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환 : 이름이 누구요?
이헌석 : 이헌석이다.
리승환 : 먼저 정체를 밝혀 주셨으면 한다.
이헌석 : 환경 동아리들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학생환경운동을 하기 위해 ‘청년환경센터’를 만든 게 그 시작이었다. 99년 준비위원회를 거쳐 2000년 정식 발족했지만 사실 그 이전 96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굴업도 인천앞바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농활을 대체하는 환경현장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의 농활은 농민, 농업과 관계해 투쟁하는 현장에서 멀어졌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집단농장 일하러 가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기존의 한총련 중심 농활 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다. 그리고 여러 대안 운동이 창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환경 사안이 있는 곳에서 ‘환경현장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다보니 의외로 사람도 많고, 순례단 등도 생기기 시작했다.
1. 왜 핵이 문제인가?
리승환 : 기후변화가 굉장히 문제인데, 요즘 너무 핵만 시끄러운 이유가 뭐냐?
이헌석 : 사실 국내에서도 후쿠시마가 터지기 전까지 기후변화(온난화) 문제에 꽤 주목했다. 그런데 옆 나라 일이다보니 후쿠시마가 터진 후 이슈가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핵문제로 너무 큰 관심이 쏠리면서 기후변화가 조금씩 묻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또 기후변화협약회의 자체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탓도 크다. 97 교토의정서 때 선진국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5.2%씩 줄이자고 결의했다. 이 결의가 2012년 올해 끝나고, 2013년부터 다음 의정서로 가 줘야 한다. 2013년부터 시작될 기후변화 협약을 2008년 코펜하겐 회의까지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2008년은 물론 2011년까지도 계속 발전 없이 넘어가며, 앞으로 기후변화 협약 자체가 어찌될지 모를 상황까지 왔다.
리승환 : 교토의정서가 별 효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헌석 : 교토의정서는 시작부터 강제성에 문제가 많았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시작부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U 중심으로 어찌저찌 가다가 유럽 경제위기로 이것조차 조용해졌다. 그리고 탄소배출량에서 짱먹고 있는 중국은 의무감축국으로 들어오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뭐, 산업혁명부터 시작해 누적량으로 따지면 유럽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핵도 마찬가지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인접국에 대한 피해보상 조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협약이라는 게 몇 개국 이상이 가입해야 효력이 생기는데, 아무도 가입을 안 해서(…) 비준이 발효되지 않은 상태다. 핵은 한 번 터져버리면 이 피해 규모라는 것이 무한대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감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중국이 안전 측면에서 한국이나 일본보다 불안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중국에서 원자력 사고가 발생해도 중국에 뭐라고 항의할 방법이 없다.
리승환 : 먼저 원전은 에너지 정책 전반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나?
이헌석 : 탈석유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참 오래 됐다. 사실 국내에도 원전이 이 일환으로 들어온 것이기도 하다. 오일쇼크+박정희의 핵 야욕 뭐 이런 조합이었다고. 하지만 핵에너지로는 석유를 대체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인 나프타를 대체 어떻게 핵발전으로 대체하겠나? 전기비행기, 전기 배도 없고 자동차나 겨우 하려는 단계다.
핵발전이 정말 보급 많이 되더라도, 그것으로 에너지의 미래를 밝힐 수는 없다. 핵발전은 발전량의 100%를 차지할 수가 없다. 설비 특성 때문에 그렇다. 전력시스템이란 게 항상 생산과 소비가 일치해야 제대로 돌아가는데, 원전은 출력 조절이 아예 안 된다. 원전은 켜고 끄는 것만 되는 설비다. 생산 소비 그래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발전방식을 통해 얻는 전기들은 그 특징이 다양하기 때문에 전기공학에서는 전기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쓰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이것저것 다 있어야 한다.
리승환 : 발전원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 말해달라.
이헌석 : 핵발전은 스위치 켜자 했을 때 출력 올라가는데 48시간, 석탄 24시간, 가스 3-4시간 정도 걸린다. 밸브 조절이 쉬우니까 불붙이면 확 타오른다. 석탄은 연탄처럼 불붙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불을 붙이려고 번개탄 같은 거 넣어준다. 제일 빠른 게 양수발전. 스위치만 올리며 바로 발전기가 돈다. 원자력이 그런 측면에서 기저부하 측면에서 장점이 있기는 하다.
