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너지 전문가 이헌석, 핵발전의 문제와 의미를 말하다 에서 이어집니다.
5. 핵폐기물 문제와 세대, 국제간 갈등
리승환 : 저번에 갑오징어랑 이야기해보니 지역간 문제 말고 세대간 문제도 있을 법하더라.
이헌석 : 세대간 문제의 핵심은 폐기물이다. 중저준위는 잘만 관리하면 별 문제가 없다. 물론 300~400년은 보관해야 하기에 비용은 들어가겠지만 아주 심각한 비용은 아니다. 그런데 현재 방폐장을 짓고 있는 경주는 정말 최악의 지역이다. 방폐장이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땅을 파고 들어갈수록 단단한 암반이 나와야 하는데 경주는 단층이 많은 지역이라 암반이 영 아니다. 삼국사기에도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지 않는가? 심지어 당국의 자료를 봐도 중저준위 폐기물이 들어찬 드럼통이 있는 동굴에 물이 들어차 의미 있는 시점 안에 지하수에 잠긴다는 걸 인정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굳이 땅을 파지 않아도, 천층처분이라고 시멘트로 공구리 쳐서 놔두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다.
리승환 : 고준위 폐기물은 어떤가? 예전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다.
이헌석 : 고준위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도 우리나라는 속단할 수 없다. 미국, 유럽은 이미 80년대부터 연구개발을 시작했기에 쌓인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시작했다. 나라마다 지질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지질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고, 외국 걸 그대로 쓸 수 없다.
리승환 : 그럼 이왕 늦은 거 외국에 떠맡기면 어떠하겠는가?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실제 러시아에서 공동 폐기물 처리장을 전세계에 제안하지 않았나? 재처리는 물론 폐기물까지 다 맡을 테니 돈 달라고 한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리승환 : 역시 대국은 다르다. 쓰레기를 떠안겠다니!
이헌석 : 그런데 쉽지 않은 게 폐기물만 맡기겠다면야 좋아하겠지만, 사실 재처리를 하고 싶어하는 거다. 일종의 끼워팔기다. 하지만 이를 경제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세대간 문제뿐 아니라 지역간 문제도 발생한다. 핵폐기물 관련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세대, 우리 나라가 서류상이지만 핵폐기물 분담금도 적립한다.
리승환 : 위 짤이 모든 걸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헌석 : 그렇다. 여기서 만일 몽골과 러시아에 핵폐기물을 넘겨준다고 해 보자. 몽골, 러시아 등은 못 쓰는 땅이 많으니 몰아줄 수도 있지만, 도덕적 해이 문제가 심각해진다. 러시아 후손들은 정말 자기 나라 것도 아니고, 자기가 쓴 것도 아니고, 쓰레기만 떠안는 것이다. 향후 그 땅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은 못 쓰는 땅도 나중에 기후 변화로 쓸 수도 있고, 자원이 나올 수도 있다.
리승환 : 국제적으로 핵폐기물을 해결하는 문제에 따른 리스크는 없는가?
이헌석 : 전례가 꽤 많다. 지금이야 막장 짓을 마구 하기에 보는 눈이라도 많지만, 70년대에서 80년대는 정말 어이 없었다. 대표적으로 드럼통이 녹이 슬어서 물이 샌다거나(…) 프랑스도 해일이 밀려와서 폐기물이 바다로 쓸려 나갔다거나(…) 이탈리아 쪽 인근에는 큰 화물선이 좌초되는 걸 위장해서, 폐기물 넣고 물 속에 넣어버린 적도 있다. 무려 MBC 서프라이즈에도 보도됐다. 러시아는 아예 동해에다가 잠수함 원자로를 집어 던지고(…)
이것 때문에 생긴 마찰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독도 분쟁할 때 과학 순시선 와서 시료 들고 가겠다 하는데, 이것도 러시아가 동해에 원자로 버린 것 때문에 방사능 측정하는 거다. 원자로는 너무 깊은 데 있어서 못 건지고, 방사능 나오나 안 나오나 체크 정도나 하고 있고… 이 따위 상황이다.
리승환 : 법으로 어떻게 못 조지나?
