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교과서의 대표격이었던 금성출판사 간행 교과서에 이어(「좌편향 교과서를 실제로 읽어봤다」), 이번에는 정부와 여당, 보수 우파에서 극찬한 교학사 간행 교과서를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초판 간행 직후 역사 교사들이 지적한 여러 사실 오류들은 찾아보니 대부분 수정되어 있었으며, 역사 전공자가 아닌 내가 다시 꼼꼼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음을 밝힌다.
일단 결론부터 정리해 본다.
첫째, 권희영 교수가 집필한 6단원 해방 이후 현대사 부분은 ‘우편향,’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냉전, 반공, 북한 반대 쪽으로 기울어진 교과서가 맞다. 몇몇 새로운 사료들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70-80년대 국정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검정이나 자유선택 체제 하에서는 이런 교과서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싶은 대목들이 꽤 있었다.
둘째, 구한말, 일제시대에 이르는 부분에 있어서는 ‘뉴라이트’적인 사관, 즉 ‘조선 패망 내인론’ 및 ‘식민지 근대화론’이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나 자신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는 입장이라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우편향’ 교과서이니 노동사의 분량이 작고 ‘기업사’를 늘리려고 시도한 것은 당연하다. ‘친일’이라는 비난에 대처하기 위해서인지, 민족주의적인 내용이 더 강조된 인상도 받았다. 독도에 대한 내용이 여러 단원에 걸쳐 9페이지나 나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 외교 독립론을 강조하면서 이승만의 공헌을 시사한 곳은 꽤 있다.
셋째,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원명 교체기 중국의 변화라든가 데지마를 통한 일본의 네덜란드와의 교류, 그리고 대공황과 전체주의의 대두를 서술한 부분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사 부분에서도 중단원의 처음을 항상 세계 환경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고 있다. 이상적으로 본다면야 한국사와 세계사를 합친 다음 고대-중세-근대사와 현대사 정도로 다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한국사를 유난히 강조하는 요즘 추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 과정상 역사 과목은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사로 나뉜 것으로 알고 있다.)
넷째, 앞에 이미 제시한 편향적인 현대사 단원을 제외하고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내용이 너무 많아 고등학생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400페이지로 448페이지인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 분량이 적어 보이지만, 교학사 교과서가 편집이 빽빽하게 되어 있어서 실제 분량은 더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분량 자체가 많은 것과 비교할 때 직접적인 사료의 제시가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금성출판사 교과서에서 중단원 끝마다 나오는 확인 학습이 교학사 교과서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 등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주도학습’이 어려웠다는 얘기다. 물론 내용이 많은 것은 정보의 양을 중시하는 측면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다.
머리말
교학사 교과서는 머리말부터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고 선언한다. 역사의 주관성을 강조한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비교할 때 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역사 교과서에 있어서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함은 분명하니까 통과한다.
6단원: 해방 이후 현대사
바로 문제의 6단원(대단원)으로 간다.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냉전 시대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대립’으로 본 맨 앞부분부터 걸린다. (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서술한 금성출판사 교과서 쪽이 더 마음에 든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소련이 2차대전을 ‘공산주의 혁명을 선동하고 공산 세력을 팽창시킬 수 있는 기회’로 보아 발트 3국을 합병하고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 것은 맞지만, 독-소 전쟁(대조국 전쟁)에서 소련군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 가며 승리한 것이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밝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군만 1,060만명이 사망했다.)