리승환 : 기저 뭐시기에 대해 갑오징어가 설명해줬었는데 기억 안난다. 다시 설명 부탁 드린다.
이헌석 : 하루 종일 유지되는 수준의 전력 공급 부담이 ‘기저부하’다. 그런데 원자력은 출력이 하루 종일 일정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기저부하용으로 쓴다. 가스는 키고 끄는 반응 속도가 좋다. 그래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첨두시간에 쓴다. 그런데 일본은 가스를 기저부하로 쓴다. 무엇을 기저부하로 쓸 것인지는 판단하기 나름이다. 석탄, 가스, 핵… 이 셋이 현재 전력 수급 조절을 위해 배합하는 주요 에너지원이다. 여기서 가스는 기저로도 쓸 수 있고, 첨두로도 쓸 수 있으나, 석탄 핵은 첨두로 쓰기 쉽지 않다. 출력 조절이 힘들어서 그렇다.
리승환 : 핵발전소는 원거리 대량수송이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실태가 어느정도인가?
이헌석 : 지금 한국에서는 석탄화력, 핵발전이 원거리 대량전력 수송을 담당한다. 즉 특정 지역에서 다량의 전력을 생산해 타 지역으로 공급한다. 우리나라 각 시도별 전력 자급률을 보면 서울은 1.9%에 불과하다. 당진, 보령, 태안에 각각 8개씩의 화력발전소가 있는 충남은 전력 자급률이 330%에 이른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이 다 서울로 들어온다.
리승환 : 핵발전의 단점만 말하는데 장점은 없냐? 종합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해 봐라.
이헌석 : 핵발전의 장점이 많기는 하다. 일단 용량이 엄청 크다. 게다가 한 번 돌리면 끊김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인구밀집지에서 떨어진 곳에 하나 박아놓고, 원거리 전력공급하기에 딱이다.
리승환 : 그래서 문제는?
이헌석 :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중간 송전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76만볼트차리 초고압송전망 문제가 생긴다. 울진에 서 신태백 변전소을 넘어 신가평 변전소까지 이어졌다. 당진 화력발전소쪽에 있는 건 신안성 변전소까지 연결됐으니, 중부지방은 이미 고압송전망이 완료된 상태다. 90년대 중반에는 지역주민들이 태백산맥 지나갈 때 엄청 반대했다.
리승환 : 왜 반대했냐? 송전선 지나가는 게 무슨 문제인가?
이헌석 : 사람들이 송전탑을 산 위에 탑 하나 던지는 거라 생각한다. 송전탑 자체의 면적은 얼마 안 되는데, 송전탑 유지관리를 위해 임도(林道)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선 이상으로 숲이 많이 훼손된다. 이 과정 속에 신태백 변전소에서 토사유출사고가 생기고 산림 훼손 문제가 겹쳤다. 또 초고압송전선이 인가 근처를 지나면서 전자파 논란도 일어났다.
추가로 탑이 들어서게 되면 전력선이 지나가는 길 아래 땅(선하지) 는 죽은 땅이 된다. 농지의 경우 선을 중심으로 그 반경 인근은 땅이 갈라지고 못 쓰게 된다. 그래서 분쟁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미관상 문제도 있다. 그래서 송전탑이 들어설 때마다 분쟁이 항상 생긴다. 그런데 이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폭력적이다. 지금 현재 전원개발 촉진법을 보면 전력 관련 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정하면, 관련 부지에 대해서 각종 인허가를 취득한 걸로 취급한다. 묘지 이전, 매립 등 여러 절차가 인허가를 안 받아도 끝난 걸로 처리된다. 이것 때문에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갈등에서 법리상으로 한국전력이 너무 유리하기에, 지역민은 배 째라고 드러눕는 수밖에 없다.
리승환 : 또 다른 문제는?
이헌석 : 원자력의 용량이 너무 크다보니 온배수도 많이 나온다. 발전소 하나당 1초에 60톤 정도 나온다. 심할 때는 수온이 7도까지 차이나기 때문에 인근 해양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그 양이 많아지니 서해는 매우 심각. 영광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해안에서 17~18km까지 떨어진 곳까지 온배수 영향이 미친다는 연구데이터도 있다. 이런 문제로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올 때는 어장에 배상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배상을 원샷으로 땡쳐버리면 몇 년 지나면 남는 게 없다.