이헌석 : 나름 러시아가 생각이 깊은지 공해상에 버리기는 했다(…) 국제법은 한계가 너무 많다. 이번 후쿠시마 때도 일본이 비상사태인지라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버렸다. 그런데 런던 협약에 따르면 어떤 핵폐기물도 버릴 수는 없다. 법을 어긴 거다. 문제는 국제법이라는 게 처벌을 하기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뭔가 강제 집행을 하긴 해야 하는데, 원자력 시설은 각국의 주요 보호 시설이고… 이를 위해 전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6. 핵폐기물과 핵발전소 사고의 실제적 위협 수준
리승환 : 이런 핵폐기물 방출로 인한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헌석 : 의사 협회의 권고에 따르면, 임산부들은 수은 축적의 위험이 있으니 한 달 몇 g 이상의 참치는 먹지 말라고 한다. 이제는 의사들이 참치의 방사능 축적에 대해 경고할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 덕에 워낙 많은 양이 바다로 흘러들어 갔고, 바다에서 최상위 포식자 축에 속하는 참치들에게 방사능이 축적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사능 위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로 플루토늄의 발견도 있다. 역시 후쿠시마 이후에, 플루토늄이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정부 발표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 발견되는 양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플루토늄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산물이기에 기본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리승환 : 나올 수 없는 게 어디서 나온 건가 -_-?
그럼 그동안 발견된 것은 그럼 어디서 왔느냐? 물론 언급된 사고들도 원천일 것이고, 50~60년대 천여 차례 수행된 대기권 핵실험도 원천이다. 그러니까 원자력 시대가 열린 다음부터는 각종 핵 부산물로 인해 전 지구가 비록 저강도이지만 오염되어 있는 상태고, 그것이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비유하자면, 아주 옅은 핵물질의 안개에 지구가 덮혀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리승환 : 토성과의 인터뷰에서는 체르노빌 핵사고로 인해 암 유병률이 높아졌는지 분명치 않다는 주장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헌석 : 그 때 사용된 보고서의 정확한 워딩대로 말하면, 갑상선 암에 대해서는 조사결과가 나왔고, 나머지는 더 조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으로 인한 암 등의 효과에 대해서는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아주 좋은 표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직접 방사능을 뒤집어 쓴 수십만의 인구들 아닌가? 이들에 대한 추적 조사 결과는 대부분 암에 직접적 결과를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리승환 : 그렇다면 왜 체르노빌은 분명치 않은가?
이헌석 : 체르노빌 역시도 그런 조사가 나올 수는 있는데, 과학자들 사이 합의가 될 만큼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는 못한 수준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왜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히로시마•나가사키는 원인이 분명하고 샘플이 많다. 게다가 미군이 들어가서 진두지휘를 해서 샘플 전수조사 자체가 엄청 쉬웠다. 죽은 사람, 산 사람 다 싸잡아서 조사를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소련의 경우는 사고 당시 소련 의료시스템이 구렸고, 게다가 몇 년 뒤에 소련이 망해버렸다. 그러면서 관리가 안 됐다. 또 나머지 나라들의 경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서 샘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즉 노이즈가 너무 많았다. 당연히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태다.
리승환 : 후쿠시마는 어떨까?
이헌석 : 이제 후쿠시마는 좋은 샘플 데이터가 나올 거다. 일본은 물론 의료 시스템이 잘 된 나라고, 사람들도 관심이 많으니까 충분할 것이다. 다만 직업환경학회에서 어제 했던 토론에 따르면.. 여기서도 한계가 있는 부분이 몇 개 있다. 한국이나 일본은 의료피폭이 많기 때문에, 그 노이즈를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는 발표가 있었다. 조금만 다치면 CT, MRI 막 찍어대니까 이런 데서 피폭당했던 것들이 똑같이 효과를 내는 것이다.
리승환 : 여하간 핵으로 인한 암 유병률 증가는 확실하지만, 체르노빌에서는 증거가 부족해서 결론이 안난 상태인데, 후쿠시마에서는 더 확실한 결론이 나올 것이니 기다려 보자?
이헌석 : 이런 논쟁으로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다. 이런 것은 의학계의 일이니 답을 기다려 보자.