소련의 아시아 공산화 전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일본의 공산당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이 최근 자본주의(정확히는 사유재산)와 천황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맞지만, ‘일본의 완전한 군사 주권을 추구한다’라고 되어 있는 대목은 틀렸다. 실제로는 평화헌법 9조의 철저한 준수를 주장하고 있으며, 2004년까지도 자위대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해방 직후 한반도 정세
첫번째 중단원에 나온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정국의 서술은 전반적으로 70-80년대의 국정교과서 내지 ‘올드 라이트’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미소 공동 위원회에서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신탁 통치 기간 중 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인상적이며, 1946년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대구 10.1 사건 등 좌익의 활동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주도 4.3 사건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는 군경과 우익 단체의 진압보다는 희생을 강조하고 있고 (‘이 과정과 이후 진압 과정에서 일부 군인과 경찰, 우익 인사가 희생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진상 규명 움직임과 2000년의 특별법 제정, 그리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적 사과는 나오지 않는다. 여수 순천 10.19 사건 당시 두 아들을 잃고 6.25 때 본인도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사진이 나온 것은 이 교과서가 개신교 관련 정보를 특히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남한 단정 수립
교과서는 최근 보수우파 쪽에서 남북 분단의 원인이 소련에 있다는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기밀문서인 1945년 9월 스탈린 명령과 같은 해 12월 슈킨 보고서를 싣고 있다. 두 문서 모두 북한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설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1946년 이승만의 정읍 발언 이전에 1945년 소련이 이미 북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찾아보니 진보 진영에서는 ‘소련의 기밀문서와 이승만의 공개발언을 병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당시 소련의 북한 단정 수립 의도는 비공개였기 때문에 이승만의 정읍 발언은 거기에 대응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남북 분단의 원인을 최초로 제공한 연합군의 일반명령 1호(38도선에 의한 미소 양국의 분할 점령을 규정한 유명한 문서)를 대신 제시하여야 했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38도선에 의한 분할 점령보다 소련군의 북한 단정 수립 명령이 남북 분단에 있어서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파’의 손을 들어 준다는 얘기다. 그리고, 같이 제시된 1946년 10월의 좌우 합작 7원칙을 비현실적으로 보는 교과서 저자의 의도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사유재산권 보호 원칙을 중시하는 내 입장에서 7원칙의 하나인 ‘몰수 후 무상 분배를 통한 토지 개혁’과 ‘주요 산업의 국유화’는 분명 문제가 많으니 말이다.
교과서는 1948년 남북 정치 협상(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대해 ‘김일성이 남한의 우익 세력을 분열하기 위하여 김구와 김규식의 제의를 뒤늦게 수락했다’고 서술하면서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상적으로야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 정부 수립에는 협조하지 않겠다’면서 이 협상에 참석한 김구 등 일부 우익 인사들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이미 남북 분단을 저지하기는 늦은 시점에서 정치적 역량이 부족한 우익 인사들이 결국 북한의 전략에 이용당했다는 현실적인 견해 쪽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나는 김구 선생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며, 그 결정적 근거가 된 사건이 바로 남북 정치 협상 참가라고 보는 것이다. 이승만 못지 않은 우익 독립운동가가 졸지에 ‘통일운동의 시조’가 되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연석회의가 이미 4월 14일부터 개최되었다는 서술은 4월 19일의 오타로 보인다. 김구는 20일, 김규식은 22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 헌법이 ‘정치, 경제, 사회에 있어서 자유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하였다’는 서술은 확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제헌 헌법 전문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라는 구절이 있을 뿐이며,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이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란 표현은 교학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검정 교과서 기본 지침이 그렇게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나는 1948년 8월 15일에 일어난 사건이 ‘정부수립’인지 ‘건국’인지의 여부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둔다. 나 자신 그 날의 사건을 ‘건국’에 가깝게 보기는 하지만, ‘건국’을 강조하는 세력의 이승만 ‘신격화’ 의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과서는 반민특위의 실패를 짧고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특히 ‘경찰은 치안 유지와 공산 세력 저지의 공을 주장하며 반발하였다’는 대목은 경찰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6.25 전쟁
두번째 중단원에서는 6.25 전쟁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1980년대 이전의 전통적인, ‘외인설’의 입장에서 본 측면이 강하지만, 어쨌든 6.25 전쟁 자체를 중요하게 취급한 것은 마음에 들었다. 아마 ‘뉴라이트’ 쪽에서 6.25 전쟁을 현재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최종적으로 확립시킨 중요한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소련의 한반도 적화 전략’ ‘중국의 지원’ ‘김일성의 오판’ 등의 소제목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친숙한 얘기들이다. 나는 6.25 전쟁 원인에 있어서 ‘내인설’ 쪽이 더 설득력이 있으며, 3.1운동 직후부터 쌓여 온 좌우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에, 금성출판사를 비롯한 다른 교과서들이 6.25 이전 남북 교전을 서술한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가 북한이 중국 국공내전 당시 공산군을 지원한 것(일본군이 남긴 무기 제공 등)을 자세히 서술한 것 역시 6.25 전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본다.