이건 땅 배상과는 문제가 다르다. 땅이야 다른 농지를 사면 된다. 하지만 어장, 갯벌은 한 번 버리면 다른 데서 구하기가 힘들다. 어업권은 개인 단위가 아니라 마을 단위로 설정되어 있다. 마을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끼어들기 힘들다. 이런 문제는 화력발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우로 당진, 태안, 보령 등에서 많은 소송과 논쟁이 있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한전에서는 76만 5천 볼트 송전망이 34만 5천 볼트 송전망보다 토지 소비량이 적다고 주장한다.
이헌석 : 2차선이 8차선으로 가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34만 5천 볼트 송전망을 걷어내고 76만 볼트를 놓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토지 소비량은 늘어난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한전은 이에 대해 34만 5천 볼트 송전망은 예비망이라고 한다.
이헌석 :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핵발전소도 마찬가지로 기후변동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핵발전소와 송전망 증가와 같은 설비 증가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한 가지 가능한 의미는 기존 설비를 이것으로 대체하고, 설비 총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더 효율이 좋거나 CO2가 덜 나오는 전체 설비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설비투자를 통해 효율적인 망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의미가 있다. 설비총량이 늘어나는 부분을 새로운 설비로 채우는 경우다. 이 때는 설비 총량이 늘어나고, 늘어난 설비가 아무리 효율적이라 해도 CO2 발생량, 갈등의 총량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현재 한국전력의 투자는 후자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반면 독일 같은 경우는 전자의 의미다. 독일은 에너지 소비량이 되려 줄고 있다. 에너지 총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력공급원의 포트폴리오를 바꿨다. 이럴 때는 첫번째 의미에 해당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찬조출연 베트남 갑오징어 : 76만 볼트 송전탑은 그 외에도 여러 의도가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철도연결과 비슷한 수준의 정치적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장기적으로 북한에 송전을 대비해야 하니까. 또 송전망을 수출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반도와 제주도 전선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직류망이다. 장거리 송전에서 직류가 교류보다 효율이 좋기 때문에 시장이 있다. 한국이 외국에 직류 송전 기술이 뛰어나다는 걸 알리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리승환 :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스마트 그리드도 마찬가지로 수출을 염두한 투자인가?
이헌석 : 미국은 행정부도 스마트그리드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인정한다. 미국은 전기 망이 옛날 것도 많고 좀 엉망진창이다. 정전도 잘 난다. 하지만 한국은 90년대에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승압하면서 망을 다 새로 깔았다. 이 정도 상황에서는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투자 필요가 절실하지 않다. 일부 가정집에 들어와 있는 전자식 계량기에 홈 오토메이션을 구현하고, 마이크로그리드라고 해서 소규모의 태양광 판넬 등의 소규모 설비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건데, 이미 조금씩 교체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상 전국 전력망에는 별 도움은 안 되지만 이를 통해 우리가 미국 수출의 도약으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권이 정권 끝나면 스마트그리드 거품 빠지고 정리될 듯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망 전체를 그렇게 바꾸는데 들어가는 돈을 누가 대는지 전혀 정리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리드로 뭘 하겠다는 계획을 보면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수!’ 등의 뻥카도 있고…
리승환 : 한국에서는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투자가 없는 편인가?
이헌석 : 투자가 어느 정도 있다. 제주도는 스마트그리드 시범도시로 지정되었다. 또 전국에서도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혹자는 전기업계 4대강 사업이라고까지 비판을 하던데, 새로운 인력 창출 등의 효용도 있으니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효율성이 제고된다면 망을 교체하는 것에 대해 반대할 수는 없다. 다만 속도 문제가 있다. 일시에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는 건 문제의 여지가 있다.
2. 에너지 공론화, 왜 안되는가?
리승환 : 에너지 문제가 매우 중요한데도 공론화가 부족하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이헌석 : 에너지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못 받는 부분이다. 한국에 에너지 오타쿠 백 명만 있으면, 바뀌지 않을까? 에너지 이슈가 사회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다 보니, 소수 전문가가 뚝딱해서 넘어가는 식이다. 우리를 비롯한 환경 단체의 주장은 핵발전 문제를 몇몇 전문가가 정하지 말고 사회적 공론화, 논의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공론화가 제도적으로 자리잡는다면 사람들의 관심도 커지고, 견제가 가능할 것이다.