리승환 : 원전은 핵무기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헌석 : ㅇㅇ. 사실 그것은 아는 사람들이라면 확실히 아는 부분이다. 왜 아이젠하워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창했겠는가? 사실 군수로 나왔던 걸 민간에도 잘 써먹어보자 뭐 그런 그림이다. 결국 이후 경과를 보면 핵산업 공정 일체를 갖추게 되어 핵무장까지 하고 싶은 놈들은 하고, 일부 핵심 지점(서독, 일본, 한국, 대만 따위)에는 핵산업 공정 일체 대신 핵우산을 씌워주는 식의 전개가 이후 있었던 일이다.
이런 계획의 증언자가 바로 노원구 공릉동 원자로다. 미국이 돈을 빌려줘가면서 만들어 준 물건이다. 이런 식의 ‘투자’들이 많이 있었다. 세계 각국에 핵산업이 이런 식으로 유포된다. 이란이나 북한이나 핵무기도 이를 변용한 것이다. 파키스탄도. 이들 모두가 사용하는 우라늄 농축 기술의 뿌리는 하나다. 다시 말해 미국의 핵산업 전파 정책이 낳은 부작용이 이란, 파키스탄, 북한 등이 핵을 가진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핵무기를 만들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말이다.
리승환 : 한국이 핵무기라니, 리정희 동무가 슬퍼할 말이다.
이헌석 : 이런 부작용을 볼 때, 핵무기의 통제를 위해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 하에 핵발전을 넓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대 업적인 핵안보 정상회의에 앞서 이뤄졌던 핵 관련 장관회의에서 채택된 문건 가운데 하나에는 마지막에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 위해 필요한 인프라 스트럭쳐를 널리 전파하자는 부분이 있다. 왜 그래야 할까?
아시아에서만 해도 두 나라가 핵을 더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다. 인도네시아는 핵발전소 수입하겠다고 60년대부터 검토했고, 심심할 때마다 언급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안 들어왔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천연가스가 넘치는 나라인데다가, 지진에 해일에 하여간 험악한 곳인데도 욕심을 부린다. 왜 그러겠는가? 핵무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말고는 합리적인 설명이 안 된다.
리승환 : 그렇다면 한국은?
이헌석 : 한국의 경우는 70년대 박정희의 대영단으로 핵발전을 하게 됬는데, 핵무기 염두에 두고 캐나다 원자력공사에서 중수로를 사왔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도 그래서 샀겠지. 동남아에서 대장노릇 좀 하고 싶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무기를 염두에 두지 않은 핵발전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7. 탈핵을 넘은 정의로운 산업 전환이 필요할 때
리승환 : 이제 핵발전이 산업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탈핵을 위해 전력 업계와 산업정책 전반에 무슨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이야기 해달라.
이헌석 : 중화학공업과 핵발전은 큰 관련이 있다. 한국이 70년대 핵발전을 도입한 이유는 박정희의 핵사랑(…)도 있지만, 결국 중화학 공업 중심의 발전을 위해서다. 그런데 한국 산업구조로 볼 때 중화학, 에너지 다소비 공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이 세계 1위지만 중국에게 밀리고 있고, 자동차 내수 시장도 이미 포화 상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리승환 : 상당히 도발적인 이야기 같은데?
이헌석 : 그렇다. 한국이 앞으로 뭘 먹고 사는가에 대한 아주 새로운 전략이 탈핵을 중심으로 나와줘야 한다고, 그리고 나올 수 있다고 생각난다. 먼저 네거티브한 이야기를 하겠다. 지금 우리 주요 수출 상품은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다. 석유도 안 나오는 나라에서 석유생산품이 수출 1위가 되는 게 자랑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유 사와서 정제해서 휘발유, 디젤을 중국 등 외국에 팔고 이런 식인데, 그러다 보니 석유값이 뛰면 대한민국 경제가 흔들린다. 석유라는 특정 에너지원에 종속된 산업체계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특정 에너지원에 종속되는 시스템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많음에도 삼성에게도 또 정제유 판매권(삼성토탈)을 준 거다. 중화학-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많지만 집행이 안되고 있다. 몇몇 업체들을 통폐합하여 과잉 설비를 줄이고 산업을 조절해야 한다. 환경 진영에서는 이 조절 과정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표현한다.
