롱은 ‘이성에게 상대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행동.’이며, 성추행은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하여 물리적으로 신체 접촉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둘 다 여자는 원하지도 않는데, 성적 수치심 주는 거. 다만 성추행은 물리적 행위가 동반된다. 즉 성추행은 성희롱 속에 포함된 개념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할만한 짓을 고은태가 했는가다. 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게 좀 자의적이기는 하고, 법관들도 아리까리하다 말한다. 다만 법정에서는 사회 일반의 보통 사람 정도로 판단 기준을 잡는다. 어떤 사람이 굉장히 개방적이라면 안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기준 높아서 작은 말에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다 따지면 법정에서 형평성이 떨어지니까, 대충 일반 사람으로 잡는다. 그렇다면 일반 사람은 아래 고은태의 발언을 어떻게 여길까?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물론 이 부분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강자 입장에서 되려 억울함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 사실 성희롱이란 것의 선이 워낙 애매하기도 하여 남자들이 역으로 억울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홍성수님@sungsooh의 말을 다시금 빌려 오자.
“상대의 의사를 살피고 존중한다는 것. 말이 쉽지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단속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물리력’이나 ‘사회적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어려운 일을 감수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강자라는 이유로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하면서까지 상대 의사를 세심히 살피는 그 어려운 일을 굳이 감수해야 하나? 그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약자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불공정한 ‘분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쟁점 5. 고종석이 부릅니다. “저년이 원래 그런 년이잖아?”
답변 5. 아저씨, 술 좀 그만 마시세요.
교훈 5. 술을 그만 마시자… 남자들의 착각을 버리자.
하지만 고종석이 나타나면 어떨까? 고종석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더니 그녀의 발언을 폭풍 리트윗하기 시작한다.
이에 피해자는 아래와 같이 대응했다.
여기에 대해서 잘 정리한 트윗은 캡콜드@capcold님의 말. “그냥 아주 흔하고 기본적인 캠페인 표어가 새삼 정확하다 싶다. “Silence is not consent.” 이만큼이나 중요한 기초 중의 기초 개념 캠페인이 하나 더 필요한 듯하다: “섹드립은 헤픔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면에서 ‘두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고종석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실제 세상에서도 그렇다. 본 글의 법률상담을 맡아준 문해인 변호사 왈. “여성이 호감을 가지고 대했을 때, 남성이 그렇게 행동할 때가 있다. 이 때 여자는 뭔가 대처하기 난처해서 가만히 있기도 한다. 그럴 때 남자가 자신을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불편한 행위를 거듭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그런 경우 분명히 희롱이 될 수 있다. 굳이 사회적 관계가 없더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쟁점 6. 고종석의 행위는 2차 가해로 볼 수 있는가?
답변 6. 상식적으로는 물론이고 법적으로도 가능한 수준.
교훈 6. 2차 가해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쉽다. 제발 그만 좀 정의롭자.
귀찮으니 문해인 변호사의 답을 그대로 옮긴다.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따지고 들면 법적 처벌도 가능하다. 명예훼손을 러프하게 다루면, 사실의 적시성, 비방의 목적, 공익의 목적, 3가지를 보게 된다. 여기서 고종석의 발언은 비방의 목적이 강해 보이는 반면, 공익의 목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법관의 개별적 판단이 들어가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여러분이 법관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알아서 판단하자.
월급쟁이형 한뉴녕@a_hriman 은 “가해자와의 친분 때문에 내가 평소에 했던 말을 안 한다는 취지로 비판하는 어이없는 사람들도 있는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외려 평소의 나라면 트위터 여론이야 어쨌든 이 언론보도는 과잉이며 웹시대의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지적해야 하는데 말을 아끼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처럼 관계자라면 더욱 말을 아끼는 게 피해자, 가해자, 당사자 모두에게 좋다.
사실 고종석이 유명인사라서 그렇지. 이러한 2차 가해는 꽤 많았다. 피해 여성에게 ‘너도 즐기지 않았느냐?’, ‘이자식, 우리 은태쨔응을~’, ‘평소에 섹드립 졸라 치고 웬 순진한 척.’같은 트윗이 엄청나게 타임라인을 장악했다. 반대로 ‘고은태, 인권 운동가인 양 위선 떨더니.’, ‘시발 DS가 뭐야. 변태색히.’, ‘진보 인간들이 다 그렇지.’ 식의 트윗도 훨씬 더 많이 넘쳤다. 이 과정에서 2차 피해는 가해자, 피해자를 넘어 주변 사람들까지 크게 확장됐다.
2차 가해는 한두 번의 키보드 질로 손쉽게 가능하다. 쓴 사람이야 넘치는 정의감에 했겠지만, 정의감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일이 흔하다는 걸 우리는 많은 선거를 통해 이미 깨닫고 있지 않은가?
쟁점 7. 섹시한 가십거리로 이번 사건을 대하는 딴지일보의 자세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답변 7. 마음에 안 들지만 그럴 수도 있다. 관심 끄자.
교훈 7. 별개로 기자들은 돈 받았으면 기사를 쓰자.
딴지일보가 이번 사건을 SM적인 이슈의 가십거리로 다루고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XX 사건’이라고 해서 논란이 됐는데 그럴 수’는’ 있다고 본다. 뭐, 모든 언론은 각자의 입장이 있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남의 매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쟁점 6에서처럼 2차 가해가 매우 쉬운 상황에서 언론이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게 올바른가 싶기는 하다만, 그것도 언론 다양성은 있으니.
다만 단순히 딴지일보를 떠나 언론들이 너무 대충 쓴 문제는 있다. 물론 트위터 세상은 전체 세상에 그리 중요한 기사거리는 아니겠지만, 미디어오늘의 고은태 교수 성희롱 일파만파 “다른 피해자도 있다”를 제외하면 정황도 엉망으로 요약하고, 자극적 제목에, 한 네티즌에 의하면… 식의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언론이면 (철썩) 취재 좀 (철썩) 하란 말이야 (철썩) 트윗만 대충 (철썩) 요약하지 말고 (철썩)
쟁점, 답변, 교훈 정리
전반적으로 이 사건의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해자 : 웹에 폭로함은 상대방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다. 그뿐만 아니라 사건이 크게 왜곡되고, 본질은 아스트랄로 날아가기 십상이다. 물론 외부에서 보는 시각의 수십 배나 스트레스가 컸겠지만, 될 수 있으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는 인내력과 지혜를 가지자. 무엇보다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가해자 : 트위터라는 공간이 말을 너무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곳이다. 직접 대면이 아닌 한 서로 이해하며 이야기를 잘 주고받기란 힘들다. 발화가 쉬운 공간인 만큼 상처받기도 쉽고, 왜곡되기도 쉽다. 그럴수록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로 많은 여성이 이야기했듯 트위터는 손쉽게 오해를 낳고, 이에 따른 피해와 상처가 많은 공간이다.
구경꾼 : 뭔가 사태가 일단락되기 전에는 조용히 사태를 관망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편을 들건, 가해자의 편을 들건, 엄청나게 높은 합리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대부분 메시지는 문제를 더욱 꼬고 꼴 뿐이다. 정 관심이 있다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후, 어떻게 하면 사건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고종석 : 이 트위터는 해로운 트위터다.
언론사 : 有口無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