리승환 : 사회적 공론화가 제도적으로 자리잡는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헌석 : 최근 교도 통신에 따르면 도쿄전력이 자기네 힘들다고 전력요금을 올리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공청회, 전문가위원회의 검토 계획도 함께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그냥 올린다고 하면 끝이다. 전문가 위원회 검토도 없이 지식경제부에서 내부 판단을 바로 밝히면 그냥 고고씽이다. 전기요금은 전국민이 관심 많은 주제임에도, 이야기 듣고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리승환 : 이미 원가공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헌석 : 현행 원가공개는 문제가 많다. 불과 A4 3쪽 자리 보고서에, 계산 식과 변수도 없고 답만 있다. 유시민이 “수학 문제 답만 쓰면 100점인 거냐?”라고 했는데,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본다. 민원 넣어 봤자, 공기업들의 상세내역은 영업비밀이라고 빠진다.
리승환 : 영업비밀에 접근하는 방법은 없는가?
이헌석 : 시민단체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영업비밀을 캐내는 것이다. 보통 국회를 통하거나, 내부자를 통하거나 얻는 게 일반적. 고급정보가 잘 나온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많아서 접근에 에로사항이 꽃핀다.
리승환 : 정보공개청구는 안 하나?
이헌석 : 정보를 얻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마지막이다. 그래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공식 요청에 대해 답변을 주지 않았다는 증거로 남기기 위해(…) 수행하는 게 대부분이다. 중요한 정보는 보통 내놓지 않는다.
리승환 : 송전망에 대해 인체 유해 논란도 있더라.
이헌석 : 송전망 주변지역 암의 유병률이 높아진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기업계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무해하지만, 환경단체 쪽에서는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리승환 : 둘이 어긋나면 어쩌란 말인가?
이헌석 : 환경단체의 원칙 중 하나는 명확하게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단체들이 따르는 이런 식의 원칙을 ‘예방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 환경호르몬 문제 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런 예방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리승환 : 송전망 관련한 형평성 문제는 뭔가?
이헌석 : 지역 돌아다니다 보면 좀 어이없는 게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도 그렇고, 송전탑 바로 밑에 건물이나 집이 있는 곳이 은근 많다. 특별법 때문에 급하게 송전망을 깔기에 문제가 생기는 문제다. 정작 돈 있고 힘 있는 집은 어떤 방식이든 피해가기에, 형평성 문제도 생긴다.
3. 핵발전소는 위치한 지역에 어떤 문제를 낳는가?
리승환 : 지역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원자력 발전소와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이헌석 : 발전소가 들어가기 전후의 여론이 뒤바뀐다. 시설이 들어서기 전에는 대부분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많다. 하지만 들어서고 난 다음부터는 삶의 문제이기에 반대가 확 줄어든다. 대개 발전소가 들어서는 곳은 미발전 지역이기에 어쩔 수 없다. 발전소와 함께 들어오는 인력들이 모두 고객이 되고, 발전소 인근 지역은 급격하게 한수원과의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린다.
리승환 : 미발전 지역에 그런 거 좋은 거 아닌가?
이헌석 간단히 말하면 그 지역은 원자력 발전소에 종속된다. 종속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 산업이 사라질 경우를 가정하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리승환 출신지인 경주를 언급해 보자.
리승환 : 저 서울 태생인데요? 도시남임. ㅋㅋㅋ
이헌석 : 하여튼 고등학교 거기서 나왔다면서(…) 경주도 월성 1호기에서 월성 4호기까지 만들어진 후, 신월성 지으려고 할 때만 해도 전반적으로 반대여론이 컸다. 하지만 점점 찬성 여론이 커지고 있다. 신월성, 방폐장 등이 몇 년 간 지연되자 상황이 돌변해서, 되려 빨리 진행하라는 플랜카드가 붙고 있다. 주민들이 경기부양 효과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부양 효과는 건설될 때 잠깐이지, 이후에는 딱히 경기부양 효과가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발전소 유치에 목을 매게 된다. 이제는 뭐 더하려고 해도 해안에 남은 평지가 별로 없어서 추가로 건설하기가 힘든데도 더 유치하려 무리수를 던질 정도다.