리승환 : 당장 고용 문제와 GDP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헌석 : 물론 정의로운 전환은 단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산업의 고용을 유지시키는 과제까지 목표로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예가 있다. 유럽에서는 조선 산업이 사양산업이 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그 설비를 활용하면, 풍력 터빈 등의 풍력 관련 설비를 만드는 데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또 고용도 유지하면서 산업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바로 이런 모형대로 우리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도 조절을 하자는 주장이다.
과거의 사북 사태는 이런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볼 수 없는 산업 조절이었다.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다 자르고 폭동 일어나고 뭐 그런 일이 있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병들어 가는데도 치료비 지원도 힘들었고, 지역은 공동화되고 강원랜드나 들어서게 되고… 이런 실패를 현재의 중공업이 겪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말로만 에너지 다소비 중화학 없애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이를 어떻게 친환경, 에너지 저소비 산업으로 조절해야 할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리승환 : 어떤 전략을 쓸 수 있나? 이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
이헌석 : 물론 이제 70년대 박통이 명령하면 산업계는 따르는 그런 일사불란한 방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독일이 산업 시스템을 바꾸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그런 식의 강제적 명령 없이도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은 기계공업 강국이고, 핵에서도 기술 강국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세계 최초로 핵분열 반응을 밝혀낸 것도 독일이지 않나? 1986년까지만 해도 전세계 핵발전 5위권이었다.
리승환 : 그런데도 독일은 핵에서 벗어났다?
이헌석 : 그렇다. 지멘스 같은 초대형 제조업 기업도 원자력 사업 본부를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 대신 해상풍력 사업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식이다. 지멘스같은 기업이 미래 시장 동향에 대한 판단을 통해 풍력, 태양광 등에 대한 투자를 시행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자의 배경에는 독일 정부의 발전차액지원제도와 같은 가격 보조 제도가 있었다. 정부가 특별히 명령을 하달하는 “컨트롤타워”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발전차액지원제 같은 제도적 장치만 가지고도 충분히 산업을 바꿀 수 있다.
리승환 : 쉽지 않은 일 같다. 에너지는 인프라고 그만큼 산업 육성책에 리스크도 크지 않을까 싶은데…
이헌석 : 그래서 더 섬세해야 한다. 제도가 너무 들쭉날쭉 바뀌게 되면 기업과 투자자들이 정부가 주는 신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제도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정부가 안정적인 제도적 환경을 공급하면, 기업과 투자자들은 그것에 맞춰서 판단을 내리는 모형이다. 여기서 정부는 안정적인 제도적 틀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리승환 : 결국 시장의 기능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데는 동의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수위권이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 성공한 놈들이다. 이들을 왜 정리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헌석 :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이들 기업의 지위는 모두 끝없는 경쟁과 노력 속에서 획득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지위는 아주 불안정한 것이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업계 수위권 업체였던 노키아만 해도 무너진 건 한 순간이지 않는가? 물론 꼭 지금의 대기업이 노키아처럼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조선, 철강, 자동차 같은 에너지 다소비 공업 말고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란 걸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전환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강제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시장에서 대기업이 기존 에너지 다소비 산업 분야에서 승승장구 하는 한 정의로운 전환은 계속 미뤄지지 않을까? 또, 에너지 다소비 공업이라는 걸 뜯어보면 사실 재료산업이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이런 산업들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라고 하더라도 배척하기 힘든 것은 아닌가?
이헌석 : 같이 답하겠다. 물론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가 재료산업이고, 에너지를 많이 쓰더라도 당연히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산업이라는 것은 맞는 지적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경우에는 생산된 재료 자체를 수출하기 위해 설비를 증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국이 쓸 철, 휘발유 따위를 우리가 만들고 있다. 물론 투자를 통해 우수한 설비 확보해서 시장경쟁력을 갖췄고, 그래서 한국 재료공업 기업들이 수출을 잘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까지 재료 공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느냐, 그리고 그것이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갑오징어 : 질문을 뒤집어서, 왜 재료 공업을 포기해야 하느냐라는 식으로 질문을 제기한다면?
