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너지 전문가 이헌석, 핵발전의 문제와 의미를 말하다
[인터뷰] 에너지 전문가 이헌석 “핵을 넘어 새로운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에서 이어집니다.
11. 탈핵은 무엇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리승환 : 슬슬 정리해 보자. 탈핵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헌석 : 현재 전력량 가운데 원자력의 비중은 31%다. 이명박 덕에 가속이 더 붙어서 2020년대 중반이 되면 59%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 반대로 가자는 것이 탈핵이란 말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다. 원전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31% 유지도 아니고, 이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리승환 : 그래서 언제 탈핵하자고?
물론 언제 탈핵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긴 하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방향으로 나가자는 선언이다. 그걸 가지고 녹색당은 2030년, 통진당은 2040년… 이렇게 레벨이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일본처럼 1년만에 0로 돌릴 수도 있다. (인터뷰 시점인 2012년 5월) 현재 일본 원전은 54개 모두 서있다. 어찌되었든, 탈핵이란 1차적으로는 핵발전 비율의 기울기를 낮추자는 이야기다. 이에 한국사회가 동의하기를 바라고 있고.
리승환 : 이 과제를 달성하려면 필요한 게 뭔가?
이헌석 : 물론 에너지원 포트폴리오를 뜯어고치는 것도 필요한데, 더 결정적인 것은 발전 총량을 최소한 현재 상태로 머무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게 더 어렵다. 발전 총량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핵발전소가 늘어나는데, 핵발전 비중은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전 총량이 어떤 시점 A에는 500이었다가 B에서는 1000이 되었는데 핵발전소의 발전량은 A에서는 300이었다가 B에서는 500이 되었다고 해 보자. 시점 A에서 B로 갔을 때 핵발전소의 발전량이 200이나 늘었다. 그러나 시점 A에서는 핵발전소 발전량의 비율이 60%였지만 B에서는 50%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리승환 : 뭔가 학생 부담 줄인다면서 내신에 논술까지 플러스하는 눈가리고 아웅 같다.
이헌석 : 실제로 이런 식의 착시현상이 우리 발전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핵발전 비율 그래프를 그려보면 80년대 후반 이후로 핵발전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핵발전 총량은 계속 늘었다. 일종의 착시가 벌어진 셈이다. 이런 착시를 막으려면 에너지 소비량을 1-2%대로 고정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2010년 자료를 보면 한 해에 전력소비가 10%가 늘었다. 제철소가 하나 오픈하고 이런 것도 있고, 경기도 살아났고… 힘겨운 상황이다.
리승환 : 탈핵이라는 과제는 그저 넘사벽으로 보인다.
이헌석 : 여하간 이런 상황을 극복해서 에너지 소비량을 어쨌든 1-2% 대로 안정화시켜야만 탈핵으로 갈 수 있다. 외국의 탈핵 시나리오를 보면 소비량 자체 안정화가 첫째다. 지금 상황으로 가면 정부계획대로 다 지어도 양을 쫓아갈 수 없다. 앞서서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수요 조절이 필수적이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그러나 현실은 고리 1호기 같은 낡은 물건조차 계속 굴리려는 시궁창이다. 원전은 폐로계획 자체가 없더라.
이헌석 : 단기적 전력 수급이 안 되고 있으니까, 고리 1호기도 계속 쓰려고 하는 거고. 보험드는 셈 치고 설비를 유지하자는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 석탄도 그런 설비들이 좀 있다. 영월에 가면 국내탄 화력발전소가 하나 있다. 그러나 전력산업은 효율성을 중요시하기에 결국은 폐로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화력도 옛날 거 40년, 요즘 60년이 수명이다. 발전이 핵이건, 화력이건 보일러 수명이 이 기준이다. 보일러, 터빈을 갈면 모든 것을 가는 것이다. 핵은 원자로가 그 역할. 보일러가 그 이상 가면 못 버틴다.
12. 한국 전력예비율과 발전량의 진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당장 전력예비율이 모자라는 날이 많으니까, 단기적으로 뭔가 이야기하는 게 문제가 있긴 한 것 같다.