리승환 : 그래도 어쨌든 지역민의 생명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이헌석 : 두 가지 문제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안전 문제다. 이렇게 지역경제가 발전소에 종속되게 되면, 당장의 이익에 매달리며 안전문제가 뒷전으로 가버린다. 계속 가동되고 신규로 하나라도 더 짓기를 바란다. 또 하나는 발전소 폐로 이후의 문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발전소도 어쨌든 기계덩어리다. 수명이 끝나면 철거할 수밖에 없다. 지역 발전을 위해 발전소 짓는 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하지만 발전소 없이 이 지역이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미리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사북 탄광처럼 될 수가 있다.
리승환 : 사북 탄광은 뭔 소리인가?
이헌석 : 탄광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지역경제가 잘 굴러간다. 그 때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석탄산업합리화정책에 따라 노태우 정부 이후로 대규모 폐광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도 이어졌다. 하지만 탄광 지역에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 탄광에서 침출수에 진폐증 환자가 나오는 등 온갖 피해들이 속출하는데 이를 해결할 돈은 없었던 것이다.
리승환 : 그래서 이후 지역경제는 어떻게 됐는가?
이헌석 : 이걸 못 찾아서 결국은 김대중 정부가 강원랜드를 지은 것 아닌가? 이거라도 해서 지역경제 살려 보려는 거다. 그 때 당시에서는 어쩔 수 없기는 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 지역을 사랑하고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라 보기 힘들다. 발전소의 수명이 다한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데, 어디도 준비하는 곳이 없다. 그 때 가서 해안을 리조트로 도배하는 대책이라면 좀 힘들지 않겠는가?
리승환 : 이를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나?
이헌석 : 예산이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 철거를 대비해 돈을 모아놓지 않고, 매년 나오는 기금을 쓰기 바쁘다. 안 쓰면 내년 예산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 경주 월성에는 쓸데 없이 새로운 수영장이 생겼다. 발전소 직원이나, 인근 주민 정도가 이용할 뿐인데, 이게 왜 있어야 하는가?
리승환 : 수영장! 좋지 아니한가?
이헌석 : 문제는 바로 앞이 바다다(…)
리승환 : ……
이헌석 : 고리에도 스포츠센터가 생겼다. 그런데 농사짓는 사람이 뭐 한다고 벌건 대낮에 수영하고 헬스 하겠나(…)
갑오징어 : 내가 가봤는데 존나 크더라. 교복 입은 애들이 구석에 짱박혀서 담배 피는 장소로 애용되는 것 같았다.
이헌석 : …..
리승환 : 그럼 현재 원자력 발전이 들어선 지역에서 폐로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나?
이헌석 : 월성 1호기 수명은 벌써 올해로 끝이고, 고리 1호기도 설계수명대로라면 벌써 끝났다. 발전소 철거를 대비하려면 10~20년은 예산을 충분히 모아야 한다. 요즘 최신 발전소의 설계수명이 대략 60년이다. 그런데 화력은 그냥 뜯어서 고철 팔면 그만이지만, 원자력은 안정화시키는 데에도 이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방폐장에 버리기 힘든 부분도 있다. 발전소 돌리는 동안은 돈이 나오지만, 뒤에 드는 폐로비용도 만만치 않다. 원자력의 발전 비용이 경제적이긴 하지만, 폐로비용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리승환 : 폐로비용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라.
이헌석 : 에너지경제연구원 추정으로 기당 5천억이고, 정부에서 폐로기금 적립을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3천억이다. 환경연합이 추정하기로는 9천 억 정도인데 난 이것도 작다고 생각한다. 폐로 과정을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폐로라는 게 단계가 있다. 발전소가 스톱하면, 10년 정도 터빈 등 방사능 없는 놈들 떼어내고 냉각만 10년 시킨다. 이 과정을 사람이 24시간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주제어실은 냉각과정에서는 가동 시와 같은 인력이 들어간다.
리승환 : 계속 이야기해 봐라.
이헌석 :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방사능 준위가 떨어지는 놈들은 떨어진다. 이렇게 10년을 보내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으니 일단 기다린다. 이후 뜯어내는 건데 이것도 완전히 못 뜯어낸다. 원자로를 비롯한 여러 코어들은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추가로 더 안정화한다. 요약하면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평상시처럼 만들어야 완전 복원이인데, 폐로비용에 이 복원비용은 계산하지 않는다. 뜯어낼 놈들 뜯어내는 것만 생각한다. 이후에는 지역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 줄어들고, 이때부터 지역에 HELL이 열린다.