‘6.25 전쟁을 통하여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수호자적 위치를 확실히 하였다’는 평가는 속된 말로 ‘오글거린다.’ 이건 그냥 시대착오적인 발언일 뿐이다. 지금이 1950년대인 줄 아는가? 저자 권희영 교수가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스파이 브리지>를 보고 뭔가를 느꼈으면 좋겠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국제 사회의 냉전적 대립이 심화되었다’는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서술이 훨씬 더 ‘교과서적’이다. 다만, ‘남한 사회가 공산주의가 환상이라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였다’는 서술은 타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교학사 교과서에 나온 6.25 전쟁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실 중 의미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공산 빨치산(조선 인민 유격대)과 이현상의 활동, 북한의 의용군 모집 및 인민재판과 서울대 병원, 대전 형무소에서의 학살, 남한의 국민 보도 연맹 학살, 거제도 포로 수용소 설명, 반공 포로 석방 등의 사건들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았다. 우익에 의한 황해도 신천 학살, 미군에 의한 노근리 학살, 국군에 의한 거창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등 6.25 전쟁 당시 일어난 중요 사건 중 두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들도 너무나 많다. 검정 교과서의 한계로 추정되고, 또 아직 6.25 당시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까닭일 것도 같다.
대한민국 발전에 있어서 이 조약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이 조약의 체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것은 100% 인정한다. 하지만 교과서에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전문을 실은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 반공?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제목의 세번째 중단원에서는 일단 동서 냉전을 너무나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 독재보다 우월하다는 것, 50-6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우주 개발 및 군비 경쟁, 공산주의가 파시즘과 비슷하다는 것 등을 2페이지에 걸쳐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반공을 기조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유지되고 그에 따른 정치가 이루어졌다’는 대목은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제도 계속 반공을 기조로 하는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반공이 국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 적어도 이 대목만은 국정 역사 교과서에 옮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과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계속 자유민주주의 정치 제제가 유지되고 그에 따른 정치가 이루어졌는가? 권희영 교수는 유신도, 제5공화국 체제도 ‘반공을 기조로 했으니’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특정 정당이 북한과 같은 독재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자유 선거와 정권의 교체가 그러한 방식의 통치를 불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대목 역시 마찬가지다.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가 결과적으로 자유 선거와 정권 교체에 의해 중단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등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에 의해 쟁취된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병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마치 대한민국에는 독재 권력이 없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 권희영 교수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런 믿음을 그대로 실으면 안 된다.)
‘6.25 전쟁을 통하여 대한민국에서는 더이상 체제 이념을 놓고 다투는 일이 없게 되었다. 공산주의의 침략을 직접 경험하면서 반공이 국민적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도 나는 불만이다. ‘반공이 국민적 공감을 얻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세상에 체제 이념이 공산주의냐 아니냐의 두 가지로만 분류되는가? 정확히 말한다면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체제 이념을 놓고 다투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말 ‘체제 이념을 두고 다투는 일이 (자연스럽게) 없어졌다’면 왜 정부 여당과 보수 우파 세력은 그렇게 강력하게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결국 이념 전쟁의 맥락이 아닌가? 나는 오히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독재 체제를 심각하게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에 (해산된 통합진보당도 북한 체제를 ‘심각하게’ 대안으로 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체제 이념을 놓고는 자유롭게 토론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검정, 아니 자유선택 교과서 체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국가보안법 폐지에도 찬성한다.
부족한 민주화 과정에 대한 서술
교과서는 이승만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너무 짧게 서술하고 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12페이지였는데 비해 교학사 교과서는 7.5페이지 정도였다(물론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사진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 사진 하나하나가 빽빽한 문장보다 민주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구체적 서술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이 보인다. ‘장면 정부가 4,500명의 경찰을 해고하는 등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는 대목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1.21 사태 및 울진 삼척 공비 사건의 언급, 그리고 닉슨 독트린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10월 유신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인 것이 뻔히 드러난다.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나온 조선일보 사진까지 등장한다.)