이헌석 : 나는 현재 재료 공업의 상황도 일종의 과잉투자라고 본다. 왜 멀쩡히 잘 돌아가는 재료공업을 포기하느냐라는 질문이 필요한지, 아니면 왜 재료공업이 무리하게 남의 재료까지 생산해서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핵발전을 비롯한 다양한 비용을 우리가 분담하게 만들어야 하는지’라는 질문이 필요한지는 관점의 차이라고 본다.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면 전자의 질문을, 생태적 부담을 줄이는 방향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후자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맞다. 두 관점 가운데 어떤 관점을 택할 것인지 우리 사회에 진지하게 물어보는 게 바로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이다.
8. 원자력 발전, 차세대 성장동력의 가치가 있는가?
리승환 : 어쨌든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원자력 발전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헌석 :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원자력을 꼽는 건 좀 당황스러운 이야기다. 현재 한수원이 UAE 수출은 하긴 했는데.. 앞날이 험난하다. 세계 핵 산업계가 어떻게 판이 짜여있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빅3가 있다.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한 미국계, 도시바와 히타치 중심의 일본계, 프랑스의 아레바, 이렇게 3개다. 그런데 얼마 전 웨스팅하우스가 일본 쪽으로 넘어가서 도시바의 자회사가 되며 빅2로 재편됐다.
갑오징어 : 요새 웨스팅하우스에서는 미니 밥솥을 팔고 있더라. 미국계는 제대로 뻗은 거 같다. (실은 이 밥솥은 OEM 상품이었다)
이헌석 : 그런 듯하다. 여하간 이 둘이 대부분의 원천기술을 다 가지고 있다. 좀 더 이전 시점에는 3강 2약 구도였다. 2강은 러시아와 캐나다였다. 그런데 캐나다는 원자력 공사를 민영화시키면서 캐나다 원자력 공사가 공중분해됬다. 사람들을 다 짤라버리는 엄청난 결단을 내렸더라. 러시아만 구소련권에게 밀어넣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실적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누가 봐도 밀린다. 한국은 다섯 손가락에도 들지 않는다. UAE도 웨스팅하우스가 내부 사정으로 못 들어가면서 남은 틈새시장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 뿐이다. 원천기술을 최근 개발하기는 했지만 이미 레퍼런스 사이트를 수십, 수백 개 가진 빅 2와 경쟁이 될 수야 없다.
리승환 : 원천 기술로 따지자면 신재생에너지도 그렇지 않나-_-?
이헌석 : 맞는 이야기다. 일찍부터 투자한 외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핵산업계는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곳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시장은 앞으로 늘어날 거다. 일부 한 부분을 잘 잡고 들어가도 상당히 큰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원자력은 가뜩이나 줄어든 시장인데다가, 중국 진출이 원천 봉쇄된 상태다. 중국이 현재 전세계 원전의 1/3을 짓고 있는데, 원천기술이 없는 한국은 중국측에 입찰서를 제출도 할 수 없는 상태다보니 이미 차포 떼고 장기를 하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승환 : 중국 이야기가 나왔는데, 중국 신재생에너지 시장에 대한 진출도 만만찮게 힘들 것 같다.
이헌석 : 신재생에너지 발전도 절반이 중국에서 짓고 있다. 미국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에 중국 시장이 거대해지고 있다. 중국은 에너지와 관련해서 ‘블랙홀’이라고 할 만하다. 풍력, 석탄, 원자력, 다 중국이 세계 1위다. 중국이 국산 애용 정책을 세운 덕에, 외국계 기업이 많이 들어오질 못하고 있다. 선진국과 기술 격차는 크지만 국산 애용 이유로 태양광 판넬, 풍력 터빈 등을 국산으로 잔뜩 설치하고 있다. 집중 투자한 덕에 태양광 기준 랭킹 10위 중 5개 업체가 중국 업체다.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했는데, 이마저도 중국에 다 밀리고 있다. 미국, 일본을 발밑으로 깔볼 수 있는 기계공업의 나라 독일 업계조차도 중국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9. 전력요금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리승환 : 이제 전력산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어쨌든 탈핵을 위해서는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하는 것인가?
