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새 슬로건이 공개된 지 2주가 지났다. 이제야 글을 쓰는 이유는 처음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키보드 자판을 누를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제발, 외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I soul you? 난 너의 영혼을 빼았겠다라고? 아시아의 영혼 서울이 순식간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날아다니는 해리 포터의 서울이 됐다. I sold you 라고도 들린다. 나는 너를 팔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도시든 인신매매의 도시든 후덜덜하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이 서울 유”가 나와 너의 서울이라는 뜻을 가졌단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만약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게 새 슬로건을 반드시 한글 단어 중에서 하나 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음 보기 중에 하나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살인, 강간, 방화. 그리고 뉴욕 시민들이 살인을 선택했다고 치자. 우리는 기겁하겠지만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Sa-rin, Gang-gan, Bang-hooa 등은 발음하기가 비교적 편하기 때문이다.
혁신, 융합, 번영 등은 뜻이 좋아도 절대 안 된다. 이중모음에 받침까지 있어서 대다수 뉴욕 시민들이 발음할 수 없다. 게다가 번영(Burn young)의 경우 ‘젊은 사람을 불태워 죽이다’로 들릴 수도 있다. SK의 원래 사명은 선경이었는데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Sunk Young(젊을 때 가라앉다)으로 들렸다. 1998년 초, 선경을 SK로 바꾸고 대대적으로 새로운 CI 선포식을 진행했던 것은 아주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시장 이하 서울시 측에서는 서울시민의 뜻을 모았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서울’이나 ‘살기 좋은 서울’, ‘행복한 서울’ 등 우리말을 사용하는 슬로건이라면 얼마든지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 슬로건이다. 서울시민의 모국어는 한국어지 영어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급히 응급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있는데 보통 사람 100명의 상식에 근거해서 집단지성을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 명의 전문가인 의사를 찾아가겠는가? 도시 브랜딩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수많은 브랜드 전문가들, 컨설팅 회사들, 브랜드만 연구하는 학자 및 기관들이 왜 존재하겠는가?
도심에 꿀벌을 날린다거나 청사를 도서관으로 활용한다거나 한강 텃밭을 개장한다거나 돌고래 제돌이를 위시해서 동물의 권리까지 배려한 일련의 시정은 모두 진심으로 박수 받아야 한다. 하지만 브랜딩은 다르다. 게다가 영어라는 다른 전문 영역을 또 끌어들였다.
왜 굳이 되도 않은 영어를 붙여야 하는가
그냥 ‘아이 서울 유’는 없애고 ‘나와 너의 서울’로만 가면 안 되는 걸까? 왜 굳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영어를 꼭 넣어야만 하는가? 질문을 해 놓고도 창피하다.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무조건 영어가 있어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 하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이 말인즉슨 실제 영어와 전혀 상관 없이 상사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를 파악하는 것이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된다는 소리다.
서울시 측에서는 외국인들도 엄청 좋아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럼 서울처럼 큰 도시의 행사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감히 나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언론인이야 John Burton처럼 Seoul’s terrible new slogan와 같은 칼럼을 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결정권자의 심기를 간파하는 눈치100단 고수들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서 진짜 속마음을 알긴 어렵다.
사실 원래 쓰던 하이 서울도 엄청 조롱거리였다(오세훈 전 시장이 박원순 현 시장을 비판하는 것도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이 서울을 “안녕, 서울”로 해석하나 실제 뜻은 “서울에게 인사하시오”다. 여기서도 하이가 동사로 쓰였다. 차라리 형용사 high 를 썼다면 좋을뻔 했다.
하이 서울도 참 이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난 지금처럼 분노하지는 않았었다. 국정 역사교과서야 한글로 인쇄되어 한국 안에서만 유통되겠지만, 아이 서울 유는 영어권 사람 누구나 보고 비웃을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