육영수 여사,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표현 역시 잘못된 것이다. ‘시해’의 사전적 의미는 ‘부모 혹은 임금을 죽임’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왕이었나? (하긴 어느 정치인은 우리나라가 아직 ‘왕정 종식’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79년 10.26 사태부터 현재까지의 가장 최근의 민주화 과정을 교학사 교과서는 달랑 두 페이지로, 사진도 몇 개 없이 커버하고 있다. 마치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검정 지침에 있으니 할 수 없이 서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까. 사진 역시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12장이 있는데 반해 교학사 교과서에는 4장 뿐이었다. 그것도 대단원 맨 앞 연표에 나오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진, 내용이 전혀 안 보이는 광주 동구청의 5.18 일지, 그리고 노태우의 6.29 선언이 수록된 조선일보 호외 등이니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인다. 저자 권희영 교수가 일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
김대중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이 북한 핵 개발 기회를 제공했다는 비판, 노무현 정부가 법치를 약화시키고 안보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우편향’ 교과서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경제 및 사회 발전에 대한 내용
네번째 중단원은 경제 및 사회 발전에 대한 내용이다. 일단 맨 앞에 나온 2차대전 이후 현재까지의 세계 경제 변동을 다룬 대목은 마음에 든다. 다만 ‘세계의 자유 무역 체제 속에서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격차는 20세기 후반 이후 더욱 벌어지기 시작하였다’는 서술은 중국을 필두로 한 소위 신흥시장국 경제의 빠른 성장세를 감안할 때 꽤 이상해 보인다. 좌편향, 아니 그 이전에 사실과 다른 서술로까지 보인다는 얘기다.
저자가 경제사 전공이 아니라 그런지, 이 중단원의 핵심이어야 할 박정희 시대의 경제 개발에 대한 서술이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도 체계가 없어 보인다. 특히 70년대 유신 시절의 최대 공적이라고 할 오원철 주도의 중화학 공업 육성 과정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경제 개발 계획의 원조가 장면 민주당 정부도 아니고 이승만 정부 아래 입안된 1960-62년의 산업 개발 3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가장 특기할 만한 대목이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다.)
새마을운동에 긍정적인 측면이 꽤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농촌 생활의 모든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매우 성공적인 농촌 발전 운동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대목은 아무리 ‘우편향’ 교과서라지만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딸이 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북한 관련 내용
다섯째 중단원은 북한 관련 내용이다.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공산주의 체제의 변화를 서술한 맨 앞 부분이었다. 코민테른, 코민포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갈등, 중국의 문화대혁명,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등을 정리한 부분은 분명 의미가 있다. 교학사 교과서도 분명 주체사상을 다루고 있으며, ‘사회정치적 생명체’, ‘수령 무오류론’등을 강조한 것이 오히려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 주체사상의 핵심에 더 접근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반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비정상적으로 큰 군사력 유지, 아웅산과 대한항공 858기 폭발, 서해 교전, 천안함 폭침 등 테러와 군사 도발, 인권 상황, 사치품 수입 등 어두운 부분만 강조한 것은 분명 편향적이다. 북한 핵 실험 장소의 위성 사진, NLL 주변 지도, ‘통영의 딸’ 신숙자, 뮤지컬 요덕 스토리, 정치범 수용소 사진 등을 수록하고 있는 반면, 북한이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라든가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부터 이어진 남북한 사이의 화해 협력을 위한 노력은 최소한으로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이를테면 그동안 남북한이 합의한 4대 문건(7.4 공동 성명, 남북 기본 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을 ‘사료 탐구’의 형태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이 왜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 등장해야 하는지, 과연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세계 인권 선언이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북한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 정부가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계속 추진한다면 북한의 핵 개발 및 인권 문제를 강조하고 국가로서의 기본 정보 및 그동안의 남북 협력 노력을 등한시한 교과서를 단일 국정 교과서로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의 영토 및 역사 분쟁, 한국의 국제적 위상
여섯번째 중단원은 동북아시아의 영토 및 역사 분쟁을 담은 부분이다. 역시 그 배경으로 19세기 러시아의 극동 진출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해양 영토 확장을 제시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한일간의 현안에 있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큰 진전인 1993년 일본의 고노 담화를 언급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없었다.)
국의 동북공정 논란에 있어서도 저우언라이 총리의 고구려, 발해사를 인정하는 고대사 관련 발언을 수록한 것 역시 이 교과서의 장점이다. (교과서에는 저우언라이의 북한 방문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되어 있지만, 찾아보니 반대로 북한 학자들의 중국 방문 자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독도 문제에 세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으며, 독도 관련 내용은 다른 대단원에도 등장한다.