이헌석 : 음… 자세히 뜯어보면 전력예비율 가지고 한국전력이 야료를 부리는 것이다. 오늘 같은 일요일에는 예비율이 30-40%까지 올라간다. 실제로 전력예비율이 7% 이하로 떨어지는 날짜는 1년에 10일 정도고, 시간으로 놓고 보면 다 합쳐봐야 연중 20시간 정도다. 자 앱을 한 번 들여다 보자. 지금 공급 능력이 6천 3백만 KW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력 제일 많이 썼던 날에 스탠바이 하고 있던 용량이 7천 9백 만 KW다 알고 있겠지만 나머지 1천 5백만 KW는 예방정비중이다. 2011년 9월 15일도 왜 정전이었나? 그 날은 유난히 전기소비가 많은 날은 아니었다. 계획예방정비 아다리가 안맞아서 사고가 난 것이다. 여하간 5월 현재 상태는 준비가 덜 된 상태다. 지금 울진 4호기, 고리 4호기 서 있기는 한데, 둘이 합쳐봐야 200만 KW 정도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전력공급능력 확보도 교통 인프라랑 비슷한 면이 있긴 있다. 극히 일부 시간에만 용량 한계 근처까지 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널널한 게 말이다.
이헌석 : ㅇㅇ. 피크시간 대비책을 세우는 게 더 경제적. 보통 때는 30% 이상 전력예비율이 남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 평일에도 2-3시 요 때 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그닥 많이 늘지는 않는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11시에 더 높은 날이 많던데.
이헌석 : 11시는… 업계에서 추정하기로는 식당까지 가세해서 설비를 가동하는 시간이다 보니 그렇다는 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이니 집에 앉아서 TV 들여다보는 시간인 밤 9시에 전력소비량이 늘어난다.
리승환 : 그래서 한국 발전업계는 설비 과잉이라는 것인가? 여기 갑오징어는 부족하댔는데 이놈 사기꾼인가?
이헌석 : 일본 사례랑 비교해 보자. 일본은 총괄원가 방식이라 해서, 발전사가 소모하는 총 경비의 3%를 얹어서 전기요금 쳐주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경비를 많이 지출해도 3% 이윤이 확보되어 있다. 그리고 분모가 커지면 3%가 더 많아진다. 민간 회사에게 이는 설비과잉을 위한 동기가 될 만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피크에도 전력예비율 20%대를 기록한다.
리승환 : 한국은 어떻게 다른가?
이헌석 : 반면 한국은 공기업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설비 효율을 좀 많이 따졌다. 불필요하게 많이 짓는 건 용납이 안 됐다. 따라서 설비 효율로 보면 한국이 낫다. 낭비하는 설비가 그만큼 없으니까 말이다. 핵발전소 한 시간도 쉬지 않고 1년 내내 돌리는 곳이 허다하다. 일본은 원전 54개라고 하지만 후쿠시마 터진 당시 34개만 돌리고 있었다. 20개가 예방정비 등을 위해 그냥 서 있던 상태다.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한국 발전설비는 아주 효율적인 편이다.
리승환 : 그러면 효율이 높은 게 탈핵을 위해서 좋은가 나쁜가?
이헌석 : 사실 탈핵을 위해서는 설비 과잉인 경우가 더 쉽다. 실제 일본 반핵운동에서는 이런 상황을 사용해서 주장을 전개하기도 했다. 핵, 석탄, 가스 등의 순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 당국의 전력 공급능력 표시 방식이다. 일본 쪽 운동가들은 이를 뒤집어보자는 발상을 했다. 수력부터 쌓아 올려서 핵까지 공급능력을 다 쌓아 올리면, 핵의 발전비중은 실제 발전량 수준보다 높은 지층에 쌓인다는 것을 일본 쪽 운동가들이 보여준 것이다. 예를 들어 공급능력이 1000이고, 발전량이 700이면 핵을 뺀 나머지 발전방식의 용량이 750쯤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일본이 비교적 쉽게 탈핵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렇게 뒤집어도 핵을 왕창 많이 써야 한다. 공급능력 1000에, 발전량 900인데 핵을 빼면 700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당장 원전 전부 멈추면 강제 정전을 실시해야 하는 수준인 것은 분명히 맞다.