이헌석 : 문제가 되는 것은 대안 이야기가 나오면 개인 역할만 강조하면서 산업계 역할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1인당 전력 소비량이 굉장히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용 전력 소비량으로만 놓고 하면 별로 높지 않은 수준이다.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에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보다 에너지 소비량 높은 게, 가정에서 에너지 낭비해서가 아니라 포스코, 현기차 등 다소비 업종들이 다 쓰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리승환 : 산업계가 해야 하는게 뭔가? 전압별 요금제 같은걸 이야기했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헌석 :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전반적으로 원가 이하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원가보다 낮춰서 팔지는 말아야 한다. 최소한 원가 수준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다음에 지원을 해줄 곳은 지원을 해 주고, 비싸게 받아야 할 곳은 비싸게 받아야 한다. 산업계야 물론 반대할 텐데, 들어줄 만한 민원과 그렇지 않은 민원을 나눠서 접근해야 하지 않겠나.
산업계에 일률적으로 전기요금을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본에서 밀리는 중소기업에는 당연히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대기업은 에너지 절약을 강제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들을 구분하는 주요 방법이 수전 전압의 수준이다. 중소기업은 설비 규모가 작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전압을 받아온다. 380V, 540V 따위의 전압을 공단 전봇대 통해서 받아온다. 그런데 대기업의 경우 154000V짜리를 그대로 받아서 자체 변전소에서 분배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의 수전 전압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나누는 주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주장은 좀 더 구간을 세분화해서 전압별 요금제를 적용시키자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여기서 말하기는 좀 복잡하다.
리승환 : 그렇다면 주택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이헌석 : 주택용에 대해 이야기하면 현재는 아주 극빈층에 대해 소량의 용량, 아마도 1kw.. 정도의 한꺼번에 쓸 수 있는 전체 전력 용량을 정하고, 그것까지는 무료로 쓸 수 있게 했다. 이정도면 집에서 TV, 냉장고 작은 거 하나 쓰고 등 한 개 밝히는 정도인데, 너무 용량이 작은 게 사실이긴 하다. 빈민운동하는 쪽에서는 좀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런 것은 전기요금과는 좀 별도로 이야기해야겠다. 현실화되고 누진화되는 건 일반 주택용 요금의 이야기고, 극빈층의 경우는 기본전력을 조금 더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소기업도 전체 산업용 전력 정책과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실화 좋고, 많이 쓰는 곳에게 페널티를 주고 하는 한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따로 있어야겠다. 이런 것 없이 무차별적인 지원이 이뤄진 영역이 농사용 전력이다. 농사용 전력은 전체 전력 요금 중 제일 싸다. 무지막지하게 싸다. 원가의 30%대로 공급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농사도 종류가 참 다양하다. 현재 요금제도만도 전압별로 갑을병정 네 단계다. 예로 똑 같은 농사용 전기지만 큰 비닐하우스 단지 농장도 농사용이고, 개인이 작게 쓰는 것도 그렇고. 높은 전압, 다시 말해 을 구간 이상의 고압을 쓰고 있는 농가에 대해서는 전력요금을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 소농 지원은 맞지만, 기업농에 대해서는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
갑오징어 : 교육용도 문제다. 건물 용도별로 전력소비량을 합쳐보면, 아파트가 제일이고 그 다음이 대학교다. 학교에 있다 보면 전기 펑펑 쓰는 모습을 많이 보는 게 사실이다. 지 돈 아니라고 그러는 거 같긴 한데 말이지.
이헌석 : ㅇㅇ. 단일건물로 단일 사이트가 서울대와 코엑스, 그 둘이 1-2위다. 서울대는 웬만한 도시 하나만큼 쓴다. 건물 많고, 도시 많고, 연구 시설들이 많다. 금속공학과 같은 경우 조그마한 용광로도 있고. 건물마다 에어컨이 돌고.
리승환 : 토요 경부하 요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헌석 : 이는 일종의 떨이다. “에너지 소비량이 적은 시간대에 쓰면 싸게 해 줄께!”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에도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데, 토요일에 추가로 싸게 하면 좀 곤란하다.