일곱번째 중단원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향상에 대한 것이다. 역시 맨 앞부분의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세계화의 추세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의미가 있으며, 국제 평화 유지 활동, 원조 활동을 강조한 부분도 인상깊었다. 특히, 한국인의 해외 이주(디아스포라)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굉장히 민족주의적이기까지 하다.
5단원: 일제시대
다음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서술한 5단원이다.
처음부터 일본의 식민 통치가 ‘내선일체’를 표방하는 ‘동화주의’였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서구 여러 나라와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이다. 권희영 교수가 집필한 6단원과는 달리 1~5단원은 읽기에 거슬리는 대목은 별로 없다.
첫번째 중단원은 전체가 1,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국제 정세에 할애되어 있다. 베르사유 체제, 아시아 각국의 민족 운동(호찌민 사진도 있다!), 대공황과 전체주의, 2차 세계 대전의 진행과 그 결과 등이 중립적으로 서술된다.
1910~1920년대 식민지 사회
1910년대 일본의 토지 조사 사업에 대한 서술은 ‘지세를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식민지 경제 기반을 구축하려는 것’이었다고 되어 있으며,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0년대 산미 증식 계획 서술에 있어서 ‘일제는 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일본으로 수탈(!)해 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늘어난 생산량보다 더 많은 쌀이 군산항과 목포항 등지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 반대이다.)
일본군 위안부 서술에 있어서 ‘위안부 수십만 명’이 아니라 위안부와 정신대를 합해서 수십만 명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 사실과 더 가까와 보이기도 한다. 일제의 인적 수탈, 즉 징병과 징용, 정신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두 페이지에 걸쳐 10여 장의 사진을 따로 모아 실은 것은 ‘이래도 친일 교과서라고 부를 것이냐’라고 항변하는 느낌까지 준다.
3.1운동 서술에 있어서는 김규식의 파리 강화 회의 파견을 포함시킨 것이 일단 돋보인다. ‘외교를 통한 독립 노력’을 강조하면서, 이승만도 파리에 가려고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전통적 시각’에 입각하여 민족 대표 33인과 기미 독립 선언서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관순 사진이 등장하며, 필라델피아의 한인 대표자 대회에 이승만이 참석했다는 사진 설명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서술에서도 ‘외교 독립론’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이 눈에 띄는 반면, 임시정부 수립 초기 민족주의 우파 진영 뿐 아니라 이동휘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도 참가한 ‘통일전선’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통일전선’이라는 용어 문제가 아니라, 좌우간의 협력 사실 그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내 독립 운동 중 실력 양성론을 다루면서 사회진화론의 대안으로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을 소개한 것이 이례적이다. 하지만, 사회진화론과 실력양성론의 관계를 뚜렷하게 나타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찾아보니 박노자의 책 ‘우승열패의 신화’에서도 사회진화론과 1920년대의 실력양성론을 연계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정말 둘 사이에 관련이 없었을까?) 기독교계 종교 학교 활동의 강조는 현재 보수 우파의 핵심 세력이 보수 개신교 및 사립학교 재단임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것으로 보이며, 잡지 ‘과학 조선’ 등 과학 운동을 서술한 것이 특이하다.
사회주의 운동에 있어서 박헌영에 의한 1925년 조선공산당 창립과 그 이후 해방 때까지의 탄압 및 재건의 역사가다루어지고 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없었다.) ‘공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우선 잘 알아야 한다’는 논리 같기도 하다.
일본 식민지 시대의 농민 운동과 노동 운동이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비해 단촐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우편향’ 교과서로서 당연해 보인다. (금성출판사는 2.5페이지, 교학사는 반 페이지) 노동자 고공 농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강주룡의 을밀대 지붕 농성 사진 역시 없다. 박가분이나 고무신 산업 같은 ‘기업사’를 나름 자세히 다룬 것 역시 ‘우편향’ 교과서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일 것이겠지만, 차라리 경성방직과 같은 좀 큰 회사를 다루는 것이 더 나았을 것도 같다.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자세히 소개한 것은 역시 ‘친일’ 논란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생각된다.