리승환 : 우리는 디아블로 따위 4시간만에 때려잡는 민족이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이헌석 : 우리나라 사례가 얼마나 안드로메다인지 보여주겠다. 후후후… 우리나라의 원자로 해체 사례는 2건이 있다. 노원구 공릉동의 원자력 병원 건너편에 한전 연수원에 있는데, 옛날에는 원자력 연구원이었다. 여기 근처 도로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 파업 안하는 착한 방송 SBS의 뉴스를 보도록 하자. 참고로 광고를 봐야 할 거다(…)
리승환 : 폐로 비용은 누가 대는가?
이헌석 : 폐로비용은 발전사업자 한수원이 서류상 폐기 기금이 있어서 그들이 부담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한수원이 아닌 인근 지역 주민들이다. 발전소가 돌아가지 않으니 돈이 더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주민들의 삶은 이미 경제적으로 발전소에 종속되어 버려서 큰 피해가 올 수 있다.
4. 핵발전소의 지역 경제 발전, 사실인가?
리승환 : 많은 지역민이 자기 지역 경제를 위해 발전소를 유치하고자 한다.
이헌석 :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 예로 고리 인근의 초등학교는 폐교하기까지 했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인근 지역이 부흥할 것이라는 게 유치 쪽 이야기지만, 통계를 놓고 보면 발전소 들어선 지역은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 건설공사 때 외부인력 들어서는 건 정말 일시적이다.
리승환 : 발전소 근무 인구만 따져도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이헌석 : 발전소 한 기에 보통 300~400명 이상이 근무한다. 한 지역에 발전소가 4~6기 들어가니까 가족을 포함한 인구가 수천 명 늘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역이 발전소 경제권에 종속될 뿐, 발전소 직원들이 이 지역에 이사 와서 뿌리를 내린다는 보장은 없다. 통계적으로도 발전소가 들어온 후 인구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고, 월성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 울산에서, 고리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해운대에서 출퇴근한다. 그래도 한수원이면 나름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입사하는데, 촌에 있고 싶어하겠는가?
리승환 :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의외의 함정이!
이헌석 : 한수원 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솔직히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꿈의 직장을 들어가고 나니,직장은 다 외진 곳에 있다. 그나마 국내로 발령받은 신입사원들은 다행이다. UAE나 두바이로 발령 나면 도시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게 된다. 허허벌판에 사막 말고 아무것도 없으니 다들 안 가려고 난리다. 하지만 신입사원들은 대개 그 사막에서 근무하게 된다.
리승환 : 그래도 그 나라는 원자력 사고 나도 별일 없겠다(…)
이헌석 : 그렇긴 한데(…) 대신 사고가 터지면 해양오염이 엄청 심해질 수 있다. 그나마 후쿠시마는 태평양에 바로 맞닿아 있는 열린 바다니까 좀 나았는데, 페르시아만은 거의 막힌 바다라서 사고가 터지면 바다까지 완전 못 쓰게 된다. 땅으로만 보면 나은 편이지만, 바다로 보면 오히려 최악이다. 페르시아만 자체가 싹 방사능 오염을 덮어쓰는 꼴이니까. 터지면 페르시아만에 인접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그냥 망했어요… 망했어요…
리승환 :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안전 상황은 어떤가?
이헌석 : 대만을 제외하면 한국처럼 인구밀도 높은 곳에 원전이 있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원자력 발전소 반경 30km 내 상주 인구는 20만 명 이하였다. 하지만 한국 고리 발전소 반경 30km 내 상주 인구는 320만 명으로, 부산과 울산의 상당 지역이 포함된다. 반경 1km 안에는 스크린골프장도 있다. 거기다가 고리 발전소로 연결되는 도로망도 부실하다. 인근 지역의 도로는 2차선에 불과하다. 이게 다 대피 시설이라 생각하면 매우 부실함을 알 수 있다. 최근에서야 고리 인근 해안선도로 확장공사에 들어가고 있다.
리승환 : 대체 왜 그런 곳에 발전소를 지은 건가-_-;;;
이헌석 : 그게 별다른 이유가 없다. 비사 등을 봐도 의외로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수요지 가까이에 지었다고 밖에는… 한국 자체가 인구 밀도가 높으니 좀 피하기 힘든 현상이기도 하다. 그나마 울진, 영덕의 인구 밀도가 낮으니까 그 곳을 택한 곳이기는 하다. 경상도 쪽에 고리 지었으니, 전라도 끝 영광에 하나 넣은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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