리승환 : 전기요금제도 전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이헌석 : 아주 간단히 말하면, 산업용 전력의 형태와 가정용 전력의 형태 두 가지가 있다. 산업용 전력은 가동시간이 길면 길수록 싸진다. 산업용은 누진이 없기 때문이다. 설비 규모와 하루 가동시간을 변수로 해서 전력공급계약이 이뤄진다. 기본요금이 좀 비싸고, 하루 가동시간을 채울 때 까지는 싸지는 형태다. 단 처음 계약했던 전력량 이상을 사용할 경우에는 위약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전력 설비가 모자랄 때는 설비를 바꾸는 등의 공사를 위해 비용을 꽤 지불해야 한다.
리승환 : 그렇다면 가정용은?
이헌석 : 가정용은 반대다. 전기 하나도 안 쓰면 기본요금 제로에 가깝게 된다. 그러나 전기를 많이 쓰면 쓸수록 누진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니까 그래프를 그려보면 산업용 전력은 기울기가 일정 선에 이르기까지 마이너스고, 가정용 전력은 계단식인데 추세선을 그리면 기울기가 플러스가 되게 된다.
리승환 : 가정용 전기 누진제가 필요한가?
이헌석 : 필요하다. 가정용 전기에 대한 세간의 불만이 옳은 구석이 있는 것도 물론 있다. 전기요금 자체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그래서 가계가 산업체를 지원해 주는 꼴이 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원가보다도 비싸게 전기를 쓰고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바꾸자는 주장이라면 옳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 누진제는 전기요금 아끼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누진제 무서워서 전기를 조금 쓰는 집이 의외로 많다. 누진제를 없애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반대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우석훈 같은 사람 말로는, 바로 우리가 있는 롯데캐슬 건물같이 공조가 많이 필요한 건물은 전기료 때문에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버려질 거라고 하더라. 이런 우려가 있음에도 이렇게 공조가 필요한 건물들이 많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면 전기 누진세로는 이런 구조적 낭비를 막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사실 이런 거 보면 건축물에서 쓰는 전기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누진제인지 잘 모르겠다.
이헌석 : 지적한 부분은 누진제의 한계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누진제가 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내 주머니에서 직접 돈을 내는 사람이 전기 줄이는데 효과가 있는 게 누진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집에서 엄마들이 등을 막 끈다. 하지만 애들은 막 뛰어놀면서 에어컨 빠방하게 틀고… 그런 식이다. 직접 지출되는 돈에 대한 체감이 있어야 누진제가 선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런데 건축물의 설비는 건물을 처음 지을 때 선택하면 그 건물 부술 때 까지는 그냥 가는 것이다. 뭐랄까, 집을 지어놓으면 변하지 않는 환경에 가깝다. 이런 부분에 대해 누진세가 영향을 끼치기에는 아주 불충분할 것이다. 건축법이 좀 더 강화되서 (단열, 채광 등) 이런 부분이 보강되어야 건축물의 구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누진제가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는 하지만 건축물 구조의 패턴을 바꿀 정도의 효과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10. 전력산업 민영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리승환 : 전력산업이 민영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자유시장경제 만세!
이헌석 : 약간 설명이 길어진다. 현재 발전산업의 전반적 상태는 “자유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발전의 96%는 전력공기업이 하고 있고 4%는 민간이 하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 보면 알겠지만, 민간업체들이 많이 치고 들어왔다. 앞으로 이 비중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6차계획에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오타쿠 및 예비 오타쿠 여러분께서도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리승환 : 민간업체들이 치고 들어오면 각하께서 좋아하는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이 완성되는 것이니 좋은 것이 아닌가?
이헌석 : 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력은 발전회사에서 사온 전력을 일반에 판매하는 회사다. 이들은 손실을 보고 있다. 즉 발전사업자들에게 주는 돈이 일반에게 걷은 돈보다 많다. 적어도 한전 자체발표에 따르면 말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발전회사가 한전 자회사이기 때문에 한국전력의 적자는 발전사들의 이익에 대해 대주주로서 받을 수 있는 배당금 따위로 메우게 되어 있다.