국외 독립 운동 중 무장 투쟁을 서술한 부분에서는 자유시 참변이 소련 적군의 독립군 공격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보천보 전투 역시 항일 유격 투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김일성의 이름은 없다. 외교적 독립 운동을 따로 다루면서 특히 이승만의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
일본 식민지 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소개한 단원이 아마 가장 ‘뉴라이트적’인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농업의 비중이 줄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비중이 늘어난 산업 구조 변화의 제시 (김낙년 교수의 연구 결과이다), 해방 후 이루어진 농지 개혁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자작 농지 설정 사업(이영훈 교수의 연구 결과이다), 일본 자본으로 이루어진 전북 김제의 간척 사업(이영훈 교수와 허수열 교수의 ‘벽골제 논쟁’이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의 인구 급증 등은 최근 ‘뉴라이트’ 경제사학계의 핵심 연구 결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임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어차피 모든 근대화는 불균등 발전일 수밖에 없으며, 일본의 물적/인적 자본이 식민 조선에 투하된 것은 분명 조선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민족’ 개념에 중립적인 경제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신분제도의 해체가 식민 통치로 더 확고해졌으며, 조선 시대 차별을 받았던 중인, 향리, 서북인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반면, 동일 씨족 간의 결합력이 강화되어 대종회와 대동보(족보)가 간행되었다는 점을 서술한 것 역시 의미가 있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적(=근대적) 규율의 강제와 시간관념, 공간관념의 변화, 나아가서 노동자 의식의 형성과 여성 의식의 고양 역시 분명 근대화의 일부분인 것이다. 근대화, 수출, 발달 따위의 단어는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다. 전통적 결혼관에 반기를 든 소설가 김명순을 소개한 대목이 이채롭다.
한편, 뉴라이트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국가의 부재라는 ‘식민지 자본주의의 한계’를 논의한 정태헌 교수의 글과, 영화 ‘암살’에도 등장했던 미쓰코시 백화점에 대한 일본 역사가 하야시 히로시게의 글을 병치한 대목은 이 대단원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이다. 역사 서술의 주관성을 잘 드러냈다고나 할까.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 중단원에서는 해방 직전 국내외에서 벌어진 독립 운동을 잘 정리하고 있다. 전국 연합 진선 협회를 통한 좌우 양 진영의 통일 전선 조직 시도가 곧 실패하고 중국 내 독립 운동 세력이 결국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 광복군)와 조선 독립 동맹(조선 의용군)으로 나뉜 것, 미국의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의 활동, 국내의 조선 건국 동맹 등이 서술되었다. 다만, 이승만의 외교 독립 운동, 즉 임시정부 승인 획득 운동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보수 세력의 이승만에 대한 높은 평가를 다시 한 번 잘 드러낸다.
4단원: 고종 즉위~국권 상실
이제 고종 즉위 때부터 국권 상실 때까지를 서술한 4단원 차례이다.
제국주의의 발달과 서구 열강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서 금성출판사 교과서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아시아 각국의 서구 문물 수용에 있어서 특히 일본이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 학문을 도입한 난학을 언급한 것이 인상적이다.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책이 전면 개혁이 아니라 전통적 체제를 복원하는 것이었다는 평가도 ‘뉴라이트’ 냄새가 나지만 어쨌든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 유신, 요시다 쇼인과 사이고 다카모리의 조선 침략론(정한론)도 자세히 소개되었다.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광무 개혁에 이르는 격변기에 대한 서술은 교학사와 금성출판사 교과서 사이에 그리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동학 농민 운동 관련 자료를 따로 두 페이지에 걸쳐 정리한 것이 돋보이기도 한다.
다만 청일전쟁 발발 당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불만이며, 일본 망명에서 돌아온 박영효가 총리대신으로 제2차 갑오개혁을 추진할 당시 자주적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서술이 특이했다. (찾아보니 사실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갑오개혁-을미개혁 당시 김홍집, 어윤중, 박영효 등의 활동 상황을 자세히 담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싶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분기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을미사변에 대한 서술은 큰 문제가 없었다. 독립협회의 초대 위원장이 이완용임을 밝힌 부분은 이완용이 친일파이기 이전 친미파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분명 의미가 있다. 독립 협회의 여러 가지 한계를 다룬 부분도 전반적으로 독립 협회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좋은 비교가 된다. 대한 제국 수립에 있어서는 열강 사이의 세력 균형이 ‘칭제’를 가능하게 했음을 지적한다.