리승환 : 9.15 정전 가지고 한국전력에서 몇 년은 우려먹을 것 같다.
이헌석 : 이 사고는 확실히 예방정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사실 사고 타임라인 쭉 따라가다 보면 갑작스러운 더위가 예보되어 발전소에 대비하라는 이야기가 내려갔음에도 제대로 대응을 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은 발전사와 일종의 유통부분을 쪼개기 전에는 생각하기 힘든 장면이 아닌가 한다. 전체가 하나의 한국전력이었던 시절에는 전화 한 통화 걸면 발전소 세워라, 가라 이런 이야기가 가능했으나.. 결국 지금은 한국전력과 발전사가 서로 손발이 안맞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벌써 10년 됐는데 이따위면 어쩌나 싶다.
13. 우리에게 탈핵을 위해 필요한 것
리승환 : 탈핵 과정에서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이헌석 :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이 현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다. 후쿠시마 이후 다른 나라들은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한국은 문헌조사 한 번 하고 끝을 냈다. 이 문헌조사라는 게 이 지역 쓰나미 있냐? 최대치 몇 미터? 이런 수준의 조사였다. 보도자료 10페이지 분량에 불과한 문건이었다. 그래도 후쿠시마 이후에 일본어 되는 사람들이 일본 정보를 많이 퍼다 나르고 했는데도 이 따위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지 않겠나?
리승환 : 그렇다면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은?
이헌석 : 일단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들을 계획 예방정비 시점에 가서 한 번씩 세워야 한다. 한 번씩 전체 점검이 되어야 한다. 이게 전제되지 않고서는 나중에 터질지 아닐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최소한 후쿠시마 수준의 사고는 막아야하고 말이다. 이렇게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연도를 제시하면서 그 때까지 핵발전소를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2030년까지 안터진다는 보장이라도 있어서 그런 연도를 제시한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결국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 최우선이다.
리승환 : 하긴 고리 1호기가 잠시 정전되었던 사고는 참 많이 이야기됐다.
이헌석 : 고리 1호기의 해당 사고에 대한 대책이 가관이다. 물론 그 사고가 내부 발전기가 섰기 때문이라는 점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 교체해가지고는 신뢰할 수 있는 원전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당연히 문제가 된 보조발전기는 교체해야지. 그러나 워낙 복잡하고 거대한 것이 원자로이다 보니 다음 문제는 또 다른데서 일어날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후쿠시마 사고도 생기고 했으니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리승환 : 방폐장 쪽은 어떤가?
이헌석 : 방폐장은 더 심각하다. 부지가 안좋다는 것은 앞서 말했고.. 그 때 보고서 관련 이야기나 조금 해두겠다. 당시 정부 공식 보고서가 사람 가슴 높이까지 왔다. 그런데 주민투표 할 당시에 공개된 자료는 요약정리된 32쪽짜리 자료가 전부였다. 물론 여기는 “문제 없음”이라는 조사결과만 실려 있다. 주민투표가 이뤄진지 무려 5년이 지나서야 원본이 공개되었다. 원본의 결론은 ”지질 상태 좋지 않으나 기술적 보완 가능”이었는데 요약보고서에서는 “문제 없음”으로 바뀌었다는 걸 그 때야 알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이 다른 사업이 이뤄지는 곳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문헌조사, 보고서, 이런 거 얻어보는 것 자체가 지난한 싸움이 되어버린다. 삼척, 영덕 신규원전 부지의 사전 환경성 평가 보고서도 그렇고..
리승환 :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게 내놓지 않는다니, 벗지 않는 그라비아 모델 같은 소리다.
이헌석 : 정보공개는 공적 사무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런 보고서 구하는 게 일일 정도로 공개가 안 된다. 자료가 없으니 맞고 틀리고 평가할 거리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자료가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법과 제도가 바뀔 필요가 크다. 영덕, 삼척도 사전 환경성 평가 보고서를 달라고 그러니까, 못 준단다. 사실은 동네 면사무소에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람 상태에 있는 문서다. 그러면 복사를 뜰 수 있게 해 주든가… 일처리를 번거롭게 하려고 작정하는 건데, PDF로 인터넷에 띄워 놓지도 않고 보려면 면사무소에 가서 보라는 식이다. 뭐, 결국 중요한 자료는 뒤에서 구해서 보는 식이다. 그러나 역시 그보다는 공식 자료를 가지고 평가를 할 기반이 닦여야 한다고 본다.