그런데 GS파워나 포스코파워 같은 민간 회사들이 점점 규모가 커진다고 해 보자. 지금도 이 민간기업들은 자기네가 석탄, 가스 수입해와서 전력 생산했는데 여기서 생기는 적자는 한전이 떠안고 있기 때문에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이거 보고 민간사업자가 투자를 상당히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면 한국전력이 자회사를 통해 받는 배당금으로는 적자를 수습하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
리승환 : 이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이헌석 : 이를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정상화와 정산체계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전뿐 아니라 발전사업자도 영업 손실에 대한 책임을 떠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민간 발전회사의 발전비율이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처럼 한전과 자회사들만으로 문제를 봉합할 수 있는 시기는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개원되고 나면 이런 문제들을 이슈화 시킬 준비는 되어 있다.
리승환 : 어쨌든 전기 요금을 올리자는 이야기인가?
이헌석 : 그렇다. 물론 단계적으로 해야 충격이 흡수될꺼다. 현재는 정부가 세운 로드맵보다 늦어진 상태다.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보다 지연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따라잡아서, 원가의 90%까지는 따라잡긴 했지만 말이다. 갈 길이 멀긴 멀다.
리승환 : 한국전력측의 발전 원가를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헌석 : 예를 들어 발전 원가에서 핵발전 원가는 다시 계산이 될 수 밖에 없다. 늘어날 것이다. 대체 이 값을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가 없을뿐더러, 현재까지 알려진 조건만 염두에 둬 봐도 핵발전 단가는 너무 작다. 나중에 단가가 늘어나게 되면 여기서도 원가보전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전기요금의 단가 계산 자체부터 출발해서 전력 원가 정산 방식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알려진 조건을 염두에 두면 원전 발전 단가가 올라간다는 이야기는, 외부 효과를 충분히 반영해야만 적절한 원가 평가가 이뤄진다는 이야기인가?
이헌석 : 폐로 비용과 사후 처리 비용을 외부효과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실제로 비용이 지출되는 과정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출이 되지 않는 외부효과의 경우를 내부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당장 보면, 고리 1호기는 죽이되든 밥이되든 2017-2027에는 폐쇄해야 한다. 너무 낡은 설비니까 말이다. 보일러가 너무 약해졌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폐로에는 앞서 말했듯 수천억원, 혹은 1조 이상의 돈과 50~6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 쓰라고 적립해 놓은 돈은 장부상에나 있는 돈으로 활용이 매우 힘들다. 게다가 원자로는 중저준위 폐기물 중에서도 고준위에 근접한 폐기물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리승환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이헌석 : 이 원자로 폐로라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기 위해서는 원자로에 기회가 있으면 가보면 좋다. 원자로 내에는 사람이 못 들어간다. 전부 로보트 팔로 조절하거나, 감속재로 쓰이는 붕산수 밑에서 핵연료가 자동 장치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이를 해체하기 위해서도 전체를 차폐시킨 상태에서 원격조정 로봇을 동원 하나하나 뜯어내야 한다. 이런 비용들이 엄청나게 든다는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건 모두 실제로 지출될 수 밖에 없는 비용들이고, 따라서 외부 효과에 대한 비용이라고 볼 수 없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석탄화력의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면, 다시 말해 석탄화력에서 나오는 탄소가 발생시키는 비용을 석탄화력 사업자에게 부담하게 만들면 그 효과가 핵발전소의 사후 처리비용을 감안했을 때의 비용상승 효과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정도 있는데.
이헌석 : 석탄화력의 외부효과는 탄소배출권을 통해 내부화시킬 수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가격에 따라 석탄화력 사업자의 부담이 달라지게 되는 모형이다. 그런데, 이게 참담한 실적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EU에서 1, 2단계에 걸쳐 탄소거래시장 EPS를 세우고, 각 기업마다 각 기업체마다 탄소를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지정하는 사업을 했다(캘빈 트레이드). 그런데 산업계의 로비에 밀렸는지, 당국은 기업이 실제 줄일 수 있는 양보다 너무 적게 탄소감축량을 지정해버렸다. 굳이 탄소를 거래할 필요도 없이, 이미 다 줄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연히 탄소 가격은 똥값이 되었다. 똥값 배출권이 석탄화력 사업자에게 의미있는 구속력이 될 리가 없다. 2단계에서 이를 보완하려 했으나 금융위기가 터져버리니 또 탄소가격 망했어요. 탄소거래제는 그냥 망했어요…
이헌석이 말하는 탈핵의 의미와 방법 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