구한말을 다룬 4단원에서 ‘뉴라이트’ 적인 성향이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은 조선-대한제국의 근대국가 수립이 좌절된 이유를 정리한 부분이다. 국가의 재정 부족, 이를 방치한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 근대적 제도 확립의 미비, 서구 열강의 방해, 이렇게 네 가지를 들었다. ‘더 알아보기’를 통해 구한말의 지도층이던 민씨 척족의 이기주의와 유생들의 국가 운명에 대한 무관심을 더 자세히 서술했으며, ‘산림에 묻혀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나라를 수복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다’고 주장한 ‘구한말의 마지막 대유학자’ 간재 전우의 글도 인용되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었다. 내가 조선 패망의 ‘내인설’을 지지하는 것은 6.25 전쟁의 ‘내인설’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과 스탈린의 ‘침략 야욕’만 규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내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니까.
‘우편향’ 교과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구한말 역시 ‘기업사’ 부분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한성은행(조흥은행-신한은행)과 대한천일은행(상업은행-우리은행)간의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 논쟁, 독립신문에 실린 한성은행의 광고 등이 그 예이다.
‘우리나라의 개신교 수용은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전에 교회가 설립되는 등 자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국인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서상륜이 1884년 황해도에 세운 소래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개신교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다양한 교과서가 나오는 검정 체제의 장점이기도 하다.
독도와 간도가 아예 독립된 중단원으로 6페이지에 걸쳐 다뤄진 것 역시 교학사 교과서가 민족주의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독도에 대해서는 울릉도 검찰 일기, 각종 지도와 신문 등 정말 다양한 자료가 등장한다. 참고로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구한말 대단원에서는 독도와 간도에 각각 한 페이지씩 할애하고 있다.
3단원: 조선시대
조선 건국부터 19세기 세도 정치 시대까지를 다룬 3단원에 대해 요약한다.
역시 맨 앞 부분은 당시 세계사(동아시아사) 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조선 건국 시기가 중국의 원명 교체기,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에 의한 남북조 내란의 종식과 일치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중원의 주인공이 원에서 명으로 바뀌면서 동아시아는 상호간의 교류는 물론 다른 세계와의 교역도 급격히 줄어들고 문화의 통합성도 약화되었다’는 서술이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유구 왕국이 15세기 일본, 조선, 중국, 동남아 사이의 중계 무역으로 번성했다는 대목도 내 지적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의미가 크기에 지금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리라.
조선의 통치 체제에 대한 서술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전반적으로 교학사 교과서가 금성출판사 교과서에 비해 자료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과거 시험의 과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대목이 요즘의 공무원 시험 과목과 겹쳐지며 나름 흥미를 끌었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은 15세기 말부터 누적된 군역제의 모순으로 군사 동원 체제가 무너져 있었다’는 서술은 구한말 조선의 문제점을 지목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며, 효종 때 북벌 운동에 대해서도 ‘당시 조선의 국력으로 청을 정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실질적인 북벌보다 서인들의 정권 유지 논리로 이용되었다’는 현실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지 않는다. ‘자학 사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음에 든다.
독도에 대한 내용은 3단원에도 두 페이지에 걸쳐 등장한다. 4단원의 네 페이지, 6단원 세 페이지까지 합치면 모두 아홉 페이지. 반면 금성출판사 교과서의 독도 관련 내용은 3.5페이지이다. 나는 민족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 교과서가 독도에 대해 길게 서술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붕당 정치의 원인을 3년마다 열리는 식년시 외의 잦은 별시 시행으로 인한 과거 합격자 수의 증가, 그리고 그 합격자들이 한정된 관직을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정치적 싸움에서 본 것도 타당한 분석이다.
대동법의 시행에 1608년(경기도)부터 1708년(황해도) 까지 딱 100년이 걸렸으며, 그 이유가 대토지 소유자들의 완강한 저항이었음을 지도와 함께 보여준 대목 역시 마음에 들었다.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에 대한 중단원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광작’으로 인한 ‘부농 형성’을 언급한 곳이다. 김용섭 교수가 주창한 광작-경영형 부농 이론은 조선 후기 내재적 발전론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면서 이영훈 교수를 필두로 한 뉴라이트 경제사학자들이 맨 처음 공격한 대상이기도 하다. ‘뉴라이트’의 영향이 뚜렷한 교학사 교과서가 광작-경영형 부농론을 채택한 것은 교육부의 검정 지침 때문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 중단원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모내기법이 가뭄으로 물이 부족할 경우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위험한 농사법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적당히 오면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생산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퍼졌다는 내용, 그리고 신분제도의 동요에 있어서 문과 합격자에 대한 서얼 차별을 없앤 1851년의 신해허통과 19세기 중인들의 양반 문화 따라하기를 다룬 부분은 교학사 교과서에만 등장한다.