리승환 : 또 정부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헌석 : 또 관료가 제대로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경주 방폐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주를 보면 시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야 반대를 했지만, 경주시민 89.5% 찬성을 했었지. 정부의 약속사항은 한수원 본사가 경주에 오고, 양성자 가속기, 3천 억의 공공 예산이 내려오는 등의 굵직굵직한 것들이 있었다.
리승환 : 그런데 그것들이 굵직굵직한 똥이었다?
이헌석 : 그런 셈이다. 일단 3천억원. 그 중 절반만 줬다. 혹시라도 반대운동이 일어날 까봐, 절반은 공사 시작 전, 절반은 공사 끝 후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절반 중 절반의 용처를 시의회가 정했는데, 이게 대부분 17km 길 닦으니 끝나버렸다. 그 다음 한수원 본사 문제. 경주 짓기로 하긴 했는데, 2005년부터 한수원 본사를 어디에 지을 것인가, 이걸로 엄청 싸우기 시작했다.
리승환 : 어떤 싸움인가?
이헌석 : “원래 방폐장 옆이 손해 제일이니까 한수원 본사도 거기 와야 하는거 아니냐”, “아니다. 인프라가 우세한 시내에 두자”, 이런 지역 사이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후 시위의 모든 방법이 총동원되었다. 방화, 할복, 자기 차 태우기.. 결국 시내와 발전소의 정확히 중간에 짓기로 정하긴 했다. 그러나 국회 선거 있을 때마다 후보들이 와서 장난을 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시내 쪽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결국 얼마 전에 정한대로 갔다.
리승환 : 뭐, 누구 편을 들기도 힘들어 보이기는 한다.
이헌석 : 이런 식으로 정부가 휘둘리니까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입법자다. 그런데 그 규칙이 흔들리면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일이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권 투사를 일삼는 집단도 왕창 늘어나게 되고, 어떤 결정이 일어나더라도 승복하지 못하는 집단도 늘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싸움을 말리려다가 오히려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게 정부의 경거망동이다. 정부 말대로 하니까 손해만 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정부는 결코 신뢰를 얻을 수가 없다. 경주 방폐장 자체로 돌아오면, 공기가 3번이나 지연된 상태다. 모두 지질 때문에 그렇다. 정부는 첨에 문제 없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로 드러나버리고…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거짓말을 하지도 말아야 하겠다. 물론 이는 바꾸기 위해서는 투명하게 정보가 공개될 필요가 있고 말이다.
14. 재생에너지, 과연 대안인가?
리승환 : 그럼 대안에 대해 말해달라. 재생에너지가 쓸만하긴 한건가?
이헌석 : 풍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 비해, 태양광은 상대적으로 그 발전이 느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태양광이 발전 설비 용량이 10%씩 늘고는 있는데, 기술은 근래 20년간 별 발전이 없다. 게르마늄 소재 따위의 이야기는 많이 이야기가 됐지만…
리승환 : 고자가 됐다, 이런 말인가? 풍력은?
이헌석 : 풍력은 최근 10년 사이 효율이 많이 좋아졌다. 결국 태양광 산업은 부분적인 역할만 할 수 있고, 풍력이 신재생에너지의 메인일 수밖에 없다. 태양광은 풍력의 보완재적 성격이 있다. 풍력은 해상이든 산이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 도심 한 가운데는 못 간다. 태양열은 도심 한 가운데에 지을 수 있다. 그렇게 상호 보완재적 성격이 있다. 한국 삼면이 바다이고 하니 풍력이 메인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리승환 : 다른 안은 없나?
