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글(「영어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바라보는 I SEOUL U: 차라리 영어 안 쓰면 안 되나?」)이 약간 불친절하고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많아 보충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일단 서울의 새 슬로건인 아이 서울 유(I SEOUL U)는 명사인 서울을 ‘서울하다’로 동사화시킨 문법적 오류가 있긴 하지만, 난 이 부분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언어라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사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 ‘서울하다’라는 말도 자꾸 쓰다 보면 언젠가 옥스포드 사전에 오를 수도 있다. 사실 구글하다, 페이스북하다, 포토샵하다 라는 동사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는 필수 동사들이다.
문제는 ‘서울하다’의 뜻이 과연 뭐냔 말이다. 구글하다는 ‘검색하다’, 페이스북하다는 말 그대로 SNS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다/보다’, 포토샵하다는 ‘이미지를 수정하다’라는 확실한 뜻이 있는데 동사 ‘서울하다’는 대체 무슨 뜻일까?
서울하다?
잠깐만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왕년에 파워 블로거였다(정확히는 이틀 정도). 어떤 뉴스나 이슈를 소개한 후에 그 상황과 묘하게 어울리는 영어 명언 하나씩을 연결하는 블로그를 운영했었는데 어느 금요일 저녁 ‘이명박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포스팅했다가 이게 주말 내내 다음 메인 화면에 걸리면서 난리가 났다.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상사한테 불려가서 엄청 깨졌다.
장황하게 사랑 고백을 쭉 하다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했었다. “대통령님께 강아지를 한 마리 선물하고 싶습니다. 강아지는 고양이와 달라서 쥐를 잡는 습성이 없으니 안심하고 청와대에서 키우셔도 됩니다.” 우연히 다음에 접속했다가 내 글을 본 상사는 기겁했고, 지금 회사에서 맡고 있는 정부 관련 프로젝트가 몇 개인데 네가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느냐고 화를 냈다. 100퍼센트 맞는 말이었다. 블로그를 폐쇄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문의 및 항의가 빗발쳤다. 무슨 일 있느냐? 잘 지내느냐? 는 걱정 어린 안부 문자부터 아고라에 명현스런 글을 다시 보고 싶다는 청원을 하겠다는 전화까지 받았는데 제발 참으시라고, 그러시지 말라고 빌고 또 빌었다. 일단 사람들은 이명현이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이명현이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중에서도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을 읽는 사람은 정말 소수일뿐더러 끝까지 제대로 읽는 사람은 더 소수다. 게다가 좋아해 주기까지 하고 나의 독특한 반어법 스타일을 이해하는 사람은 완전 극소수이므로 ‘명현스런 글을 다시 보고 싶다’고 청원하기 위해선 이명현, 이명현의 글, 이명현의 글쓰는 스타일–이렇게 허들을 세 개나 뛰어넘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서울은 이미 국제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바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서울을 지금보다 더 유명하게 더 좋은 이미지로 널리 알리고자 새롭게 영어 슬로건도 만들었던 것인데,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아이 서울 유–나는 너를 서울하다’가 서울이 어떤 곳인지 바로 설명해 주는 문구가 아니라 ‘서울하다’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하다.
아이게 또 한국어로는 ‘나와 너의 서울’이니 영어 슬로건 설명과 별개로 한국어 슬로건 설명이 따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서울, 아이 서울 유, 나와 너의 서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하나하나 따로따로 각각 알려야 하니 숙제만 3배로 불어난 셈이다.
아이 서울 유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채택하기 위해선 먼저 서울하다가 무슨 뜻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내렸어야 했는데 3세대 개방형 도시 브랜드 전략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니 진짜로 ‘나는 너를 팔았다’, ‘나는 너의 영혼을 빼앗는다’ 등 온갖 해석이 다 나오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해리 포터를 쓴 작가 J. K. 롤링과 같은 학교를 나왔고 아이 서울 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맨 먼저 물어봤던 외국인 그룹은 대학 동기들이므로 이들이 서울을 발음이 비슷한 소울로 착각하고 “I soul you… You mean, I suck out your soul?”이라고 한 것은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해리 포터 영화 속에서 디멘터가 사람의 영혼을 빨아먹는 장면이 너무나 강렬해서 soul-sucking 이라는 형용사가 아예 새로 생겼고 2014년도에 새로 발견된 말벌 종을 학자들이 soul-sucking dementor 라 명명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나야 영국에서 공부했으니까 아이 서울 유를 영혼을 빼앗는다라고 해석한 친구들이 많았다고 해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한 이준석 씨와 한국의 고려대학교에서 공부한 이철희 소장은 누구에게 물어봤길래 내 친구들과 같은 해석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인크레…딘버러?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는 2012년에 인크레더블(Incredible)과 에딘버러(Edinburgh) 를 합쳐서 인크레딘버러(Incredinburgh) 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가 시민들의 반응이 너무 안 좋자 포기했다. 이미 30만 파운드를 홍보비용에 쏟아부은 상태였지만 사람들이 하도 괴상한 단어를 만들었다고 항의하자 시민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달리 시민을 강조하는 박원순 시장이니까 에딘버러의 경우처럼 “새로 만든 슬로건이 이상해요? 그럼 이건 접기로 하고 한 번 더 논의할까요?” 할 수도 있을 줄 알았는데 미스터 손의 뉴스룸에 출연하셔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냥 가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고 하니 결국 서울의 운명은 다시 한 번 네티즌들 손에 있게 되었다. 작년에 가디언에서 실시한 전세계 주요 도시 브랜드 파워 조사에서 서울은 LA, 뉴욕, 런던, 파리에 이어 당당히 5위를 차지했다. 우리의 영원한 숙적 일본의 도쿄는 28위.
그런데 전체 점수는 5위 대 28위인데 세부사항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광 시설을 포함한 도시 매력 지수, 환경, 인프라, 경제적 활동성 등 도시가 갖고 있는 자산 부분은 도쿄에 뒤쳐지지만 서울이 SNS상에서의 언급도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서 전체 점수를 더하니 5위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말인즉슨, 서울의 브랜드 파워는 순전히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열심히 언급하고 클릭한 공로로 생겼다는 것인데 이 나라는 옛날부터 항상 이랬다. 전쟁 중에도 왕은 도망을 가는데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정치인들이 아무리 뻘짓을 하고 공무원들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국민들이 워낙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다 커버해 주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역설적으로 그저 국민 믿고 까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나는 ‘아이 서울 유’를 볼 때마다 참 속상하다.
덧
‘하이 서울’이 어떻게 해서 ‘서울에게 인사하시오’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아 이 부분은 따로 다음주에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다가 내가 애정하는 강동원은 언제 얘기하지? 하는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우리의 서울은 소중하니까. 서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