2단원: 고려시대
다음은 2단원, 고려시대이다.
내용에 있어서 금성출판사와의 차이는 점점 줄어든다. 사실 1, 2단원만 볼 때 교학사와 금성출판사 사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분량이다. 교학사는 1, 2단원 합쳐 90페이지인 데 비해 금성출판사는 128페이지이다. 교학사가 금성출판사보다 근현대사 비중이 더 크다는 얘기도 된다. 구한말 이후인 4, 5, 6단원을 근현대사로 볼 때 교학사는 그 비중이 58%(210/362), 금성출판사는 52%(220/420)이다.
‘뉴라이트’ 및 권희영 교수 등의 ‘올드라이트’ 들이 할 얘기가 많은 부분이 근현대사일 테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앞으로 나올 국정 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을 줄이겠다고 한다. 보수 학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고려의 건국과 발전, 통치 체제를 분석한 내용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와 별 차이가 없다. 경제 활동에 있어서 ‘가뭄이 오면 농사를 망친다’는 모내기법의 단점이 여기에도 등장한다. 소금 전매제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고려시대의 소금 생산 방식은 염전을 이용한 천일염이 아니라 바닷물을 가마에 넣고 끓이는 방식이었다’는 서술이 요즘 천일염 논란과 관련해서 눈길을 끌었다.
고려 후기에 사원이 전국 토지의 1/6을 소유하면서 상공업, 고리대업, 양조업(술), 숙박 음식업(원)에까지 진출했다는 대목, 조운로의 단축을 위해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다가 중단했다는 대목도 흥미로왔다. 검정 교과서가 추구하는 다양성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고려사 부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고려 사회의 개방성과 역동성, 활발한 신분 이동을 강조한 부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수천년 역사에서 노비 출신이 정권을 잡은 것이 고려 무신 정권 시대(이의민) 말고 또 언제 있었는가! 이것도 조선을 깎아내리는 ‘뉴라이트’적 서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조선보다 고려를 더 좋아했던 내 평소 생각과는 잘 맞아떨어진다.
1단원: 고대사
그리고 1단원, 고대사이다.
여기도 맨 처음은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화석, 알타미라 동굴 벽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등 세계사적 배경으로부터 단원을 시작한다. 기원전 1천년 전 경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민족의 원형’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는 서술은 금성출판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으며, 이것 역시 교학사 교과서가 은근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함을 재확인한다. 교과서는 ‘신석기 시대 후반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퍼져 살던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라는 단정적인 서술 역시 교학사에는 나오지만 금성출판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고조선 위치에 대한 논쟁에서 이동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금성출판사와 같으나, 위만을 ‘연 지역에 살았던 고조선 계통의 주민’이라고 추정한 것은 역시 민족주의의 냄새가 난다.
백제의 요서 진출도 교학사가 금성출판사보다 더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있어서 ‘(삼국이 이미) 혈연적 동질성과 문화적 공통성이 있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삼국과 일본의 교류 흔적에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타마 현 히타카 시의 ‘고려 신사’를 제시한 것도 이채로왔다.
마무리: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긴 글을 맺으며,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쓰레기같은 책’은 결코 아니었다. 권희영 교수가 집필한, 냉전 반공적이고 1970-80년대 ‘올드 라이트’ 적인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해방 이후 현대사 부분은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대로 넘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꽤 있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전반적으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뉴라이트’적 시각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뉴라이트’의 본래 의도였던 ‘탈민족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설사 6단원 현대사 부분을 그대로 남겨둔다고 해도, 교과서 검정 체제를 지키고 나아가 궁극적 목표인 완전 자유 발행제로 가기 위해서는 교학사 교과서도 좀 더 많은 학교들이 채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민주 진보’ 진영 쪽에서도 이 교과서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한 학교도 채택하지 않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과격한 방법으로 반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교학쇼핑몰에서 인터넷 구매 가능하다.
원문: 새나의 창고
※ 이 글은 동일 필자의 「좌편향 교과서를 실제로 읽어봤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