이헌석 : 재생에너지는 지역 밀착적이고 소규모니까 한방에 뭘 하자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산업이다. 지역에 따라서 바이오매스 (농촌), 기타 신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도 생각해야 할꺼다. 여하간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징검다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모두들 공감이 있다. 징검다리로 쓸만한 것은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다. 만일 러시아와의 협상이 잘 되어서, 러시아 가스를 안정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이게 탈핵 속도를 10년 이상 속도를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스 복합화력이 짓는 속도도 빠르고. CO2등 유해물질도 훨씬 적다.
리승환 : 천연가스는 졸라 비싸지 않나?
이헌석 : LNG가 왜 비싸냐면 안정적인 수급은 물론 수송 자체도 힘들어서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캔 가스를 전용선에 실어와서 압축하고, 다시 인수하고 하는 게 다 돈이다. 반면 이런 과정이 없고, 그냥 가스를 파이프로 직접 가스상태로 공급받는 방식이 PNG인데, 액화가 필요한 LNG 대비 30%의 가격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리승환 : 셰일가스니 오일샌드니 하는 놈들은 뭔가? 이놈들은 희망이 아닌가?
이헌석 : 셰일이라는 건 진흙이 쌓여서 만들어진 퇴적암을 말한다. 이 층 사이사이에 있는 가스가 문제의 가스다. 오일샌드는 모래랑 섞인 저질 원유가 있는데, 예전에는 처리 비용이 비싸서 안쓰다가 요새는 기름값이 오르다보니 쓰게 된 물건이다.
원래 석유와 가스가 풍부한 지층에서는 이들이 그냥 그것 자체로 층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지층에 관을 꼽아놓으면 석유와 가스가 분출되어 나왔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쉽게 채굴되는 것들 것들만 건드렸는데, 이런 질좋은 층은 이제 없으니 모래나 퇴적암을 뒤져서 뽑아낸다고 보면 된다.
리승환 : PNG가 말은 좋은데 김정은네를 통과해야 한다. 종북도 궤멸직전인 지금 그게 맘대로 되겠나?
이헌석 : 북한이 변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탈핵에서 매우 중요한 연결망을 북한 영토가 제공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외국과의 전력망, 가스망 연결이 없는 에너지 섬이다. 대륙과 에너지망을 연결하면 포트폴리오의 폭이 매우 넓어진다. 압록강, 두만강 수력 발전, 러시아 쪽의 가스 등 에너지 원을 땡겨올 수 있다면 북한 자체 에너지공급은 물론, 전기도 수출하면서, 당장 여름철에는 남쪽에서는 돈 주고 에너지를 사오면 된다. 1년 가운데 며칠만 사올 수만 있다면, 그거에 맞춰서 발전소 최대공급 용량을 늘리느라고 거금을 주고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다. 투자 선택지가 매우 넓어지는 것이다. 동북아 에너지 협력 없이는 탈핵이 충분한 의미를 가지기 힘들기도 하다. 주변국의 사고는 바로 우리의 피해다. 손정의 등에 의해 제안되는 일본과의 연계는 사실 해상이기 때문에 쉽지 않겠으나…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푸틴은 유럽으로 가는 가스 밸브를 잠궈서 메르켈을 무릎 꿇리는 자다. 우리도 그 꼴 나지 않을까..
이헌석 : 그 정도 사단이 안 나도록 신뢰관계를 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돈 문제였을 것이다. 어쨌든 좋으나 싫으나 에너지의 97%를 수입 안 해오면 방법이 없는 나라임은 틀림 없다. 이걸 인정하고, 그 위에서 대안을 찾아나가자는 것 정도는 충분히 동의하고 있다.
리승환 : 탈핵 하면 녹색당인데. 녹색당의 방향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이헌석 : 전기는 어쨌든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규모의 경제에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 규모냐, 적정 규모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소규모, 분산형이라 하는 게 자기 집에 솔라 판넬 넣어서 하는 규모가 적정한 거냐, 그보다는 좀 더 큰 풍력밝전기 10대 놓는 게 적절한거냐, 아니면 대빵 큰 원전이냐. 이런 논의 없이 가면 사람들마다 뭐가 “규모의 경제”인지 이해하는 게 다르다.
리승환 : 규모의 경제? 예를 들자면?
이헌석 : 얼마 전 누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써놨던 적이 있다. 베란다에다가 솔라판넬 가져다놓고, 전력 계통과 연계하면 어떻겠냐? 라는 질문이 있었다. 아.. 한숨이 좀 나왔다. 그건 확실히 규모의 경제 바깥이다. 3kw짜리 설비의 경우도 전력계통 연결을 왜 하냐? 이런 이야기 하는데, 베란다에 놓을 수 있는 판넬이라고 해봤자, 용량이 500와트도 안 된다. 더 상세히 하면.. 이 책상(70cm*70cm가량) 넓이의 판넬이 200와트 정도.
리승환 : 베란다는 빨래도 널어야 하는데…
이헌석 : 결국 탈핵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실제로 전기나 전력 산업 전체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핵운동 보고 핵산업계에서 나이브하다고 하는 걸로 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난 녹색당의 주장 자체를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실감 있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핵산업계와 논의가 가능하고, 가능하다면 사기치는 걸 밝혀내서 혼내줄 수 있는 정도가 되야 한다는 이야기. 이 길로 에너지 덕후의 길로 들어서실 분은 저희에게 연락을…
15. 탈핵과 관련해 진보정당이 가야 할 길
리승환 : 당신은 녹색당 관련자인가?
이헌석 : 난 진보신당과 녹색당 사이에 끼여 있다. 진보신당 당원이자, 녹색당 발기인.
리승환 : 그런데 총선 참패로, 두 정당이 다 사라져버렸다(…)
이헌석 : ……
리승환 : 아무튼 녹색당에 대해 좀 평가를…
이헌석 : 녹색당이 잘한 것 중 하나는 탈핵이라는 이슈를 정치면에서, 이슈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높게 사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녹색당, 진보신당이나 정치권 안착을 못하게 되니, 정당으로는 충분히 성장을 못했다. 의석을 얻어서 일종의 시민권을 획득해야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의석이 없는 당이라는 것은 결국 큰 규모의 운동단체 정도다. 큰 규모 운동단체도 필요하지만 정당과는 좀 다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녹색당 초기 런칭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후 정치에 어떻게 정착시킬지 전략이 거시기하다. 이게 바로 반핵운동 앞에 놓인 과제다. 411 총선이 이렇게 끝날지 예상을 못했고, 통진당 사태 같은 경우 더욱 예상을 하지 못했다. 진보진영의 모든 아젠다를 제기하는게 대선때까지 힘들어 질 꺼 같다. 어떻게 아젠다를 살리고, 구체적 정책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는 확실히 뾰족한 답은 없다.
리승환 : 내부자로서 다음 스텝 이야기를 좀 하자면…
이헌석 : 내부적으로는 다음 이야기도 한다. 필요하다면 탈핵 대선 후보 전략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4대강, 다른 환경 이슈, 비정규직 문제 포함한 다른 우리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후보를 내세우는 전술까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한다. 통진당 사태 보면서 더 많이 와닿더라. 원래 구도라면 통진-민주 서로간의 연대 전략을 갖고 있었고, 자연스레 나머지 그룹은 여기 어찌 자기 아젠다 끼워 넣을지 고민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참… 망했어요. 아직 나도 어떤 식으로 내세울지 확정짓지 못했고,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이 아젠다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 이 판에서 힘을 모으려면 강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리승환 : 정당 밖에서는 뭐가 필요한가?
이헌석 : 에너지 오타쿠가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덕후 100명만 있으면 에너지 정책이 확 바뀌었을 것이다. 내가 일본 반핵운동에 가서 강연을 했을 때 일이다. 당연히 전문가들은 전문가들대로 질문하고 이야기하는데, 평범한 일본 아저씨 아줌마가 전문적인 질문을 막 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mox 연료(우라늄+플루토늄 섞어 만든 핵 연료의 일종) 따위의 용어가 일본의 일간 신문에서는 이런 게 특별한 해설 없이 막 쓰인다. “목스 연료 쓰고 있는 후쿠시마 3호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 인터뷰에도 해설 실려서 나갈게 분명한데, 일본에서는 일간지에 막 나간다는 게 참 뜨악했다.
리승환 : 그냥 빼먹은 게 아닐까 하는데(…)
이헌석 : 시끄럽고… 또 얼마 전 유투브 보고 놀란 게 초딩 대상 강연의 한 장면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하는데, 6학년이 “저는 어느 동네 살고 있는데, 우리 동네 방사선 누적선량이 얼마 되나요?”라고 하더라. 실제로 이런 수준이 꽤 된다.
리승환 : 훌륭한 초딩이다. 하지만 커서 니트가 되겠지.
이헌석 : 배경을 생각해 보면 방사능 피폭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덕에 당했던 게 있다. 이 때 생긴 용어인 히바쿠사(피폭자)는 마치 쓰나미처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 되었다. 이처럼 일본 국민 전체가 핵에 대한 기본 상식이 높고, 핵 오타쿠들 역시 많다. 내 짐작인데, 한국의 언론에 교수라 하면서 나와서 언론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보다 일본 오타쿠가 일본의 설비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안다.
원자력 공학 전공했다고 해서 실제 후쿠시마 발전소 내부는 모른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BWR이라고 한국에 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수 나부랭이라고 해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오타쿠 층이 있어야, 운동도 잘 되고 정부도 감시할 수 있다. 몇몇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할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덕후 갑오징어는 어떻게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그냥 크고 아름다워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역시 오타쿠층이 떼거리로 모여들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비용이 된다면 잡지도 런칭하고… 그래야 덕후가 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역시 이런 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문제라서, 수요와 공급이 함께 가야 성장하는 그런 것 같다. 어차피 덕후들은 지들이 알아서 크는 거고, 판을 깔아주는 거 정도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리승환 : 에너지정의행동에서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지 않나?
이헌석 : 탈핵신문이라고 일반 시민을 위한 신문을 발행한다.
리승환 : 이번 후쿠시마 사태가 나름 관심을 많이 끌어모으지 않았나 싶기는 하다.
이헌석 : 후쿠시마 이후 많이 좋아졌다고 보는 게, 사고 이전에는 핵 관련 책이 3권 정도 있었다. 사고 덕분에 20권이 쏟아져 나왔다. 일단 좀 기본은 깔린 셈이다. 그리고 좀 다른 형태의 오타쿠들도 등장했다. 애기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다.
리승환 : 반대로 음모론이라고 많이 까이기도 할 것 같다.
이헌석 : 물론 지나치게 민감한 게 좀 그렇긴 하더라. 살펴보니 이런 글이 있다. Brother 팩스라고 일본 토호쿠에 공장이 있는 회사가 있다. 그 브랜드 팩스를 보고 ‘우리 사무실에 brother 팩스가 들어왔으요. 계속 쓰는 게 맞을까요’ 같은 이야기가 오가는 사례도 있었고. 다른 이야기로는.. 요새는 명태가 일본 러시아에서나 난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시부모님이 명란젓을 주셨는데, 이거 어찌 해야 할까요.” 라는 것도 있었다.
이른바 괴담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런 것도 순기능이 분명 있다고 본다. 우선 확실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거니까. 이런 식의 관심을 에너지 자체에도 쏟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고리 1호기가 멈춘 상황이 있었다. 비상디젤 발전기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분해 중이었고, 하나는 흡기 밸브가 중간 작동하다가 안에 있는 밸브를 켜고 끄는 장치가 망가져서 섰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덕후들이 많이 있다면 발전기 쪽으로 잘 아는 분이 분석하고, 전기 쪽 아는 분이 분석해지고 이런 식으로 정보가 유통되면 정부가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리승환 : 긴 시간 수고 많았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남겨달라.
이헌석 : 에너지 관심 있는 덕후들이 많아져야 한국사회 건전한 모니터링이 된다. 에너지 관련해서 한 가지 재밌는 독후들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동력 카페>였다. 자전거를 발전기로 개조하고, 세탁기 모터 분해해서 개조하고 이런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더라. 전기, 에너지, 핵발전도 다른 주제만큼 어렵다. 덕후들의 도전을 기다리는 분야다. 덕력들이 어서 모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